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채식과 육식 사이: 불완전한 채식주의자?_비건(1)


왜 비건인가


    요즘 비건이 완전히 대세다. 단순히 개인의 비건 식생활의 확대를 넘어서 비건 치킨, 대체육, 식물성 계란, 비건 베이커리 등 비건 트렌드는 다수를 대상으로 하는 식산업 전반에까지 자리잡았다. 나아가 비건 의류, 비건 물감, 비건 화장품, 비건 축구화 그리고 비건 애니메이션 캐릭터까지 그 영역이 생활 전반으로 확장되었다. 그런데 왜 나는 ‘비건’을 소수자의 영역에서 다루고자 하는가.


    소수자성에서의 ‘소수’는 수적 소수와 구분될 필요가 있다. 단지 수적 열세를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해당 정체성이 왜곡되거나 일상에서 비가시화되는 상황에 주목해야 한다. 그리고 앞으로 연재될 에세이는 다수의 편리를 위해 만들어 놓은 이분법적인 선이 포함하지 못하는 다양한 인간 정체성을 포착하는 것에 주력할 것이다. '비건'이라는 주제는 그것이 트렌드로서 주목받고 많은 이들의 관심을 끌어내고는 있으나, 육식과 채식이라는 혹은 완전한 채식주의자와 비채식주의자라는 이분법에 가려져 그 사이에 존재하는 수많은 개인의 정체성이 비가시화된다는 점에서 다뤄볼만 하다고 생각한다. 


    또한 소수자성은 주로 사회적 관념 속에서 다수에게 평가된다. 다시 말해 사회가 생각하는 소수자성의 이미지라는 것이 먼저 존재하고, 그 틀에 맞추어 수많은 개인의 정체성을 바라본다는 것이다. 이러한 과정에서는 관념화된 소수자성만이 확대되어 남고, 개인의 삶이라는 복합적인 내러티브는 죽는다. 따라서 해당 정체성 자체뿐만 아니라 정체성을 가진 주체, 즉 '인간'의 삶을 보여주는 그들의 일상에 주목해야 한다. 그리고 그들의 일상과 생각을 왜곡을 최소화하면서 보여줄 수 있는 방법이 인터뷰라고 생각했고, 따라서 앞으로의 에세이는 인터뷰를 포함하고 있을 것임을 밝힌다.




육식과 채식사이, 불완전한 채식주의자


     소위 비건vegan은 채식주의자vegetarian라는 단어와 동의어로 인식되곤 한다. 엄밀히 말하면 비건은 동물성 원료를 전혀 섭취하지 않는 식생활을 지향하는 채식주의를 의미한다. 그러나 채식주의는 동물성 원료를 완전히 배제하지는 않더라도 채식을 지향하며 살아가는 것을 의미한다. 그러나 편의상 위 에세이, 그리고 앞으로의 에세이에서는 채식을 지향하는 식생활 전반을 '비건'이라고 부르되, 협의의 비건을 의미하는 경우에는 영어와 병기하여 표기할 것을 밝힌다. 


ⓒSK Careers Journal


    이러한 일이 생기는 이유는 우리 관념 속의 범주와 연결되어있다. 육식과 채식, 고기를 먹는 사람들과 그렇지 않는 사람들으로 나누어진 두 범주에 맞추어 식생활을 바라보고 있기 때문이다. 범주라는 것은 우리에게 편리함을 주는 동시에 폭력적으로 개인의 정체성에 소속을 부여한다. 우리가 보라색을 좋아하는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 혹은 모자를 쓰는 사람과 아닌 사람 등의 기준으로 세계를 쪼개서 보지 않고 색깔과 패션을 하나의 선호나 개성으로 이해하듯이, 우리의 먹는 행위도 개인의 지향으로 이해할 필요가 있다. 동물성 원료를 일체 섭취하지 않는 비건, 계란을 허용하는 오보 베지테리언, 유제품을 허용하는 락토 베지테리언, 육고기만을 배제하는 페스코 베지테리언, 붉은 살코기를 배제하는 폴로 베지테리언, 그리고 채식을 지향하지만 상황에 따라 육식을 허용하는 플렉시테리언까지 채식을 지향하는 개인의 방법은 무수히 많다. 따라서 '완전한' 채식주의자라는 말은 채식주의의 정의와 충돌한다. 개인의 식이 '지향'에는 완전함이라는 개념이 적용될 수 없고, 식이 지향은 완전함 혹은 불완전함이라는 평가를 뛰어넘어 개인의 삶의 방식의 영역이기 때문이다. 아래에서 채식을 지향하고 각자의 방법으로 채식을 실천하고 있는 사례를 공유하고, 다음 에세이에서는 우리 주변의 다양한 채식주의자들을 소개하고자 한다.




왜 나는 주중 채식주의를 택했는가?


ⓒTED <Why I’m a weekday vegetarian>


    인간의 건강과 동물의 복지, 그리고 지구 생태계 전체를 위해 육식을 포기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Graham Hill은 채식주의를 지향해야한다는 신념을 가지고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그의 미각적 욕구로 인해 채식주의자가 되지 않아왔음을 밝힌다. 대신 주중에는 채식을 실천하고, 주말에는 육식을 허용하는 '주중 채식주의자 weekday vegetarian'가 되었음을 알린다. 앞서 소개했던 범주에 의하면 그는 플렉시테리언이라고 생각할 수 있겠으나, 범주는 편의를 위한 것일뿐 그가 채식을 지향하는 그만의 방법을 찾고 실천하고 또 소개하는 것은 그만의 고유한 식이 지향을 잘 보여준다. 그의 ‘주중 채식주의’는 채식을 지향한다고 해서 우리가 가진 미각적 욕구 자체를 부정할 필요가 없으며, 채식에 대한 진입장벽을 낮출 수 있음을 시사한다. 지구 환경, 스스로의 건강, 그리고 동물의 권리를 위해 육식을 줄이는 그의 삶의 모습은 채식 아니면 육식이라는 이분법에 포함되지 않는 고유한 방식이다. 우리가 이것을 '불완전'하다고 부를 수 있을까.

작가의 이전글 무지가 쌓은 벽을 허물려면_장애(1)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