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맥도강 Apr 16. 2023

청와대 활용방안 단상(斷想)

어설픈 물리주의자의 좌충우돌기

어설픈 물리주의자의 관점에서는 좋은 터와 그렇지 않은 터를 구분하는 명확한 기준이 있다.

첫째는 사용목적에 적합한 입지여건인가?

둘째는 접근성이 편리한가?

셋째는 가격이 합리적인가?

동일한 가격이라면 접근성이나 주변의 입지여건에 따라서 토지의 가격이 정해지는 것은 일반적인 상식에 해당한다.

토지에 기운이 스며들었다 느니 하는 비과학적인 미신을 믿지 않으니 오직 이 세 가지만 잘 따져보면 된다.


차라리 조망권, 차광, 통풍, 지하를 관통하는 수맥이라던가 주변의 지형지물을 문제 삼는다면 이해할 수도 있겠다.

그런데 토지가 생물도 아닐진대 터에 기운이 스며들었다는 발상은 참으로 어처구니가 없다.

좋은 기운이던 나쁜 기운이던…


아직도 얼떨떨하면서 적응이 잘 안 되는 것이 있다.

어느 날 갑자기 청와대가 인기 관광지로 둔갑되었다는 사실이다.

그것을 받아들일 마음의 준비가 덜된 탓일까?

화보집을 만든다면서 선정적인 포즈의 모델들이 여기저기를 헤집고 다니는 것도 솔직히 눈살이 찌푸려졌다.

이 나이 먹도록 청와대의 근처도 가보지 않았지만 이번 기회에 관광을 한번 다녀와야겠다는 생각은 전혀 들지 않는다.

대체 무슨 까닭일까?


이런 생각이 든다고나 할까?

일제강점기 근엄하던 창경궁이 어느 날 갑자기 창경원으로 둔갑되었을 때 그 당시의 백성들이 느꼈을법한 황당함이라고나 할까?

언뜻언뜻 국민들에게 청와대를 되돌려주었다는 말을 듣고 있자면 문득 떠오르는 생각이 있다.

‘누가 돌려달라고 했냐고요?’


명색이 대통령실이 있다는 용산에는 제대로 된 영빈관이 하나 없어 관광지로 되돌려주었다는 청와대를 매번 들락거리는 것도 민망한 일!

솔직히 다음번 정부에서는 또 어떤 선택을 하려고 할지 오만가지의 생각이 스쳐 지나가는 것은 어쩔 수가 없다.

암만 생각해 봐도 뜬금없는 용산시대에 대해서는 고개가 갸웃거려질 뿐이다.


청와대의 터가 어떻다느니 하는 뜬소문들 때문에 이런 일이 발생하였다고는 생각되지 않는다.

여러 불편을 감수하면서도 청와대의 제왕적 권위주위를 타파하기 위한 구국의 결단이었음을 곧이곧대로 믿고 싶다.

사실은 역대 정부에서도 여러 차례 이전을 시도했었다.

전임 정부만 하더라고 광화문의 정부종합청사로 옮겨보려고 했지만 결국 보안상의 문제로 성사되지 않은 전례가 있었다.

하지만 국가의 백년대계를 생각한다면 냉철하게 되짚어보지 않으면 안 될 문제가 있는 것 같다.

과학적으로 판단할 때 과연 용산 대통령실은 청와대의 대안으로써 충분한 자격요건을 갖추었는가?


그럼 속 시원히 한번 따져나 보자!

기존의 청와대는 분명 제왕적 권력의 상징이라는 치명적인 단점을 가지고 있었다.

이것은 부인할 수 없는 팩트다!

그런데 대통령실이 갖추어야 할 제반 조건면에서 딱 이 한 가지의 단점 말고는 용산을 충분히 압도한다면 어떻게 되는가?

가령 오랜 시간 대통령의 집무 공간으로서 구축된 청와대만의 특화된 인프라는 대체가 불가능한 수준이라면?

마찬가지로 용산 또한 국방부의 컨트롤타워 입지로서는 대체가 불가능한 최적의 입지가 맞다면?


다시 한번 더 차근히 생각해 보자!

역대 정부에서도 이전을 검토했을 만큼 청와대의 치명적인 단점은 구중궁궐 같다는 표현 속에 그 의미가 함축되어 있었다.

의미를 풀어헤쳐보면 대통령 집무실이 있는 본관 건물과 참모들의 집무공간인 별관 건물이 서로 동떨어져있어 대통령과 참모들 간의 소통이 비효율적이란 지적이었다.


애당초 이런 식으로 건물의 배치도를 구상했던 설계자의 머릿속에는 대통령과 왕을 동일시하는 전 근대적인 권위주의가 자리하고 있었을지 모를 일이다.

왕과 신하들의 집무 공간을 분리함으로써 구중궁궐에 속에 갇힌 왕은 민심을 제대로 파악할 수 없었다.

신하들조차 왕을 접견하기가 쉽지 않았으니 왕은 점차 민심과 동떨어진 백성들 위에 군림하는 제왕으로 변질되어 갔을 것이다.


건물의 배치도가 왕정시대의 권위주의를 답습하였다면 당연히 제왕적 권위주의의 상징이라는 비판을 받기에 충분했다.

드디어 오랜 군부통치시대가 막을 내리고 문민정부가 들어섰을 때 청와대의 비효율적인 소통구조를 극복하려는 시도들은 계속되었다.

백악관처럼 한 건물의 같은 층에서 대통령 집무실과 참모들이 함께 거주하는 공간을 상상하면서 떠올린 것이 16층 규모의 광화문 정부종합청사였다.


여기서 떠오르는 강력한 의문 한 가지!

역대 정부에서는 왜? 청와대 안에서의 개선책을 포기하고 무작정 떠나려고만 했을까?

기존의 청와대가 안고 있는 치명적인 단점이 명명백백하게 간파되었을 때 이것을 청와대 내에서 극복하는 것이 불가능했을까?

닫힌 구조인 청와대 본관 건물을 참모들이 손쉽게 자유로이 드나들 수 있는 구조로 혁신하는 것이 정녕 불가능한 문제였을까?


약 30년 전, 조선총독부 건물을 허물고자 했을 때 역사적인 상징성을 지닌 건물을 철거하는 대신 자자손손 관광지로 보전하자는 주장도 있었다.

하지만 결과는 어떻게 되었는가?

속 시원하게 허물어버리기를 백 번이고 천 번이고 잘한 일이 되지 않았는가!


이렇듯 매사를 차분하게 과학적으로 생각해 보면 정답이 보이는 법이다.

오호라 그럼 이제야 정답이 나온 것인가?

이제라도 제왕적 권력의 상징이 되어버린 청와대 본관 건물을 과감하게 헐어버리고 소통의 상징인 광화문 16층 정부종합청사급 규모로 새롭게 신축하는 것이다.


새로이 신축하는 본관 건물의 옥상을 푸른 기와로 재단장하여 오랫동안 우리 국민들의 뇌리 속에서 청와대라는 이름이 가지는 역사적 상징성을 살리는 지혜도 필요할 것이다.

새롭게 신축된 16층 규모의 청와대 신청사에는 백악관처럼 청와대의 모든 참모기능들이 입주해야 하는 것은 당연한 조치다.

아울러서 대통령 집무실 바로 위층에는 관저까지도 입주하여 비상시 대통령을 만나기 위하여 자전거를 타고 달려간다는 고리타분한 이야기는 더 이상 듣지 않았으면 한다.


이미 적지 않은 예산이 투입되었고 단계적으로 건물 사용자들의 인수인계와 새 단장까지 마친 마당에 또 다른 논란거리가 못마땅할 수도 있겠다.

하지만 향후 통일 이후까지를 내다본다면 그깟 손실쯤이야 얼마든지 감당할 수 있으리라.

달리 생각해 보면 용산을 되돌려 받게 될 국방부가 다시금 활용할 건물이니만큼 딱히 낭비는 아닐 것이다.


어설픈 물리주의자는 제발 청와대를 우리 국민들에게 되돌려달라고 목청껏 외치고 싶다!

그런데 생뚱맞은 관광지로서가 아니라 오랜 세월 대한민국 정체성의 핵심으로 존재하던 청와대를 말이다.

다만 이번 기회에 불통의 상징물은 과감하게 허물어버리고 국민들의 눈높이에서 온전히 소통할 수 있는 새로운 청와대를 돌려받았으면 좋겠다.          

매거진의 이전글 나를 안다는 것, 나를 사랑한다는 것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