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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맥도강 Jun 17. 2023

시간을 도둑맞지 않으려면

어설픈 물리주의자의 좌충우돌기

모닝커피를 마시며 창밖의 풍경을 바라본다. 어제저녁부터 대지를 촉촉이 적셔주는 고마운 비가 온종일 내리고 있다.  빗물에는 식물들이 좋아할 만한 각종 영양소가 골고루 섞여있다고 하는데 그래서 그런지 창밖의 온갖 생명들이 신이 나서 춤을 추는듯하다. 생동감 넘치는 창밖의 풍경을 감상하는 것만으로도 내 맘도 푸릇푸릇한 감정들이 용솟음친다.


불현듯 생각 하나가 스쳐서 지나간다. 최근에 갓 오십 줄에 들어선 것 같는데 벌써 육십의 목전에 이르렀다는 사실이 무척 당혹스럽다. 제아무리 넉넉한 마음으로 받아들이려고 해도 육십이라는 숫자는 도무지 적응이 안 된다. 마치 세월을 도둑맞은 듯 십 년의 세월이 훅하고 지나간 느낌이다. '이건 아닌 것 같은데…'  


흔히들 이십 대는 시속 20Km로, 사십 대는 40Km, 오십 대는 50Km의 속도로 가속도가 붙는다고 한다. 하지만 동일한 중력의 지배를 받는 지구공간에서 연령에 따라서 시간이 다르게 흘러간다는 것은 비과학적인 발상일 테다. 다만 그렇게 느껴질 뿐 지구상에서의 시간은 언제나, 어디서나, 누구에게나, 공평하게 흐르는 것이 과학적인 팩트다.


비록 어설프지만 명색이 물리주의자를 자처하는 입장인지라 서정적인 신세한탄만 하고 있을 수는 없었다. 그래서 연령에 따라서 시간의 속도가 달라지는 속성에 대하여 과학적으로 파헤쳐 보기로 했다.


첫째, 인지기능을 담당하는 우리의 두뇌 입장에서는 이십 대의 일 년과 오십 대의 일 년은 확실히 그 느낌 자체가 다를 것 같다. 이십 대의 1년은 20년 중의 1년이 될 테니 1/20의 시간으로, 삼십 대는 1/30, 사십 대는 1/40 … 이런 식이다 보니 연령이 많아질수록 1년이라는 시간의 크기가 계속 작게 느껴질 것이다. 그러니 시간에 가속도가 붙었다고 생각하는 것도 무리는 아닐 듯싶다.


둘째, 우리의 두뇌는 익숙한 것들에 대하여는 PASS 하려는 속성이 있는 것 같다. 새로운 것들을 경험하면서 좌충우돌 도전의 삶을 살아가던 젊은 시절엔 많은 용량을 할애하면서도 세심하게 기억하려고 했을 것이다. 자동차를 운전하면서 온갖 볼거리로 가득한 여행지를 지날 때는 호기심 어린 눈빛으로 천천히 지나가듯이 말이다. 하지만 나이를 먹어갈수록 그저 그렇고 그런 익숙한 날들이 반복되었다면 우리의 두뇌는 PASS! 를 외치지 않았을까? 뻔하디 뻔한 지루한 여행지를 지날 때 무심코 PASS! PASS! 를 외치듯이 말이다.


셋째, 자연계의 시간은 여전히 같은 속도로 흐르고 있겠지만 나이를 먹어갈수록 우리 몸의 생체리듬은 점차 느려지는 것은 당연하다. 숨을 쉬는 것도, 심장의 박동간격도. 심지어는 생각하고 판단하는 것 까지도 느려질 수밖에 없다. 빛의 속도로 잠시잠깐 다녀온 우주여행이었을지라도 지구의 시간은 훌쩍 몇십 년이 흘러가버렸다는 것과 같은 이치다. 상대적인 시간의 속성을 감안할 때 '눈 깜빡할 새 십 년의 세월을 도둑맞았다'는 표현이 이해가 다.   


자 이제 원인을 알았으니 과학적인 대책을 내놓을 차례다. 우선 다람쥐쳇바퀴 돌듯하는 익숙한 것들의 무한반복을 직시할 필요가 있겠다. 냉철하게 표현하자면 뚜벅뚜벅 다가오는 죽음의 시간을 무기력하게 기다리는 삶과 다르지 않음이다. 우리가 중력의 속도로 흘러가는 자연계의 시간을 멈추게 할 수는 없겠지만 최소한 시간을 도둑맞지 않으려면 정신을 바짝 차리고 외쳐야 한다. PASS가 아니라 STOP이라고! 


같은 1년이라도 새로운 것들로 꽉 들어찬 생동감 넘치는 1년은 지구의 중력에서 이탈하지 않은 표준시의 시간으로 되돌아오게 하는 마력을 부린다. 뭔가에 쫓기듯이 쏜살같이 달려가는 인생의 속도를 늦추기 위해서는 우리의 두뇌로 하여금 큰소리로 외치게 해야 한다. PASS가 아니라 STOP이라고!


좌충우돌하면서 새로운 도전과 새로운 경험들이 군데군데 끼어들 때 우리의 두뇌는 호기심 어린 표정으로 묘한 미소를 다. 너무나도 따분하여 화품이 나올 것만 같은 익숙한 것들의 무한반복에서 빠져나올 수 있다면 우리의 두뇌는 입꼬리를 추켜올리며 큰 소리로 외친다. STOP! 


나의 오십 대가 눈 깜짝할 새 사라졌다면 십중팔구 특별히 기억할만한 내용물이 없다는 뜻이 된다. 당연하다는 듯이 열심히 패스 패스를 외치면서 시속 50킬로의 속도로 손쌀같이 달려왔을 테니 말이다. 실패가 두려웠으리라. 실패를 딛고 다시 일어설 엄두가 나지 않았으리라. 그 무엇보다도 시간이 부족하다고 생각했을 것이다. 그것이 결정적인 패착이었다. 그 결과 눈 깜빡할 새 십 년의 세월이 통째 사라져 버리는 끔찍한 결과로 나타나고 말았다.


이제 결론이 나왔다! 인생의 잔여시간을 허투루 낭비하지 않으려면? 중력의 표준시에 맞추어서 일 년을 일 년답게, 십 년을 십 년답게, 알차게 야무지게 뽑아먹자면? 한시라도 우리의 두뇌가 무료할 틈이 없게끔 좌충우돌 신명 나게 살아가는 것이 정답임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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