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맥도강 Jun 10. 2023

거울 속의 낯익은 자화상

어설픈 물리주의자의 좌충우돌기

이따금씩 ‘어머나! 어머니가 왜 거기에 계세요?’라면서 놀려대는 와이프의 농담이 실감이 날 정도로 거울 속에 비친 나의 얼굴이 적쟎이 부담스럽다. 마치 나의 존재이유를 내 몸속의 DNA들이 되짚어주려는 듯 돌아가신 어머니의 얼굴이 완연하게 드러난다.


물론 나도 잘 안다. 나의 존재 연유를 따져보면 아무런 연결고리도 없이 천상천하 유아독존식으로 이 세상에 존재할 수는 없었음을. 그 시작은 지구상에 최초의 생명체가 발현한 38억 년 전으로 거슬러 갈 것이다. 오랜 세월 원시생명체는 바닷속에서 진화의 과정을 거치며 식물에서 동물로 물고기로 분화되었다. 모험심 많은 일단의 물고기가 육지로 올라오면서 파충류로, 다시 포유류로 분화의 과정을 거치게 된다. 


2억 3,000만 년 전부터 지구는 거대한 파충류인 공룡의 지배하에 있었다. 인류의 조상인 왜소한 포유류 무리들은 공룡의 핍박을 피하여 조용히 숨죽여 살아야 했다. 700만 년 전 마침내 돌연변이 침팬지가 나무에서 내려오면서 영장류에서 최초의 인류가 분화되어 나왔다. 오스트랄로피테쿠스 호모사피엔스로 진화과정을 거치면서 쭉쭉 그렇게 내려오다가 고조부 증조부 조부 부모님을 거치면서 38억 년 전 원시생명체의 흔적은 나에게로까지 전달되었을 것이다.


생각해 보면, 어릴 적부터 지켜본 우리 아이들의 얼굴과 행동거지 속에서도 언뜻언뜻 나의 모습이 투영되어 있었다. 말인즉슨 언젠가는 우리 아이들의 거울 속에서도 슬그머니 나의 얼굴이 스며들 수도 있겠다는 뜻이다. 그렇게 내 몸속에 흐르고 있는 유전자의 연결고리는 앞으로도 중단 없이 계속될 것이고, 가족으로서의 끈끈한 연대의식을 느끼게 하는 강력한 무기로 작용할 것이다.


정리해 보면, 생전의 어머니 모습을 통해서 미래의 내 모습을 상상해 볼 수도 있겠고, 지나간 과거의 내 모습을 통해서 우리 아이들의 지금 생각과 고민들을 엿볼 수도 있겠다. 부모와 나 그리고 우리 아이들 간에 형성된 그야말로 혈맹의 연결고리를 통해서 현재뿐만 아니라 과거와 미래까지를 동시에 바라보는 혜안을 가질 수도 있겠다는 말이다.


어쩌면 판타지 소설의 한 장면처럼 과거의 특정 시점으로 회귀하여 마음에 안 드는 인생의 몇 대목을 다시 손볼 수도 있겠다는 생각도 든다. 내가 우리 아이들의 나이였을 무렵, 나를 위한다는 명분으로 가해진 여러 종류의 질책들은 오히려 내 마음의 문을 닫게 했을 뿐 그 어떤 도움도 되지 않았다. 좌충우돌하던 그때의 당시로 되돌아가서 지금의 우리 아이들과 마주한다면 고압적인 질책보다는 차라리 따듯한 격려와 이해의 말 한마디가 얼마나 유익한지를 절감하게 된다. 아직도 그럴 수 있는 시간들이 남아있다는 사실이 무척 다행스럽지만…  

 

젊은 시절의 난 유아독존까지는 아니었지만  타고난 유전자를 극복하려는 강력한 의지와 능력이 있었다. 하기 좋은 말로 '잘되면 내 탓! 못되면 조상 탓!'이란 말도 있지만 적어도 난 윗대 누군가의 아바타가 아닌 자유로운 영혼의 소유자로서 주체적인 삶을 살아왔다고 자부할 수 있다. 물론 물려받은 유전자의 영향에서 완벽하게 자유롭지는 않았겠지만 그 영향력이 절대적이지는 않았다. 어쩌면 이 또한 부처님의 손바닥을 벗어나보려고 허우적대는 손오공의 오만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무려 38억 년 동안이나 면면히 이어져 내려온 유전자의 연결성에서 나 홀로 떨어져 나올 수는 없을 테니 말이다.


거울 속에서 낯익은 어머니의 얼굴이 드러나기 시작한 것은 그리 오래된 일은 아닌 것 같지만 한 가지 분명한 사실은 몸이 늙어갈수록 유전자의 회귀본능은 더욱더 위력을 발휘할 것이란 사실이다. 차츰차츰 젊음이 사라지고 있는 지금 그동안 꼭꼭 숨겨져 왔던 몸속 본래의 근원들이 슬금슬금 돋아나고 있음에 솔직히 당황스럽다.


어차피 나의 힘으로는 어찌해 볼 수 없는 자연의 현상이라면 차라리 나의 후반부 인생의 훌륭한 길잡이로서 어머니의 선물을 반면교사로 삼아 보기로 했다. 십중팔구는 겉으로 드러나는 외향의 모습뿐만 아니라 내면의 성향까지도 어머니의 노후모습을 답습하려고 할 테니 말이다. 당시 내가 느꼈던 감정들을 하나하나 떠올려보면서 본받기를 바라는 것들과 그러지 말았으면 하는 것들을 구분해서 두 줄로 정리해 보았다.


-어머니로부터 본받고 싶은 점-

1)

2)

3)

-본받으면 곤란한 점-

1)


어머니의 일생은 그 어떤 소설보다도 진한 감동으로 다가오는 가족에 대한 헌신 그 자체였다. 지금도 이해할 순 없지만 당시 아버지는 늦깎이 대학생이 되고 싶어 했고 어머니는 화장품을 파는 보따리행상을 하면서 아버지를 뒷바라지했다.  


마침내 아버지는 소망하던 고등학교 교사가 되었지만 고작 1년 만에 하숙집 연탄가스 사고로 유명을 달리했다. 남겨진 어린 자식들을 부양하기 위하여 어머니는 보따리 행상을 멈출 수 없었다. 어린 시절, 마을어른들로부터 귀에 딱지가 앉을 정도로 들었던 이야기가 있다.

'너거 엄마 고생한 거 잊으면 사람도 아이데이, 너거 엄마한테 잘하고 살아라'

돌이켜 생각해 보니 난 지금도 어머니가 이룩한 기반으로 살아가면서도 마을 어런들의 당부를 귓등으로 흘려듣고 말았다.


그러나 어머니의 노후는 마냥 아름답지만은 않았다. 돌아가시기 몇 해 전부터는 평소와는 달리 성격이 부쩍 까다로워지셨다. 답답한 마음에 병원에서 인지능력검사까지 받아봤지만 치매가 아니라는 진단이 내려졌다. 뺄셈이든 기억력테스트든 의사의 질문에 답변하는 어머니의 총기는 오히려 젊은 나보다도 월등했다. 당시에도 지금도 다만 나이 탓이려니 그렇게 생각할 뿐이다.


아직도 나의 정체성을 유지할만한 이성의 힘이 존재하지만 나이가 들어갈수록 차츰 그 힘이 줄어들 것은 불을 보듯 뻔하다. 그래서 최대한 현명하게 대처하여 더욱 맹위를 떨치게 될 회귀본능의 유전자에 맞서서 최후까지 장렬하게 싸우고 싶다. 


남겨진 사람들은 그 사람의 마지막 노후를 오랫동안 기억하려는 경향이 있다. 노후가 아름답지 못한 사람은 지난 인생을 통째 부정당할 수도 있음이다. 따라서 마지막 걸음걸이를 더욱 조심스럽게 걸어가야 하는 것은 대단히 중요한 문제다. 자신의 정체성을 마지막까지 온전하게 지켜내는 것은 어떤 일이 있더라도 굴복해서는 안 되는 일생일대의 마지막 자존심이 되어야 하니까. 


내가 자연으로 되돌아갔을 때 남겨진 가족들로부터 따뜻하면서도 품 넓은 노인네로 기억될 수 있다면 나의 한평생이 얼마나 아름답겠는가?

매거진의 이전글 시간을 도둑맞지 않으려면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