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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맥도강 Jun 24. 2023

결혼식이 달라졌다

어설픈 물리주의자의 좌충우돌기

오래된 편견 가운데 대표적인 것 하나만 골라보라면 결혼식은 따분하고 지루하다는 편견이다. “파뿌리가 하얗게 될 때까지 백년해로할 것을 어쩌고 저쩌고” 마치 공장에서 찍어낸 듯한 그렇고 그런 판박이 주례사를 듣고 있노라면 꾸벅꾸벅 졸음이 몰려오기 마련이다. 그런데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본래 결혼식은 대단히 재미있는 축제였다. 하지만 칠팔십 년대의 고도성장기에 어찌어찌하다 보니까 획일적이고 지루한 행사로 전락해 버렸다. 그 주범으로 지목된 것이 결혼식 전 과정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고리타분한 주례사였다.  


생각해 보면 당시 우리 세대는 너무나도 수동적이었다. 내려온 관례대로, 남들 하는 대로, 그냥 무작정 따라서 할 생각만 했었지 감히 주례사를 통째 건너뛴다는 발상은 언감생심 꿈조차 꿀 수 없었다. 왜 그랬을까? 기라성 같은 마을 어른들과 일가친지들 앞에서 감히 노래 부르고 까불 용기가 없었서? 그것이 우리 세대의 한계였고, 은연중 그와 같은 분위기를 강요했던 당시 우리 사회의 고지식한 단면이었다. 사실 머릿속으로는 개선의 필요성을 느꼈지만 실행할 의지도 용기도 없는 그렇게 무기력한 세대였다. 그 결과 결혼식은 의례 지루하다는 잘못된 인식을 가지고 여태까지 살아왔던 거다.


결혼식은 재미가 없으니 단순히 품앗이 성격의 따분한 행사로 치부되었다. 예식을 시작하기 삼십 분 전쯤 도착하여 길게 줄을 선다. 그리고 함박 미소를 지으며 품앗이의 상대와 눈을 맞추면서 힘껏 악수를 나눈다. '나 왔어! 잘 기억해 둬!' 과거에는 축의금을 전달한 후 만 원짜리 신권 한 장과 감사의 편지가 담긴 봉투를 받아 드는 경우가 많았지만 요사이는 예외 없이 뷔페 식권을 선택한다. 언제부턴가 예식장 뷔페의 수준이 몰라보게 달라졌기 때문이다. 뷔페식권도 챙겼겠다 눈치껏 어영부영 예식이 시작되기를 기다렸다가 함께 온 지인들과 함께 곧장 뷔페로 직행하는 것이 일종의 공식이었다.


그런데 달라진 것은 뷔페식당의 수준뿐만이 아니었다. 머릿속에서만 맴돌았던 결혼식의 최대 난제가 가히 혁명적으로 혁신되었다. 우리 세대가 물려준 고리타분한 관행을 답습할 의사가 없었던 MZ세대들은 결혼식을 그야말로 축제의 장으로 승화시켜 버렸다. 아니 정확하게 표현하자면 동서고금의 본래 모습대로 원상회복시켰다는 표현이 적합하겠다.


역시 MZ세대답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입장하는 신랑의 태도부터 확연히 달랐다. 그 당시의 우린 잔뜩 긴장된 표정으로 목석처럼 걸었지만 하객들에게 일일이 예의 바르게 인사하면서 걷기도 하고, 또 천방지축 신나게 춤추면서 입장하기도 한다. 지루함의 대명사로 치부되었던 고리타분한 주례사는 통째 퇴출시켜 버렸다. 세상에나!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공감하고 있었으면 하루아침에 모든 식장에서 주례가 사라질 수 있었겠는가!

 

대신 짤막한 주례사를 양가의 혼주 중 한 명이 대신하기도 했으나 요사이는 그마저도 생략하는 추세이고, 신랑이 만세 삼창을 부르는 이벤트도 언제부턴가 슬며시 사라졌다. 생각에 따라서는 신랑의 부모 된 입장에서 다소 민망한 상황일 수도 있어 자연스럽게 개선된 듯하다. 그 대신 신부에게 사랑을 맹세하는 신랑이 준비한 짜임새 있는 축하공연이 강화되고 있는 추세다. 축하공연의 비중이 커지다 보니 잠시 전문 사회자로 대체되는가 싶더니 본래의 취지에서 벗어나는 듯하자 다시 신랑의 친구들로 되돌아오는 추세로 전환되었다. 다분히 형식적인 폐백도 건너뛰는 형태로 자리를 잡아가는 것 같다.  


이렇듯 요사이 MZ세대들의 결혼식 프로그램은 아무 생각 없이 천편일률적으로 답습하기에 바빴던 우리 때와는 그 차원이 다르다. 사람을 제외하고는 모든 것을 다 바꿀 수 있다는 기세가 서려있다. 결혼식을 준비하면서 MZ세대들은 연구를 많이 한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결혼식들마다 미세하나마 조금씩 진화하는 것을 느낄 수 있으니 말이다. 일생일대 딱 한 번이라는 뜻깊은 의미와 행사의 재미를 한꺼번에 거머쥐려는 MZ세대의 치열한 역동성이 느껴진다. 재미도 있고 메시지도 무난하다면 결혼식의 변신은 무죄! 우리 세대로서도 박수를 쳐주면서 환영할 일이다.


오늘도 잔뜩 기대하면서 뒤쪽 테이블에 자리를 차지하고 앉았다. 나를 발견한 초등학교 동창이 뷔페에 함께 가자며 큰 동작으로 손짓을 하길래 나도 역시 같은 동작으로 손짓을 하면서 기어이 친구를 자리에 앉혔다.

“일단 앉아서 구경 한 번 해봐! 얼마나 재밌는데, 우리가 알고 있던 호랑이 담배 피우던 시절의 고리타분한 결혼식이 아니란 말이야!”

마지못해서 자리에 앉은 친구도 이내 얼굴에서 미소가 감돈다. 경쾌한 음악에 맞추어 신나게 막춤을 추면서 입장하는 신랑을 보더니 박장대소를 하면서 금세 분위기에 빠져들었다. 십 분에서 십오 분 정도의 결혼식 전 과정이 눈 깜짝할 새 지나가 버렸다. 솔직히 말해서 이만한 수준의 볼거리를 직접 현장에서 구경할 수 있는 기회도 흔치 않은 것이 사실이다. 난 우리 아이들의 톡톡 튀는 젊은 감각과 마인드가 정말 마음에 든다.


똑똑한 우리 아이들은 결코 과하지 않은 절제의 미덕도 지켜주면서 혼주또래의 하객들이 보더라도 전혀 부담스럽지 않은 수준 높은 문화행사를 연출한다. 암만 메시지가 강렬하면 뭐 하나? 재미가 없으면 꽝이거늘! 그것은 소설이나 결혼식이나 매한가지다. 뭐니 뭐니 해도 일단 재미가 있어야 한다. 전달하려는 메시지는 그다음 순서다. 그래서 역사는 진보한다고 하지 않던가! MZ세대 파이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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