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년에 비해서 씨알도 굵어졌고 질감이며 당도며 그야말로 최상급 블루베리를 수확하는 맛이 쏠쏠하기 때문이다.
굳이 비법을 말해보라면 과학에 대한 깊은 신뢰를 바탕으로 오직 한 방향으로 돌직구한 결과라고나 할까?
블루베리는 껍질채 먹는 대단히 예민한 과일이라 살충, 살균제와 같은 농약의 사용은 물론이고 화학비료의 사용도 일절 금하고 있다.
그래서 연중 세 차례씩 5년 이상 충분히 숙성된 유박퇴비를 시비하는 것으로 나무의 기본 체력을 유지시키고, 그 외는 농업기술센터에서 권장하는 친환경 과학영농 정책을 충실히 따른다. 농업기술센터에서는 토양을 살리는 친환경 정책의 일환으로서 미생물효소를 매주 농가에 무상 보급하고 있다.
과학과 함께라면 좌고우면 하지 않고 무조건 따라나서는 입장인지라 오직 과학을 믿고 돌직구한다.
'돌격 앞으로!'
내내 싱걸벙걸이지만 사실 와이프는 요사이 죽을 맛이다.
여기저기서부터 주문이 쇄도하여 혼자서 주문량을 맞추느라 거의 초주검상태다. 게다가 100% 친환경으로 키우다 보니 한번 물렸다 하면 정신이 번쩍 들정도로 따끔한 쐐기벌레도 극성이다.
나름 대비를 한답시고 이 무더위에 단단히 두 겹으로 끼워 입었지만 잔뜩 살을 찌운 쐐기벌레에게는 별소용이 없다.
'아얏!'
인정사정없이 여기저기를 쏘아대지만 100% 친환경의 명분 속에서는 속수무책으로 당할 수밖에 없다.
이 모든 사단이 천연비료의 역할을 수행하는액비 때문에 발생한 일이다.
매일새벽마다액비혼합물로 관수하다 보니 실로 놀라운 광경이 벌어졌다.
예년에 비해서열매의 사이즈도두배로 크지고,당도도 올라가다 보니 상대적으로 쐐기벌레들까지 잔뜩 독이 올랐다.
블루베리농사는수분공급과 배수환경, 햇볕과 통풍이 중요한데 그중에서도 수분공급이 최고로 중요하다.
어느누구의 자문도 없었지만 금년부터는 단순히 물만 관수하는 것이 아니라 농장에서 직접 제조한 액비를 함께 관수하고 있다.
블루베리가 익기시작하는 6월 초부터 수확이 끝나는 7월 중순까지는 하루도 거를 수 없는 우리 농장의 최대 업무라 할 수 있다.
서두가 거창했지만 사실 난 구력만 오래되었지 실상은 어설픈 겸업농부다. 오리지널 전업농부가 아니다 보니 주변에서는 살짝 미심쩍은 시선으로 바라보는 것은 어쩔 수 없는 현실이다. 그렇거나 말거나! 나름으로는 개똥철학 같은 소신으로 슬기로운 농촌생활을 즐기고 있다.
'적어도 주변농가에 민폐는 끼치지 말고, 최소한 흉은 잡히지 말자'
어설프지만 어쨌든 20년의 묵은 세월이 있으니 이쪽 계통에선 제법 고참소리를 듣는 지경에까지 이르렀다.
최근에 현업에서 퇴직한 선후배들이 어릴 적 기억을 더듬어가면서 다시 농사를 시작하려고 할 때는 비슷한 처지의 아마추어 농부에게 자문을 구하러 오기 마련이다.
이것저것 자잘한 것들의 도움을 받기에는 그래도 동병상련의 처지가 마음이 편한 법이니까.
충분한 관수에 늘 신경이 쓰이는 블루베리 재배의 특성상 농장 인근에는 믿음직한 지하수관정이 있기 마련이다.
또그 옆에는 샌드위치 패널로 만든 한 평짜리 양수기실과 일만 리터급의 대형 수조통이 떡하니 버티고 섰다.
그런데 사실은 이 세 가지를 모두 만드는데 들인 비용은 고작 십만 원 내외로 기억한다.
대형 수조통이라고 하니 거창할 것 같지만 실상은 재활용 철파이프로 대충 기둥을 만들고, 그 위에다 비닐을 덮어서 얼퀴설퀴 만든 것이 전부다.
일면 허술해 보이지만 매년 강력해지는 태풍에 버틸정도의 견고함은 늘 생각하면서 시설작업을 하는 편이다.
우리 집 마당 한편에는 일천 리터짜리 대형 물통 여섯 개가 압도적인 위용을 자랑하고 있다.
바로 여기에 우리 농장의 최고 보물이라 할 수 있는 천연액비가 한가득 담겨 있다.
우리 농장에서 생산된 과일이나 채소의 부산물로 직접 액비를 제조하고 있는데 효소로 사용하는 것이 바로 미생물이다. 액비의 사용량이 많을 때는 하루 60리터나 되다 보니 매주 한차례 씩 농업기술센터를 방문하여 미생물 40리터를 공급받아 오는 것이 주중의 중요한 행사가 되었다.
어제저녁, 대형수조통 가득 지하수와 함께 천연 액비를 적당량 섞어두었다.
오늘도역시 대형 수조통 안의 물 색깔이 짙은 먹물색으로 변색되었다.
이론적인 지식은 잘 모르지만 아마도 밤새 미생물이 활성화된 영향이지 않을까 추정한다.
신기한 것은 미생물이 활성화된 수조통에서는 냄새마저도 옅은 흙내음이 나지만 모기도 생존할 수 없을 만큼 살충 살균의 효과도 탁월하다는 사실이다.
충실한 과학영농의 추종자답게 농약이나 화학비료를 전혀 사용하지 않고서도 그럭저럭 친환경 농사를 이어갈 수 있게 된 것도 미생물을 혼합하여 만든 천연액비때문이다.
새벽 동이 트기 전, 매일같이 양수기실에서는 두 개의 전원 버튼을 눌러주는 것이 하루일과의 시작이다.
버튼 하나에 찰랑찰랑할 만큼 액비혼합물로 가득한 수조통 안에 또다시 맑은 지하수가 퍼올려진다.
버튼 둘에 수조통 안의 혼합물이 관수시설을 이용하여 블루베리 화분으로 자동 공급된다.
관수를 담당하는 3마력짜리 양수기의 성능이 장난이 아닌데 이내 수조통의 수위가 서서히 낮아지기 시작한다.
단순히 지하수만 관수하던 작년과 비교하면 확실히 블루베리의 때깔부터가 다르다.
아뿔싸!
그런데 문제가 발생했다. 구청의 농수로 정비사업으로 기존의 수로변 지하수를 사용할 수 없게 된 것이다.
사시사철 시간에 구애받지 않고 농업용수를 확보하려면 뭐니 뭐니 해도 지하수만 한 것이 없다.
어쩔 수 없이 큰맘 먹고 십 년에 한 번 할까 말까 하는 지하수 관정공사를 하기 위하여 채비를 갖추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