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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맥도강 Jul 08. 2023

세상만사 원칙을 지켜라!

요사이 와이프는 온종일 땡볕에 블루베리를 수확하면서도 내내 싱글벙걸이다.

예년에 비해서 씨알도 굵어졌고 질감이며 당도며 그야말로 최상급 블루베리를 수확하는 맛이 쏠쏠하기 때문이다.

굳이 비법을 말해보라면 과학에 대한 깊은 신뢰를 바탕으로 오직 한 방향으로 돌직구한 결과라고나 할까?


블루베리는 껍질채 먹는 대단히 예민한 과일이라 살충, 살균제와 같은 농약의 사용은 물론이고 화학비료의 사용도 일절 금하고 있다.

그래서 연중 세 차례씩 5년 이상 충분히 숙성된 유박퇴비를 시비하는 것으로 나무의 기본 체력을 유지시키고, 그 외는 농업기술센터에서 권장하는 친환경 과학영농 정책을 충실히 따른다. 농업기술센터에서는 토양을 살리는 친환경 정책의 일환으로서 미생물효소를 매주 농가에 무상 보급하고 있다.

과학과 함께라면 좌고우면 하지 않고 무조건 따라나서는 입장인지라 오직 과학을 믿고 돌직구한다.

'돌격 앞으로!'


내내 싱걸벙걸이지만 사실 와이프는 요사이 죽을 맛이다.

여기저기서부터 주문이 쇄도하여 혼자서 주문량을 맞추느라 거의 초주검상태다. 게다가 100% 친환경으로 키우다 보니 한번 물렸다 하면 정신이 번쩍 들정도로 따끔한 쐐기벌레도 극성이다.

나름 대비를 한답시고 이 무더위에 단단히 두 겹으로 끼워 입었지만 잔뜩 살을 찌운 쐐기벌레에게는 별 소용이 없다.  

'아얏!'

인정사정없이 여기저기를 쏘아대지만 100% 친환경의 명분 속에서는 속수무책으로 당할 수밖에 없다.  


이 모든 사단천연비료의 역할을 수행하는 액비 때문에 발생한 일다.

매일 새벽마다 액비혼합물로 관수하다 보니 실로 놀라운 광경이 벌어졌다.

예년에 비해서 열매의 사이즈도  배로 크지고, 당도 올라가다 보니 상대적으로 쐐기벌레들까지 잔뜩 독이 올랐다.


블루베리농사는 수분공급과 배수환경, 햇볕과 통풍이 중요한데 그중에서도 수분공급이 최고로 중요하다.

어느 누구의 자문도 없었지만 금년부터는 단순히 물만 관수하는 것이 아니라 농장에서 직접 제조한 액비를 함께 관수하고 있다.

블루베리가 익기시작하는 6월 초부터 수확이 끝나는 7월 중순까지는 하루도 거를 수 없는 우리 농장의 최대 업무라 할 수 있다.


서두가 거창했지만 사실 난 구력만 오래되었지 실상은 어설픈 겸업농부다. 오리지널 전업농부가 아니다 보니 주변에서는 살짝 미심쩍은 시선으로 바라보는 것은 어쩔 수 없는 현실이다. 그렇거나 말거나! 나름으로는 개똥철학 같은 소신으로 슬기로운 농촌생활을 즐기고 있다.

'적어도 주변농가에 민폐는 끼치지 말고, 최소한 흉은 잡히지 말자'


어설프지만 어쨌든 20년의 묵은 세월이 있으니 이쪽 계통에선 제법 고참소리를 듣는 지경에까지 이르렀다. 

최근에 현업에서 퇴직한 선후배들이 어릴 적 기억을 더듬어가면서 다시 농사를 시작하려고 할 때는 비슷한 처지의 아마추어 농부에게 자문을 구하러 오기 마련이다. 

이것저것 자잘한 것들의 도움을 받기에는 그래도 동병상련의 처지가 마음이 편한 법이니까.


충분한 관수에 늘 신경이 쓰이는 블루베리 재배의 특성상 농장 인근에는 믿음직한 지하수관정이 있기 마련이다.

 그 옆에는 샌드위치 패널로 만든 한 평짜리 양수기실과  일만 리터급의 대형 수조통이 떡하니 버티고 섰다.

그런데 사실은 이 세 가지를 모두 만드는데 들인 비용은 고작 십만 원 내외로 기억한다.

대형 수조통이라고 하니 거창할 것 같지만 실상은 재활용 철파이프로 대충 기둥을 만들고, 그 위에다 비닐을 덮어서 얼퀴설퀴 만든 것이 전부다.

일면 허술해 보이지만 매년 강력해지는 태풍에 버틸정도의 견고함은 늘 생각하면서 시설작업 편이다.



우리 집 마당 한편에는 일천 리터짜리 대형 물통 여섯 개가 압도적인 위용을 자랑하고 있다.

바로 여기에 우리 농장의 최고 보물이라 할 수 있는 천연액비가 가득 담겨 있다.

우리 농장에서 생산된 과일이나 채소의 부산물로 직접 액비를 제조하고 있는데 효소로 사용하는 것이 바로 미생물이다. 액비의 사용량이 많을 때는 하루 60리터나 되다 보니 매주 한차례 씩 농업기술센터를 방문하여 미생물 40리터를 공급받아 오는 것이 주중의 중요한 행사가 되었다.  


어제저녁, 대형수조통 가득 지하수와 함께 천연 액비를 적당량 섞어두었다.

오늘도  대형 수조통 안의 물 색깔이 짙은 먹물색으로 변색되었다.

이론적인 지식은 잘 모르지만 아마도 밤새 미생물이 활성화된 영향이지 않을까 추정한다.

신기한 것은 미생물이 활성화된 수조통에서는 냄새마저도 옅은 흙내음이 나지만 모기도 생존할 수 없을 만큼 살충 살균의 효과도 탁월하다는 사실이다.

충실한 과학영농의 추종자답게 농약이나 화학비료를 전혀 사용하지 않고서도 그럭저럭 친환경 농사를 이어갈 수 있게 된 것도 미생물을 혼합하여 만든 천연액비때문이다. 


새벽 동이 트기 전, 매일같이 양수기실에서는 두 개의 전원 버튼을 눌러주는 것이 하루일과의 시작이다.

버튼 하나에 찰랑찰랑할 만큼 액비혼합물로 가득한 수조통 안에 또다시 맑은 지하수가 퍼올려진다.

버튼 둘에 수조통 안의 혼합물이 관수시설을 이용하여 블루베리 화분으로 자동 공급된다.

관수를 담당하는 3마력짜리 양수기의 성능이 장난이 아닌데 이내 수조통의 수위가 서서히 낮아지기 시작한다.

단순히 지하수만 관수하던 작년과 비교하면 확실히 블루베리의 때깔부터가 다르다.


아뿔싸!

그런데 문제가 발생했다. 구청의 농수로 정비사업으로 기존의 수로변 지하수를 사용할 수 없게 된 것이다.

사시사철 시간에 구애받지 않고 농업용수를 확보하려면 뭐니 뭐니 해도 지하수만 한 것이 없다.

어쩔 수 없이 큰맘 먹고 십 년에 한 번 할까 말까 하는 지하수 관정공사를 하기 위하여 채비를 갖추었다.

사실 채비라고 해봐야 흙탕물을 뒤집어쓸 작업복으로 갈아입는 정도이고, 지하수를 뚫는 장비라고 해봤자 농업용 고압기와 6미터짜리 관정용 파이프 하나면 충분하다.


기존의 농수로변 지하수에서 빼낸 파이프관정 안에 고압기에서 연결된 호스를 집어넣은 채 장산곶매의 눈으로 수맥이 지나갈만한 위치를 살펴보고 있다.

우리 마을은 낙동강하구의 삼각주지역이라 수맥이 지하 5∼6미터쯤에 형성돼 있어 운이 좋을 땐 반나절이면 얼랑뚱당 지하수 관정 하나를 뚫어버린다.

대부분 연약지반이라 고압기에서 뿜어져 나오는 강력한 수압의 힘으로 관정이 쑥쑥 들어가기 때문이다.


드디어 궁예의 관심법으로 수맥이 지나갈만한 위치가 특정되었다.

관정용 파이프 안에 고압 호스를 집어넣고 궁예가 가르쳐준 위치에 반듯하게 세운다.

'발사!'

고압기에 전원을 올리자 관정 안의 호스에서 엄청난 수압으로 땅을 파기시작했다.

슬렁슬렁 채 두어 시간도 지나지 않아 어렵지 않게 파이프의 대부분을 땅속으로 집어넣어 버렸고 1미터만 노출시켰다.

다음은 양수기를 이용하여 지하수의 물을 뽑아낼 차례다.


마침 이때 새벽운동 삼아 새로 만들어진 복개도로를 지나가던 이웃집 장 사장이 이 재미난 구경거리를 놓칠 수 없었던지 호기심 어린 눈빛으로 다가왔다.

농수로가 복개되기 전에는 마을청년회 월례회의 때나 만나던 뜸한 사이였지만 이제는 새벽마다 만나는 반가운 이웃사촌이 되었다.


'콸콸콸콸' 

그야말로 흙탕물이 시원하게 솟꾸치자 장 사장이 박수를 치면서 단 한 번만의 '지하수 뚫기' 성공을 축하했다. 

무슨 대단한 기술자라도 된다는 듯 엄지 척을 해대는 통에 잠시 우쭐한 마음까지 들었다.

물론 흙탕물을 뒤집어쓰는 고강도의 작업은 아니었기에 온몸을 전율케 하는 짜릿한 쾌감은 없었다.


그때였다. 불현듯 기분을 서늘하게 만드는 묘한 예감이 엄습해 왔다.

묘한 예감은 어느새 불길한 예감으로 변질되어 갔다.

세상일이 다 그렇듯 단 한 번만에 제대로 된 수맥을 찾기란 쉽지가 않다.

다양한 변수들 때문인데, 땅속의 돌덩이에 받친다던가?

제대로 된 수맥을 비켜간다던가?

수량이 충분치 않은 신통치 않은 수맥과 연결된다던가? 등등의 경우다.

대개는 여러 번의 실패 끝에 아주 힘들게 온전한 지하수 하나를 뚫는 것이 자연스러웠다.

지독히도 공짜와는 인연이 없었던 내 인생에서 단 한 번만의 OK! 라니 아무래도 찜찜했던 거다.


너무나도 손쉽게 다가온 행운으로 말미암아 오히려 불길한 예감이 들기는 했다.

그렇지만 어쨌든 차질 없이 블루베리 관수를 할 수 있게 되었으니 여간 다행스러운 일이 아니었다. 

긴가민가하면서도 그나마 일주일 가량은 별 탈 없이  사용할 수 있었다.

하지만 기어이 올 것은 오고야 말았다. 아니나 다를까 갑자기 지하수가 말라버린 것이다.

하루가 다르게 블루베리가 살을 찌워가는 시점에서 지하수의 고갈사태는 그야말로 청천벽력과도 같은 사건이었다.

하필 블루베리가 한창 익어갈 무렵에 지하수가 고갈돼 버렸으니 낭패 중에서도 이런 낭패가 없었다.


그럼 그렇지! 합리적인 이유도 없이 내게 공짜 행운 같은 것이 찾아올 리가 없지 않은가!

새벽부터 어둑어둑해질 때까지 몇 개의 관정을 더 뚫어보았다.

유일한 구경꾼인 장 사장이 수맥탐지기까지 구해와서 수맥이 흐를만한 위치를 특정해 주었지만 번번이 지하의 장해물에 걸려서 실패하고 말았다.

지친 심신으로 몸과 마음이 너덜너덜하게 되었을 때 코로나 덕분에 몇 년 동안 한 번도 걸리지 않았던 감기몸살까지 찾아와 3일 동안 끙끙 앓는 대변고를 당했다.


고열에 식은땀까지 흘려가며 침대에 드러누워 있어면서도 온통 머릿속은 지하수 생각뿐이었다.

'그러고 보니 아직 조개 퇴적물도 올라오지 않았잖아? 그렇다면?' 

생각이 여기에까지 미치자 대충 수건으로 식은땀만 닦은 채 작업복으로 갈아입고 다시 현장으로 달려갔다.   


밖은 이제 갓 어둠이 물러가던 새벽 다섯 시경이었다.

사실 우리 지역은 그러니까 김수로왕이 인도에서 시집온 허황후를 가덕도로 마중 갈 때만 하더라도 바다와 접한 최남단 낙동강의 물속이었다.

지금도 그렇지만 그 당시에도 재첩이 엄청 많았을 것이다.

그래서 삼각주땅에서 제대로 된 지하수를 만나려면 반드시 조개퇴적층을 뚫고 들어가야 한다는 원칙이 있었다.

조개층을 뚫지 못했다면 제대로 된 수맥과 연결된 진짜베기 지하수가 아니라는 애기다.

그럼 일주일 동안 신나게 사용한 것은 대체 뭐란 말인가?

그냥 지하의 웅덩이에 고여있던 빗물 즉 표피층수란 말이지. 고것 참!


불현듯 이런 상황에서 딱 어울릴만한 표현이 떠올랐다. 

'용이 되지 못한 이무기' 

용이 되지 못했으니 어쨌든 뱀이라는 애기다. 

원칙대로 조개퇴적층이 나올 때까지 인내심을 가지고 더 파고 내려갔어야 다. 

그런데 엄지 척까지 받으며 우쭐대던 상황에서는 원칙을 생각할 겨를이 없었다.

작은 성과에 도취되어 조개퇴적층을 뚫어야 한다는 기본 원칙을 놓쳐버린 것이다.

어쨌든 실패의 원인을 찾았으니 해결책은 분명해졌다.

이제라도 용으로 착각한 이무기를 진짜 용으로 변신시켜서 하늘로 승천시켜야 했다. 

관정을 땅속으로 더 밀어 넣기 위하여 2미터가량의 파이프를 추가로 이어 붙인 후 관정 안으로 고압호스를 깊숙이 밀어 넣었다.


이 역사적인 감동의 순간을 놓치지 않기 위하여 나보다도 더 긴장된 표정으로 장 사장이 허리를 반쯤 숙인 채 서 있었다. '수압발사!'

그러나 천년의 세월 동안 다져진 강바닥은 결코 호락호락하지 않았다.

그렇게 한 시간가량을 끈질기게 쏘아붙이자 견고하던 퇴적층에 조금씩 균열이 가기 시작했다.

마침내 기다리던 김수로왕 시대의 조개껍질 조각들이 흙탕물과 함께 쏟아져 나왔다.

삽시간에 눈동자가 두 배나 커져버린 장 사장이 솟꾸쳐 나온 자잘한 조개껍질 퇴적물을 한 움큼 움켜쥐고는 연신 신기해했다. 

그렇게 한참을 쏟아지던 조개층이 어느덧 잠잠해졌을 때 고압기를 끄고 양수기의 흡입호스를 관정 속으로 집어넣었다.

공기구멍을 차단하기 위하여 미리 준비된 자전거용 고무튜브로 단단히 묶어서 고정했다.


흥분된 마음을 가라앉히고 드디어 양수기의 전원버튼을 올리자 압도적인 수량의 흙탕물이 펑펑 쏟아져 나왔다.

꽉 막혔던 가슴속이 뻥 하고 뚫리는 기분이었다.

그렇게 반나절동안 쉼 없이 흙탕물을 토해낸 뒤 난생처음으로 목격하는 믿을 수 없는 놀라운 광경이 펼쳐졌다.

그야말로 모래 한 톨 섞이지 않은 맑디맑은 천연 암반수가 솟꾸쳤던 거다. 

'세상에나! 입이 다물어지지 않았다.

그제야 온몸을 전율케 하는 짜릿한 쾌감이 몰려왔다'


다음날 새벽, 궁금한 마음에 한달음에 달려온 장 사장이 큰 동작으로 박수를 치면서 환호성을 질렀다.

"우와 천연암반수가 터졌다!" 

아무렴 설마 하니 고작 지하 6∼7미터 지점에서 천연암반수가 터질리야 없겠지만 제대로 된 수맥과 연결된 진짜베기 지하수만큼은 분명했다.

한마디로 이무기가 웅덩이에서 승천하여 진짜 용이 되었던 거다.


이로써 인생의 교훈 하나를 다시금 되새기게 되었다.

'작은 성과에 도취되지 말고 세상만사 원칙을 지켜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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