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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맥도강 Aug 29. 2022

대망의 100회가 연재되던 날

30. 겸업 농부의 좌충우돌기

설레는 마음으로 새벽 단잠에서 깨어났다. 멍하니 베란다 카페에 홀로 앉아 마당의 짙은 흑백사진 풍경을 감상하며 오묘한 미소를 지어 보았다.

드디어 오늘이 3개월간의 긴 여정을 끝내는 공모전 연재의 마지막 날이다.

5월 11일 육천 여 편의 작품들이 공모전에 참가한 이후 아직까지도 연재가 이어지고 있는 작품은 흔하지 않을 것이다.

단 하루도 빠지지 않고 매일 연재한 나의 작품이 세 시간 후면 드디어 마지막 100회가 연재된다. 벌써부터 벅찬 감동의 물결이 몰려오기 시작했다.


와이프가 준비한 깜짝 파티가 있을까? 다른 사람들은 몰라도 우리 아이들로부터 축하 카톡 정도는 날라들겠지?

끝까지 따라온 십여 명의 독자들은 과연 어떤 반응을 보일까? 마지막 장면에서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뜨거운 감동의 눈물을 흘릴까?

두어 시간을 그렇게 행복한 상상의 나래를 펼치고 있었을 때 어떻게 알았던지 라디오에서도 연신 밝은 축하의 노래들이 이어졌다.


연재 한 시간 전, 거실과 베란다의 창을 활짝 열어젖히고 오늘도 어김없이 맨손체조 3회를 가뿐히 실시한 뒤 모든 창문을 닫고 에어컨을 가동했다.

거실과 베란다의 선풍기도 가동하여 베란다 카페의 분위기를 한층 산뜻하게 조성하기 시작했다.

아침상을 준비 중인 와이프에게 다가가 넌지시 한마디 건넨다.

“드디어 오늘이 100회 마지막 날이네, 시원섭섭하구먼!”

“아 그렇지! 오늘이 마지막 날이었지!”

“아침 퍼떡 먹고 베란다에 앉아서 같이 감상하자고!”

“그래요!”

그런데 초조한 내 맘과는 달리 와이프의 아침상 준비 시간이 너무 늘어져 슬슬 짜증이 몰려왔지만 잠시 후의 깜짝 파티를 기대하면서 전혀 내색하지 않았다.

우리 막둥이는 오늘이 11박 긴 휴가의 마지막 날이라 저녁 비행기로 상경해야 한다. 그래서 점심 직후 막둥이를 위한 작은 이벤트로 이정재 정우성의 헌터를 함께 보기로 예매가 되어 있었다.

 

아침을 먹으면서도 머릿속은 온통 공모전 생각뿐이다. 내가 그려낸 결말에 대한 독자들의 반응이 무척 궁금했다.

서둘러서 식사를 마친 후 빵빵한 에어컨 덕분에 공기가 뽀송뽀송해진 베란다 카페에 앉아 있으면서도 난 의도적으로 스마트폰을 내려놓았다.

그리고 인내심을 발휘하면서 설거지 중인 와이프를 기다렸다.   

이미 삼십 분 전에 마지막 연재 글이 올라왔지만 깜짝 파티에 초대된 손님은 애써 흥분을 가라앉히고 예의를 갖추고 있었다. 잠시 후 와이프가 천천히 다가왔을 때 방금 내린 상큼한 원두 두 잔이 코끝을 강렬하게 자극했다.


하지만 우리 부부가 마지막 100회를 다 읽을 때까지도 작은 케이크 비슷한 것도, 각자의 방에서 자고 있을 두 아들 녀석들의 코빼기도 보이지 않았다.

어느 누구로부터 축하의 카톡 하나도 날아들지 않았고 심지어는 우리 딸에게서 조차도…


순간 이 세상의 모든 사람들로부터 집단적인 왕따를 당하는 기분이 몰려들었다.

이럴 때 마지막 100회를 다 읽은 와이프의 첫마디가 불편한 내 심기를 더욱 비참하게 만들었다.

"이 집에서 5년을 더 살아야 한다면 돈을 좀 들여서라도 고치며 살자고…"

밤새 무슨 생각을 했던지 지금 와이프의 주된 관심사는 낡은 집을 수리하는 문제에 방점이 찍혀 있었다. 살짝 짜증 섞인 어투로~

부지불식간 내 입에서 튀어나온 말속의 의미를 조금이라도 헤아릴 수 있었다면 이후의 불행한 사태는 막을 수 있었을 텐데…

“오늘이 100회 마지막 연재 날인데 고작 그 말밖에 할 말이 없을까?”

“아니 그래 고생은 했어요! 그런데 솔직히 당신 글은 요즘 세대와는 어울리지 않는 것은 사실이야!

당신이 재밌다고 표현한 그 아재 게그 같은 표현법도 사실은 육칠십 대의 연령대라면 모를까 전혀 공감이 안되잖아!

당신의 글 속에 평소 당신의 말투가 그대로 녹아있는 것이 문제야!”


순간 정적이 이어졌고 난 마당으로 고개를 돌리면서도 땅바닥에서 눈을 뗄 수가 없었다.

3개월 동안 거의 매일 이 자리에서 공모전 얘기를 나누었지만 글쓴이를 앉혀놓고 오늘처럼 이렇게 잔인한 말을 내뱉지는 않았었다.

비록 지독히도 인기 없는 연재 글이었지만 그래도 나름 재미나게 읽어주었고 내게 적지 않은 용기를 북돋아 주지 않았던가? 그런데 하필이면 3개월 연재의 마지막 날에 무엇 때문에 이토록 잔인한 말을? 그렇다면 그동안의 그 모든 것들이 가식이었단 말인가!


이제야 알 것 같았다. 와이프의 방금 이 말속에 내 작품에 대한 우리 가족의 솔직한 총평이 담겨있다는 사실을!

함께 살아가는 가족들의 생각이 이러하다면 다른 사람들의 생각이야 말해 무엇하랴! 나의 입에선 꽤 오랫동안 머릿속에서 다듬어진 정제된 말들이 튀어나왔다.  


“난 말이야! 어느 누구에게도 부끄럽지 않은 글을 썼고 앞으로도 이보다 더 잘 쓸 자신도 없어! 적어도 내 인생 최고의 작품이라고 감히 자부할 수 있어!

비록 대중들로부터 외면받은 건 사실이지만 그것이 내 잘못이라고는 생각하지 않아!”

자리에서 일어나 마당으로 걸어 나오면서는 눈가가 붉어졌지만 행여 패배자의 모습으로 비칠까 봐 서둘러서 차에 올랐다.



사무실에 있는 내내 우중충한 슬픈 기분이 사라지지 않았던 것은 가족으로부터도 존중받지 못하는 나 자신에 대한 미안함 때문이었다.

불현듯 지금의 이 기분을 기록해 두기 위하여 좌판을 두들기고 있었을 때 여전히 나의 심리상태를 이해하지 못한 와이프로부터 전화가 걸려왔다.

"지금 라면을 끓이려고 하는데 집에서 같이 먹고 극장으로 바로 가는 게 좋겠어요! 이제 그만 문 닫고 들어와요?"

이때 잔뜩 감정이 베여버린 내 목소리가 와이프의 귓전을 강타했다.

“그러고 쉽지 않거든! 날 빼고 많이들 먹어!”

“같이 극장가기로 했잖아! 그럼 극장에는 안 갈 거야?”

“그럴 기분 아니야!”


그제야 사태를 파악한 와이프가 분주하게 움직였던 모양이다. 아이들의 카톡이 연속으로 날아들었다.

‘아빠! 공모전 100회 연재를 축하드려요!’ 어쩌고 하는 진정성 없는 카톡에 오히려 심중 속에 억눌려있던 화가 그만 폭발하고 말았다.

방금 마무리한 ‘대망의 100회가 연재되던 날’이라는 제목의 글을 복사하여 가족의 카톡방에 올렸을 때 나의 심리상태가 고스란히 가족들에게 전달되었다.


사무실에서 홀로 점심을 차려먹고 막 커피 한잔을 하려고 했을 때 갑자기 아침에 베란다 카페에서 상상했던 일들이 펼쳐지려고 했다. 축하 문구가 쓰인 꽃바구니와 케이크를 들고 와이프와 아이들이 사무실로 총출동했을 때 내가 가졌던 기분은 ‘엎드려 절 받기! 억지 춘향!’이었다.

“남들이 볼까 봐 두렵구먼! 모두들 집으로 돌아가자고! 나도 바로 따라갈 테니까!”

집에 도착하자마자 난 작업복으로 갈아입었다.

그리고 마음에도 없던 억지 축하파티를 강요받았던 가족들에게 차분하면서도 경직된 말투로 말했다.

“내가 원한 파티는 이런 억지스러운 파티가 아니었어! 아빠 생일날에도 신신부탁했듯이 아빠의 글을 읽어주는 진정 어린 축하를 원했던 것이야!

일주일이나 한 달 이후로 연기해도 좋으니까 마음에서 우러나는 진정성 있는 파티를 가졌으면 해!

너희들이 아빠 작품을 100회까지 다 완독 한 후에 그 감동으로 축하를 해준다면 아빠는 정말로 행복할 것 같아!

그땐 따듯한 카톡 하나면 충분하니까 굳이 꽃바구니와 케이크 같은 것은 없어도 돼!”


이 말을 남긴 후 휑하니 나의 아픈 손가락 같은 논으로 직행하여 아침에 눈여겨봐 두었던 논두렁 수선작업에 나섰다. 어린모들은 이미 씩씩한 청년으로 성장하여 엄청난 량의 물을 먹고 있었지만 북쪽편의 논두렁 여러 군데에 작은 구멍들이 뚫려있어 계속해서 물이 새는 문제가 발생하고 있었다.


지금 보수하지 않으면 물구멍은 점점 커져서 논두렁의 물이 모두 빠져나가는 낭패를 당할 수도 있다.  

우선 가지고 온 물신으로 갈아 신고 논두렁 넘어 배수로에 들어갔다. 그런 후 삽으로 흙을 파서 부실한 논두렁을 보강하기 시작했다. 다소 과하다 싶을 정도로 마치 성을 쌓듯 튼튼하게 논두렁을 보강한 후 다시 논으로 들어가 구멍이 난 논두렁 밑을 오른발로 꾹꾹 눌러주었다.


논두렁에 구멍을 뚫는 유력한 용의자로 의심받는 놈은 겉모습이 미꾸라지와 뱀의 짬뽕처럼 보이는 드렁허리라는 놈인데 그 길이가 50센티 정도라 언뜻 물뱀으로 오인되는 놈이다.

자칫 방치할 경우 논두렁을 허물기까지 하는 이 고약한 놈으로부터 논두렁을 사수하기 위해서는 이렇게 수시로 살펴보고 신속하게 보수하는 것만이 유일한 정답이다.

    

저녁 무렵이 되어서 집으로 돌아왔을  아이들은 모두 자신들의 자리로 돌아간 후였다.

난 몸을 씻자마자 방으로 들어가 굳이 저녁조차 사양한 채 일찍 잠자리에 들었다.

한시라도 빨리 이 악몽 같은 100회 마지막 연재 날에서 벗어나고 싶어 선택한 방안이었다.

자정이 다 되도록 잠을 청할 수는 없었지만 그 시간까지도 우리 아이들이 보내준 억지 카톡들 말고는 단 하나의 축하 카톡도 없었다.



그런데 다음날 반전이 일어났다. 당연히 베란다 카페는 열지 않았기에 곧바로 출근하여 사무실에서 모닝커피를 들고 있을 때였다.

이번에는 또 무슨 핑계로 낙방이 되었을까 생각하며 메일함을 열어보았을 때 매번 받아보던 ‘안타깝게도 이번에는 모시지 못하게 되었습니다’라는 익숙한 문구가 아니었다.


생전 처음 보는 문구가 반짝이며 내 눈에 들어왔다.

'브런치 작가가 되신 것을 진심으로 축하드립니다!’

네 번의 실패 끝에 4전 5기의 심정으로 그저께 오후에 다시 도전한 작가 신청하기의 심사결과가 어제저녁에 도착해 있었던 거다.

잠시의 망설임도 없이 설레는 심정으로 브런치 작가의 데뷔 글을 올렸다.

다섯 번째 신청서에 첨부했던 세 종류의 글들 가운데 하나인 ‘부동산 중개업자의 변신은 무죄’라는 제목의 글이었다.

그리고 우리 가족 카톡방으로 공유하기를 설정함으로써 브런치 작가로서 다시 일어난 씩씩한 가장의 모습을 선보였다.


공모전의 연재가 모두 끝나고 4일이 지나서야 첫 축하 카톡이 날아들었다.

힘든 대리기사 일을 끝내고 집으로 돌아온 새벽시간 틈틈이 연재 글을 읽었다는 창우가 새벽 다섯 시에 보낸 카톡이었다.

창우 역시도 내 공모전 작품에서 꽤 비중 있는 역할로 출연하는데 대학시절부터 우정을 이어온 절친이다.


‘떴다! 삼일 특공대, 잼나게 잘 읽었소, 영화로 제작되면 더 재미있겠다는 생각이 드네,

많은 사람들이 보고 통일에 대한 각성도 좀 하고 밑거름도 되고…’

‘ㅋㅋㅋㅋ’

‘암튼 고생이 많았고 좋은 결실 맺기를 바랄게’

‘땡큐’


아침이 되자 우리 딸에게서도 카톡이 왔다.

‘나도 다 읽었어! 재밌더라’

‘고마워’

이에 뒤질세라 우리 큰 아들도 카톡을 보내왔다.

‘완전히 다는 아니지만 쭉 따라가고 있어요, 완결까지 읽도록 할게요!’

‘응 그래 고마워!’


비비 꼬여있던 내 마음이 눈 녹듯이  녹아내렸다. 그날 저녁 가벼운 마음으로 450평 우리 부부의 논으로 차를 몰았다.

물이 방방하게 들어찼음에도 여전히 물신을 신고서도 가뿐히 걸을 수 있었다.

전지가위로 간간히 솟구친 잡풀들과 피를 도려내는 작업을 하고 있었을 때 이웃 형님이 시원한 커피내게 건네주면서 하는 말이다.

"이 정도로 드문드문한 피는 그냥 무시해도 되는데 동생이 참 너무 열심히 한다! 우짜던지 올가을 태풍만 잘 이겨내면 동생 논도 풍년까지는 아니라도 중치 정도는 되것다,  

풍년은 내년에 기대하면 안 되겠나! 그자?"

"아이고 말씀만 들어도 고맙습니더 행님!"


석양이 붉게 물들어 즈음 집으로 들어서자 주말을 이용하여 우리 딸이 도착해 있었다. 고이고이 포장한 선물꾸러미를 전해주기에 열어보았더니 고급스러운 만년필이 들어 있었다.

만년필에는 '맥도강'이라는 예쁜 글씨가 씌어있어 마치 유명 작가라도 된냥 멋들어지게 사인을 시연해 보았다.


어릴 적 나의 꿈이었던 멋진 농부 작가가 된 기분이 들었다. 이번에는 농사도 공모전도 중치 정도의 성과에 만족해야겠지만 내년에는 기어이 풍요로운 풍년을 기대해 볼 것이다!


곧 다가오는 耳順! 인생 육십이 면 아직도 청춘이거늘 도전하지 못할 것이 뭐가 있겠나?

멋진 농부 작가가 되기 위해서 다시 한번 달려보자고, 아자! 아자! 아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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