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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맥도강 Aug 29. 2022

알곡 비료 흩이던 기분 좋은 날

29. 겸업 농부의 좌충우돌기

오 분 전 새벽 다섯 시, 차량의 적재함에서 내린 알곡 비료 한 포를 어깨에 들쳐 매고 북쪽 편의 논두렁에 당도했다.

바지 주머니 속의 라디오에서는 정규방송에 앞서 애국가가 흘러나오고 여전히 세상은 흑백으로 만 보이지만 사물의 윤곽이 분명해질 정도로 어둠은 물러갔다.


이 시각의 공기는 뽀송뽀송한 느낌을 줄 정도로 상쾌하여 컨디션을 최상으로 끌어올린다. 마치 거친 농사일도 힘들이지 않고 척척해낼 수 있을 것 같은 최적의 시간이다.


450평의  작은 논이지만 초반부의 여러 사정들로 인하여 아픈 손가락 같은 애잔한 감정이 베여있는 논이다.

그런데 장마기간 제법 의젓하게 자란 녹색 모들의 당당한 모습에서 안도의 마음으로 나를 미소 짓게 만들었다.  

성능 좋은 3마력짜리 양수기에서는 밤새 농수로의 물을 쉼 없이 빨아들여 청년기의 왕성한 식욕을 자랑하는 모들을 실컷 먹이고도 남을 정도로 방방하게 들어차게 했다.

이웃 형님의 조언으로 장마기간 내내 배수로를 열어 났다가 어제저녁이 되어서야 다시 배수로를 틀어막고 수로의 물을 대기 시작했다.


논바닥이 쩍쩍 갈라질 정도로 바짝 말려야만 병치레 없이 벼들이 건강하게 잘 자란다기에 마음을 독하게 먹고 일체 물을 대지 않았었다.

중간중간에 양수기를 한번 틀어줄까 고민한 적도 있었지만 끝내 마음을 다잡았던 것은 이제부터는 진짜배기 전업 농부들의 조언을 허투루 듣지 않으리라 다짐한 까닭이다.  


양수기의 버튼을 내리고 돌아와 물신으로 갈아신었다.

광주리 가득 알곡 비료를 담은 후 제법 묵직한 무게감이 느껴지는 비료 통을 목에다 걸치고 논에 들어갔다.

그런데 어라! 그 사이 논의 바닥이 딱딱하게 굳어있어 물신이 전혀 흙에 빠지지 않았다.


논바닥을 걸으며 처음으로 느껴보는 이 상쾌한 느낌!

물이 방방하게 들어찬 논을 걸으면서도 흐느적거리지 않고 편안하게 걸을 수 있는 이 기분 좋은 상황을 묘사한 단어로 불현듯 '상쾌한 느낌!'이 떠올랐다.  

이건뭐 식은 죽먹기보다 쉬운 작업이었다. 사방으로 비료를 흩이며 거침없이 나아가면서도 전혀 힘들지 않았고 오히려 괜스레 미소가 지어질 정도로 기분이 좋았다. 이런 작업환경에서는 온종일 일해도 지치지 않고 즐겁게 일할수 있을 것 같다.


‘잡초 박멸 새벽 기습작전’의 성공적인 수행에서도 확인했듯이 새벽시간대의 작업 효율은 낮시간과는 그 차원이 달랐다. 중간중간 피어있던 피와 잡풀들을 발견하면 익사시킬 요량으로 발로 꾹꾹 밟으며 지나갔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채 사십 분 만에 모든 작업을 완료하고 논 밖으로 나왔다.


앞으로 한 달 동안은 알곡이 잘 들어차도록 물관리만 잘하면 될 일! 이제는 정말 한시름을 놓아도 될 만큼 어려운 고비들을 지나온 것 같다.

그 사이에 태풍이 변수이기는 하지만 그 고비만 잘 이겨낸다면 9월 중순부터는 또다시 논바닥을 말리기 시작하여 풍성한 추수를 위한 막바지 관리에 돌입하게 될 것이다.

     


전역을 앞둔 막둥이마저 말년 휴가를 받아 나왔던 터라 주말을 맞이하여 우리 세 아이들이 모처럼 모두 모이게 되었다.

평소 소박하던 아침 식사 후의 베란다 카페가 북적거리는 손님들로 갑자기 판이 커졌다.

딸에게 눈짓으로 신호를 주자 자신의 방으로 돌아가 준비해왔던 선물꾸러미를 들고 나왔다.

아이들의 열렬한 박수 속에서 30주년 기념 실반지를 와이프의 손가락에 끼워주자 와이프가 소녀처럼 마냥 행복한 표정을 짓는다.


비록 한 돈짜리의 가느다란 실반지지만 평생 처음으로 나의 자발적인 마음으로 선물해준 첫 보석이라는 것에 큰 의미를 부여하는 듯했다.

나 또한 내내 마음에 걸렸던 어려운 난제 하나를 해결하고 나니 마음이 개운해졌다. 다음번에는 같은 크기의 실반지를 쌍으로 끼고 싶다고 말하기에 별말 없이 웃고 말았지만 35주년 기념 선물로 무언의 약속이 이루어진 것이다.     


아침식사 후 두 아들을 거느리고 사과 따기에 나섰다. 우리 집의 사과는 파란 사과와 빨간 사과 두 종류인데 둘 다 여름사과다. 처음에는 식재한 지 15년이 넘은 파란 사과가 우리 집 사과의 대명사였다.

지금도 우리 아이들은 파란 사과만 찾을 정도로 우리 가족의 입맛에 길들여졌는데 당도가 높지 않아 밋밋하면서도 특유의 아삭함이 일품이다.


그런데 파란 사과보다도 5년 늦게 식재한 빨간 사과의 수확이 시작되면서 두 사과의 경쟁체제가 만들어졌다.

8월 말에서 9월 초가 수확시기인 파란 사과와 달리 초중순이 수확시기인 빨간 사과는 벌써부터 낙과 현상이 심해져서 더 이상은 지체할 수 없었다.

게다가 이제껏 느껴보지 못했던 빨간 사과의 당도는 지나칠 정도로 높아서 수확이 지체될수록 벌레들의 공격도 공격이지만 우리가 먹기에도 큰 부담이 되었다.

물론 시장에 내다 파는 것이 목적이라면 끝 간데없이 당도를 계속 끌어올려야겠지만 밋밋한 파란 사과에 충분히 길들여져 진 우리 가족으로선 굳이 그럴 필요가 없었다.


예년 같으면 그 많은 수확 작업을 나 홀로 감당해야 했다. 과일 수확기를 이용하여 온종일 두세 광주리씩 반복적으로 수확을 해오면 선별과 포장작업은 와이프의 몫이었다.


식재한 지 십 년이 넘은 열 그루가 넘는 성목 사과나무에 매달린 사과를 모두 수확하려면 꼬박 하루가 걸리는 만만치 않은 작업이었다.

어제 4차 코로나 예방접종을 한 와이프의 컨디션을 고려하여 우리 세 남자가 제각기 역할을 분담하여 진행했다.


가장 힘이 드는 과일 따기는 큰 아들이 담당하고 섬세한 선별 포장작업은 막둥이가 그리고 저온창고로 이송하여 보관하는 최종단계는 내가 담당했다.


저온창고에는 작년에 수확한 열 개가 넘는 사과박스들이 그대로 보관돼 있었지만 이번에는 예년처럼 사과즙을 만들지 않고 모두 액비 통으로 직행시킬 생각이다.


햇사과를 수확하면 자연히 묵은 사과는 자리를 양보해야 하는데 그동안은 비용을 들여서 사과즙을 만들었다.

힘든 농사일 중간에 참으로 먹는 사과즙은 혈당을 끌어올려서 기운을 회복시키는 데는 요긴하지만 그 량이 너무 많아서 아직도 보관 중인 사과즙이 박스채로 남았다.


그렇다고 당뇨를 걱정해야 할 처지인 우리 부부가 당도 높은 사과즙을 물먹듯이 먹을 수도 없는 노릇,

금년부터는 차라리 싱싱한 사과를 참으로 먹고 묵은 사과는 액비 통에 집어넣기로 결정했던 것이다.


힘든 일은 두 아들에게 맡기고 제법 여유를 부릴 수 있게 되었다는 것은 달리 생각해보면 액비 통으로 직행하는 묵은 사과처럼 나 또한 싱싱한 두 아들에게 자리를 양보하는 자연의 섭리를 닮은 것 같다.

온종일 걸리던 힘든 작업을 고작 반나절만에 마무리하게 되었을 때 새삼 가족의 힘은 위대하다는 것확인할 수 있었다. 


우리 써니는 촌에서 키우는 강아지치고는 제법 호사스러운 환경에서 살아가고 있다. 호텔 같은 다섯 평 크기의 전용 견사 우리에 갇혀 지내는 써니가 아침부터 꼬랑데기를 흔들어댄다고 난리도 아니다.

형들이 오면 의례 생태공원까지 한 바퀴 돌고 오는 호사가 기다리고 있음을 잘 아는 똑똑한 놈인지라 어서 나가자고 재촉하는 것이다.


모든 힘든 작업을 끝내고 가족들이 평상에 둘러앉아서 점심으로 먹는 라면 맛은 그야말로 꿀맛이다.

와이프는 자신의 손으로 애지중지 일군 화단의 여러 꽃들을 가리키며 자랑하기에 여념이 없다.

“저기 저 분홍색 장미는 말이야, 올봄 꽃시장에 갔다가 잘려서 버려진 가지를 주워와서 삽목을 했더니 저렇게 꽃을 피웠어!

신기하지 않나? 생명의 신비가 놀랍지!”

지치지도 않는 와이프의 화단 예찬 너스레를 한동안 듣다가 난 불현듯 하늘을 쳐다보게 되었다.

이때 평상위 천장에 보름달처럼 매달린 호박 등 안에 빗물이 고여있는 것을 발견했다. 장마기간에 조금씩 스며들었던 모양인데 겸업 농부의 머릿속은 빠르게 움직이기 시작한다.


여러 개의 호박 등 가운데서도 유독 거꾸로 매달린 등에서만 물이 스며들었다면 십중팔구는 설치 위치를 바르게 하여야 한다는 것이다.

평상위 천장의 골조로 설치된 파이프를 추가로 이어서 호박 등을 그 위에 바른 자세로 다시 설치하기로 마음먹었다.

두 아들 녀석들이 신기한 듯 쳐다보고 있었을 때 난 대수롭지도 않다는 듯 싹둑싹둑 자르고 붙이고 사다리를 타고 올라가 충전기를 이용하여 단단하게 피스를 박았다.

큰 호박 등이 떡하니 하늘을 향해서 떠있는 형상이 되자 우리 집 마당의 비주얼이 훨씬 더 풍성해졌다.


20년 전 비록 삼천만 원의 저예산으로 지은 날림 집이었지만 지금 우리 가족에겐 부족할 것 하나 없는 더없이 사랑스러운 집이다.

겉모습의 형식보다는 그 속의 내용이 더 중요하듯 지금의 이 행복이 오랫동안 유지되기를 바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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