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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맥도강 Aug 29. 2022

내 작품에 대한 최고의 칭찬

28. 겸업 농부의 좌충우돌기

출근에 앞서 베란다 카페에 앉아서 방금 올라온 따끈따끈한 연재 글을 묘한 미소를 지어가며 읽고 있었다.

와이프 역시도 방금 내린 따끈따끈한 원두를 규태 부인이 선물해 준 두툼한 커피잔에 담아서 가져왔다.

“80회가 올라온 거야?”

“왜? 기다렸어?”

“얼마나 재밌는데! 그럼 기다려지지”


우리 부부는 각자 의미심장한 미소들을 지어가며 막바지를 향해서 달려가던 나의 연재 글을 탐독했다.

“당신 글은 영화로 만들어도 좋겠다는 생각이 들기도 하지만 사실 좀 위험하기는 해!

주변 나라들의 역린을 마구마구 파헤친 것 같아서 차라리 웹툰이 낫겠다! 작품 후기라도 써서 공지로 한번 올려보지 그래?

그래도 공지는 다들 관심 있게 보니까 혹시 알아? 관계자들 눈에 띌지? 영화고 웹툰이고 간에 입소문이 나야 가능성이 있는 것 아니겠어?”

“사실은 오늘 새벽에 그동안 올렸던 공지들도 모두 내렸어, 하도 안 봐주니까 제발 좀 봐달라고 징징거리는 것 같잖아! 당신 말대로 내 멋에 쓴 글인데 이제는 마음을 비웠어!”     


출근하자마자 사무실의 문을 활짝 열어젖히니 25년 구력의 포스가 작열한다. 그런데 이미 난 부동산 사무실에 흥미를 잃은 겸업 농부라는 소문이 퍼질 대로 퍼진 입장이라 진짜베기 부동산 손님들보다는 동네 사랑방쯤으로 전락한 지 오래다.

오늘도 아침부터 선배 한분이 찾아와서 겸업 농부의 전문분야에 대한 자문을 구했다.

“우리 집 앞에 텃밭이 한 삼백 평 되는데 인자는 농사도 짓기 싫고 해서 올 가을에는 그냥 확 갈아엎어버리고 조경수나 심었으면 하는데 뭐 별다른 문제는 없겠지?”   

“조심하셔야 되는 것은 마당에 심은 조경수는 자칫하면 잡종지로 분류돼서 구청에서 종부세를 부과할 수도 있거든요, 그렇게 되면 나중에 양도세를 신고할 때는 농지 자경 감면대상에서 제외될 수도 있고요,

농민이 농지에서 다년성 식물을 재배하거나 작물을 경작하는 것은 농업소득을 올리기 위해서지 않습니까?

그런데 단순히 보고 즐길 목적으로 조경수를 식재한다면 농지가 아니라 잡종지나 나대지로 볼 수도 있단 말입니다,

공부상의 지목이 뭐냐를 떠나서 실제로 사용한 용도를 따지기 때문에 주의를 하셔야 됩니다!

조경수보다는 차라리 과실수로 가시죠! 생산한 과일을 판매하지 않고 식구들 간에 나누어 먹었다고 해서 시비 걸진 않겠지요”

“동생말이 맞는 것 같네! 조경수나 과실수나 관리하는 입장에서는 매한가지인데 쓸데없이 오해받을 필요가 뭐 있겠노?

내가 오늘 동생한테 물어보길 잘했네, 고마워 동생!”

“그런데 과수원을 조성하더라도 저처럼 골을 너무 깊이 파서 농기계가 다닐 길마저 없애시면 안 됩니다!

중간에 골을 만들 때는 배수에 지장이 없을 만큼만 파 올려서 트랙터 길 정도는 만들어놔야지 저처럼 하다가는 나중에 골병들기 십상입니다,

웬만하면 제초매트도 깔지 마시고 그냥 평소 하시던 대로 풀 관리를 하시는 게 맞습디다, 내가 해보니까 평소 우리가 하던 전통 농법이 정답이더라고요! 

그래서 우리 것이 좋은 것이여! 하지 않습디까? 하하하하"

     


와이프에게 사무실을 맡기고 집에 도착하자 내 공모전에서 진숙의 애인으로 등장하는 상윤이 자신의 진짜 부인과 함께 마당으로 들어섰다.

상윤의 부인이 우리 집 마당으로 들어서자마자 두 팔을 하늘 높이 흔들면서 깊은숨을 들이쉬며 말했다.

“우와! 힐링이 되는 것 같아요, 허허 들판과 공장들만 쳐다보다가 이렇게 울창한 숲을 바라보니까 가만히 바라만 봐도 힐링이 되네요! 너무 좋아요!”

마치 고생하여 완성한 작품을 독자가 칭찬해 주었을 때 작가는 이런 기분이 들 것 같았다.

우리 부부가 애써 가꾼 농장에 들어서며 힐링이 된다는 말보다도 더 감동적인 말이 어디 있겠는가?

친구 부인의 칭찬에 잔뜩 고무된 난 우리 농장의 이곳저곳을 보여주는 견학투어에 나섰다.


사과 배 복숭아 무화과 포도 매실나무 수박 참외 오이 가지 방울토마토 상추 깻잎 고추 도라지 콩 정구지(다른 말로 부추) 고구마 땅콩 그리고 압도적인 포스의 우크라이나산 자이언트 해바라기 군락지,  

마지막으로 안내된 곳은 블루베리 하우스와 그 앞의 왕대추농장!

“우와 이 많은 것들을 직접 농사짓는다구요 ?

“네 모두 저희 부부의 작품입니다, 작품이 괜찮습니까?”

“대단하네요! 우린 오백 평 텃밭도 감당이 안돼서 절반을 잘라서 다른 사람 보고 농사지어라 했는데…”

“두 사람은 직장을 다니니까 그렇지요!”

“그런데 부동산사무실도 운영하시지 않습니까? 어떻게 이 많은 것들을 다 관리하시는 겁니까? 비결이 뭐예요?”

“비결이라면 간단합니다! 아무 생각 없이 그냥 설렁설렁 놀면서 하는 겁니다, 내가 그 어럽다는 겸업 농부 아닙니까?”

옆에서 듣고 있던 상윤이 실실 웃으면서 거들고 나섰다.

“오후에 가면 이 친구는 아예 사무실에 없다, 부동산사무실은 순전히 폼으로 하는 거고 인제는 완전히 농사꾼 다됐다!”     


친구 부부가 돌아가고 홀로 평상에 앉아서 일렬로 나란히 줄지어선 해바라기 군락지를 바라보며 또 멍 때리기에 빠져들었다. 라디오에선 감미로운 컨츄리 송이 흘러나오며 무상무념에 빠진 내 기분을 맞추어 주었다.

내일 새벽부터는 또다시 약통을 짊어지고 잡초와의 전쟁에 돌입할 것이다.

농협 이자는 가파르게 오르고 있다지만 이런 때일수록 더욱 정신을 바짝 차리다 보면 이 또한 지나가지 않겠는가?


지금 생각해 보면 이 모든 것이 술을 끊은 이후 가능해진 일이었다. 지금부터 구 년 전 오십 살이 되는 기념으로 그 좋아하던 술을 단박에 끊어버렸는데 그랬더니 갑자기 시간이 어마 무시하게 많아져버렸다.

일찍 자고 일찍 일어나는 것도 가능해지자 방대한 량으로 늘어난 시간을 훨씬 더 효율적으로 사용할 수 있게 된 것이다. 

그래서 공모전에도 도전할 수 있게 되었고 잡초와의 전쟁도 두렵지 않게 되었다.

의사의 권유가 있었던 것은 아니지만 딱 두 번의 블랙아웃으로 제대로 집을 찾지 못한 적이 있었는데 나에겐 큰 충격으로 다가왔고 난 내 몸이 보내는 황색 신호등으로 인식했다.


다음은 분명히 적색으로 바뀔 테니 조심하라는 경고가 분명했기에 공자님이 말씀하신 지천명의 첫날에 결단을 내렸던 것이다.

지나고 보니 모든 것들이 습관이었던 것 같다. 담배도 술도 모두 오랜 습관이었을 뿐 고치지 못할 거대한 벽은 아니었다.

가끔씩 무알콜 맥주는 한 잔씩하고 있지만 그것만으로도 충분히 만족한다.

사실 취하기 전에 멈출 수만 있다면 술만큼 좋은 음식도 없을 것 같다. 하지만 그것이 어디 쉬운 일이던가? 그럴 수 없으니 끊을 수밖에…


기다리던 박 의원이 사무실에 들렀다.

시 조례의 개정사항인 농막 화장실에 대한 우리 구청 건축과의 의견은 단순하다고 말했다.

농막처럼 개특법 시행령 별표 1에 포함되지 않고서는 GB지역(개특법이 적용되는 개발제한구역) 내에서는 불가능한 것으로 본다는 것이다.

개특법 시행령의 개정은 시의원들의 소관사항이 아니니 한마디로 꽝이란 애기다.

그래서 박 의원은 두 가지의 전략으로 이 문제에 접근할 계획임을 말해주었다.


첫째는 지역의 국회의원에게 요청하여 농어민을 위한 10㎡이하의 농막 화장실 개설을 개특법 시행령 별표 1에 포함시키는 안이고,


둘째는 전국의 일반지역처럼 20㎡이내의 농막에 환경부가 고시한 소규모의 정화조 설치가 가능하도록 건축과를 논리적으로 설득하는 안이라고 했다.   


건축과의 판단대로 하더라도 20㎡이내의 농막 외에 시 조례의 개정사항인 10㎡의 농막 화장실을 추가하려고 했을 때 발생하는 문제라는 것이다.

작년 환경부의 고시 이후 농막에도 정화조를 개설할 수 있다면 GB지역이던 일반지역이던 구분 없이 농막에 부설하는 2인용의 정화조 개설에는 아무런 문제가 없다는 것이 박 의원의 판단이었다.

 

노련한 박 의원은 공무원들이 우려하는 농지의 훼손이나 개특법의 행위제한에 저촉되지 않도록 하려는 세심함도 보였다.

농막은 농지에 설치하는 임시시설이기 때문에 농지를 훼손하는 일체의 행위를 할 수가 없다.

따라서 2인용 이하의 작은 정화조라고 할지라도 콘크리트 타설을 금지함으로써 향후 농지로 복원하는데 문제가 발생하지 않게끔 조치하는 것은 당연한 절차라고 말했다.


박 의원은 당장에라도 실시가 가능한 둘째 안에 모든 화력을 집중해 보겠다며 전열을 불태웠다.

논리 정연하면서도 씩씩한 박 의원의 모습을 보면서 이 문제는 머지않아서 잘 해결될 것 같은 생각이 들었다.


농작업 도중의 생리현상을 해결할 수 없을 만큼 우리나라의 법률이 후진적이고 경직되지는 않았을 터,

어떻게 하면 꼬투리를 잡을까가 아니라 어떻게 하면 농민들의 애로사항을 해결할 수 있을까를 고민해 본다면 단번에 해답이 나오는 문제일 텐데 그 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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