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맥도강 May 04. 2024

기왕 할 거면 똑바로 하자!

벌써 10년의 시간이 흘렀다.

벼농사를 짓던 농지를 과감하게 왕대추 농장으로 변신시킬 작정으로 여러 농원을 탐방하던 중이었다.

일명 봉우리 농법!

1미터 깊이의 사이로 봉우리처럼 불룩하게 긴 두둑을 만드는 농법에 대하여 알게 되었다.


장마철에도 배수걱정이 없는 높은 두둑에 나무를 심어놓으니 어쨌든 나무의 생육환경에는 적합한 구조였다.

게으른 겸업농부의 입장에서는 빈틈없이 제초매트로 밀봉하였으니 풀걱정 없이 느긋한 마음으로 나무가 자라는 것을 지켜볼 수 있을 것 같았다.

 

전적으로 농사일에 매진할 수 없는 겸업농부의 한계 때문이겠지만 '옳거니 바로 저것이구나!'를 외치면서 내가 보고 싶은 것만 바라봤던 것 같다.

솔직히 고백하자면 설렁설렁 손쉽게 자경농부의 타이틀을 얻고 싶어 했던 얌체심보가 문제였던 것인데 나의 입장에서 적합한 농법이 치명적인 함정이었다.


그런데 세상만사 어디 공짜로 주어지는 일이 있던가!

품질 좋은 사과대추를 생산하여 높은 수익을 올리겠다는 욕심까지는 바라지도 않았지만 문제는 믿었던 제초매트의 배신이었다.

막대한 초기투자비용과 노동력을 투입하였음에도 결과적으로 잡초와의 전면전에서 완패하고 말았다.


처음 3년 동안은  그럭저럭 잡초 제압이라는 본연의 소임을 수행하던 제초매트를 흐뭇한 표정으로 바라보기도 했었다.

그랬는데 영원할 것만 같았던 제초매트의 마법은 채 3년을 지나자마자 숭숭 기름기가 빠지기 시작하더니 누렇게 변색되어 흉측한 모양으로 변해갔다.  

이제는 잡초방어라는 본래의 임무를 망각한 채 오히려 거친 풀들이 자라기 좋은 보온담요의 역할을 하는 적군의 편으로 돌아서고 말았다.  

사정이 이렇다고 하여 배신자를 탓하며 마냥 나 몰라라 할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횅여 풀씨라도 날려서 이웃들에게 민폐라도 끼칠까 봐 동트기 전 제초제 말통을 어깨에 짊어지으라 엄청 고생도 했지만 그것도 임시방편에 불과했다.

농기계가 진입할 수 없어 관리자체가 어려워진 농장은 점차 폐허가 되어갔다.

무성한 도장지와 거대한 잡초 군락지가 점령해 버린 농장을 바라볼 때마다 뭔가 잘못되었다는 것을 탄식하면서도 바로잡을 엄두가 나지 않았다.

지금 생각해 보면 높은 두둑의 형태로는 땔감을 키울 목적이라면 모를까 적어도 과일수확을 목적으로 하는 과수원의 형태로는 발상자체가 말이 안 되는 구조였다.

트랙터와 SS기가 진입할 수 없으니 퇴비살포와 방제의 문제, 수확한 과일의 반출문제 등 원천적으로 농장의 관리자체가 불가능하다는 것은 삼척동자도 알만한 상식의 문제였다.


그러던 사이 LH직원들의 일탈이 매스컴을 장식하게 되자 자연스레 과일나무가 식재된 농지들이 마을사람들의 주목을 끌기 시작했다.

대부분 외지인 소유였던 탓에 말이 과수원이지 사실상 제대로 관리가 안 되는 공통점을 가지고 있어 마을주민들의 시선이 고울 리 없었다.

‘에이 몹쓸 사람들 같으니, 아까운 농지에다 저게 뭐 하는 짓이고!’

어설픈 겸업농부의 입장에서는 명색이 태어나고 자란 고향땅에서 농지투기꾼이라는 오명을 뒤집어쓸 수는 없었지만 그렇다고 한꺼번에 매도되지 않을 도리도 없었다.


게다가 농장을 경유하는 도로가 만들어지는 뜻밖의 변화도 찾아왔다.

그동안 농로가 없어 사람들의 주목을 다소 덜 받는 처지였지만 도로가 뚫리게 되자 졸지에 우리 농장의 모습이 고스란히 공개되고 말았다.

마냥 이대로 손을 놓고 있을 수도 없었지만 그렇다고 선뜻 결정할 수도 없었던 것은 간단하게 처리할 수 있는 일이 아님을 잘 알기 때문이다.

작년 추석을 목전에 둔 어느 날 아침이었다.

마침내 장고를 끝낸 어설픈 겸업농부는 중대한 결심을 하기에 이른다.


생각만 해도 지긋지긋한 봉우리농법을 걷어치우고 일반적인 보통의 과수원 전경으로 변신시키는 대공사는 추석연휴부터 본격화되었다.

성큼 가을로 다가온 9월 말이라지만 아직도 찌는듯한 폭염의 연속이었다.

'이 또한 지나가리라'를 주문하면서 연장이라고는 오롯이 톱과 낫 한 자루씩만을 들고 겁도 없이 나 홀로 팔을 걷어붙였다.


몇 날 며칠을 멍하니 폐허가 된 농장을 바라보며 고심을 거듭하던 나의 모습을 지켜보던 이웃집 아주머니가 격려의 말을 전하며 용기를 보태주었다.

"이래 볼까 저래볼까 얼마나 고민이 많았던교?

처음에는 불가능할 것 같아도 사람손이 참 무섭다 아이던교?

빨리 할라고만 하지 말고 몸 애끼 가면서 시엄시엄 한번 해보이소"


이웃농민들은 내가 어떤 선택을 하게 될지 관심 어린 시선으로 지켜보면서 농업에 대한 나의 진정성을 확인하고 싶어 했다.

단순히 자경농부의 타이틀이 필요한 농지투기꾼인지 아니면 엄격한 농지법령의 규정에 적합한 겸업 농부가 맞는지를!

 

우선 군데군데 찢어지고 누렇게 변색된 흉측한 몰골의 제초매트를 걷어내는 작업부터 돌입했다.

그런데 아뿔싸였다.

마치 자신들의 포근한 이불이라도 되는냥 제초매트 위에서 단단하게 뿌리를 내린 어마무시한 량의 거친 풀들을 뽑아내는 작업이 보통 고단한 일이 아니었다.

굵은 나일론같이 질긴 풀들이 얽히고설켜있어 그야말로 혈투라는 표현이 어울릴 정도로 잔인한 작업의 연속이었다.


한번 물리면 비명을 지를 만큼 따끔한 쐐기벌레를 필두로 온갖 벌레들의 집단공격을 받으며 오로지 인내심 하나로 버티고 또 버텼다.

제아무리 단단한 마음으로 늙은 풀들과 전투를 벌이고 있다지만 인내심의 한계는 고작 삼십 분을 단위로 매번 바닥을 드러냈다.


처음 시작은 연휴기간 동안 작업을 끝낼 요량이었지만 폭 4미터 길이 85미터의 봉우리 한 개에 설치된 제초매트를 걷어내는 데만 무려 3,4일이 걸렸다.

한마디로 택도 없는 오판이었지만 그렇다고 기왕에 시작한 일을 여기서 중단할 수도 없는 노릇이다.

사무실은 온종일 와이프한테 맡겨놓은 채 오직 끝장을 보고야 말겠다는 일념하나로 작업을 이어나갔다.


필지당 여덟 개씩 모두 스물네 개의 봉우리를 정리하는데만 꼬박 세 달이 걸리는 대공사였다.

걷어낸 엄청난 량의 제초매트 처리 비용만도 고개를 떨굴 지경이지만 풀과의 전쟁에서 손쉽게 승리하겠다는 잔꽤가 빚은 업보라 생각하며 감당할 수밖에 없었다.


그다음부터는 장비의 힘을 빌려서 속도전으로 밀어붙였다.  

포클레인으로 나무의 성장에 지장이 없을 정도로만 두둑의 폭을 좁혀서 골을 메워나가는 작업이었다.

자연스레 진입 도로가 만들어지자 답답하던 가슴이 뻥하면서 뚫려버리는 통쾌함이 몰려왔다.

진즉에 이랬어야 했는데!










 



      

매거진의 이전글 세상만사 원칙을 지켜라!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