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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맥도강 Jul 19. 2023

문화체육관에 대한 첫 이야기

시골초등학교 이야기

2009년 10월의 어느 날 오후, 교장실에서는 학교운영위원회가 열리고 있었다. 지금은 중요 안건에 대한 토의를 모두 마치고 가벼운 기타 토의 시간이다. 마을통장을 겸하고 있는 윤 위원장이 부위원장의 직함을 가지고 있던 나를 바라보며 말한다.

“부위원장! 며칠 전에 의장님 하고 밥을 먹었는데 그때 하는 말이 자기 임기 중에 체육관을 짓자는 거야, 의장님이 도와주면 큰 힘이 안 되겠나? 이참에 항공소음 예산으로 체육관 짓는 문제를 다시 한번 추진해 보는 거는 어떨까?”


윤 위원장은 나와 함께 ‘김해공항 소음대책협의회’의 운영위원으로 활동하고 있어 항공소음 민원에 따른 대책사업의 내용을 잘 알고 있었다. 우리 마을은 항공기의 착륙 방향에 위치하고 있어 항공기의 소음 민원이 발생하는 제3종 소음피해지역이다. 그래서 항공법에 의한 소음대책사업으로서 매년 주민지원사업비가 지원되고 있다.

윤 위원장은 지금 그 예산으로 학교에 체육관을 짓는 문제를 다시 한번 추진해 보자는 것인데 사실 십여 년 전부터 꾸준히 거론 돼왔던 문제였다.


학교에 체육관을 짓자는 말에 귀가 번쩍 띄었던지 나를 바라보는 이 교장의 눈동자가 순식간에 두 배는 커졌다.

“제 귀가 지금 너무너무 궁금하다며 아우성입니다. 자꾸 궁금하게만 만들지 마시고 부위원장님이 속 시원하게 설명을 좀 해주시죠?”

그러면서 꼼꼼한 성격답게 노트를 펼치고는 직접 메모할 준비까지 마쳤다. 나의 개략적인 브리핑이 시작됐다.

사업은 크게 두 가지인데 하나는 ‘소음대책사업’이고 또 하나는 ‘주민지원사업’이다.

소음대책사업은 주택에 방음창을 설치하는 등 직접적인 항공소음의 피해를 최소화하기 위한 사업으로서 우리 학교도 십 년 전에는 해당 사업을 실시했었다. 98년에 실시한 항공소음측정에서 제3종 피해지역으로 고시되어 이듬해 공항공사로부터 예산을 지원받아서 교실마다 에어컨과 이중창을 설치했었다. 그런데 5년 후인 2003년에 실시한 항공소음 측정에서는 제3종 피해지역에서 제외되었는데 신 활주로가 개통되면서 비행기의 항로가 상당 부분 서쪽으로 이동했기 때문이다.

우리 학교가 에어컨을 설치한 지 십 년이 넘었지만 공항공사로부터 에어컨 교체에 따른 예산을 지원받지 못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었다.


또 하나의 사업인 주민지원사업은 일종의 주민복지 사업으로서 소음피해지역 주민들의 공동이용 시설을 지원하는 사업이다. 김해공항 소음피해 지역에 해마다 20억 원 이상의 예산이 지원되고 있었는데 바로 이 돈으로 우리 학교에 체육관을 짓자는 논의를 꾸준히 해왔다.

때마침 우리 마을출신 구의회 의장이 앞장을 서기로 했으니 지금이 이 사업을 추진할 수 있는 절호의 기회로 인식되었다. 문제는 국토해양부의 고시에는 주민지원사업은 제3종 소음피해지역인 75웨클 이상의 지역에서만 할 수 있었다. 따라서 70웨클에서 74웨컬 사이의 소음도에 해당하는 우리 학교로서는 원천적으로 이 사업을 추진할 수가 없었다.


그러던 차 또다시 희망을 가지게 된 것은 정부발의로 국회에서 계류 중인 ‘공항소음방지 및 소음대책지역 지원에 관한 법률안’ 때문이었다.

“이 법률에는 소음대책 인근지역인 70웨클 이상의 지역에 대해서도 주민지원사업을 할 수 있도록 규정하고 있습니다, 개정 법률안이 내년도 예산안 처리 때 한꺼번에 통과될 것으로 예상이 되는데, 늦어도 내년 1,2월까지는 법안이 만들어질 것 같습니다. 이렇게 된다면 우리 동문들의 숙원사업인 모교에 체육관을 짓는 꿈같은 일이 실제로 현실이 될 수도 있을 것 같습니다.”


다소 장황했던 나의 브리핑이 끝났을 때 막 메모를 끝낸 이 교장이 볼펜을 노트 위에 가지런히 내려놓고는 홀로 박수를 쳤다.

“제가 몰랐던 귀한 정보를 귀에 쏙쏙 들어오도록 잘 정리해 주셔서 정말 고맙습니다. 우리 학교에 체육관을 지을 수 있다는 말을 듣는 순간 제 심장이 멎을 것만 같았습니다.”

그러면서 자신의 가슴을 양손으로 쥐어뜯는 흉내를 냈다.

“우리 아이들을 위해서 지역에서 체육관을 지어주시겠다는 그 말씀만 들어도 흥분되고 가슴이 뜨거워집니다. 저도 힘껏 도울테니 꼭 잘되었으면 좋겠습니다.”


뜻하지 않게 회의시간이 길어지자 눈치 빠른 윤 위원장은 두 분의 선생님들과 행정실장을 돌려보내기 위하여 회의종료를 알리는 방망이를 신속하게 두드렸다. 주변이 정리되자 이 교장은 하던 말을 이어 나갔다.

“학생 수가 적은 소교모학교에 교육청 차원의 체육관 건립은 사실상 어려운 문제입니다. 하지만 지역 분들이 예산을 마련해서 체육관 건립을 돕겠다면 이야기는 달라질 수가 있습니다.

지역에서 마련하는 예산 이상으로 교육청 차원의 대응 투자도 가능하다고 생각합니다. 그렇다면  이참에 부족한 교실 문제도 해결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저는 저대로 교육청을 상대로 사전 작업을 열심히 할 테니까 지역에서는 위원님들이 계속 애써 주셔서 좋은 방향으로 일이 진행되었으면 좋겠습니다.”


예정에 없던 오늘 위원장의 체육관 발언으로 우리 학교에 체육관을 짓기 위한 아름다운 이야기는 탄력을 받으며 시작될 수 있었다. 이렇게 하여 모두가 모교의 동문들로 구성된 우리 다섯 명의 학교운영위원들과 이 교장에게는 반드시 이루고 싶은 공동의 목표가 생겨났다.


이 날의 회의가 있은지 한 달쯤 뒤, 제법 가을 냄새가 물씬 풍기는 11월 중순의 어느 날 저녁이었다. 부잣집 식당에서 마을을 대표하는 이십여 명의 마을 주민들이 열띤 분위기 속에서 회의를 진행 중이다. 항공소음 주민지원 사업비 20억 원을 공항공사로부터 지원받아 학교 부지에 체육관을 짓는 문제를 논의하기 위하여 마을의 대표자들이 모였다.


사실 오늘의 모임은 며칠 전 윤 위원장과 함께 의장실을 방문하여 체육관 건립에 따른 충분한 논의를 가졌다. 그 후 김 의장의 제안으로 마련된 자리다. 대부분의 참석자들이 우리 학교의 동문들이므로 이심전심으로 통하는 바가 있었다.

공항공사에서 지원하는 주민지원사업의 성격과 내용을 잘 알고 있는 항공소음 대책위원장인 백 회장이 도움 발언을 자청하고 나섰다.

“여기 계시는 분들 중 저 한 명을 제외하고는 모두가 동문들이신데요, 물론 우리 집 세 아이들도 모두 여러분들과 같은 동문입니다만, 이것 한 가지는 명심할 필요가 있습니다. 주민지원사업비의 공식적인 성격은 항공소음에 따른 피해 주민들을 위해서 실시하는 사업이라는 사실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비록 학교부지에서 체육관을 짓게 된다 더라도 주된 사용 용도는 우리 주민들의 건강이나 문화 복지를 위한 공동이용시설이라고 말해야 합니다. 솔직히 말하면, 학교에 체육관을 짓게 되면 우리 주민들 보다는 대부분 우리 학생들이 사용을 하겠지만 설사 그렇다 하더라도 공식적으로는 우리 주민들을 위한 시설이라고 해야만 이 사업이 순조롭게 진행될 수 있습니다.”

지원되는 예산의 성격이 항공소음 피해 주민들을 위한 공동이용시설의 지원비가 맞기 때문에 백 회장의 조언은 대단히 중요한 문제였다. 그래서 추진위의 명칭을 ‘맥도리 문화체육회관 건립 추진위원회’로 정하게 되었다.


추진위를 대표하는 회장에는 맥도리체육회의 박 회장이 맡았고, 자문위원은 총 동문회장과 소음대책위의 백 회장 그리고 이 교장이 추대되었다. 홍보위원은 내가, 실행위원은 5개 마을의 통장과 학교운영위원장 그리고 마을을 대표하는 청년 단체들의 대표들로 구성되었다.


백 회장은 자문위원답게 이 사업이 원활하게 잘 진행될 수 있도록 노련하게 코치를 틀어주었다.

“해마다 김해공항 인근지역의 주민지원사업비로 20억 원가량이 지원됩니다만 아무리 의장님이 힘을 쓰시더라도 현실적으로 우리 마을만 독식할 수는 없습니다. 방법은 사업 추진을 매년 10억씩 2년에 걸친 연차사업으로 하는 것을 생각해 봐야 합니다.

그리고 다른 지역에서 반발하지 않도록 그들의 이해를 구할 필요가 있습니다. 가령, 이 사업이 끝나고 나면 향후 2년간은 우리 마을에서는 일체의 주민지원 사업비를 받지 않겠다고 약속하는 방법을 생각해 볼 수 있습니다.”

백 회장의 말에 일리가 있다고 판단한 김 의장의 동의도 있고 하여 백 회장의 생각대로 진행하기로 했다. 그리고 이 사업을 신속하게 추진하기 위하여 각기 역할을 분담하였다. 김 의장은 구청에서 이 사업이 확정될 수 있도록 영향력을 행사하기로 했고, 백 회장은 다른 지역의 소음대책위원들을 이해시키는 역할을 맡았다.

그리고 각 마을의 통장들에게는 그동안 주민지원사업으로 시행해 오던 도로포장이나 배수로 정비 같은 자잘한 사업들을 몇 년씩이나 하지 않는다면 반발하는 주민들이 있을 수 있으므로 그들을 이해시키는 역할이 주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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