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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맥도강 Aug 12. 2023

눈높이를 낮추었지만 당당한 그 모습

시골초등학교 이야기

다음날 공 회장은 김 사무관과 함께 우리 학교를 방문했던 본청 수용팀의 이 주무로부터 연락을 받았다.

교육감으로부터 체육관 건립을 해도 좋다는 부지사용의 허가가 떨어졌다는 것이다.

사실 이 같 결과는 우리가 진즉에 황 위원으로부터 전달받았던 내용이었다. 그런데 어제 그 난리를 치고서야 돌고 돌아서  교육청으로부터 공식적인 통보를 받았다.

무슨 대응투자를 하겠다는 것도 아니고 고작 부지사용에 대한 허락 하나를 받는 것을 가지고도 이렇듯 십년감수를 해야 했으니 한심한 노릇이 아닐 수 없었다.


또다시 우여곡절은 있었지만 그나마 이만하길 다행으로 생각하며 우린 다음 일정을 향해서 뚜벅뚜벅 나아갔다.

밖에서 열어주지 않는다면 안에서는 열리지도 않는 공 회장의 오래된 봉고차를 타고서 우리 일행은 녹산중학교로 향했다. 

이 교장과 동창회장, 운영위원장, 고 실장까지 모두 여섯 명이 합류했다.

활짝 열어젖힌 창문을 통해서 월 말의 상쾌한 가을바람이 불어와 가슴을 시원하게 적셔주었다.

절망에서 희망으로 또다시 절망에서 희망으로 바뀌었지만 언제 또다시 절망으로 바뀔지 모르는 불안을 뒤로하면서 우린 앞으로 나아갔다.


평소 이 교장은 10억 상당의 예산으로는 창고 개념의 체육관밖에 지을 수 없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교육청에 20억 상당의 대응 투자를 건의하여 제대로 된 다목적 강당을 건립하고자 했었다.

처음의 꿈은 2개 층 규모로 된 30억 상당의 다목적 실내체육관이었지만 지금 우리는 눈높이를 삼분의 일 수준으로 대폭 낮추었다.

이 교장의 표현을 빌리자면 어쩌면 창고의 개념일 수도 있는 금년 2월에 완공했다는 녹산중학교의 체육관을 구경하러 가는 중이다.


출발에 앞서, 마침 공 회장의 친구가 녹산중학교의 운영위원장으로 있어 체육관 견학에 따른 편의제공을 부탁두었다. 

우리 쪽 행정실장도 저쪽 행정실장에게 도움을 요청해 둔 상태였다.

그 때문인 우리 일행이 학교 운동장 한 편의 주차장에 도착했을 때는 녹산중학교의 교장선생님과 행정실장이 반갑게 맞이해 주었다. 

교장선생님은 한눈에도 인자한 성품의 동네아저씨를 연상시켰다. 두 분의 안내로 자석에 이끌리듯 목적지를 향해서 발걸음을 재촉했다.

적은 예산으로 지었으니 창고의 수준일 라는 선입견 때문인지는 몰라도 겉모습만큼은 우리가 생각했던 것 이상이었다.

200평 규모의 아담한 크기지만  돔 형태의 지붕에서 풍기는 첫 이미지는 수려하당당 보였다. 

외벽을 두들겨보니 퉁퉁 소리가 나는 게 스틸 자재인 듯했다.

흥분된 마음을 달래면서 우린 실내체육관의 내부를 구경하기 위하여 몹시도 궁금한 표정으로 안으로 들어갔다. 


무대의 양쪽은 대기실 겸 음향실인데 제법 넓은 공간이라 회의실로서도 훌륭해 보였다.

높은 천장에 매달린 화려한 조명시설, 넓은 무대, 네 면의 배드민턴 코트, 사무실 용도로도 부족함이 없는 네 개의 귀퉁이 공간,

푹신푹신하여 마음 놓고 뛰어도 안전할 것 같은 바닥시설, 깨끗한 남녀화장실에 각각의 샤워실까지 생각 이상으로 꽤 괜찮은 실내체육관이었다.


화장실을 둘러보고 온 사이, 언제 준비했던지 이 교장은 카메라까지 꺼내 들고 여기저기를 찍으면서 꼼꼼하게 살펴보고 있었다.

다른 일행들은 여전히 두 분의 인솔자를 따라서 실내 여기저기를 구경하고 있었을 때, 곽 위원장은 체육관 밖으로 걸어 나가 직접 보폭으로 길이를 재어보고 있었다.

폭 19m, 길이 35m, 정확하게 200평이라는 평수가 나왔다.

이 정도의 시설이라면 우리 아이들이 사용할 교육시설로서도 그렇고, 동문회와 지역사회의 다양한 행사를 위해서도 충분히 훌륭해 보였.


이곳 행정실장은 우리들에게 보다  많은 도움을 주고 싶었던지 체육관의 구석구석을 안내하면서 세하게 설명해 주었다.

구청과 교육청에서 1:1로 대응 투자하여 10억 원의 예산을 마련했고, 공사기간은 3개월이 조금 더 걸렸다고 했다.

지역의 건축업자가 공사를 맡았는데 나름대로는 애착을 가지고 공사를 마무리해 준 관계로 대체적으로 만족스럽다고 말했다.

천장에 매달린 조명등은 전구 교체가 가능한 상하 이동식이고, 상단에 위치한 커튼은 전동 커튼으로서 자동으로 열고 닫을 수 있다고 했다.

매월 약 40만 원가량의 관리비가 소요된다는 세세한 부분까지 말해주었다.


이 교장은 사소한 부분들까지 부족한 시설들을 하나하나 짚어내어 꼼꼼하게 수첩에 기록하고 있었다.

이 교장이 뭔가를 열심히 메모하고 있었을 때 그 옆에서 이 모습을 지켜보던 곽 위원장이 실없이 웃고 있다.

체육관 건립을 위한 무수한 불면의 밤이 없었다면 도저히 생각할 수 없는 분석들이다.


《설치해야 할 장치들》

무대조명 틀과 조명등, 무대커튼, 현수막 걸이, 냉난방기, 의자, 프로젝트와 전동 스크린, 실내용 운동기구(뜀틀, 매트, 평균대), 플로어 덮개, 신장과 덧신, 우산꽂이     


《본교에서 추가하거나 고려해야 할 사항》

악기 보관실, 다목적 회의실, 연회용 테이블 수납공간(외부 출입문 쪽), 학예회용 전시대 수납공간, 실내용 공바구니, 평균대, 탁구대(과학실 리모델링 시 여분의 수납장 리폼 활용), 화장실 입구 깔개

     

일선에서 직접 아이들을 지도하선생님으로서 수십 년간 몸에 뵌 이렇듯 철저하고도 진지한 모습에 우린 절로 감탄사가 우러나왔다.

이런 모습을 지켜보는 것만으로도 경건한 마음을 불러일으키며 숙연하게 만들었다.

돌아오는 차 안에서 우리 일행이 내린 결론은 10억 상당의 예산으로도 이처럼 쓸 만한 체육관이 만들어질 수 있다는 전향적인 생각의 변화였다.

안도하는 마음으로 차창을 반쯤 열어젖혔 때 기분 좋게 불어오는 시월말의 가을바람이 무척이나 상쾌했다.


상쾌한 바람을 맞으며 상상의 나래를 펼쳐본다.

우리 아이들이 저마다 열심히 준비한 프로그램을 학예발표회를 통해서 선보인다.

실내체육관의 화려한 조명이 드넓은 무대 위를 비추고, 성능 좋은 음향은 200평 규모의 실내체육관을 뜨겁게 달구고 있다.

이때 토끼같이 귀여운 1학년 아이들이 깜찍한 표정으로 열심히 연습한 무용을 선보이고, 이윽고 2학년, 3학년, 4학년, 5학년 아이들의 프로그램이 차례대로 소개된다.

마지막 순서로 제법 성숙한 자태의 6학년 아이들이 환상적인 부채춤을 추고 있다. 관중석에서는 다들 넋이 나간 표정들다.

정성껏 준비한 우리 아이들의 프로그램이 모두 끝났을 때, 장내를 가득 메운 학부모와 동문들이 기립하여 환호성과 함께 뜨거운 박수를 보내고 있다.

생각만 해도 가슴이 벅차오른다.


장면이 바뀌었다. 

저쪽 편의 농구대에서는 가방을 한쪽으로 내팽겨 둔 고학년 아이들이 편을 나눠서 열심히 농구시합을 하고 있다.

이때 빗자루로 바닥을 쓸고 있던 이 교장이 흐뭇한 표정으로 이 모습을 바라본다.

녁시간에는 배드민턴 동호회의 지역주민들이 쌍쌍이 배드민턴을 치고 있다.

이들의 뒤에서는  무언가를 해내었다는 자부심으로 뿌듯해하는 사람들이 있다.

이들이 바로 지금 봉고차 안에서 깊은 생각에 잠겨 있는 우리 일행들이다.


학교에 도착하여 이 교장을 내려주고 곧장 출발하려던 차였다.

그때 공 회장은 구청 환경위생과의 이 과장으로부터 연락을 받았다.

다음 주쯤에 교육청 관계자들과 실무협의를 했으면 하는데 자리를 한번 만들어달라는 요청이었다.

우리 일행은 또다시 교장실에서 긴급대책회의를 가졌고, 공 회장이 본청 수용팀의 이 주무에게 연락하여 이러한 사실을 알렸다.

기왕이면 관계자 연석회의가 좋겠다는 이 교장의 제의로 소음대책위원장인 백 회장을 통해서 한국공항공사 부산지사도 자리를 같이 할 수 있도록 치되었다.

이리하여 다음 주 월요일 오후 두 시경 본교 도서관에서 드디어 역사적인 첫 실무회담이 예정되었다.


어느덧 오후 여섯 시가 되었다.

퇴근시간이지만 이 교장은 퇴근할 생각이 없다는 듯 우리를 배웅한 후 다시 교장실로 들어간다.

사실 이 교장의 평소 퇴근 시간은 밤 아홉 시경으로 알려져 있었다.

본인의 말로는 퇴근시간엔 차량이 너무 막혀서 일부러 러시아워를 피해서 퇴근하기 위해서라는데 그것을 곧이곧대로 믿을 사람이 누가 있을까.


처음 이 교장을 만난 사람들은 학교에서 잡일이나 하는 하찮은 사람으로 착각하는 이들이 많았다.

그도 그를 것이 아침부터 저녁까지 온종일 행정실의 장 주사와 함께 나무를 베거나, 풀을 뽑고, 흙을 파, 학교의 온갖 노동일을 도맡아서 하고 있었다.

초창기 이 교장의 이러한 행동 주사뿐만 아니라 다른 선생님들에게 대단히 불편한 마음을 불러일으키는 행동이었을 것이다.

지만 이젠 자신들의 일에만 몰두할 뿐 의례히 당연한 일로 받아들인다.

하루 이틀도 아니고 무려 3년을 저러고 있었으니 어느덧 모두는 익숙해져 버린 것이다.

아이들에게도 엄격교장선생님으로서의 모습은 어디에서도 찾아볼 수가 없다.

단지 마음씨 좋고 친근한 이웃집 할아버지의 위상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다.


지만 학교에서 차지하는 이 교장에 대한 카리스마는 가히 절대적이다.

가령 우리 학교에 교사의 결원이라도 생기는 날이면 시내다른 학교 교사들 사이에서는 경쟁이 치열하다고 한다.

주된 이유 중 하나가 강서지역 근무 시 고과점수를 받을 수 있다는 것이고,

그보다 더 중요한 사실은 이 교장과 함께 근무하면 일반적인 고과점수 외에도 승진에 필요한 다양한 우대를 받을 수 있도록 이 교장이 직접 챙겨준다는 사실이다.

학교운영위원회에서 우리 학교로 근무지의 변경을 희망하는 지원자들에 대하여 서류심사를 한 적이 있었다.

그런 웬만한 대기업체 경력사원 특채를 방불케 하는 그 치열한 경쟁에 깜짝 놀란 적이 있었다. 

빽빽하게 채워진 화려한 자기소개서에다 심지어는 법학 박사학위자까지 포함돼 있는 것을 보고는 어안이 벙벙했다.

이렇듯 이 교장은 교사들 뿐만 아니라 행정실의 직원들까지도 함께 근무하고 싶은 최고의 상사로 정평이 났을 정도였다.

사정이 이러할진대  교장의 압도적인 카리스마는 가히 상상하고도 남음이 있었다.


사실, 우리 학부모들의 입장에서는 2년, 길어봐야 3년만 근무하고 떠나버리는 교장과 교사들이 서운하게만 생각된 적도 있다.

지금은 과거의 일이 되었지만 마치 군대에 가듯 고과점수 때문에 억지로 떠밀려와서는 국방부 시계만 쳐다보다가 홀연히 떠나가는 개념 없는 선생님들 때문이었다. 

그분들은 자신들 집 근처의 큰 학교로 전근 가기만을 학수고대하면서 우리 학교를 잠시 스쳐가는 간이역 정도로 치부했던 게 사실이다.

물론 교통 여건이라던가 모든 것이 불편하기 짝이 없는 이런 시골학교에서 마냥 눌러 있고 싶은 사람이 누가 있을까 싶다.

그렇더라도 교사로서의 열정은 온데간데없이 하염없이 국방부 시계만 쳐다보는 그들의 근무 형태에 서운한 마음이 들었던 것은 숨길 수 없었다.


그런데 이 교장은 달랐다. 그의 근무시간표는 제1부와 제2부로 나누어져 있었다.

제1부는 하루 종일 학교에서 막노동을 하는 시간이고, 제2부는 남들 다 퇴근한 후인 저녁 여섯 시부터 밤 아홉 시까지였다.

이러한 비정상적인 근무 형태에 대하여 언젠가 이 교장은 지나가는 여담처럼 우리에게 설명한 적이 있다.

낮시간에 교장이 교실을 왔다 갔다 하며 이것저것 업무를 챙기기 시작하면 우선 교감의 할 일이 없어지고, 

교사들도 불편하게 생각하기 때문에 주체적으로 업무를 하는 태도가 생기지 않더라는 것이다.

그래서 꼭 필요한 중요한 업무 외에는 낮에는 가급적 교실 밖으로 나가서 톱과 삽을 들고 학교 가꾸는 일에 시간을 할애한다고 했다.

서류 업무는 다들 퇴근한 후의 조용한 시간인 제2부 시간에 꼼꼼하게 챙겨보는 것이 훨씬 효율적이라고 하면서 말이다.

교감을 비롯한 교사들도 교장이 보장해 준 자율성으로 인하여 더욱더 책임감을 가지고 주어진 업무를 처리할 수 있다고 했다.

덤으로 자신은 교실 밖에서 시간을 보낼 수 있어 아이디어도 많이 떠오른다며 태연히 말하던 기억이 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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