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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맥도강 Aug 09. 2023

교육에 대한 서로 다른 평가기준

시골초등학교 이야기 

퇴근 후 집에서 쉬고 있을 때였다. 교장으로부터 다급하게 연락이 왔고, 그의 목소리에는 미세한 떨림이 있었다.

방금 위원이 오늘 교육청으로부터 보고받은 내용을 알려왔다고 했다.  

대응 투자는 불가하지만, 교육청으로 기부 채납하는 조건으로 학교부지 안에서의 체육관건립을 허용한다는 것이다.

교육감의 결단이 있었다고 했다. 

방금 이 소식은 그동안의  막혔 대치전선 뻥하면서 뚫려버린 정말로 기분 좋은 소식이었다.

불현듯 교육청을 잡는 데는 교육위원이 최고라는 김 의장의 명언이 떠올랐다. 역시 십 년의 의정경험이 공짜로 얻어지는 것은 아닌 것 같았다.

그런데 왠지 모르게 뒷맛이 개운치 않았다.

평범한 시민들이 정상적인 절차를 밟아서는 해결할 수 없었 일이다.

세상이치가 다 그런지는 몰라도 위원 같은 힘 있는 자가 위에서 누르니 절대로 안된다던 일이 가능하게 되었다.

그래서 다들 권력을 얻기 위하여 그렇게들 박 터지게 싸우는 이겠지만 왠지 모를 씁쓸함으로 다가왔다.


며칠 후 우리는 또다시 교장실에서 모였다.

본청에서 체육관 문제로 고위 인사가 나온다기에 이제는 정말 아무런 부담감 없이 편안한 마음으로 모였다.

황 위원의 전갈도 있었던 터라 체육관이 지어진다는 사실만큼은 의심의 여지가 없었다.

다만 이번 참에 추후 딴소리를 하지 못하도록 확실한 다짐이라도 받아두어야겠다는 생각이었다.

약속시간보다도 삼십 분이나 른 시간인데도 모두들 자리를 차지하고 있었다.

추진위원장인 공 회장을 비롯하여 항공소음대책위의 백 회장, 운영위원회의 곽 위원장, 동문회 사무국장인 고 실장이 자리를 함께 했다.


잠시 후 30대 중반에서 40대 초반으로 보이는 남, 여 두 명이 반갑게 인사하며 들어선다.

인사를 나누면서 받은 명함으로 보아서는 본청의 교육지원과 수용 2팀에 소속된 사무관과 담당 주무였다.

순간 이 교장을 비롯한 우리 일행의 표정이 실망의 기색으로 돌변했다.

고위 인사가 방문한다기에 국장급 정도가 나올 줄 알았는데 엉뚱하게도 학교통폐합 업무를 담당하는 사무관급이 올 줄은 미처 몰랐다.

인사가 끝나자마자 다부진 체격의 김 사무관이 호기롭게도 지도 한 장을 탁상 위에 펼쳐 보였다.

이런 식으매사에 자신감이 흘러넘치는지 패기만만한 표정이다. 시작부터가 예사롭지 않은 열기로 후끈 달아올랐다.

우리 모르게 학교 주변을 충분히 탐문했고 구청 담당자와도 사전교감이 있었다면서 공부를 많이 하고 왔다는 티를 내고 싶어 했다.

그제야 며칠 전 황 위원이 귀띔해 준 실사를 나온다던 교육청 실무진들의 정체가 밝혀지는 순간이었다.


나름 열심히 주변을 돌아다니면서 파악한 정보를 바탕으로 잔뜩 목소리에 힘을 주면서 설명해 나갔다.

우리 지역은 대단위의 주거단지계획이 없기 때문에 지속적인 학생 수의 감소가 불가피하다는 이 주장하고 싶은 포인트였다.

공영개발지의 한가운데 위치한 우리 마을로서는 끊임없이 주민들이 빠져나갈 수밖에 없는 구조라면서 제법 도시계획의 전문가인 양 말했다.

한마디로 우리 마을은 미래가 보이지 않는다는 것이 김 사무관이 용의주도하게 풀어나가고자 했던 결론이었다.

지금 현재 정부 차원에서는 학교 재배치 계획을 마련 중인데 향후 학생 수의 추이 변화를 중심으로 통폐합정책이 추진되고 있음을 밝혔다. 

소규모의 학교 한 개를 정리했을 때는 연간 20억 원의 예산을 절감할 수 있는데,

이 예산을 통합된 학교에 집중적으로 투입한다면 훨씬 더 효과적인 교육의 목표를 달성할 수 있다면서 통폐합의 당위성을 자신만만하게 설명했다.

자신들의 예상으로는 배영은 2013년이면 복식수업을 면할 길이 없어 통폐합의 대상이 맞다고 하면서.

다만 그 시기를 1년 앞당기기로 한 것은 관내의 다른 두 학교와 통폐합 시기를 맞추기 위해서라고 했다.

이런 상태에서는 아무리 우리 동문들과 지역 사회가 반대한다 하더라도 폐교를 막을 수 없다며 확신에 찬 어조로 말했다.

따라서 통폐합의 대상인 우리 학교에 대한 교육청 차원의 대응투자는 아예 논의의 대상이 될 수가 없고.

다만 체육관 건립을 위한 부지 사용의 허가 여부는 아는 바가 없으므로 본인이 이 자리에서 대답할 사안이 아니라는 답변이었다.


한마디로 가 막혀서 어안이 벙벙할 노릇이었다.

황 위원은 분명히 교육감의 결단으로서 체육관 건립이 허락되었다고 말했다.

그래서 그에 대한 세부사항을 논의하려고 고위인사가 오는 줄 알았는데 웬 애송이가 쳐들어와서는 당돌하게도 학교 통폐합을 주장하고 있지 않은가!

이렇듯 무례하기가 이럴 데 없는 김 사무관에 맞서 이날의 토론은 고 실장이 주도적으로 풀어나갔다.

그래도 초장에는 인내심을 발휘하면서 잘 풀어나가듯 했다.

지역에서 부동산 사무실을 운영하는 공인중개사답게 정연한 대응논리를 앞세우며 차분하게 응수했다.

인구수가 줄어들어서 학생 수가 감소하는 현상은 최근 2,3년의 일시적인 현상이라는 주장으로 방어논리를 펼쳐나갔다.

오히려 일천만 평 강서개발지에서도 제외된 몇 안 되는 마을이라는 사실을 강조하면서 개발이 진행되면 될수록 토지 수용의 염려가 없는 우리 마을로의 인구 유입 현상은 불가피하다는 논리를 전개했다.

다만 그 과정에서 일시적으로 나타나는 인구감소 현상을 근거 학교통폐합 정책을 밀어붙이는 것은 큰 실수라는 방어논리였다.


마치 힘겨루기를 하듯 양측의 팽팽한 주장은 한 치의 양보도 없이 진행됐다.

이때 마음을 다스리면서 가만히 듣고만 있던 이 교장이 정색한 표정으로 맞은편의 김 사무관을 바라보며 호통을 치듯이 말했다.

“오늘 본교에는 왜 오셨습니까? 지금까지 사무관께서 하신 이야기는 여러 번 들어온 이야기입니다.

새로운 제안이나 진일보된 교육청의 방침을 통보하지 않을 것이라면 무엇 때문에 시간 낭비를 하는지 모르겠습니다.

김 사무관님도 교육청의 일이 바쁘실 테고, 이 자리에 계시는 우리 동문님들도 한가롭지가 않습니다.

이분들에게는 지금이 바쁜 농번기이기 때문에 새벽 네 시부터 밤 열 시까지 힘겹게 일하고 있습니다.

나도 지금은 동쪽 울타리 정비를 하기에도 바쁜 시간인데 이렇게 의미 없는 자리에서 한가롭게 시간을 보낼 여유가 없는 처지입니다!”

예사롭지 않은 이 교장의 호통에 김 사무관 일행뿐 아니라 사실은 우리도 적쟎이 놀랐다.

공립학교 교사라는 신분역시도 교육청 조직의 일원으로서 부산교육청에 밉보여서 좋을 이 없을 텐데도 말이다.

그런데도 앞뒤를 가리지 않고 입바른 소리를 하고 있는 이 교장이 은근히 걱정되었다.

이 같은 우리들의 기우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이 교장의 거침없는 발언은 계속되었다.

“설사 훗날 우리 학교를 통폐합한다고 가정해 봅시다!

그런다고 하더라도 학교 시설물은 교육청의 방침상 매각하지는 않을 것 아닙니까!

그렇다면 지역 주민들이 자신들 몫의 항공소음보상비로 학교를 위해서 다목적 강당을 건립해 주겠다는데 교육청에서는 부지사용에 대한 승인을 해주는 것이 당연한 것 아니겠습니까?”

이쯤 되자 김 사무관 일행의 얼굴색이 벌겋게 달아올랐다.

다른 사람도 아닌 공립학교의 교장이 자신들을 거칠게 몰아세우니 당황한 기색이 역력했다.


이 교장의 호통이 잠시 멈추는 듯하자 기다렸다는 듯이 고 실장이 앞전보다도 한 템포 높은 톤으로 반격에 나섰다.

“도대체 어떻게 교육을 규모로 평가를 단 말입니까!

대기업이 소기업을 잡아먹는 기업체합병 방식처럼 어떻게 학교 통폐합을 그렇게 쉽게 생각할 수 있단 말입니까?

이건 뭐 거의 4대 강 사업하듯이 불도저로 밀어버리겠다는 것 아닙니까?

교육을 경제 논리의 잣대로만 밀어붙인다면 여러분들은 정말 큰 실수를 저지르는 겁니다!”

흥분을 참기가 어려웠던지 아예 일어나서 연설하듯이 손동작까지 가미하면서 목소리를 드높였다.

“규모에 집착하는 당신들의 태도는 아무리 이해하려고 해도 도저히 이해가 되지 않습니다!

소규모 학교이기 때문에 가능한 특성화교육의 수준 높은 질적인 부분을 왜 간과하는 겁니까?

교육청에서도 인정하는 부산시 최우수 초등학교로서의 평가는 왜 무시하는 겁니까! 도대체 교육청의 역할이 무엇입니까!

교육청보고 돈을 내어놓으라는 것도 아니지 않습니까!

우리 주민들이 학생들의 교육 여건을 개선해 주기 위해서 어렵게 확보한 예산입니다,

이 돈으로 체육관을 지어서 교육청에 기부하겠다는데 도대체 웬 말들이 이렇게 많습니까!

그렇다면 교육위원이 우리한테 답해준 것은 도대체 뭡니까!

체육관 건립을 위해서 부지사용을 해도 다는 교육감의 약속이 있었다고 했는데, 교육위원이라는 분이 우리 주민들한테 사기라도 쳤단 말입니까!

여러분들이 정히 이런 식으로 나온다면 수일 내에 우리 동문들을 규합해서 교육감면담을 갈 테니까 그때나 봅시다!

우리가 단체행동을 할 수밖에 없도록 만든 건 바로 당신들이란 사실을 잊으면 안 됩니다!”

이렇게 말하고는 자리를 박차고 나가 버렸고, 분위기는 달아오르다 못해 자칫 험악해졌다.


상황이 이렇게까지 일촉즉발의 상황으로 전개되지금까지는 일관되게 침묵만 지키던 공 회장이 느릿하지만 무거운 톤으로 말문을 열었다.

“도대체 언제까지 기다리면 되겠습니까? 된다 안 된다, 가부간 결정이 날려면 도대체 언제면 되겠습니까?”

긴장된 목소리의 김 사무관이 안경을 만지작거리면서 조심스럽게 말했다.

통폐합의 대상인 소규모 학교에 교육청 차원에서 시설 설치를 위한 대응 투자를 한다면 제가 감사의 대상이 되어 문책을 받을 수도 있습니다.

그래서 그것은 불가능합니다만 학교 부지의 사용에 대해서는 제가 답변할 사안이 아닌 것 같습니다.

내일이라도 교육감님의 뜻을 한 번 더 알아보고 연락드리겠습니다.

교육감님의 일정에 따라서는 다소 늦을 수도 있겠지만 최대한 빨리 알려드리겠습니다.”


이때  끝자리에서 고심스런 표정으로 앉아있던 공항소음대책위의 백 회장이 교육청의 빠른 결정이 있어야 할 것 같다고 말했다.

공항공사의 금년도 추경예산 1억 5천만 원을 설계비로 투입하기 위해서는 시간이 없다는 것이다.

이어지는 김 사무관의 왕짜증에 가까운 발언 중에는 황 위원을 앞장세운 것에 대한 강한 불쾌감이 엿보이는 대목이 있었다.

이 대목에서는 공 회장이 발끈했다.

“왜 우리가 황 위원을 만난 줄 아십니까?

북부교육청에서 처음부터 불가하다고 했기 때문입니다.

그래 한번 의논을 해보자고만 했더라도 우리가 황 위원에게 도움을 요청했겠습니까?

따지고 보면 우리를 황 위원한테 보낸 분들이 바로 교육청 아닙니까!”

공 회장의 마무리 발언은 거의 고함에 가까웠다.

상황이 이런 식으로 흘러가자 마치 기싸움에서 밀리지 않겠다는 듯 작심을 하고서 김 사무관도 맞받아친다.

“솔직히 말해서 여러분들은 학교 통폐합을 막기 위해서 학교 안에 마을회관을 짓겠다는 것 아닙니까?”

이 말에 이 교장이 발끈하며 다시 나섰다.

“우리 아이들의 교육여건 개선을 위해서 고맙게도 지역 분들이 예산을 확보해 오셔서 체육관을 지어주겠다는데 어째서 그렇게 삐딱하게만 생각합니까?

물론 동문회를 비롯한 지역 분들이 필요하시면 사용하실 수도 있겠죠! 하지만 평소의 대부분은 우리 아이들이 사용할 교육 시설물이지 않습니까!”


여태까지 가만히 듣고만 있던 곽 위원장이 불쑥 한마디 거들고 나섰다.

솔직히 말해서 복식수업은 말도 안 되는 소리고요!

어떤 일이 있더라도 학생 수가 60명 밑으로 떨어지는 일은 없을 거라고 자신 있게 말할 수 있습니다.

우리 동문들이 힘을 모아서 반드시 학교를 사수할 것이기 때문에 그런 일은 절대로 있을 수가 없습니다!”

곽 위원장의 다짐에 가까운 이 말은 사실상 우리 모두의 향후 숙제가 분명했다.

아름다운 시골초등학교를 사수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지켜야 하는 우리 모두의 엄숙한 숙제였다.

이 교장의 마무리 발언은 오늘의 응수타진 중 거의 백미에 가까웠다.

오늘 이 자리에 적어도 국장급 정도의 책임자가 나올 줄 알았는데 당신들만 와서 대단히 실망스럽다고 강펀치를 날렸다.

새로울 것 하나 없는 의미 없는 만남에 대하여 대단히 실망스럽다고 대놓고 마무리 KO펀치를 날려주었다.

참으로 길게만 느껴졌던 오늘의 회합을 마쳤을 때 우리 모두는 너나 할 것 없이 허탈하고 실망스러운 표정이었다.

우리뿐만 아니라 김 사무관의 표정 역시도 한마디로 엉망진창이었다.

팔십여 년의 유구한 역사를 우리 마을과 함께 해온 이 아름다운 시골초등학교를 사이에 두고, 지키려는 세력과 없애려는 세력 간의 적의마저 느껴지는 팽팽한 긴장의 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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