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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맥도강 Aug 05. 2023

든든한 응원군의 등장

시골초등학교 이야기 

부동산 사무실로 김 의장이 방문했다. 아니 정확히 말하자면 요사이는 딱히 갈 데가 없는 처지인지라 자신의 사무실인 냥 하루종일 죽치는 신세다. 

10년의 의정 생활을 경륜 삼아서 동네방네 온갖 간섭을 다하면서 감 놔라 배 놔라 참으로 말이 많다.  

“암만 그래 싸도 시청 잡는 데는 시의원이 최고고, 구청 잡는 데는 구의원이 최고인기라.

그라면 교육청을 잡을라 카면 누가 나서야 되겠더노? 

강서구 교육위원을 수소문해서 그 양반한테 도움을 요청해 보는 게 빠를 거라고 내가 진작부터 얘기 안 하더나?

순간, 맞은편에 앉아있던 곽 위원장이 뭔가 필이 꽂혔다는 표정으로 돌변한다.

곧장 114로 전화하더니 강서구교육위원을 찾았 안내된 번호를 꾹꾹 눌렀는데 놀랍게도 바로 연결되었다.

“교육위원님, 안녕하십니까! 저는 강서구에 있는 배영초등학교의 운영위원장입니다, 긴히 상의드릴 일이 있어서 전화드렸습니다.”

“반갑습니다, 편하게 말씀하십시오, 무엇을 도와드릴까요?”


이렇게 하여 며칠 후 명지의 한 횟집에서는 대단히 의미심장한 저녁식사자리가 만들어졌다.

이 교장과 함께 북부교육청을 방문했던 역전의  용사들에다 동문회 사무국장 자격으로 고 실장이 합류했다.

황 위원과 마주 앉은 고 실장이 과거 학원을 운영하면서 가졌던 나름의 교육철학을 곁들이며 사설을 늘어놓았다.

“어쩌다가 우리나라의 교육이 질보다는 양을 중시하는 처지가 됐는지 모르겠습니다.

무슨 부실기업체 정리하듯이 경제논리로 학교를 통폐합하겠다는 발상이 도대체 어떻게 나올 수 있습니까?”

언뜻 봐도 깊이가 느껴지는 황 위원의 기품은 해군사관학교 교수출신이라는 소개를 듣고서야 고개가 끄득여졌다. 

가슴에 양팔을 껴안은 채 교육에 대한 고 실장의 소신성 발언을 가만히 듣고 있던 황 위원이 자신의 의견을 피력한다.

“맞습니다! 교육을 4대 강 사업 밀어붙이듯이 경제 논리로 접근하는 것은 대단히 위험한 발상입니다.

여기로 오기 전 배영에 관한 자료를 훑어봤습니다.

우리 교장선생님께서 대단한 열정으로 학교를 운영하고 계시고, 그 성과가 부산교육청에서도 초등학교 교육의 모범으로 삼고 있다고 합니다.

맞습니다! 교육은 결코 양이 아닌 질로서 평가받아야 합니다!

특성화 교육은 도심지의 콩나물교실에서는 불가능합니다. 오히려 한 반에 열명 내외의 선진국형 교실이 돼야만 가능합니다.

배영처럼 특성화교육으로 성공한 사례는 칭찬과 격려를 하면서 전폭적으로 지원을 해주어야 합니다!

주민등록표상의 데이터를 거론하면서 통폐합을 언급한다는 것은 도대체가 말이 되지 않습니다.”


황 위원은 조만간 교육청에 대한 행정사무감사가 예정되어 있는데 그때 농, 어촌학교의 통폐합에 대해서 살펴보면서 우리 학교 문제를 집중적으로 들여다볼 계획이라고 했다.

특히 학교를 활성화시킬 목적으로 지역사회가 지어주겠다는 체육관을 거부하는 것은 교육청의 과도한 처사가 아닌지 확실히 따져 묻겠다고 다짐했다.

그리고 자신의 사무실에서 교육청 실무진들과 토론할 수 있는 자리를 마련해 보겠으니 그때 흉금을 터놓고 심층토론을 해보자고 제의했다.

그러면서 교장에게는 학교를 한번 방문하고 싶은데 괜찮겠느냐고 물었고, 이 교장은 언제라도 좋은데 한 가지의 조건이 있다고 했다.

그것은 아무런 예고 없이 불시에 방문해 달라는 것이다. 황 위원에게는 한 치의 가식도 없는 있는 그대로의 평소 모습을 보여주고 싶다고 하면서.


이날의 회합은 아름다운 시골초등학교를 지키려 여정에 있어 참으로 의미 있는 자리였다.

학교 통폐합 정책을 입안하고 추진하는 교육행정가들은 교육정책을 하나의 경제마인드로 바라보고자 했다.

반면에 교육현장을 지키는 선생님들은 교육 그 자체의 가치를 중요하게 생각했다.

이렇듯 이들 간에는 분명한 노선의 차이가 있었지만 안타깝게도 교육현장의 선생님들에게는 아무런 힘이 없었다.

북부교육청을 떠나올 때  교장은 우리 아이들의 백년대계를 위하여 일말의 가능성이라도 찾아봐달라며 했지만 돌아온 대답은 내 묵묵부답이었다.

문제해결의 작은 실마리라도 발견할 수 있었다면 굳이 우리가 황 위원 같은 정치인의 도움을 필요로 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이날의 회합이 있고서 며칠 뒤 황 위원으로부터 반가운 연락이 왔다.

부산시의회 자신의 사무실에서 본청의 실무진들과 격의 없는 토론의 자리가 마련되었다는 소식이었다.

약속시간인 오후 네 시 이전에 도착하기 위하여 공 회장과 고 실장까지 우리 넷은 이 교장의 차에 올랐다.

이 교장은 늦지 않게 도착하기 위해서 속도를 좀 내겠다고 양해를 구한 후 거의 카레이스 수준으로 차를 몰았다. 

차랑 안에서 일행들은 잔뜩 긴장된 표정으로 차창 위의 손잡이를 손목의 힘줄이 다 보일 정도  움켜 잡아야 했다.

고 실장이 웬 운전을 그리도 급하게 하느냐고 물었을 때 이 교장의 해명이 재미있었다.

처음 운전을 가르쳐준 동료 교사의 성격이 몹시도 급한 사람이었는데 초보 운전자는 옆이나 뒤를 의식하지 말고 무조건 앞만 바라보고 달려가라고 배웠다는 거다.

그 후로는 그것이 하나의 운전 습관이 되어버려 웬만하면 속도를 낼 수 있을 만큼 내게 된다는 설명이었다.

다행히 이 교장의 카레이스급 운전 솜씨 덕분에 다소 여유 있게 도착할 수 있었지만 행정사무감사 기간이어서인지 공영주차장은 좀처럼 자리가 나지 않았다.

사실 우린 이곳이 대단히 낯선 곳이었지만 이 교장은 과거 교육청에서 장학사로 근무할 당시를 떠올리며 긴장의 연속이던 그 시절의 추억을 떠올렸다.


우리 일행을 안내한 여직원은 행정사무감사의 일정 때문에 다소 늦을 수도 있다는 황 위원의 전갈과 함께 레몬향의 녹차를 내어왔다.

오륙 평 남짓한 사무실에는 교육위원 당선 축하 난이 그대로 놓여있는 것으로 보아 임기를 시작한 지 얼마 되지 않았음을 알 수 있었다.

방안 가득히 금년 6월 지방 선거 때 처음 당선된 초선의원으로서의 뜨거운 열정이 느껴졌다.

본청실무진과의 대화에 앞서 우리끼리 간단한 작전회의까지 마쳐갈 무렵 헐레벌떡 황 위원이 달려왔다.

만면에 함박미소를 머금었지만 바쁜 걸음으로 왔던지 내내 가쁜 숨을 몰아쉬었다.

십분 후 회의가 속개되기 때문에 잠시 정회 시간을 이용해서 달려왔다고 한다.

부득이 실무진과의 간담회 일정을 다음 기회로 미루자고 양해를 구하면서도 굳이 사죄의 말을 잊지 않았다.

방금까지 부교육감을 상대로 우리 학교의 체육관 건립에 대하여 거칠게 몰아붙였고, 내일 오후 두 시까지는 가부간의 결정사항을 보고 받기로 했다고 다.

아직도 숨이 차는지 황 위원의 말 중에는 가쁜 소리가 여기저기서 배어있었다.

연신 흐르는 땀방울을 손수건으로 닦아가며 왼손으로는 옆에 앉은 이 교장의 손을 가만히 부여잡는다.

“너무 걱정 안 하셔도 될 것 같습니다!

교장선생님의 땀방울로 이루신 훌륭한 학교를 단지 주민등록표상의 예상 수치만으로 통폐합을 밀어붙이기엔 교육청으로서도 부담이 클 겁니다. 

한마디로 논리가 너무나도 빈약하거든요. 

이토록 빈약한 논리를 바탕으로 모범적으로 잘하고 있는 학교의 문을 닫게 할 계획을 세우고, 또 그 계획 때문에 체육관 건립을 위한 부지의 제공조차도 불허하겠다는 입장을 고수하기가 쉽지는 않을 겁니다”

수려한 외모에서 풍기는 인자한 말투와 정연한 논리, 그리고 상대를 거침없이 밀어붙이는 공격력과 치밀함까지, 가히 압도적인 무게감이 느껴지는 우리의 응원군이다.

우린 정말 엄청난 응원군을 만난 것 같다.


시의회 청사 밖으로 걸어 나오니 더없이 상쾌하고 맑은 가을 날씨가 우리를 반겼다.

이미 퇴근시간도 한참 지난 시간이라 이 교장에게는 곧장 퇴근하시라 하고 우린 오랜만에 지하철을 탔다.

기왕 시내를 나왔으니 소주 한 잔이 생각날 법도 했다. 일행은 지하철에서 내리자마자 공 회장이 잘 안다는 감전동 시장 통의 한 육회 집으로 향했다.

이때 공 회장은 이 교장으로부터 걸려온 전화를 받았다. 

곧장 집으로 가던 중 황 위원으로 부터 급한 연락을 받았는데 아무래도 오늘 중으로 교육청의 실무진들 학교를 방문할 것 같다는 것이다.

그래서 지금 학교 쪽으로 핸들을 돌려서 쏜살같이 달려가는 중인데 우리는 굳이 안 와도 될 것 같다며 소주 한 잔 하시고 천천히 가시라는 인사말까지 잊지 않았다.


그런데 어찌 그럴 수가 있단 말인가! 우린 이미 뜻을 함께하기로 결의한 동지의 처지이거늘.

육회집 바로 목전에서 아쉬운 발걸음을 돌렸, 택시는 어느새 학교에 도착하고 있었다.

연락을 받고 달려온 동문회 박 회장까지 합류하여 느티나무 아래 정자에 앉아서 하염없이 교육청의 실무진이 도착하기만을 기다렸다.

교감까지 나서서 정문 주변에 떨어진 낙엽을 쓸고 있고, 태양은 뉘엿뉘엿 서산으로 넘어가고 있다.

“생각을 해 보니 체육관의 위치로 사슴 농장 쪽도 괜찮을 것 같습니다”

담배 한 대를 다 태운 후 꽁초를 야무지게 구둣발로 밟고는 얌전하게 휴지통에 버리면서 이 교장이 하는 말이다.

채 한 달 전만 하더라도 30억 상당의 체육관을 어느 위치에 세울 것인지를 두고서 이 교장과 우린 실랑이까지 벌였다.

우리는 지역 주민들의 편리성을 주장하며 사슴농장 쪽을 고집했지만, 이 교장은 이럴 경우 관리가 잘 되지 않는 창고의 개념으로 방치될 수 있다며 완곡하게 반대했었다.

현재의 교실과 연결될 수 있도록 기존의 목련관 위치를 선호했다. 그래야만 효율적인 관리도 가능하고, 우리 아이들이 보다 유용하게 사용할 수 있다면서 자신의 주장을 굽히지 않았다.

내일 교육청에서 어떤 답변을 내어놓을지는 알 수 없지만 지금까지의  입장은 대응투자는 고사하고 체육관 건립을 위한 부지의 제공조차도 거절하고 있는 실정이다.

사슴농장 쪽도 괜찮겠다는 이 교장의 체념 섞인 말속엔 현실의 답답함이 반영된 말이었다. 그래서 갑자기 서글퍼지기 시작했다.

어느덧 태양도 완전히 사라졌고 서서히 어둠이 내려앉는다.

현황파학을 위해서 실사를 나온다던 교육청실무진들은 끝끝내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다.

과거 장학사 시절을 떠올리며 오늘은 오지 않을 것 같고, 내일 아침에나 저들끼리 살짝 왔다가 갈 것 같다는 이 교장의 경험담 듣고서 우린 발걸음을 돌려야 했다.


일행을 배웅한 후 이 교장은 늦게까지 밀린 업무를 봐야겠다며 교장실을 향해서 뚜벅뚜벅 걸어간다.

주어진 임기만 마치떠나게 될 공립학교 교장의 신분일진대 저토록 온 마음을  바쳐서 정열적으로 일하는 모습을 우리는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

언젠가 위원장이 했던 이야기가 생각났다.

예전에 근무하던 교장에게 운동장의 나무 한그루를 이전해 달라는 건의를 한 적이 있었다고 했다.

운동장의 라인 안으로 나뭇가지가 삐져나와 경기에 임하는 선수들의 부상위험이 있어 마을축구회 차원에서 건의를 했다는 것이다.

그런데 당시 교장은 손 사레를 치면서 난색을 표하더라는 다.

학교 내에서는 나무 한 그루를 옮기는 것도 일일이 교육청의 허가를 받아야 하기 때문에 함부로 옮길 수가 없다고 하면서 말이다.

당시에 도무지 이해되지 않았지만 교장이 그렇다고 그렇거니 했다는 거다. 

어쩔 수 없이 경기에 임하는 선수들은 나뭇가지에 부딪치지 않기 위하여 신경을 집중하는 불편을 감수할 수밖에 없었다.


그러다 이 교장이 부임해 왔고, 깜짝 놀랄 만한 일들이 거의 일상적으로 벌어졌다. 

전통적으로 우리 학교의 울타리 대용으로 둘러치고 있던 탱자나무를 모조리 뽑아내고 그 자리에 온순한 나무로 교체작업을 하더라는 것이다.

물론 마을축구회가 불편해했던 문제의 그 나무는 진작에 뽑혀나간 후였다.

그리고 모기나 끓었으면 끓었지 아무짝에도 필요 없던 웅덩이를 메워서 정자를 세우는가 하면, 풀밭으로 방치된 테니스장은 과감하게 동물농장으로 변모시켰다.

언젠가 곽 위원장은 이 교장에게 자신의 궁금증을 질의한 적이 있었고, 이 교장의 답변은 명쾌했다.

“전 제가 자원해서 배영에 왔고, 배영에서 저의 교육 이념을 실천하려고 합니다.

그래서 저는 할 일이 너무너무 많습니다.

매사가 마찬가지입니다만 찾아서 일을 하고자 하면 한없이 많은 일을 할 수가 있고, 마냥 시간만 때우자면 아무것도 하지 않을  있습니다.

이것은 의욕의 문제입니다. 지금 하고 있는 일들이 정말로 내가 하고 싶어서 하는 일인가?

아니면 하기 싫은데 억지로 하는 일인가의  차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렇다! 이 교장은 지금 그 자신이 하고 싶은 일을 하고 있는 것이다.

마치 하늘이 자신에게 부여한 사명인 냥 최선을 다해서 그 자신의 일을 하고 있는 것이다.

교육청 장학관으로 영전할 수 있었음에도 그 자신이 부득부득 고집을 부려서 초빙 교장을 자임하지 않았던가.

그래서 몇 년 후면 폐교가 될지도 모를 이 시골학교에서 4년을 더 근무하게 되었다.

이 또한 그 자신의 선택이겠지만 결코 그 선택이 잘못되지 않았음을 지역사회의 노력까지 보태어져 드러난 결과로써 입증을 시켜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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