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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맥도강 Aug 02. 2023

서로 다른 입장의 첫 대면

시골초등학교 이야기 

총동문회 정기총회를 마치자마자 이 교장을 비롯한 우리 일행은 북부교육청을 항의방문했다. 

교육청에서는 날카로운 눈매가 예사롭지 않은 시설지원과장과 인상이 서글서글한 행정지원국장이 우리 일행을 맞이했다.

국장실의 테이블을 사이로 양측이 마주 앉았을 때 유달리 진한 향의 녹차잔들이 가지런히 놓였다.

먼저 국장이 인사말을 시작했고, 주로 이 교장에 대한 장황한 칭찬의 말들을 늘어놓았다.

이 교장은 올 초 교육청 장학관으로 영전할 기회가 있었다고 한다. 그런데 뜻밖에도 배영에서 4년을 더 근무하겠다며 초빙 교장을 자원했을 때, 요즘 세상에도 저런 훌륭한 선생님이 계시는구나 생각하며 참 많이 놀랐다고 했다.

그래서 교육청에는 이 교장의 팬들이 많이 있, 이 교장의 요청이라면 웬만하면 다 들어주는 실정이라고 했다.

어쩌면 오늘의 대화가 원만하게 이루어질 것 같은 기분 좋은 예감이 꿈틀거린.


이 교장의 바로 옆자리에 앉아서 국장의 자질구레한 이야기까지 메모하던 시설지원과장에게 물었다.

“배영의 수용 계획이 언제로 잡혀있지?”

드디어 본격적인 이야기를 해보자는  오늘 이야기의 핵심을 끄집어냈다.

과장은 준비한 자료에 연필로 밑줄까지 쳐가면서 조심스럽게 말했다.

맞은편에서 언뜻 보니 익숙한 글자가 보인다. 8월 23일 자 북부교육청에서 발행한 ‘강서지역 초등학교 학생수용 협의자료’였다.

“예, 2012년으로 예정돼 있습니다!”


본격적인 그들의 논리를 말하려고 했을 때, 방금까지의 장황한 사족의 말들은 단순한 인사말이었음을 직감할 수 있었다.

배영은 향후 학생 수가 줄어들 것이 예상되어 2년  학교 통폐합이 예정돼 있다는 것이 그들이 말하고 싶은 핵심논리였다.

과장은 자료 위에 가지런히 연필을 내려놓은 뒤 다소 긴장된 어조로 우리 일행에게 열변을 토하기 시작했다.

역시 프로 교육행정가답게 서론 본론 결론으로 이어지는 깔끔한 말솜씨가 돋보였다.

“주민등록표를 근거로 조사한 바에 따르면 배영은 매년 학생 수가 감소하여 2013년에는 1, 2학년이 함께 수업하는 복식수업이 예상됩니다.

학년을 합해서 10명이 안될 때 복식수업을 실시하는데 교육청에서 학교 통폐합의 기준으로 삼는 것도 복식수업이 예상될 경우입니다.

복식수업을 하게 되면 필연적으로 수업의 집중도가 떨어질 뿐만 아니라 전문교과수업과 모둠별 수업, 체육수업 등 모든 교과과정이 비정상적으로 운영되기 때문에 양질의 수업 제공이 어렵습니다.

교육의 환경적인 측면에서 보더라도 소규모학교는 늘 통폐합의 가능성이 상존하기 때문에 교육환경의 개선투자가 현실적으로 어렵습니다.

따라서 교육시설의 여건은 갈수록 낙후되고 학생 1인당 교육비가 너무 높아져서 교육재정 운용의 비효율성이 초래되는 실정입니다.

강서구는 인구 증가를 유발하는 개발계획 대신 주로 산업단지 위주로 개발되있습니다.  

이런 사실을 감안할 때 실제에 있었서는 현재의 학생 수용 계획보다도 더욱 심각한 학생수의 감소가 예상됩니다.

이렇게 되면 소규모 학교의 지역주민들은 보다  나은 교육환경을 찾아서 도심지로 떠나는 현상이 심화될 것으로 예상됩니다. 

그래 교육청에서는 불가피하게 강서지역의 소규모 초등학교에 대한 수용계획을 수립하게 되었습니다.

현재 배영을 포함한 3개 초등학교를 대상으로 2012년 실시예정의 통폐합 절차를 진행 중에 있습니다.

통폐합이 예정된 학교에 체육관을 짓는다는 것은 예산의 낭비일 뿐만 아니라 그 자체가 모순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부득이 배영의 학교 부지 안에 체육관 건립을 위한 부지의 제공을 불허하는 것입니다.

이점을 양해해 주시기 바랍니다!”


과장의 발언이 이어지는 동안 과장과 정면으로 마주 앉은 공 회장은 치밀어 오르는 분노를 진정시키려는 뜨거운 녹차를 무슨 냉수라도 되는 냥 연거푸 마셔 됐다.  

공 회장이 반격에 나섰다.

“무슨 말씀이신지 도통 이해가 되지 않습니다.

지역주민들이 힘들게 예산 12억을 따 와서 학교부지에 체육관을 지어주겠다고 하는데, 고맙다는 말은 고사하고 잘되고 있는 학교에 통폐합 얘기가 째서 나오는 겁니까!

학생 수가 줄어들 것이 예상이 된다고요? 잘 모르시는 모양인데, 지금 우리 동네 옆에는 30만 평짜리 물류단지 공사를 하고 있습니다.

내년 하반기쯤이면 입주가 시작되는데요, 수천 명은 몰라도 족히 수백 명은 입주를 할 겁니다.

또 맥도생태공원이라고 들어보셨죠? 주말이면 엄청나게 많은 사람들이 몰려오고요,

내년부터는 본격적으로 맥도강의 개발도 예정돼 있기 때문에 관광지로서도 크게 각광을 받게 될 겁니다.

이래저래 사람들로 북적거리게 되면 분명히 인구도 늘어날 건데 이 판국에 폐교라니요!

무슨 그런 말도 안 되는 뚱딴지같은 소리를 하는 겁니까!”


다시 과장의 반격이 이어졌다.

“좋은 말씀을 해주셨지만 인구가 늘어날 수도 있다는 다분히 추상적인 예상일 뿐입니다.

중요한 건 확정된 도시계획에 따른 자료입니다. 교육행정에 있어서 중요한 정책적인 판단은 세대별 주민등록표와 같은 정확한 데이터를 근거로 합니다.

향후 학생 수의 감소에 대하여 우리 교육청과 다른 의견이 있다면 이를 입증할 수 있는 분명한 자료를 제시해 주십시오!

가령 주거단지 조성계획과 같은 인구 유입에 대한 대책이 도시계획에 의해서 확정된 자료가 필요합니다!”


이때였다. '꽝!' 누군가 손바닥으로 책상을 내리치는 소리가 들렸다. 동문회 박 회장이었다.

기골이 장대하여 작심을 하고서 책상을 내리쳤더라면 테이블 위의 찻잔들은 물론이고 웬만한 테이블 목재라도 박살이 났을 것이다.

다행히 찻잔이 요동치는 정도였지만 미처 비우지 못한 녹차가 여기저기서 흘러넘쳐 탁상 위를 어지럽히고 있었다.

놀란 여직원이 마른걸레를 가져와서 탁상을 닦고 나가는 사이 박 회장이 자리에서 일어나 뚫어지게 과장을 노려봤다.

“그래서 지금 하고 싶은 말이 뭡니까!

쉽게 말하면 2년 후에 폐교될 학교니까 공짜로 지어줘도 안 받겠다는 말씀인데, 하나 물어봅시다!

지금의 우리 학교 땅을 누가 기증했는지 혹시 알고나 계십니까? 일제강점기 때 우리 동네 할배들이 기증한 땅입니다!

본래는 사립학교였는데 부산시로 편입되면서 우리 학교를 교육청에서 강제로 뺐어간 것 아닙니까!

그 점을 참작하면서 내 말을 들어주기 바랍니다!

우리 할배들이 기증한 땅에다가 우리가 12억짜리 체육관을 지어서 주겠다는 것 아닙니까?

그것도 운동장 옆에서 사슴이나 방목하면서 놀리는 땅에다가 우리가 지어서 주겠다는데 도대체 무슨 엿 같은 소리를 하는 겁니까!

평소에는 우리 아이들의 교육시설로 사용하고, 일 년에 몇 차례 되지도 않는 우리 동문회 행사도 좀 하고 그러자는데 무슨 말들이 이래 많습니까!

그리고 자꾸 폐교 폐교 그러시는데, 솔직히 말해서 우리 동문회가 반대하는데 교육청 마음대로 폐교를 할 수가 있습니까!

우리 동문회가 누구 집 바지저고리도 아닌데 멀쩡한 학교가 폐교되도록 우리가 가만히 있을 것 같습니까!”

박 회장의 지금 모습삼국지에 등장하장비가 울분을 참지 못하고 흥분하는 모습연상시키기에 충분했다.

큰 덩치가 흥분하면서 말을 하다 보니 온 사방으로 튕겨져 나간 침의 양만도 만만치 않았다.

마치 성난 코끼리가 포효하듯이 일장연설을 마친 박 회장은 치미는 화를 주체할 수가 없었던지 자리를 박차고 나가버렸다.


이때 오직 한 자세만을 유지한 채 묵묵히 듣고만 있던 이 교장이 드디어 말문을 열었다.

“국장님! 제가 배영에 온 지도 벌써 3년이 지났습니다.

이렇게 훌륭한 학교에서 4년을 더 근무할 수 있도록 배려해 주신 점 고맙게 생각합니다.

제가 처음 배영에 와서 놀란 세 가지가 있었습니다.

하나는, 이 작은 시골학교에서 무려 18년째 기리시마시 관내의 초등학교들과 홈스테이 방식의 교류 행사를 매년 지속하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여름 방학 때는 일본 손님들을 맞이하고, 겨울 방학 때는 우리 학생들이 일본을 방문하는데 우리 동문님들을 위시한 지역사회의 도움이 없었다면 불가능한 일입니다.

둘째는, 부산에서는 타의 추종을 불허할 정도의 수준 높은 풍물패가 20년 가까이 활동하고 있는데 이것 역시도 마을 분들의 도움이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세 번째는, 대부분의 학교운영위원들이 우리 학교 동문출신 학부모들로 구성될 정도로 동문회를 비롯한 마을 주민들의 관심이 특별한 학교라는 사실입니다.

십 년 전부터 이분들의 숙원 사업은 우리 학교에 실내체육관을 지어주는 것이라고 합니다.

그래서 생각해 낸 것이 항공소음지원비를 타내서 체육관을 짓기로 하고 갖은 고생 끝에 최근에야 그 결실을 보게 되었습니다.

국장님! 우리 교육이 지향하는 목표와 가치를 생각해 본다면 이미 그 답은 나와 있다고 생각합니다.

부디 이 선량한 분들의 소망을 꺾지 마시고 학교부지의 사용을 재가해 주시기 바랍니다!”


방금 이 교장은 정중하게 청원하는 형식을 빌리기는 했지만 실상은 훈계에 가까운 질타의 말이었다.

국장은 이 교장과는 몇 해 터울의 학교 선배로서 평소에도 절친한 사이였다.

그래서 그런지 곤혹스럽다는 듯 옆자리에 앉아있는 이 교장의 어깨를 오른손으로 가만히 감싸며 맞은편의 우리를 바라보며 말했다.

“우리 북부청의 입장에서도 관내에 배영과 같은 훌륭한 학교가 있다는 사실에 큰 자부심을 가지고 있습니다.

여기 계시는 교장선생님은 2008년 부산교육청 평가에서 최우수교장으로 선정된 분이십니다.

작년에는 아름다운 학교 경영자상을 수상했는데 전국에서 딱 세분만 받은 상이었습니다.

예, 잘 알고 있습니다! 교장선생님과 동문회를 비롯한 지역 분들이 학교를 위해서 얼마나 애쓰시고 있는지를 말입니다.

그래서 저희 청에서도 이번사태에 대해서는 대단히 안타까운 마음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런데 소규모 학교에 대한 통폐합정책은 교과부차원에서 전국적으로 시행하는 국가정책입니다.

저 개인의 판단으로 어떻게 할 수 있는 상황이 아닌 것이 참으로 안타깝습니다.”


참으로 안타깝습니다’라는 국장의 이 말속에서 북부교육청의 최종적인 입장이 담겨있었다.

마을에서 힘들여 12억이라는 큰 예산을 만들어 왔지만 대응투자는 고사하고 부지제공조차도 할 수 없다는 말이다.

이유는 단 하나! 주민등록표상의 수치를 근거로 분석했을 때 향후 지속적인 학생수의 감소가 예상된다는 것이고, 그래서 2012년에 시행하는 학교 통폐합 대상에 우리 학교가 포함되었다는 이유 때문이다.

문제는 학생 수의 지속적인 감소에 대한 확실한 반격이 필요했다.

그 사이 문을 박차고 나갔던 박 회장이 돌아와 자리에 앉았다.

결례를 해서 미안하다는 말은 했지만 얼굴표정에서는 하나도 미안하지 않다는 표정이다.


이때 운영위원장이 침묵을 깨고 포문을 열었다. 곽 위원장은 평소에도 우리 지역의 도시계획에 관심이 많은 이 분야의 전문가였다.

“자꾸만 지속적인 학생 수 감소를 말씀합니다만, 작년에 우리 학교의 학생 수가 70명이었고 금년에는 74명입니다.

그리고 우리 마을은 강서 천만 평 공영개발 예정지에서도 제외된 몇 안 되는 마을입니다.

달리 말하면 마을이 통째로 사라지는 강제수용정책에서 제외돼 있기 때문에 앞으로도 지속적으로 마을이 유지된다는 뜻입니다.

물론 우리 마을의 다수가 개발제한구역으로 묶여있기 때문에 획기적인 주택정책은 어렵습니다만 공영개발에 따른 불가피한 경우 이축은 가능합니다.

작년과 금년만 하더라도 강서구 전역에서 약 100채 가까이가 우리 마을로 이축을 해왔는데 그만큼 우리 지역의 인기가 높다는 반증입니다.

그러나 아쉽게도 경제적인 문제 때문에 대부분 소규모 공장으로 용도변경이 되어서 유동인구는 늘어도 고정인구는 늘지 않은 것이 사실입니다.

하지 최근에는 주택의 수요도 꾸준히 늘고 있어 차차 고정인구도 늘어날 것으로 전망됩니다.

두 개 학년을 합해서 열명이 안되면 복식수업을 한다고 하셨는데 어떤 일이 있더라도 그런 최악의 사태는 발생하지 않는다고 확실하게 약속드릴 수 있습니다.

팔십 년 전통의 유서 깊은 학교를 단지 학생 수가 줄어들 것이 예상된다고 하여 무조건 없애는 것만이 능사는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훌륭한 교장선생님을 중심으로 우리 지역에서도 각고의 노력을 다하고 있는 만큼 폐교라는 무시무시한 말씀만은 하지 말아 주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기왕에 어렵게 확보된 예산이니만큼 체육관 건립을 위한 부지의 제공에도 동의해 주십시오!”


곽 위원장의 이야기를 끝으로 우리 일행은 자리에서 일어났다.

점심시간이 다가오자 국장실 밖은 식사를 함께하기로 선약이 돼있는 손님들로 북적이고 있었다. 그래서 이심전심으로 오늘의 회합을 마치기로 한 것이다.

이 교장이 복도에서 과장과 악수할 때 의도적으로 손에 힘이 들어갔고 호소하듯이 말했다.

“우리 아이들의 백년대계를 위한 일입니다! 안 된다고만 생각하지 마시고 일말의 가능성이라도 찾아봐주십시오,

믿고서 돌아가겠습니다, 꼭 부탁드립니다!”

학교로 돌아오는 차량 안에서 앞으로 전개될 만만치 않은 일들이 머리를 스치고 지나갔다.

오늘의 교육청 분위기로 봐서는 자칫 안일하게 대응하다가는 체육관을 떠나서 아예 학교 문을 닫을 수도 있겠다는 무시무시한 생각마저 들었다.

무엇이 잘못되었을까? 조용히 농사나 지으면서 살던 시절에는 학생 수가 넘쳐났었다.

그런데 주변 환경이 도농복합지역으로 급변하다 보니 오히려 학생수가 줄어들어서 학교 문을 닫아야 하는 지경으로까지 비화되었다.

도무지 이해할 수 없는 이런 사태에 직면하다 보니 모든 것들이 혼란스럽고 당황스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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