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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맥도강 Jul 29. 2023

느닷없이 날아든 날벼락

시골초등학교 이야기 

매년 시월 둘째 주 일요일은 총동문회 정기총회가 열리는 날이다.

행사장인 목련관 주변은 이제 갓 아홉 시를 넘긴 시각인데도 한 무리의 선후배들로 분주하. 이른 아침부터 행사 준비에 여념이 없는 모습들을 보니 미안한 마음이 앞섰다.

사실은 거의 매일 만나는 선후배들인지라 요란스럽지 않은 가벼운 목례로 인사를 대신하며 일손을 보태기 시작했다.


몇몇의 후배들은 행사장으로 사용할 목련관 옆의 땅바닥에 비닐을 깔고 있었다.

밤새 많은 비가 쏟아졌고, 여전히 땅바닥이 축축하여 정상적인 행사 진행을 걱정하던 차였다.

그런데 축축하던 땅바닥에 하우스용 대형 비닐을 깔고서 그 위에다 테이블을 옮겨 놓으니 그런대로 행사는 가능할 것 같았다.

운동장의 중앙에서는 지금 상태로는 땅바닥이 질어서 도저히 어려울 것 같은데도 몇몇의 선배들이 족구장을 만들겠다고 모여들었다.

막대로 라인을 긋고 그 위에다 횟가루를 뿌린다고 시끌벅적하다.

다행히 햇볕이 구름 사이를 헤쳐 나오려 안간힘을 쓰는 것으로 봐서는 정오쯤에는 족구시합을 할 수도 있을 것 같다.


이때, 양복 주머니 속의 휴대폰에서 벨소리가 울려댄다.

“예, 교장선생님!”

“김 위원님, 혹시 학교에 계십니까?”

“예, 총동문회 행사 때문에 학교에 와있습니다”

“안 바쁘시면 지금 교장실로 와주실 수 있겠습니까?”

왠지 이 교장의 목소리가 평상시와는 다른 무거운 분위기가 감지되었다. 직감적으로 무슨 일이 발생했다는 불길한 생각이 엄습해 왔다.

그것도 본 행사를 시작하려면 아직도 시간을 더 기다려야 하는 일요일 아침 시간에 학교에 는 것도 그렇고.


교장실을 들어서자 짐작했던 대로 이 교장은 잔뜩 침울한 표정으로 안경을 닦고 있었다. 천천히 안경을 다시 쓰면서 자리에 앉을 것을 권한다.

두 눈동자가 검붉은 색으로 충혈돼 있어 평소보다도 얼굴색이 더욱 검은색을 띠고 있다.

“김 위원님, 어젯밤에는 잘 먹지도 못하는 소주 한 병을 저 혼자서 다 비웠습니다. 밤새 울기도 참 많이 울었습니다

"…?"

절망의 독주를 마시며 밤새 흐느낄 수밖에 없었던 사연을 이 교장은 마치 세상이 다 끝나기라도 했다는 듯 깊은 한숨을 쉬어가며 설명하기 시작했다.

실내체육관 신축 문제로 이 교장은 어제 북부교육청을 방문했고, 이 자리에서 충격적인 이야기를 들었다.

체육관 신축을 위한 교육청 차원의 대응 투자가 불가한 것은 물론이고 부지 제공도 할 수가 없다는 그야말로 청천벽력과도 같은 소식이었다.


이미 우리 학교는 내년 상반기에 건평 200평 규모의 실내체육관을 건립하기 위해서 한국공항공사가 75%, 지자체인 강서구청이 25%를 분담하여 12억 원의 김해공항소음피해지역 주민지원사업비를 확보한 상태였다.

이런 상황에서 느닷없이 날아든 날벼락에 현기증이 몰려왔다.  


우리 학교에 체육관을 건립하는 사업은 동문회와 지역 주민들의 오랜 숙원사업이었다.

그것은 지역사회의 구심점으로서 우리 학교가 차지하는 역사적인 상징성 때문이다.

일제 강점기, 우리 지역의 할배들이 십시일반으로 기부한 토지 위에 1927년 배영사설강습소라는 이름으로 학교가 세워졌다.

그때부터 학교는 우리 마을의 구심점으로서 학교와 마을을 따로 구분할 수 없는 하나의 생활공동체로 존재해 왔다. 

1946년 정식으로 국민학교 인가를 받아서 오늘에 이르기까지 마을주민들 대다수가 같은 동문이라는 끈끈한 연대의식으로 살아왔음은 물론이다.

오늘날 강서구를 통틀어서 마을 단위의 체육대회가 그 명맥을 유지하는 유일한 마을이라는 위상도, 따지고 보면 모교를 중심으로 형성된 강력한 응집력 때문이었다.

이렇듯 우리 학교는 단순히 교육시설로서 뿐만 아니라 오랜 세월 마을의 문화 체육시설로서의 중심적인 역할을 수행하면서 우리 주민들의 구심점으로 우뚝 서 있었다.


십 년 전, 우리 모교 출신 선배님 한 분이 교육청의 시설국장으로 재직하고 있었을 때, 지금이 기회다 싶어 동문회 임원들이 체육관 건립을 요청하러 교육청을 방문한 적이 있었다.

당시 그 선배님은 우리 학교보다도 학생 수가 훨씬  많은 학교들도 차례를 기다리고 있는데 자신의 모교라 하여 순서를 가로챌 수는 없다며 젊잖게 이해를 구했다.

그 일이 있은 후, 체육관을 지을 수 있는 현실적인 방법은 항공소음에 따른 주민지원 사업비밖에 없음을 깨닫고 강서구청과 한국공항공사를 상대로 지속적으로 요청하기 시작했다.

여러 차례의 우여곡절이 있었지만 드디어 지난달 사업시행자인 강서구청장의 확고한 의지를 바탕으로 사업은 순항하고 있었다.


보름 전이었다. 바쁜 농사철이라 시간내기가 어려운 추진위원들의 사정을 고려하여 점심시간을 이용하여 번개모임을 가진 적이 있었다.

이 자리에서 자문위원 자격으로 참여한 이 교장은  지역주민들의 노력으로 10억이 넘는 예산이 확보되었기 때문에 교육청에 그 배액인 20억의 예산을 대응 투자할 수 있도록 요청해 두었다고 했다.

교육청의 지금 분위기로 볼 때는 조만간 좋은 소식이 있을 것 같다며 자신만만하게 이 같은 사실을 밝혔다. 

지역사회에서 예산을 투입한다면 교육청에서도 당연히 그 배액의 대응 투자는 가능하다고 확신하면서 이 교장은 제대로 된 규모의 큰 그림을 그리고자 했다.

그래서 30억 이상의 예산을 확보하여 단순한 체육관의 개념이 아닌 1층은 부족한 특수교실을 만들고 2층에 체육관을 올리는 다목적 강당을 구상했다.

이 제안을 토대로 공항공사의 이 차장과 협의하게 되었을 때 주민지원사업으로는 교실의 신축이 불가하기 때문에 신축 교실 위에 체육관을 짓는 것은 곤란하다는 답변을 들었다.

그래서 생각해 낸 해법이 1층을 도서관의 개념으로 신축하고 그 위에다 체육관을 건립하는 형태로 잠정적으로 합의되었다.


오히려 이날의 회합 말미에 이 교장과 추진위원들 간 사소한 의견 차이가 있었던 것은 다목적 강당의 위치문제였다.

이 교장은 학생들이 편리하게 사용하기 위해서는 기존의 학교 교실과 연결될 수 있도록 목련관이 있는 운동장에 지어져야 한다고 주장했다.

반면에 추진위들은 학생들뿐만 아니라 우리 동문들과 지역주민들도 함께 사용하는 시설인 만큼 모두가 편리하게 사용할 수 있는 사슴농장 쪽을 선호했었다.

이 교장의 주장대로 운동장에 다목적 강당이 들어서면 운동장의 크기가 줄어들어 ‘맥도리 체육대회’와 같은 지역의 행사에도 방해가 된다며 물러서지 않고 이 교장과 대립각을 세웠다.


이렇듯 우린 겨우 보름 만 하더라도 체육관의 위치문제로 서로 다투지 않았던가!

그랬는데 지금 이 교장은 체육관 신축의 소관부서인 북부교육청 시설지원과에서 원천적으로 이 사업을 반대한다는 말을 하고 다.

그것도 단순히 대응 투자를 못하겠다는 차원의 반대가 아니라 원천적으로 부지의 제공조차도 못하겠다는 최악의 소식을 전하고 있었다.

창문으로 내다본 운동장에는 제법 많은 동문들이 운집해 있었다. 곧 있으면 총동문회의 정기총회가 시작될 것이고 추진위원장인 공 회장이 체육관 건립에 대한 경과보고를 하게 될 것이다.

그런데 이 일을 어쩐단 말인가? 이 황당한 상황에서 난 지금 어떻게 해야 할지를 몰라하며 멍청한 바보 꼴을 하고 있다.

이미 어깨와 팔다리를 유지하던 작은 힘조차 모두 소진되었고 서서히 맥이 풀리더니 발음마저 어눌해졌다.

“교… 교장선생님, 도… 도대체 이유가 뭐라 합디까! 이유가 있을 것 아닙니까?”

이 교장은 잠시 천장을 응시하더니 어이가 없다는 듯이 말했다.

“우리 학교가 2012년에 통폐합 대상 학교에 올라있기 때문이랍니다.”

그러면서 왼손을 뻗더니 소파 옆 자신의 책상 위에 놓여있던 한부의 서류를 나에게 내밀었다.

8월 23일 자 북부교육청에서 발행한 ‘강서지역 초등학교 학생수용 협의자료’였다.

“통폐합이라면 폐교를 한다는 말입니까?”

“예, 맞습니다! 그런데 김 위원님, 폐교는 함부로 시킬 수가 없습니다, 동문회가 반대하고 지역사회가 반대하면 말처럼 쉽게 되는 일이 아닙니다.”

폐교라는 말에 난 몽둥이로 머리를 한 대 얻어맞은 것처럼 정신이 번쩍하면서 차려졌다. 운동장에서는 곧 행사를 시작한다는 안내 방송이 흘러나오고 있었다.


이럴 때가 아니다 싶어 급히 김 의장과 공 회장에게 연락을 취했다. 이윽고 교장실에서는 긴급 대책회의가 열렸다.

김 의장이 북부교육청에서 발행한 자료를 읽어보더니 직전 강서구의회 의장출신답게 우리 학교의 2012년 폐교 방침을 사전에 몰랐느냐며 따져 묻듯이 이 교장을 몰아세웠다.

“의장님! 8월 23일이었습니다. 대사초등학교 도서관에서 북부교육청에서 주최한 강서지역 초등학교 학생수용 협의 회의가 있었습니다.

그 자리에서 우리 학교를 포함한 3개교가 통폐합 대상이라는 자료가 배부됐습니다.

그런데 의장님! 이건 교육청 수용 담당자들의 생각일 뿐 절대로 가능한 일이 아닙니다.  

역대정권에서도 소규모 학교에 대한 학생수용 정책이 있었지만 성공한 예가 없습니다. 그래서 그다지 신경 쓰지 않았고, 앞으로도 크게 신경 쓸 일이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다만 수용을 추진하는 이 친구들이 수용대상 학교에는 시설 투자를 하지 못하도록 방해할 공산이 큽니다.

지금 우리 학교의 체육관 문제가 난관에 봉착한 것도 바로 이 때문인 것 같습니다”

이 교장은 마치 그 자신이 중죄인이라도 된 냥 극도로 민망하다는 표정으로 말했다.

지만 그의 눈빛만큼은 전쟁터에 나가는 전사의 눈동자처럼 전의에 불타고 있었다. 세상 물정 모르고 학교 통폐합을 거론하는 교육청 공무원들에 대한 가소로움이 진하게 묻어났다.

추진위원장이 오늘 동문들 앞에서 하기로 했던 체육관 건립에 대한 경과보고는 일단 하지 않기로 결정했다.

우선 총동문회 행사를 순조롭게 진행하는 것이 급선무였기에 우리 모두는 서둘러서 행사장으로 향했다.

태양은 아직도 구름 사이를 완전히 빠져나오지 못했지만 힘겹게 얼굴을 반쯤은 내밀었으니 그럭저럭 오후에는 족구 시합은 가능할 것도 같았다.


불현듯 번듯한 실내체육관이 하나 없어 명색이 총동문회 정기총회를 흙바닥에 비닐을 깔고서 진행할 수밖에 없는 현실이 처량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사설강습소 시절로부터 따지면 80년이 넘는 유구한 역사를 지닌 총동문회의 정기총회날이다.

그런데 지금 우린 밤새 비 온 후의 한기까지 느껴지는 썰렁한  날씨 속에서 무작정 노상에 방치돼 있다.

질퍽한 맨땅에 통비닐을 깔고서 그 위에 황량한 테이블 몇 개를 이어서 앉아있는 모양새가 마냥 서글프게만 보인다.

돼지수육이랑 방울토마토를 담은 일회용 접시들이 기수별로 구분된 테이블마다 배당되었다. 하필 이럴 때 바람까지 불어와 테이블 위의 음식들에 모래알이 날아들어 적당히 간이 배었다.  

그 때문인지 젓가락질을 하는 동문이 거의 없다. 도대체 이게 무슨 꼴인가 말인가!


잠시 상상의 나래를 펼쳐보았다.

비좁은 목련관 옆의 춥고 황량한 운동장이 아니라 따뜻한 실내체육관에서 고급 출장뷔페가 차려졌다.

원탁 테이블 위에 마련된 산해진미들을 들면서 오랜만에 만난 동창들과 반갑게 인사를 나누며 자주 연락하자며 명함도 주고받는다.

재학생들이 정성스럽게 준비한 수준 높은 사물놀이 공연을 지켜보면서 모두는 흐뭇한 표정을 짓고 있고, 빵빵 터지는 스피커를 통해서 우렁차게 교가가 울려 퍼진다.

신이 난 동문들은 힘차게 건배를 한다.

"모교의 발전을 위하여!"

"위하여!"


쓴 미소를 지으며 다시 현실로 돌아오니 벌컥 화가 치밀어 오르기 시작했다.


총동문회 정기총회 날


총동문회 정기총회 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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