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월은 지방선거를 치르느라 온 마을이 어수선했다. 뒤늦게 김 의장도 구청장 선거에 뛰어들었는데 각 동별로 한 명씩의 구청장 후보가 나올 정도로 얽히고설킨 한마디로 치열한 선거였다.
한 달여의 지루한 선거기간 동안, 온갖 독설과 비난이 난무하던 지방선거는 만만치 않은 후유증을 남긴 채 모두 끝났다.
결과는 예상 밖의 큰 표 차로 현 구청장이 승리하여 3선 구청장으로서의 영광을 달성했다. 덕분에 우리 마을은 한동안 선거 뒤의 후유증으로 거의 공황상태를 유지해야 했다.
더군다나 올해는 우리 마을의 가장 큰 행사인 맥도리체육대회의 역사가 꺾어지는 백 년을 맞이하는 대단히 특별한 해였다. 50주년 기념 대회를 성황리에 치러내야 했지만 도무지 그럴 기력조차 남아있지 않았다. 부득이 이마저도 내년으로 연기한 채 무기력한 시간만 보내고 있을 때였다.
오랜만에 맥도강의 입구에 섰다. 아직도 후덥지건했지만 9월 중순의 청량한 가을바람이 얼굴을 스치고 지나간다.
사실 맥도강은 오랜 세월, 본류 강인 낙동강과 단절되어 있었다. 섬이던 우리 마을에 도로를 내면서 강줄기가 잘리었던 거다.
그래서 맥도강은 흐르지 못하는 호수가 되어버렸다. 그뿐만이 아니었다. 20여 년 전부터 불기 시작한 난개발의 열풍으로 강변을 따라서 우후죽순 고철야적장들이 들어섰다. 사람들의 무관심으로 그 많던 붕어와 철새들도 사라진 채 그렇게 시름시름 죽어가고 있었다.
그런데 언제부턴가 사람들의 생각이 바뀌기 시작했다. 자연과 사람들은 함께 어울려서 살아가야 할 공동 운명체라는 진리를 깨닫기 시작한 것이다.
사람들은 다시금 강에 생명을 불어넣기 위하여 중지를 모았고,단절되었던 어미강과물길을 회복시켜 주었다.
새로운 물길이 만들어지고 이제 5년의 시간이 흘렀을 때 그새 강물은 몰라보게 깨끗해졌다. 맥도강은 그렇게 서서히 살아나고 있었다.
문득 어린 시절의 아련한 추억들이 뇌리를 스쳐갔다. 여름에는 동무들과 강을 횡단하며 멱을 감았고, 겨울엔 꽁꽁 언 강 위를 앉은뱅이 스케이트를 타면서 신나게 뛰어놀던기억이 되살아났다.
맥도강 입구의 배수펌프장 마당에서는 이 교장을 비롯한 서너 명의 선생님들이 바삐 움직이고 있다. 그 옆에는 뗏목 탐사 동아리에 소속된 부경대 학생들이 이십여 명의 5, 6학년 학생들에게 방수조끼를 입히느라 분주했다. 또 한쪽에선 학부모회 소속의 열 명 남짓한 엄마들이 아이들의 간식거리를 준비하느라 바빴다.
잠시 후학교운영위원회의 초대를 받은 동문 선배들이 하나둘 모여들기 시작한다. 금년 들어서 새롭게 운영위원장을 맡게 된 곽 위원장이 선배들과 반갑게 악수를 하면서 맞이했다.
그러던 사이분주히 아이들을 지도하던 이 교장이 어느새 종종걸음으로 다가와서 반갑게 인사한다. 이 교장이 즐거운 표정으로 우리를 뗏목이 있는 강 입구로 안내했다. 그곳에는 제법 그럴듯하게 만들어진 세 평 남짓한 크기의 뗏목 두 대가 선외기 한 대와 함께 정박해 있었다.
뗏목의 중간에는 힘찬 필력으로 새겨진 파란색과 분홍색의 돛 두 개가 떡하니 버티고 있었다. 각각의 돛에는 학교 마크인 무궁화꽃이 공통적으로 그려져 있었고, 그 아래에 ‘함께 큰 꿈을 펼치자! 미래 배영호’와 ‘함께 큰 꿈을 펼치자! 맥도강 지킴이’가 새겨져 있었다.
우뚝 선 돛의 모습이 얼마나 씩씩하게 보였던지 흡사위풍도 당당한 이순신장군의 수군을 연상케 하는 광경이었다.
이 교장은 만면의 미소를 지으면서 오늘 행사의 의미와 뗏목을 만든 과정을 차근히 설명하기 시작했다.
“뗏목 탐사 프로그램은 우리 아이들이 직접 뗏목을 타고 노를 저으면서 맥도강의 생태계를 조사하게 됩니다.
이렇게 직접 강을 체험해 봄으로써 자연스럽게 자연의 소중함도 배우고, 훗날 아름다운 모습으로 기억될 고향의 추억도 만들어 줍니다.
작년까지는 비용을 주고서뗏목을 임차하여 썼습니다만 뗏목 탐사는 한두 번만 하고 그만둘 프로그램이 아니기 때문에 올해는 아예 직접 제작을 했습니다.
운영위원장님의 도움으로 저렴하게 구입한 팔레트로 뗏목의 바닥을 깔았고, 그 위에다 일일이 나무를 자르고 붙여서 배의 형태를 만든 장본인은 바로 우리 학교의 장 주사님이었고 제가 옆에서 조금 거들었습니다”
이렇듯 멋진 뗏목을 만든 것이 무척이나 자랑스럽다는 듯 이 교장은 연신 싱글벙글한 표정이다.
“우리 아이들이 나무를 만지다가 손을 긁힐 수도 있기 때문에 일일이 직접 니스 칠을 했습니다. 돛을 만드는 과정이 가장 고난도의 기술을 요하는 과정이었는데 어떻습니까? 제법 폼나지 않습니까!”
그러면서 어제 염막통장한테서 빌려왔다는 선외기에 올라타고는 시동을 걸기 위해서 줄을 잡아당겼다. 시동이 잘 안 걸린다며 겸연쩍게 웃으면서 수십 차례나 반복한 뒤에야 겨우 시동이 걸렸다.
“저 조그만 배도 제가 초보라는 걸 아는 모양입니다. 어제 통장님은 단 한번 만에 시동을 걸던데 저 배도 저보고 고생을 좀 해보라고 훈련을 시키는가 봅니다.”
지켜보던 일행은 이 교장의 유머가 마음에 들었던지 여기저기서 큰 소리로 웃고 있다. 곽 위원장은 일행들에게 선외기가 필요한 이유를 설명해 주었다.
아이들이 몇 시간씩 노를 젓다보면 힘들어할 때가 있는데 그때마다 잠깐씩 줄을 연결하여 당겨주기 위해서라고 말했다.
방수 조끼를 입은 늠름한 모습으로 엄마들로부터 간식거리를 지급받은 아이들이 안전요원 대학생들의 지도를 받으며 두 팀으로 줄지어 섰다.
담당 선생님이 본격적으로 행사를 시작하겠다고 말하자 이 교장이 먼저 앞으로 나아가 오늘행사의 취지에 대하여 설명했다.
"우리 학교의 바로 옆을 흐르는 맥도강에서 몸으로 직접 자연환경을 체험함으로써 자연의 소중함을 느낄 수 있도록 탐사단을 조직했습니다.
이번 탐사를 통하여 고향에 대한 자부심과 스스로에 대한 자신감을 가질 수 있기를 바랍니다.”
거듭 안전에 대한 당부를 하는 것으로 이 교장의 인사말이 끝나자 양쪽의 탐사 대장을 맡은 두 명의 대학생들이 차례로 구호를 선창 했다.
그러자 두팀으로 나닌 우리 아이들이 힘차게 구호를 따라서 외쳤다. 두 팀이 서로 선의의 경쟁을 펼치려는 모양이었다.
드디어 출발이다. 이 교장이 선외기를 몰고 맨 선두에서 천천히 인솔하고 있고, 뗏목에 올라탄 아이들이 노를 저으며 그 뒤를 따라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