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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맥도강 Aug 14. 2023

불안 불안한 관계자 연석회의

시골초등학교 이야기 

오후 두 시에 예정된 관계자 연석회의에 참석하기 위하여 공 회장, 고 실장과 함께 학교 도서관을 들어섰다. 

약속된 시간보다 십오 분 전에 도착하였음에도 교육청관계자들은 이미 자리를 차지하고 있었다.

자리를 직사각형으로 배열해 놓고 한쪽은 교육청 팀과 이 교장이, 그 옆은 강서구청 팀이, 또 그 옆은 공항공사와 소음대책위원장이, 그 바로 옆이 우리 체육관건립추진위원들이 자리하는 형태로 배치되었다.


긴 머리와 큰 키가 매력적인 본청 수용팀의 이 주무가 북부교육청 시설지원과 이 계장을 비롯한 일행들을 소개하면서 서로 인사를 나누었다.

그 사이에 나머지 관계자들이 자리에 앉았고, 이 교장이 참석자들을 일일이 소개한 후 그간의 경과를 간략히 소개했다. 

지금까지 합의된 내용은 크게 두 가지였다.

첫째, 공항공사와 강서구청은 항공소음 주민지원사업비 12억 원으로 학교 부지 안에 체육관을 지어주겠다는 것이고, 

둘째, 교육청은 대응투자는 못하지만 체육관 건립을 위한 부지의 사용을 하락하겠다는 것이다.


사업시행자인 강서구청을 대표하여 환경위생과의 이 과장이 먼저 포문을 열었다.

12억 원의 예산으로 학교부지 안에 체육관을 지어줄 테니까 교육청에서는 해당 건물에 대하여 10년 동안 가등기를 설정해 달라고 요구했다.

가히 엄청난 위력의 도시락폭탄이 던져졌지만 아직까지는 이것이 폭탄인지 뭔지도 알지 못하는 실정이었다.

“이유는 간단합니다! 우리가 몰랐으면 모를까 2012년도에 폐교가 예정된 학교라고 하지 않습니까?

12억이라는 큰 예산으로 체육관을 지어주는데 이 정도의 안전장치는 해야 되지 않겠습니까?

잘 아시다시피 주민지원사업의 본래 목적은 항공소음 피해 주민들의 공동이용시설을 지원하는 사업입니다.

학교가 폐교되고 나서 혹시 있을지도 모를 학교시설물의 매각 조치에 대한 최소한의 방어책입니다”

걸걸한 목소리의 이 과장은 왼손으로는 검정색의 두꺼운 뿔테안경을 만지작거리면서 자신의 주장이 당연하다는 듯 확신에 찬 어투로 말했다.

이 과장으로서는 아직은 누가 누구인지를 잘 모르는 처지인지라 딱히 누구를 주시하지는 않았 단지 교육청 관계자들을 향해서 말했다.


이에 뒤질세라 북부교육청의 이 계장이 다소 언짢다는 말투로 응대했다.

“사실 우리 북부교육청에서는 이 자리에 안 와도 되는 입장입니다만 우리 관할 학교일이라 왔습니다.

솔직히 말해서 학교 통폐합이 5년 후에만 예정돼 있다면 한 번쯤 생각을 해보겠습니다.

하지만 바로 내후년인 2012년에 통폐합이 예정된 학교에 그 예산이 어떻게 만들어진 예산이든지 간에 체육관을 짓도록 허용할 수는 없습니다!”

'꽝!'

이번에는 모든 사람들이 확실하게 인식할 수 있는 도시락폭탄이 분명했다.

이 과장이 던진 도시락폭탄을 이 계장이  주워서 다시 우리 쪽으로 던진 꼴이었다.

체육관 건축을 위한 실무사항을 논의하는 관계자 연석회의에서 찬물을 한 바가지나 끼얹어버리는 산통 다 깨는 발언들이 이어지자 다들 어안이 벙벙한 표정이다.


또다시 가슴을 철렁하게 만드는 어처구니없는 사태가 발생했지만,

벌써 몇 차례나 교육청 공무원들로부터 이와 유사한 경험을 당한 적이 있던 우리 쪽 라인은 제법 여유 있게 상황을 대처해 나갔다.

공 회장이 손바닥으로 책상을 살짝 내리치는 척하며 본청담당자인 이 주무를 노려봤다.

“도대체 어떻게 된 겁니까! 본청하고 북부청이 서로 말이 다르잖아요?”

사실 본청을 대표하여 담당자인 이 주무 홀로 이 자리에 나왔다는 것은 구차한 변명을 하지 않더라도 그 속사정을 알만했다.

그날 우리와 고성이 오고 갈 정도로 심하게 다툰 후 교장실을 나서던 김 사무관의 표정으로 봐서는 굳이 말을 안 해도 충분히 짐작할 수 있었다.

물론 이 주무는 오늘 김 사무관이 다른 급한 용무 회의에 빠졌다는 변명을 하기는 했지만 말이다.

혼자 악역을 떠맡게 된 부담감이 컸던지 이 주무는 억지웃음을 으면서도 목소리에선 잔뜩 긴장감이 묻어났다.

“체육관 건립을 위한 부지 사용의 허가 여부는 관할청인 북부교육청에서 알아서 결정하라는 것이 우리 본청의 입장입니다”


이 말에 이 계장이 다시 말을 받았는데 그의 얼굴에선 한눈에도 왕짜증이 묻어있다.

그런데도 피씩 웃으며 제법 여유 있게 말을 이어나갔다.

“강서지역 3개 초등학교에 대한 2012년의 통폐합 계획은 그대로 유지하면서 체육관 건립에 따른 부지 제공을 우리 청 보고 알아서 하라는 것은 차후 문제가 생기면 우리 보고 책임지라는 소리밖에 더 됩니까?”

다급하게 이 주무가 손 사레를 치면서 말한다. 이번에도 억지미소를 지으려고 무진장 애를 쓰고 있다.

“부지 사용에 대한 교육감님의 재가가 계셨기 때문에 북부청에서는 강서구청과 잘 협의를 해서 처리하시면 됩니다.”

어이가 없다는 표정으로 이 계장이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더니 강서구청의 이 과장을 바라보며 자신의 의견을 말하기 시작했다.

“물론 폐교 조치가 이루어지더라도 차후 학생 수가 늘어날 때를 대비해야 하기 때문에 학교시설물을 외부에 매각하지는 않습니다.

오히려 지역사회가 원하는 경우 문화시설 등으로 활용할 수 있도록 적극적으로 지역사회에 임대를 하고 있는 추세입니다.

하지만 통폐합의 절차를 밟고 있는 학교 부지 안에 다른 기관에서 건축물을 건축한 후 기부 채납의 조건으로 가등기를 요구하는 것은 차후 문제의 소지가 있기 때문에 불가합니다.

조건 없는 기부 채납일 경우는 모르되 그 외의 조건이 붙는다면 본 사업은 어려울 것으로 판단됩니다.”


이 계장의 말이 끝나자마자 맞은편의 이 과장은 단호한 어조로 맞장구를 쳤다.

“그렇다면 우리 구청에서는 체육관을 지어드릴 수가 없습니다!

10억 이상의 예산이 투입되는 큰 사업이기 때문에 구의회의 승인을 받아야 합니다.

그런데 최소한의 안전장치도 없다면 의회에서도 승인을 해주지 않습니다.”

이때, 지금까지는 잠자코 지켜만 보던 소음대책위의 백 회장이 정리정돈을 시도했다.

“일단 시작은 하고 그 과정에서 이견이 있는 부분은 몇 차례의 실무협의를 더해서라도 조율을 하도록 합시다!

100% 합의된 상태에서 사업을 시작하는 것은 불가능할 것 같습니다”

백 회장은 공항공사의 이 차장을 바라보며 금년도 추경예산을 설계비로 사용하기 위해서는 언제까지 사업이 확정돼야 하는지를 물었고, 이 차장은 늦어도 11월 중순까지는 사업이 확정돼야 한다고 말했다.


시계를 쳐다보던 이 계장이 다시 말문을 열었다.

좋습니다! 일단은 그렇게 하도록 하고요,  

사실 우리 공무원들은 문서로 일을 하는 사람들인데, 지금까지 체육관에 대한 말만 많았지 서류로 된 문서 한 장이 없었습니다.

정리를 해봅시다! 우선 먼저 강서구청에서 우리한테 공문을 보내주시죠?”

이제야 뭔가 좀 풀려나간다고 생각한 이 과장이 밝은 표정으로  회장과 이 교장을 번갈아서 바라봤다.

“그전에 추진위에서 우리 구청에 체육관을 건립해 달라는 청원서를 넣어주시면 구청에서는 학교부지의 사용에 대한 의향을 묻는 공문을 학교로 보내겠습니다.”

이 교장은 한 치의 머뭇거림도 없이 생기 넘치는 깔끔한 어투로 화답했다.

“좋습니다. 보내주시는 대로 곧장 북부교육청으로 전달하겠습니다!”

회장도 신명 난 표정으로 곧바로 말을 받았다.

오늘 중으로 강서구청에 청원서를 접수를 시킬 테니까 이 과장에게 퇴근하지 말고 기다려달라고 했다.

이 말에 이 과장은 껄껄 웃으면서 내일까지만 접수해 달라고 다.


오늘 회의는 서로 다른 기관들의 입장에서 상대방의 입장을 이해해 보는 대단히 의미 있는 자리였다.

서로 다른 이질적인 기관들이 함께 추진하는 사업인지라 곳곳에 만만치 않은 복병들이 도사리고 있을 것이다.

백 회장의 말대로 이런 연석회의를 앞으로도 몇 차례는 더 가져야 할 것 같았다.

상황이 상황인지라  회장과 함께 서둘러서 사무실로 직행했고, 컴퓨터 파일에 보관돼 있던 청원서를 날짜만 교정한 후 출력했다.

이 과장 일행은 이 교장의 안내로 체육관이 들어설 사슴농 일대를  둘러본 후 방금 구청으로 출발했다고 한다.

머뭇거릴 도 없이 우리는 회장의 애마인 오래된 연식의 봉고차타고서 강서구청으로 향했다.

“내일까지만 주시면 된다고 하는데도, 아무튼 빠르기는 참 빠릅니다!”

청원서를 건네받은 이 과장이 허연 이를 드러내며 시원하게 웃으면서 말했다.

노련한 공무원답게 한 자 한 자를 음미하면서 청원서를 꼼꼼하게 읽어 내려갔다.

          

체육관 건립을 추진하고자 하는 첫 번째의 이유는 뭐니 뭐니 해도 우리 아이들의 교육 여건 개선에 있었,  

그다음이 동문회를 비롯한 지역주민들의 공동이용 시설로서의 사용 목적이다.

그런데 주민지원사업의 사업시행자인 강서구청에 보내는 청원서에는 아이들의 교육여건 개선이 주목적이라고 기재할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주민지원 사업본래 용도가 항공기소음 피해주민들을 위한 공동이용시설의 마련에 있었기 때문이다.

청원서를 다 읽은 이 과장이 서류를 담당직원에게 건네며 내일 아침까지는 배영에 공문이 전달될 수 있도록 준비하라고 지시한다.

“그런데 회장님! 제가 아까도 학교에서 가등기가 돼야 된다고 말했는데 교육청으로서는 쉬운 일이 아닐 겁니다.”

그러면서 준비한 서류 몇 장을 우리에게 보여주었다.

“돌아와서 우리도 찾아봤는데 기관에서 기관으로 무상 기부할 때는 ‘공유재산 및 물품관리법’을 따르도록 돼있습니다.

법 제40조 제1항 2호에 따라 양여한 일반 재산은 건물 수명의 절반 이상에 해당하는 10년 이상을 반드시 그 목적에 사용하도록 특약등기를 해야 됩니다.

서류를 드릴 테니까 가져가서 한번 검토해 보십시오!


지금 이 과장의 얼굴에서제대로 한 건 했다는 회심의 미소가 묻어났다.

바로 이때, 잠시 잊고 있었던 도시락폭탄이 머릿속을 다시 맴돌기 시작했다.

학교에서 던진 가등기라는 물건이 폭탄이 분명하다는 확신에 찬 불길한 직감이 엄습해 왔다.

이 과장은 처음부터 학교부지 안에 체육관을 짓는 것을 못마땅하게 생각한 위인이었다.

딱히 관례가 있는 것도 아니고, 차후 문제가 발생했을 경우 책임문제에 휘말릴 수도 있어 여간 신경 쓰이는 일이 아니었던 모양이다. 

그래서 처음부터 이 사업을 안 했으면 하는 입장이었지만 구청장의 의지가 워낙 강경하여 마지못해서 여기까지 떠밀려 다.

학교에서 연석회의를 할 때도 가등기를 요구했었지만 북부교육청의 이 계장으로부터 보기 좋게 거절만 당하지 않았던가.

그런데 이번에는 법률에 명시된 강행규정이라며 특약등기를 들이밀고 있었다.

법률에서 반드시 시행하도록 돼있으니 안 해주면 이 사업은 안 되는 사업이라고 엄포를 놓으면서 말이다.

“회장님, 한번 생각해 보십시오! 이것은 상식적인 문제입니다.

항공소음 민원인들을 위해서 12억이라는 큰돈을 들여서 주민지원사업비로 체육관을 지어주는 문제입니다.

내후년부터는 학교가 폐교된다고 하지 않습니까?

설사 폐교가 된다고 하더라도 최소한 10년 동안은 우리 주민들이 안정적으로 체육관을 이용할 수 있도록 법률적인 안전장치를 마련해야 되지 않겠습니까?

그런데 이 문제는 사실은 쉽지 않을 겁니다. 모르긴 해도 교육청에서는 안 해주려고 할 겁니다.

폐교가 진행 중인 학교입니다!

앞으로 어떻게 될지도 모르는데 나중 일을 어떻게 알고 특약등기를 해주려고 하겠습니까?

회장님! 그러지 마시고 전에도 말했지만 이제라도 대안 토지를 물색해 보십시오, 그게 맞을 겁니다!”

"꽝! 꽝! 꽝!"

이것은 틀림없는 도시락폭탄이었다.

이 위인이 또다시 도시락폭탄을 만지작거리면서 선량한 시민들을 위협하고 있었다.

공 회장과 난 거의 동시에 맥이 풀려버렸고 한숨소리를 그것도 길게 내어뱉았다. 

우리가 굳이 학교부지 안체육관을 짓겠다고 하는 것은 우리 아이들의 교육 여건 개선이 그 첫 번째의 목적이다.

그래서 체육관이 들어설 부지는 학교라는 범위를 벗어날 수는 는 문제였다.

이런 입장을 고수하면서도 대안토지를 모색한다면 학교부지와 직접적으로 접해있는 경계토지에 대해서는 고려해 볼 수도 있겠다. 

하지만 주민지원사업비 12억 원으로는 단 한 푼도 토지 구입비로 사용할 수 없도록 법령에 못을 박아 놓은 터였다.

누군가 200평 규모의 체육관을 지을 수 있는 350평가량의 토지를 기부해 준다면 모를까, 그렇지 않고서는 가능한 일이 아니었다. 

말이 쉬워서 대안토지와 기부를 말한다지만 그것이 어디 쉬운 일이던가!


자료를 꼼꼼히 읽어본 공 회장이 자료를 주섬주섬 서류 봉투에 집어넣었다.

입이 쓰다는 듯 탁자 위의 작은 상자 안에서 사탕 하나를 꺼내 물고는 그만 일어나자고 한다.

“법에 명시돼 있다면 그렇게 해야 되지 않겠습니까?

이 법률이 강서구청만 적용되고 부산교육청은 적용을 안 해도 되는 법률도 아닐 테고

법에서 그렇게 하도록 있다는데 설마 하니 교육청에서 딴소리야 하겠습니까?”


돌아오는 차량 안에서 우린 깊은 생각에 사로잡혔다. 하나를 해결하면 또 하나가 터지는 악순환의 연속이다.

오늘 관계자 연석회의에서 조건 없는 기부 채납이 아니라면 고려의 대상이 될 수 없다는 북부교육청 이 계장의 말이 떠올랐다.

가등기와 특약 등기가 대체 뭐가 다르겠는가!

어쩌면 ‘특약등기’란 놈 때문에 또다시 발목걸이를 당할 것 같은 기분 나쁜 예감이 려왔다. 

아니 의심의 여지없이 틀림없이 그럴 것만 같아서 숨이 턱턱 막혀왔다.


애당초 두 기관의 실무진들은 이 사업을 안 했으면 하는 속내를 가지고 있었고, 안 할 수 있는 핑곗거리를 찾고 있던 중이다. 

이것은 마치 '사업의 무산'이라는 공동의 목적을 가진 두 열차가 서로  마주 보면서 달리는 충돌하기 일보직전의 상황이었다. 

강서구청의 실무책임자가 내던진 물건은 엄청난 위력의 도시락폭탄이 분명했고, 우린 이제 그 폭탄의 위력을 실감하기 시작했다.

답답하여 차창을 열었더니 늦가을 바람이 제법 차갑게 불어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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