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맥도강 Aug 16. 2023

우리 마을의 최대 금지어

시골초등학교 이야기 

도시락폭탄을 요리조리 돌리면서 핑퐁놀이를 즐기겠다는 두 기관 실무진들의 의도는 이미 간파되었다.


사업을 무산시키려는 그들에 맞서려면 우린 폭탄 속의 뇌관을 제거하여 그냥 빈 깡통도시락으로 만들어야 했다.   

고심을 거듭하던 공 회장이 그 어려운 일을 감당해 낼 만한 딱 한 사람으로 우리의 든든한 응원군을 떠올렸다.

마침 황 위원은 오늘 마지막 일정으로 북구 관내의 한 초등학교를 방문할 예정이라 다. 


저녁 무렵 약속시간이 되어가자 연락받은 추진위원들이 속속 교장실로 모여들었다.

거구의 박 회장을 비롯하여 십여 명이 자리를 채우니 예닐곱 평 규모의 교장실이 비좁을 정도로 북적된다.

다소 비좁다는 느낌이 들었던지 이 교장은 벽면의 넓은 교탁용 테이블을 가리키며 겸연쩍은 표정으로 말했다.

교탁에는 아이들이 만든 것으로 보이는 각종 공작물들이 한가득 쌓여있었다.

“원래는 이렇게 좁은 교장실이 아닙니다만 우리 학교는 사실 교실이 많이 부족한 실정입니다.

그렇다 보니 어쩔 수 없이 교장실을 공작 수업실로 내어주고 있습니다.

다소 불편하시더라도 이해해 주십시오!”


이때 기다리던 반가운 손님이 만면에 환한 미소를 보이면서 들어왔다.

“좀 늦었죠! 죄송합니다. 생각보다 늦게 마치는 바람에… 많이들 오셨네요!”

이 교장은 비워두었던 자신의 바로 옆자리로 황 위원을 안내했다.

먼저 그간의 경과에 대한 회장의 간략한 브리핑이 있었다.

아무래도 구청에서 요구하는 ‘특약등기’가 복병이 될 것 같다며 교육청차원의 사전정지작업이 할 것 같다는 의견을 덧붙였다.


사실 공 회장과 난 강서구청의 이 과장으로부터 두 기관 실무진들의 속내를 비교적 소상하게 전해 들은 입장이었다.

설사 이 과장의 실토가 없었더라도 학교통폐합 정책을 추진하는 그들의 입장에서 생각해 보면 단번에 나오는 답이었다.

부지 사용에 대한 교육감의 허락이 떨어졌다고는 하지만 그것은 어디까지나 황 위원의 끈질긴 추궁에 못 이긴 교육감의 정치적인 결단이었을 뿐 실무진들의 생각은 아니었다.

그렇다면 그들은 끊임없이 사업을 무산시키려는 핑곗거리를 찾으려고 할 것이고, 구청이 요구하는 ‘특약등기’가 그 좋은 구실이 될 수 있었다.

그래서 이 같은 사실을 사전에 황 위원에게 알려으로써 그들의 핑곗거리를 원천적으로 제거할 필요가 있었던 거다.


특유의 서글서글한 미소를 보이며 황 위원이 자신의 의견을 말하기 시작했다.

“교육청의 담당자들이 법조문을 분석하고 연구해서 처리할 겁니다.

특약등기가 법률적인 사항이라면 이것 때문에 문제가 되지는 않을 것 같습니다.

왜냐하면 반대를 하더라도 분명한 명분이 필요한데 법률에서 강제하는 조건까지 부정하면서 반대할 수는 없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면서 뭔가 결심섰다는 표정으로 휴대폰을 꺼내 어딘가로 연락을 취했다.

북부교육장이었다.

실내체육관을 교육청으로 기부 채납하는 조건으로 강서구청에서 요구하는 특약등기는 법률에 명시된 강행규정이므로 이것을 문제 삼지는 말아 달라고 요구했다.

통화를 마친 후 또다시 화사하게 웃으며 황 위원이 말했다.

“너무 걱정 안 하셔도 될 것 같은데요!

그래도 혹시 모르니까 추진위에서도 교육청에 수시로 전화해서 진척 사항을 확인해 보시기 바랍니다,

저도 이 문제를 계속적으로 체크해 볼 테니까요”

바로 이때였다! 

불현듯 서로 상충되는 두 가지의 이미지가 머릿속을 스치고 지나갔다.

시청 일은 시의원이, 구청 일은 구의원이, 교육청 일은 교육위원이 가장 잘할 수 있다는 불후의 명언과 함께, 

전혀 때 묻지 않은 순수한 초선의원으로서의 순박한 이미지가 교차되었다.


어쨌든 오늘 공 회장은 황 위원이라는 든든한 지원군을 만나서 모처럼만에 기분이 좋았던 모양이다.

저녁 식사를 한 턱 내겠다고 자청하여 모두는 인근의 장어구이 식당으로 자리를 옮겼고, 오랜만에 반주도 곁들이면서 허심탄회한 대화를 나누었다.

곽 위원장이 맞은편의 황 위원에게 소주잔을 권하며 평소의 궁금한 생각들을 풀어냈다.

“교육위원님께서는 일전에 학교 통폐합에 대한 도시와 농촌 간의 정책 차이를 따져보겠다 하셨는데 어떻게 답변을 들어보셨습니까?”

받은 소주잔을 반쯤 비운 황 위원이 잔을 내려놓으며 질문에 답했다.

“예, 도시학교는 다들 아시는 바와 같이 300명이 통폐합의 기준입니다,

제가 보고 받기로 농어촌학교의 통폐합 기준은 60명 미만이라고 합니다.”

평소 궁금한 것이 있으면 참지를 못하는 성격인 곽 위원장이 이참에 아주 끝장을 보려는지 집요하게 물고 늘어진다.

“우리가 듣기로는 학교 통폐합의 기준을 복식수업으로 알고 있습니다.

복식수업은 두 학년을 합해서 열명 미만일 경우에 시행하고요.

그렇다면 한 학년에 여섯 명 이상만 유지하면 학교는 지킬 수 있는 것 아닙니까?”

고기 한 점을 천천히 씹어가며 생각에 빠져있던 황 위원이 소주잔을 마저 비운 후 곽 위원장에게 다시 잔을 권했다.

그러면서 싱긋이 웃었다.

“우리 운영위원장님! 질문이 대단히 예리하십니다만 제가 알기로는 꼭 그런 것만은 아닙니다,

지금 현재는 복식수업을 하지 않더라도 몇 년 후에라도 복식수업을 피할  없다고 판단되면 통폐합 계획을 수립할 수 있을 겁니다.

잘 알고 계시겠지만 배영도 바로 이 문제 때문에 교육청의 통폐합 계획에 포함돼 있지 않습니까?

물론 여기 계시는 분들 때문에 실현되기는 어렵겠지만 말입니다.

그래도 혹시 모르니까 배영도 안전하게 학교를 보전하기 위해서는 해마다 입학생 수를 열 명 정도는 유지해 주시는 노력을 하셔야 될 것 같습니다.

물론 최악의 사태는 복식수업이니까 이것만큼은 절대적으로 막으셔야 고요!”

이제야 곽 위원장은 그동안의 궁금증들이 모두 해소되었다는 듯 가득 채운 술잔으로 황 위원과 다시 한번 원샷을 했다.


이후에도 황 위원은 자리를 함께한 이들과 많은 대화를 나누었는데 특히 이 교장에 대한 이야기를 많이 했다.

실내체육관 문제로 배영에 대해서 관심을 가지면 가질수록 이 교장의 투혼에 많은 감동을 받는다고 했다.

“교장선생님께서는 특화된 교육프로그램을 연구개발하시면서 계속해서 일을 벌이신다는 말을 참 많이 들었습니다.

그리고 교육청과 구청을 막론하고 활용가능한 모든 인맥을 총동원하여 기어이 예산을 따낸다는 겁니다.

프로그램의 성공적인 정착과 확산위하여 마치 왼손이 하는 일을 오른손이 알아야 한다는 식으로 성공 사례들을 끊임없이 발표하신다는 겁니다.

이것은 앞으로 우리 교육계가 나아가야 할 방향을 역동적으로 제시하는 모범 사례로 평가됩니다.

마치 뛰어난 열정과 능력을 지니신 한 분의 교장선생님이 소리 없이 거대한 배 한 척을 끌고 가는 모습과 같습니다.

이런 사실만큼은 우리 부산 교육계 모두가 인정하는 사실입니다.”


좀 드시면서 말씀을 하시라는 박 회장의 성화에 못 이겨서 황 위원은 잠시 하던 말을 멈추고 고기 한 점을 들었다.

그러면서 찬찬히 주변을 둘러보더니 잔이 비워있는 몇몇 이들에게 일일이 잔을 채워주면서 말했다.

“자칫하면 이번 체육관 문제로 우리 교장선생님께서 상당한 곤란을 겪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것은 학교 통폐합에 대한 부산교육의지가 워낙 확고하기 때문입니다.

혹여라도 교육청의 정책에 반대하는 인사로 낙인이라도 찍힌다면 교장선생님의 신상에도 도움이 되지 않기 때문에 걱정이 되는 게 사실입니다.

그래서 ‘좀 살살하십시오!’라고 주문드리는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 교장선생님은 그 자신의 신상에 불이익이 있을 수도 있다는 사실을 잘 아시면서도 중단 없이 밀어붙인단 말입니다.

바로 이런 것이 살신성인의 자세가 아닌생각합니다.

그런데 교장선생님! 이제부터는 제발 좀 살살하십시오! 정말 걱정이 되어서 드리는 말씀입니다!”


황 위원의 간곡한 당부의 말은 이내 주변의 분위기를 숙연하게 만들어버렸다.

이때 곽 위원장이 건배를 제의하면서 분위기 전환을 시도했다.

“교장선생님! 아무 걱정 마십시오! 교장선생님은 우리가 책임집니다.

 모두 잔을 들어주십시오! 제가 선창 하겠습니다,

살신성인의 자세로 오직 정도만을 걸어가시는 우리의 영원한 교장선생님을 위하여!”

큰 소리로 다 함께 따라 했다.

“교장선생님을 위하여!”

이 교장이 감격에 겨운 듯 천장을 향해서 한참이나 시선을 고정시키더니 반쯤 남은 술잔을 마저 비운 후 자리에서 일어났다.

사실 저는, 저 자신을 살신성인의 자세로 살아가는 그런 훌륭한 사람이라고 생각해 본 적이 없습니다,

그리고 저는 오직 정도만을 걸어가는 정의의 사도와도 아주아주 거리가 먼 사람입니다.

하지만 정도를 위해서 살아가는 것이 옳은 일임을 생각하는 사람이고, 또 그렇게 우리 아이들에게 가르치고 있습니다.

제가 교육자의 신분으로 살아오면서 참으로 긴 시간 동안 많은 학교에서 근무해 봤습니다만 일찍이 우리 배영 같은 학교는 없었습니다.

여기 모이신 분들 중에서 황 위원님과 저를 제외하고는 모두가 배영 출신입니다.

학교 운영위원님들 전원이 우리 학교 동문분들이시고, 또 총동문회는 많은 관심으로 학교에 대한 각종 지원을 아끼지 않습니다.

이것은 지역분들 대부분이 우리 배영 동문들로 구성되어 있기 때문에 가능한 일입니다.

지역과 학교가 하나의 같은 생활문화권을 형성하면서 공고한 연대의식을 발휘할 수 있다는 사실은 우리 학교의 큰 행운이라고 생각됩니다.

제가 할 일은 우리 배영같이 훌륭한 학교를 잘 지키고 발전시켜서 훗날 우리 학생들이 자신들의 모교가 배영이었음을 자랑스럽게 여기도록 는 소박한 꿈이 있을 뿐입니다”


이때, 박수소리가 터졌다.

동문회 박 회장의 박수소리였고 모두들 벅찬 감동의 마음으로 우렁찬 박수를 보냈다. 

박 회장이 자리에서 일어나 특유의 익살스러운 표정을 짓게 되자 영락없는 장비의 모습이었다.

“교장 선생님! 너무 걱정 마십시오!

우리 학교 학생 수 절대로 안 줄어듭니다.

교육청의 추정치 자료순전히 엉터리입니다.

백 번을 양보해도 60명 밑으로는 절대로 안 떨어집니다.

두고 보십시오! 그 밑으로 떨어지면 내 손에 장을 지집니다!"

그러면서 장을 지지는 흉내를 내자 장내는 일시에 폭소의 도가니가 되어버렸다.

장비장군의 연설은 이제 절정으로 치달았다.

"우리 동문들과 학부모들 그리고 선생님들까지 모두 나서서 우리 학교를 지키려고 이렇게까지 발버둥을 치고 있는데 주민등록표상의 데이터가 그렇게 나오기 때문에 폐교를 시키겠다고요!

누구 맘대로요! 택도 없습니다!

우리는 우리 모교도 하나 못 지키는 병신축구들 이랍디까?”

박 회장은 부리부리한 눈으로 황 위원을 노려보듯 쏘아보면서 큰 소리로 말했다.

"내 말이 맞다 아입니까!"

이에 황 위원이 부드러운 눈웃음으로 맞장구를 쳐준다.

"맞습니다!"

황 위원의 맞장구에 신이 난  박 회장도 얼굴 가득 함박미소를 보이면서 자리에 앉았다.


이때 지금까지는 일관되게 침묵을 유지하던 고 실장이 자리에서 일어나 고함치듯이 거들기 시작한다.

“말로만 그럴 게 아니라 우리 동문회에서 한 백 명 모아서 쳐들어갑시다!

동문회 회장님! 내가 총대 메고 일 한번 벌려볼까요?”

워낙 고 실장이 정색을 하면서 소리를 질렀기 때문에 황 위원이 깜짝 놀라는 표정으로 손 사레를 치면서 말한다.

“안 그러셔도 됩니다, 이제 일이 잘 풀려가고 있습니다.

학교에 체육관을 지어도 좋다는 교육감의 승인도 있었고, 나머지 일은 실무적인 몇 가지의 일만 남았는데 아마 별 문제가 없을 겁니다!”

황 위원의 정중한 제지의 말에도 불구하고 박 회장이 고 실장을 향해서 오른손을 흔들면서  소리로 말했다.

“요번에는 황 위원님을 믿고서 딱 한 파스만 쉬어주고, 

그래도 안 되겠다 싶으면 다음번에는 고 실장  책임지고 한 삼백 명 동원했뿌라!

그래가 고마 교육청으로 확 쳐들어가서 박살 냈뿌자! 알았제!

그라고 요번 참에 우리 학교 땅도 내놔라고 하자!

본래 저거가 돈 주고 산 땅이 아니잖아, 우리 할배들이 기증한 땅이었다 아이가!”

이렇듯 분위기가 한껏 달아오르자 황 위원이 살짝 난감하다는 표정으로 심기가 불편해 보였다.


어쨌든 이 날의 뜨거운 열기는 2012년으로 예정된 강서지역 3개 초등학교의 통폐합 정책이 만만치 않게 전개될 것임을 암시하기에 충분했다.

배영은 1927년 배영사설강습소로 출발한 이후 지금까지 80년 이상을 마을의 구심점 역할을 수행하고 있었다.

애당초 학교 부지도 우리 마을 주민들의 기부로 조성되었기 때문에 오랜 세월 학교에 대한 주인의식이 확고한 편이다.

구심점! 그것은 단순히 마을의 체육행사나 문화행사를 학교 운동장에서 개최하기 때문만은 아니다.

대부분의 마을주민들이 학교 동문으로 똘똘 뭉쳐있어 학교는 우리 주민들의 정신적인 구심점 역할을 수행하고 있었다.

그래서 폐교라는 말은 차마 입에 올릴 수 없는 우리 마을의 최대 금지어였.

매거진의 이전글 불안 불안한 관계자 연석회의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