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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맥도강 Aug 18. 2023

도시락폭탄 돌리기

시골초등학교 이야기 

청원서를 접수받은 다음날 아침, 강서구청의 담당직원이 직접 학교를 방문했다.

이 교장은 이미 만반의 준비를 하고 있었으므로 구청의 공문을 접수하자마자 북부교육청으로 서류를 전달했다.

북부교육청의 이 계장은 가능하면 일주일 안에는 답신을 주겠다고 하였고, 길고 긴 일주일간의 기다림이 시작됐다.

그런데 일주일이 지난 다음날 오후까지도 아무런 연락이 없자 우린 궁금증을 이기지 못하여 몸살이 날 지경이었다. 

그렇다고 곧장 북부청으로 연락을 보자니 잔뜩 몸이 닳아 있는 우리 내부심리상태를 들킬 까봐 무척 조심스러웠다.

그래서 일단 탐색전 차원에서 강서구청을 먼저 찾았고, 앞장선 공 회장이 애써 태연한 표정으로 환경위생과의 문을 열어젖혔다.

이 자리에서 홍 계장은 우리에게 의미심장한 이야기를 전했다.

“공 회장님! 사실 저희들은 교육청의 답변을 이미 알고 있습니다.

그쪽 실무진들과는 거의 매일같이 통화하고 있습니다.”

“…?

“…?

거의 매일같이 통화하고 있다?'는 이 한마디 속에 모든 답변이 축되어 있었다.

짧은 순간이지만 극도의 긴장감으로 인하여 온몸이 타들어가는 기분이다.

순간, 잠시 잠복되어  도시락폭탄이 떠올랐다.

처음에는 구청의 이 과장이 내던졌지만 이내 북부청의 이 계장이 낚아챈 후 서류상의 요식행위를 갖춘다고 불현듯 잊고 있었다.


사라졌던 도시락폭탄이 꼭 우리 쪽을 향해서 날아들 것만 같은 불길한 예감이 뇌리를 스치고 지나갔다.

우린 바짝 말라버린 입술을 꽉 깨어문채 계장의 입만 쳐다보고 있었다.

“처음부터 지금까지 일관되게 안 된다는 겁니다.

통폐합을 추진하는 학교에는 부지 제공을 못하겠다는 것이 저들의 일관된 주장입니다”

"꽝 꽝!"

역시 도시락폭탄의 최종 종착지는 우리 쪽이었다.

그런데 사실적으로 말하면 우린 이미 저들의 속내를 꿰뚫고 있었던 터라 한편에서는 충분히 짐작된 문제였다.

그래도 혹시나 하는 심정으로 일말의 기대감을 품었던 것은 황 위원의 판단을 믿어보고 싶었기 때문이다.

'교육청의 직원들이 법조문을 분석하고 연구해서 잘 처리할 겁니다'

역시 황 위원은 패기와 의욕은 충만했을지라도 전혀 때 묻지 않은 순수한 초선의원으로서의 순박함이 드러나는 순간이었다.


하지만 우리의 선택지는 다양하지 않았다. 시치미 뚝 떼고 황 위원을 앞장 세워서 돌직구로 밀어붙이는 방안 말고는 다른 수가 없었다.

공 회장이 쓴웃음을 지으면서 무슨 뚱딴지같은 소리냐며  반격을 시도했다.

“뭘 몰라서 그러시는 모양인데, 교육감이 부지 제공을 해주라고 지시를 했다니까요!”

공 회장의 역정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홍 계장의 반응이 없자 공 회장의 얼굴이 벌겋게 달아올랐다.

“이것 보세요! 그럼 교육감이 우릴 데리고 놀았단 말이요?

회장의 얼굴색은 순식간에 짙은 검붉은 색으로 변색돼 버렸고, 더 들을 것도 없다며 그만 일어나자고 했다.

하지만 난 겨우 공 회장을 설득하여 다시 자리에 앉았는데 홍 계장이 말하려고 하는 정확한 결론 부분을 듣고 싶었기 때문이다.

“회장님! 참 어려운 문젭니다. 어쨌든 특약등기가 문제가 될 겁니다”


그렇지! 바로 그놈의 도시락폭탄이 문제였다. 우려했던 문제가 결국은 현실화되고 있었다.

구청에서는 법률적 강행 규정인 특약등기를 전제조건으로 고수하면서 한치도 물러설 기미가 다.

그리고 교육청에서는  그것을 빌미로 이 사업을 무산시키려고 한다.

솔직히 말한다면, 양측의 실무진들 입장에서는 처음부터 정말이지 하기 싫은 사업이었다.

그런데 위에서 자꾸만 하라고 하니까 어쩔 수 없이 하는 시늉만 했을 뿐, 그렇잖아도 하지 않을 수 있는 적당한 핑곗거리를 찾던 중이었다.

이참에 특약등기란 놈이 나타나자 바로 이것이다! 하면서 덜컥 물고 늘어지는 격이었다.

구청의 실무진들은 상대가 거부할 선물인  뻔히 알면서도 천연덕스럽게 그 선물을 전달하고,

교육청의 실무진들은 내용물을 잘 알면서도 능청스럽게도 선물이 당도하기를 기다린다.

어차피 그들의 입장에서 사업의 무산이라는 공동의 목표를 수행하는 요식행위에 불과했다.

이 과정에서 우리 학교에 대한 배려의 마음 따위는 애초부터 당연히 없었고, 

도시락폭탄을 요리조리 돌리는 두 기관 공무원들의 핑퐁놀이에 우린 거저 농락당하는 꼴이었다.


교육청으로 공문을 접수시킨 지 정확하게 열흘이 지났다.

오후의 시간을 택하여 공 회장과 함께 교장실을 방문했다.

구청의 실무진으로부터 들은 바가 있어 돌아가는 사태를 얼추 파악하고 있었지만 이 교장에게는 차마 이런 사실을 할 수가 없었다.

우여곡절은 있었지만 이제야 체육관을 지을 수 있게 되었다며 어린아이처럼 들떠있는 이 교장이 아니던가!

그의 책상 위에는 체육관의 배치도와 평면도가 그려진 여러 장의 Α4 용지가 놓여 있었다.

녹산중학교의 체육관시설에다가 추가할 항목과 그 구체적인 예산 내역까지 기록된 용지도 있었다.

모습을 본 공 회장이 더는 참을 수 없다는 표정으로 북부교육청의 이 계장에게 직접 전화했다.

“일주일 만에 답신을 준다기에 목이 빠져라 기다리고 있는데도 하도 소식이 없었서 전화했습니다.

좋은 소식이 좀 없습니까?”

“그렇잖아도 내일쯤 회신을 하려던 참이었습니다. 방금 본청에서 공문이 도착했거든요.”

순간 공 회장은 짐짓 여유로운 표정을 유지하려고 무진 쓰고 있었지만 생각만큼 잘되지는 않았다.

“설마 짓지 말라 소리는 아니겠지요! 그래 뭐라 합디까?”

이렇게 공 회장은 능청을 떨고 있었지만 그의 목소리에서는 잔뜩 긴장감이 묻어났다.

“제가 공문을 읽어드리겠습니다.     

1. 귀교에서 검토 요청한 맥도문화체육회관 건립에 관하여 우리 교육지원청에서 검토한 바,

부산교육청의 적정규모 학교육성 세부추진계획에 의하면 배영초등학교는 학생의 지속적 감소가 예상되는 강서지역 소규모 학교 대상에 포함되어 있어 대응투자는 어려운 실정입니다.

2. 아울러 위 체육회관 건립에 필요한 부지제공 등도 향후 배영초등학교의 적정규모 학교육성 추진에 지장이 있을 것으로 판단되어 수용이 불가함을 알려드립니다.

이렇게 공문이 왔습니다.”

“그럼 안 된다는 겁니까? 대응투자도 안 되고, 부지 제공도 못하겠다 뭐 이런 말 아닙니까?”

“맞습니다! 본청에서 이렇게 회신이 온 이상 우리 북부청에서도 내일 오전 중으로 강서구청과 배영에 불가입장의 공문을 보내도록 하겠습니다.”


방금 이 답변은 교장에게는 전혀 예상할 수 없었던 청천벽력과도 같은 충격적인 소식이었다.

극도의 허탈감 때문인지 탈진한 사람처럼 멍하니 창밖의 운동장만 바라봤다.

운동장에는 훤칠한 키의 원어민 선생 이얀과 우리 아이들이 신나게 축구를 하고 있었다.

지금 이 순간 우리 셋은 운동장만 응시한 채 아무 말도 할 수가 없었다.

잠시 후 울화가 치밀어서 안 되겠던지 공 회장이 다시 이 계장에게 전화했다. 

“가만히 생각하니까 도저히 참을 수가 없었어 다시 전화했습니다,

도대체 못해주겠다는 진짜 이유가 뭡니까?”

“본청과 지역청이 이 문제로 연석회의를 했습니다.

구청에서 체육관을 지어서 아무 조건 없이 기부 채납하는 조건이면 한 번쯤 검토해 볼 수도 있었습니다,

그런데 특약등기의 조건에서는 도저히 받아들일 수 없다는 결론이 났습니다.”

“그렇지요! 그놈의 특약등기가 문제지요?

그런데 구청에서는 강행 규정이라고 하던데, 그렇다면 그 법이 강서구청에만 적용되고 부산교육청에서는 적용을 안 해도 되는 법입니까?”

“회장님! 그렇게 말씀하시면 곤란합니다,

배영은 2012년에 통폐합이 예정돼 있지 않습니까!

통폐합 정책을 추진하는 걸림돌로 작용할게 뻔한데 우리가 어떻게 받아들이겠습니까? 이해해 주시기 바랍니다!”

“그럼 강서구청에서 특약등기를 전제 조건으로 하지 않겠다면 교육청의 입장 변화가 가능합니까?”

“글쎄요, 논의를 한번 해봐야 되겠습니다만 아무 조건 없이 기부 채납한다면 실무 차원에서는 검토를 해 보겠습니다.”


여전히 운동장에는 백인 영국 청년 이얀과 예닐곱 명의 우리 아이들이 신나게 축구를 하면서 뛰어놀고 있었다.

하루 종일 원어민 선생과 친구처럼 뛰어놀면서 자연스럽게 영어를 접할 수 있는 특혜 받은 아이들이 바로 우리 학생들이다.

우리 학교는 학년당 십 명 내외의 소규모 학교가 맞기 때문에 단순히 경제성으로 따진다면 효율성이 떨어진다고 할 수도 있겠다.

지만 경제성 관점이 아니라 교육 그 자체의 관점으로 접근해 보면 특성화교육에 적합한 가장 이상적인 학교에 해당한다.

1, 2학년 학생들은 누구라도 '꾸러기 방'으로 불리는 학교 돌봄이 교실을 그것도 전액 무료로 이용할 수 있다.

오후 다섯 시까지 전담 선생님이 공부도 봐주고 간식도 챙겨주는 교육 프로그램은 우리 학교처럼 소규모의 학교니까 가능한 프로그램이.

소규모 학교라서 가능한 특성화 교육의 가치를 단순히 비용 대비 수익이라는 경제성의 잣대로만 평가하려는,

이 당혹한 현실 앞에서 이 교장은 하염없이 슬픈 표정으로 창밖만 내다보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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