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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맥도강 Aug 21. 2023

서로가 양보할 수 없는 배수의 진

시골초등학교 이야기 

오늘은 이맘때면 해마다 개최되는 연례행사인 맥도축구회 창립 기념 대회가 열리는 날이다.

이제 갓 아홉 시를 넘긴 시각인데도 벌써부터  운동장에서는 두 팀의 예선전 경기로 열기가 대단하다.

공 회장과 함께 본부석 한 편의 자리에 앉자마자 주변으로 사람들이 몰려들면서 자연스럽게 간담회의 장이 만들어졌다.

이미 교육청의 부지 제공 불가 입장이 알려진 마당이라 모여든 추진위원들은 하나같이 흥분들을 감추지 못했다.

난무하는 여러 말들 중에는 마지막까지 우리 동문들이 꼭 지키고 싶었던 학교 땅을 소송을 해서라도 되찾아오자는 주장도 등장했다.

사연 설명하자면 팔십여 년 전으로 거슬러 가야 했다.

온통 갈대밭이던 무인도에 1800년대 말경이 되어서야 하나 둘 사람들이 이주해 오면서 보리농사가 번성했다.

마을이 만들어지고 미국 사람들은 교회부터 세웠다지만 지혜로운 우리 할배들이 가장 먼저 생각한 것은 학교였다.

1927년 배영사설 강습소라는 이름으로 처음 학교가 설립되었을 때, 당시 뜻을 같이했던 마을유지들이 십시일반으로 많은 토지를 기부하게 된다.

4500평에 이르는 운동장을 포함한 교사동 부지 이외에도 수천 에 이르는 농지와 갈밭도 있었다.

그러나 우리 지역의 고마우신 어른들은 쾌히 많은 재산을 기부했을지라도 결코 학교를 사유화하지는 않았다.

지역의 어른들은 거저 뒤에서 후원만 했을 뿐 학교의 경영은 학교육성회라 불렸던 학부모단체가 도맡아서 처리했.

이런 사정으로 우리 학교와 마을은 서로를 따로 구분할 수 없는 하나의 생활공동체로 인식되면서 오늘에까지 이르게 되었다.


우리가 학교를 다니던 70년대만 하더라도  여러 필지의 학교소유 농지가 있었고, 요즘으로 치면 체험학습을 강요당했다.

고사리 같은 어린 손으로 모내기와 벼베기뿐만 아니라 심지어는 퇴비까지 직접 만들고 수거했다.

학교에서 돌아오자마자 동네 아이들과 함께 길가에서 저녁 늦게까지 풀을 베던 기억이 난다.

다음날 등교할 때는 마을별로 할당된 퇴비를 잔뜩 리어카에 싣고서 상급생들은 앞에서 끌고 하급생들은 뒤에서 밀면서 등교했다. 

지금이라면 북한에서나 있을법한 상상도 할 수 없는 노동착취 행위였겠지만 당시에거저 자연스러운 일상으로 취급되었다.


문제는 78년 우리 마을이 김해군에서 부산시로 편입되면서 발생한다.

먹고 살기에도 바쁘던 시절, 당시 시골 동네의 조그마한 사립초등학교는 재단법인체의 중요성을 알지 못했다.

지금 생각해 보면 참으로 어처구니가 없지만 그 시절 우리 학교는 그야말로 명확한 주인의 개념이 없는 사립학교였다.

관례적으로 학교육성회라는 학부형 단체가 학교를 후원하면서 작으나마 운영을 간섭하는 형태였지만  그것은 어디까지나 임의의 단체였을 뿐이다.


법를의 보호를 받을 수 있사립학교로서의 체계를 갖추지 못하다 보니, 당시 교육청의 입장에서는 갑자기 횡재했다는 표현이 꽤 적절한 표현일 수 있다.

그것도 어마무시하게 많은 토지를 소유한 주인 없는 학교를 그냥 에서 주운 꼴이었다.

주인 없는 학교는 얼랑 뚱땅 공립학교로 전환되었고, 학교육성회가 관리하던 그 많던  땅들이 삽시간에 부산교육청으로 병합되는 황당한 일이 발생했다.

하지만 임의단체에 불과한 학교육성회는 학교소유의 토지를 등기할 수 있는 법정단체가 아니다 보니 할 수 있는 일이라고는 아무것도 없었다.


다만 훗날을 위하여 현재의 동물농장터인 일천오백여 평에 이르는 부속 토지만큼은 우리 동문들이 끝까지 지키고자 했다.

풀밭으로 방치된 황무지를 동문회차원에서 힘겹게 개간하여 마을공용 테니스장으로 관리를 해오던 중이었다.

지만 어떻게 알아내었던지 결국 이마저도 교육청으로 강제 흡수되고 말았는데, 지금 우리는 이 땅을 되찾자고 울분을 토로하고 있었다.


우리 아이들과 지역민들이 함께 사용할 목적의 문화체육관을 짓겠다는 곳이, 

이 교장에 의해서 지금은 동물농장으로 변신한 바로 여기 과거의 테니스장 자리다.

그런데 교육청의 예산으로 지어달라는 것도 아니고 우리가 어렵사리 마련한 예산으로 지어주겠다고 는데도 닥치고 무작정 반대한다.

이유는 간단명료다.

폐교가 예정된 학교에 체육관 건립을 허용하면 그 절차를 순조롭게 진행할 수 없기 때문이란다. 

사실 이 말은 지극히 과학적이고 타당한 말이다. 

학교부지 안에 문화체육관이 만들어지면 학교뿐만 아니라 우리 마을은 지금보다도 활력에 넘쳐날 것이다.

그래서 학생 수가 늘어나고, 그 때문에 학교통폐합 계획을 철회할 수 있다면 그것이 오히려 교육적으로도 훨씬 바람직한 일이지 않은가!

누가 이기는지 한번 해보자는 감정싸움도 아니지 않겠는가.

굳이 온갖 종류의 발목걸이를 자행하면서까지 폐교를 밀어붙이는 것을 과연 온당한 처사라고 말할 수 있는지 반문하지 않을 수 없다.


운동장에각 지역별 축구 경기로  열기가 후끈 달아올랐다.

열 시에 예정된 개회식에 참석하기 위하여 구청장을 비롯한 내외빈들이 하나 둘 자리를 차지할 즈음 주변을 두리번거려 보았지만 이 교장은 보이지 않았다.

평소 같으면 마치 자신이 대회의 주관자라도 되는생기 넘치는 표정으로 본부석의 손님들맞이했을 그였지만 찾을 수가 없었다.

구청장의 축사에 이어서 개회식이 끝나갈 무렵 혹시나 하여 교장실을 찾았다. 

역시 짐작대로 이 교장 홀로 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자신이 무슨 엄청난 죄인이라도 되는  얼굴 잔뜩 침통한 표정으로 풀이 죽어있었다.

“계셨네요, 교장선생님! 구청장님도 오셨던데 안나가 보십니까?”

“처리할 일이 있었어요, 좀 있다가 나가보겠습니다.”

그러면서 손수 커피포트에 물을 끓이고는 커피 한 잔을 타 준다.

지금 우리가 마주하고 있는 참담한 결과대한 제1차적 원인은 학교의 학생수가 줄어들고 있다는 현실인식에서부터 기인한다.

그런데 굳이  책임소재를 따져보두말할 것도 없이 100% 우리 지역사회의 몫이지 선생님들과는 이무런 관련성이 없다.

단 0.1%라도 그들이 책임질 부분 아니.

오히려 이 교장의 부임 이후 최근의 몇 년 동안 우리 학교로서는 개교이래 최고의 전성기를 구가하고 있음다.

실제로 이 교장은 교육계에서 주는 상이라는 상을 다 휩쓸 정도로 자타가 인정해 주는 실력과 능력을 겸비한 교장이다.

그런데 어째서 이런 분이 중죄인처럼 풀이 죽어 있어야 하는지 참으로 난감할 따름이다. 

어쩌면 그 자신으로서도 어찌해 볼 수 없는 이 엄청난 벽 앞에서 절망하고 있을 모르겠다.

지금까지는 그 자신의 노력으로 헤쳐나가지 못할 일이 없었겠지만 그로서도 어찌해 볼 수 없는  거대한계 앞에서 하염없이 고개를 떨구고 있었다.


차 한 잔을 다 마신 후 이 교장과 함께 운동장으로 나왔다.

자신의 고교 2년 후배인 구청장이 반갑게 이 교장을 맞았다.

아이고 우리 선배님! 왜 이리 기운이 없으십니까?

체육관 문제는 제가 발 벗고 나설 테니까 힘내십시오! 다 잘 될 겁니다.

“고맙습니다!”

구청장은 이 교장의 기분을 살려주려는 심산에서 웃으면서 말했지만 이 교장은 좀체 표정이 펴지질 않았다.

앞자리에 앉은 시의원을 가리키며 구청장이 다시 말했다.

“교장선생님! 여기 시의원도 계십니다만 내일부터는 시의회 차원에서도 강력하게 대처하기로 했습니다.

우리 구청에서 학교와 주민들을 위해서 체육관을 지어주겠다는데 무슨 말도 안 되는 이유를 내세우며 거절합니다만 제게도 다 생각이 있으니까 조금만 기다려 주십시오!

잘하고 있는 우리 관내의 학교를 통폐합시키겠다고 나오는데 제가 어디 가만히 있을 수 있겠습니까?


맞은편의 시의원도 거들고 나섰다.

“곧 의회에서 교육감을 불러놓고 5분 발언을 할 기회가 있습니다. 

이때 배영의 체육관 건립 문제에 대해서 제가 강력하게 발언할 예정입니다.

배영은 제가 알기로도 대단히 모범적인 학교로 알고 있습니다,

단지 학생 수가 줄어들 것이 예상되니까 구청에서 지어주겠다는 체육관도 짓지 말라는 것이 대체 말이나 됩니까?

도시학교와 농촌학교의 통폐합 정책은 분명히 달라야 합니다! 이 문제를 중심으로 집중적으로 따져볼 계획입니다!”


구청장이 다시 말을 받았다.

“우리 선배님 뵐 때마다 항상 하는 말 입니다만 우리 선배님은 너무 안 나셨으면 합니다.

정열적으로 일하시는 건 좋은데 본인을 너무 혹사시키면서까지 올인을 하시니까 옆에서 지켜보기가 영 마음이 안 됐습니다."

그러면서 구청장은 주변에 있던 우리를 바라봤다.

"우리 지역 분들께서 이렇게 훌륭한 교장선생님을 잘 도와주셔야 합니다!”

이때였. 별안간 거구의 동문회장벌떡 일어나더니 이 교장을 향해서 박수를 치기 시작했다.

그러자 본부석 주변의 나머지 일행들도 동시에 기립하여 열광적인 박수를 보냈다.

그제야 이 교장의 표정이 환하게 밝아지면서 감사의 말을 시작했다.

, 저는 지금까지 단 한 번도 포기한 적이 없습니다.

우리 학교의 체육관은 반드시 지어집니다!

사실 용기는 제가 드려야 하는 건데 오늘은 염치 불고하고 주시는 용기를 감사하게 받겠습니다.

구청장님과 시의원님 그리고 동문회장님 이하 이렇게 많은 분들이 우리 아이들을 위해서 고군분투하시는데 하늘인들 감동하지 않겠습니까!

잘되리라 생각합니다. 모쪼록 고맙습니다.”

구청장과 시의원까지 나서기로 하자 뜻하지 않게 일이 커지고 있었다.

단순히 배영이라는 일개 학교에 체육관을 짓고 짓고의 문제가 아니라 강서지역의 초등학교를 지키느냐 못 지키느냐의 문제로 비화되고 있었다.

교육청의 시각도 우리와 별반 다르지 않을 것이다.

배영을 무너뜨려야만 소규모학교의 통폐합정책을 차질 없이 밀고 나갈 수 있다는 절박한 인식이  밑바탕에 깔려있었다.

그야말로 배영의 문제는 서로가 양보할 수 없는 배수의 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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