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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맥도강 Aug 25. 2023

작은 불씨마저도 꺼져버린 상황

시골초등학교 이야기 

어제 있었 교육청 방문 결과를 설명하기 위하여 긴급연락망이 가동되었다.

오전 열 시경, 교장실에서 추진위원소집되었고 공 회장의 장황한 보고가 있었다.

추진위의 대안제시에 대하여 참석자들 대부분은 오히려 잘됐다는 의견들이다.

강서구청에서 체육관을 신축하는 관급공사의 방식은 전자입찰을 통해서 건축업자를 선정하게 된다.

이렇게 선정된 업자에게 책임의식이 있을 리 만무하여 한정된 예산으로 우리가 원하는 만큼의 체육관을 지을 수 없을 것이라는 우려가 있던 차였다.

그래서 할 수만 있다면 우리가 직접 짓자는 쪽으로 의견이 모아졌다.

우리 동문 중에서 자격을 갖춘 건축업자를 선정한다면 그 업자는 분명 이윤 추구가 목적이 되지는 않을 것이다.

후배들에게 멋진 체육관을 선물한다는 책임의식으로 건축에 임한다면 한정된 예산으로도 훌륭한 체육관이 탄생할 수 있을 것 같았다.


공 회장은 그렇잖아도 구청의 이 과장으로부터 민간위탁방식을 검토해 보라는 제안을 받았다고 말했다.

관급 공사로 짓게 되면 12억 원의 예산으로는 녹산중학교와 같은 200평 규모의 체육관은 무리라는 것이다.

자기들이 계산해 보니까 130평 정도밖에는 못 짓는다는 결론이 나왔다는 거다.

그 이유는 표준 자재를 사용해야 하고 또 꼭 필요하지 않은 보험에도 가입해야 하는 등 관급 공사의 세세한 규정을 다 지키다 보면 여러 형태의 로스가 발생한다고 했다.

그래서 우리가 민간 위탁의 방식으로 체육관을 짓겠다고 하면 구청에서찬성을 했으면 했지, 반대하는 일은 없을 거라고 자신 있게 말했다.


하지만 이 자리에 참석했던 항공소음대책위의 백 회장은 의외의 발언을 했다.

얼마 전 주민지원사업비 때문에 강서경찰서에 투서가 접수된 사건이 있었다고 했다.

모두 네 군데의 마을에서 주민지원사업비로 마을회관을 신축 중인데 예외 없이 민간위탁방식이라고 했다.

그런데 한 마을에서 마을회관 신축 사업에 부정이 있는 것 같다며 경찰서에 투서를 넣었다고 한다.

이 때문에 경찰에서는 은밀히 내사를 진행했고, 이 과정에서 구청 실무진을 오라 가라, 이것 보여달라, 저것 보여 달라며 귀찮게 하는 바람에 상당한 곤욕을 치렀다는 것이다.

물론 혐의 없음으로 엊그저께 내사 종결된 상태라지만 이 사건의 후유증이 염려된다고 덧붙였다.

지금까지는 관행적으로 이뤄지던 민간위탁방식에 의한 사업들이 전면 관급공사로 전환될 거라는 이야기들이 구청에서 흘러나오고 있다는 것이다.


백 회장의 말이 사실이라면 이 또한 보통일이 아니었다.

추진위가 직접 건축하는 민간위탁방식이 아니라부득이 관급 공사를 해야 된다는 것이고, 

그렇게 된다면 또다시 교육청에 특약등기를 요구해야 되는 원점회귀의 절망적인 상황이었다.

어찌 됐든 일단은 부딪쳐 보기로 했다. 백 회장까지 합류하여 무작정 구청으로 향했다.

정확히 표현하자면 반드시 해내야만 하는 절체절명의 심정으로 구청 청사에 들이닥쳤다.

일단 주무부서인 환경위생과로 바로 가지 않고 작전상 재무과를 먼저 들리기로 했다.

구청이 관리하는 공유물 재산에 대한 주무부서가 바로 재무과다.

따라서 특약등기에 대한 소관부서라 할 수 있고, 체육관 건립에 따른 최종결재가 나기 위해서는 반드시 협의를 거쳐야 하는 부서였다.

우린 계장석 바로 옆의 미니 회의석으로 자리를 안내받았는데 자리에 앉자마자 숨 돌릴 틈도 없이 백 회장이 담당 계장에게 질문했다.

“추진위에서 민간위탁방식으로 체육관을 먼저 짓고, 등기까지 마친 후에 교육청으로 기부 채납한다면 특약등기는 안 해도 될 것 같은데 재무과의 의견은 어떻습니까?”

계장이 담당주무를 불러서 서로 협의를 하더니 주무와 함께 자리에 앉았다.

“소유권이 기관에서 기관으로 넘어갈 때 특약등기가 필요하기 때문에 민간에서 기관으로 넘어간다면 굳이 특약등기가 전제될 필요는 없을 것 같습니다.”

이 말을 들은 백 회장은 이제 됐다는 듯 가볍게 박수를 한번 치더니 다짐을 받기라도 하겠다는 듯이 말한다.

“계장님! 나중에 딴소리하기 없깁니다.

환경위생과 이 과장으로부터 협의가 들어오면 이 주장을 끝까지 고수하셔야 됩니다!”


우린 이제야 뭔가 단단히 꼬였던 실타래가 풀리기 시작한다는 듯 홀가분한 표정이 되었다.

같은 층의 좌편에 위치한 환경위생과를 마치 개선장군이라도 된냥 위풍도 당당하게 밀고 들어갔다.

제일 안쪽에 위치한 과장석 앞의 소파에 앉자마자 두꺼운 검정색 뿔테안경을 만지작거리던 이 과장이 웃으면서 말한다.

“뭐 좋은 일이라도 있으십니까? 기분들이 좋아 보이십니다.”

백 회장이 어서 소파에 앉아보라며 이 과장에게 손짓을 하니 이 과장은 한 직원에게 차심부름을 시킨 후 소파에 앉았다.

“백 회장님이 말씀해 보이소? 무슨 좋은 일이 있으시길에 싱글벙글 들 이십니까?”

백 회장이 씨익 웃으면서 말문을 열었다.

“방금 우리들이 재무과를 들렀다 오는 길인데 말입니다.

이제야 뭐가 좀 되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특약등기말인데요?

민간위탁방식으로 우리가 지어서 등기한 후에 교육청으로 넘겨주면 필요 없는 것 아닙니까? 재무과에서는 그렇다고 말하던데…”

백 회장의 이야기를 짐짓 여유로운 표정으로 듣고 있던 이 과장은 여전히 웃는 얼굴로 우릴 쳐다봤다.

“그건 재무과에서 잘 모르고 하는 소립니다.

그렇더라도 특약등기는 해야 됩니다!

항공소음예산으로 하는 주민지원사업에 대해서는 우리가 더 잘 알지 재무과는 우리만큼 잘 모릅니다.”

그러면서 담당계장인 홍 계장을 부르더니 우리한테 자세하게 설명해 주라고 한다.

홍 계장의 설명은 이랬다.

“민간이 주도하는 민간위탁방식으로 사업을 하더라도 어차피 그 예산은 지자체가 지원하는 예산입니다.

지자체의 예산이 포함된 이상 민간명의로 등기한 후에 타기관으로 소유권을 넘기더라도 마찬가지로 특약등기는 해야 됩니다,

지난번에 우리가 국토해양부에 질의해 본 결과 회신이 그렇게 왔습니다.”

일행은 방금까지의 여유로움과 당당함은 온 데 간 데 사라져 버렸다. 오히려 입술이 바짝바짝 타들어간다.

공 회장이 먼저 탁상 위의 사탕을 꺼내 들고 입에 물자 백 회장과 나도 따라서 사탕을 입에 물었다.


한숨 돌릴 주지 않고 이 과장은 잔인하게도 확인사살까지 했다.

“그런데요! 앞으로는 민간위탁 자체가 안됩니다!

일체의 주민 지원 사업을 우리 구청에서 관급 공사로 진행할 겁니다.

마을회관 하나까지도 구청에서 직접 지어서 민간에 넘겨주는 한이 있더라도 민간위탁사업은 일절 안 할 겁니다.

요 앞전에 주민지원사업의 관련부서인 환경위생과장, 재무과장, 건축과장, 총무과장이 회의를 해서 그렇게 하기로 서로 합의를 봤습니다.

여기 백 회장님께서는 잘 아시겠습니다만 1억짜리 주민지원사업을 하더라도 우리가 언제 주민들하고 밥 한 끼라도 같이 먹은 적이 있습니까?

그런데도 무슨 엄청난 비리라도 있는 것처럼 이것 보자, 저것 보자 하는데 도대체가 성가셔서 다른 일을 못 볼 정도입니다.

한두 번도 아니고 툭하면 투서다 뭐다 해서 사람을 괴롭혀 대니 견딜 수가 있어야지요!

그래서 우리 관련부서 과장들이 그렇게 하기로 합의를 본 겁니다”

이 과장의 결의에 찬 말 한마디 한 마디는 우리에게는 마지막 남은 작은 희망의 불씨마저도 날려버리는 그야말로 잔인한 말이었다.

이때 공 회장이 애원하듯이 나지막하게 말한다.

“과장님! 어떻게 요번만큼만 예외로 좀 해주면 안 될까요?”

이 과장은 우리에게 일말의 미련이라도 주어서는 안 되겠다고 판단했던지 정색을 하면서 단호한 표정으로 다시 말했다.

“제가 강서구청에 근무하는 한은 절대로 안 됩니다! 안 되는 일은 안 되는 일입니다,

설사 민간위탁으로 한다고 하더라도 특약등기문제가 해결이 안 되기 때문에 결국은 안 되는 일입니다.

그러시지 마시고 차라리 마을에서 누가 땅을 기부할만한 사람이 없는지를 알아보시는 게 빠를 겁니다.

땅 문제만 해결되면 구청에서는 언제라도 체육관을 지어드리겠습니다, 이것만큼은 약속드릴 수 있습니다”


이 과장의 방금 이 말은 학교부지 안에 체육관을 짓는 문제는 교육청에서 특약등기를 받아들이지 않는 이상 완전히 물 건너갔다는 것을 전제로 하는 소리다.

그런데 교육청에서는 추진위가 제시한 대안 말고는 그 어떤 것도 고려할 수 없다고 하지 않던가?

그래서 이 과장은 지금 우리더러 차라리 대안 토지를 마련해 보라고 하는 것이다.

그것도 주민지원사업비 12억으로는 단 한 푼도 토지 매입에 사용할 수 없으니 땅을 무상으로 기부할 기증자를 알아보라는 것이다.

설사 그런 방식으로 대안토지가 마련된다고 하더라도 지금까지의 관행이었던 민간위탁에 따른 사업 추진은 일체 고려할 수 없음은 물론이었다.

그 대신 구청에서는 관급 공사 방식인 전자입찰로 선정된 건축업자로 하여금 130평이 될지 200평이 될지 알 수 없는 12억 상당의 체육관을 지어서 주겠다는 것이다.

실무책임자인 이 과장으로부터 이 정도로 까지 답변을 들었다면 더 이상 구청에 죽치고 있을 이유가 없었다.

우린 조금 전까지의 당당하던 패기 대신 초췌한 패장의 몰골이 되어서 아무 말없이 조용히 구청을 빠져나왔다.


차를 타고 내려오면서 작은 희망의 불씨마저도 사라져 버린 최악의 상황처했음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었다.

참담한 심정으로 이후의 일정들을 정리해 보았다.

이렇게 된 이상 이제는 딱 두 가지의 방안뿐이다.

첫째는, 교육감을 직접 만나서 그분에게 하소연이라도 해보는 것, 그래서 그분의 결단을 기대해 보는 것이다.

둘째는, 학교 부지와 접해있는 토지의 소유자 중에서 대승적인 입장에서 350평가량의 토지를 기부할 사람을 찾아보는 방안이다.

우리의 목적은 아이들과 지역민들이 함께 사용할 수 있는 체육관을 짓는 것이기 때문에 부득이 학교를 벗어나더라도 학교의 부속토지와 접해있는 땅이어야 했다.

그런데 솔직히 말해서 이 방안은 현실성이 결여된 대단히 무리한 생각이었다.  


일행들과 함께 사무실로 돌아왔을 때는 서산으로 태양이 완전히 기울어진 시각이었다.

두 사람에게는 차 한 잔씩을 권하며 벽면의 대형 지도를 유심히 살펴봤다.

학교와 접한 토지의 지번들을 형광펜으로 체크한 후 그 토지의 등기부를 일일이 열람하면서 검토해 보았다.

모두 일곱 곳의 후보지 중에서 우리 지역에 거주하는 분이 소유한 토지는 단 한 곳도 없었고, 모두가 부재지주자들의 소유였다.

연건평 200평의 체육관을 짓기 위해서는 건폐율을 고려하더라도 350평 이상의 부지가 필요하다.

우리 동문의 소유라면 최소한 부딪쳐라도 보겠지만 아무런 연고도 없는 외지인에게 시가 2억이 넘는 토지의 기부를 요청하는 것은 말이 안 되는 소리였다.

“두 분 회장님! 여기서 결론을 내야 할 것 같습니다.”

그러면서 체크한 벽면의 지도에 나타난 토지의 등기부 열람서류를 보여주었다.

“이 과장이 검토해 보라는 대안 토지의 기부자를 알아봤는데요,

등기부를 보시면 아시겠지만 어려울 것 같습니다. 모두가 외지 분들이기 때문에 기부가 불가능할 것 같습니다.

그렇다고 모금을 통한 매입의 방법시기적으로 볼 때는 그다지 실현 가능성이 없을 것 같습니다.

벌써 11월 중순을 넘기고 있는데 금년 안에는 도저히 불가능하다고 봐야 합니다.”


구청에서 이 과장의 소름 끼치는 ‘절대로 안 된다’는 말을 여러 차례 들었던 라 우리 모두는 깊은 침묵에 빠져들었다.

잠시뒤 공 회장이 무겁게 입을 열었다.

“안될 일은 입 밖에도 꺼내지 맙시다, 괜히 분란만 생길 수 있으니…”

결심이 섰다는 눈빛으로 공 회장이 다시 말했다.

우짜던지 간에 이제 방법하나뿐입니다.

죽으나 사나 교육감을 만나서 부딪쳐 보는 수밖에는 없습니다!”

달리 다른 안이 있을 리 없었으므로 막지막 남은 하나의 안을 유일한 희망으로 삼기로 하고 우린 자리에서 일어났다.

너무나도 길었던 하루였다. 일어설 기운조차도 없는 천근만근 무거운 다리를 이끌고 각자는 조용히 집으로 돌아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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