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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맥도강 Aug 28. 2023

이 교장의 따끔한 회초리

시골초등학교 이야기 

평소보다도 이른 아침시간이었다. 사무실을 들어서자마자 이 교장으로부터 전화가 걸려왔다.

오늘 북부교육청에서 행정사무감사가 있을 예정인데 위원도 참여할 것 같다지금까지의 경과를 설명하여 주었으면 했다.

이 교장의 권유대로 양쪽 기관이 가지고 있는 현재의 입장들을 A4용지 한 장으로 압축하여  정리했다.

며칠 전 교육감실로 전달해 준 청원서사본과 함께 팩스기에 끼웠다.

그리고 황 위원의 휴대폰으로 연락을 취했다.

이제 갓 아홉 시를 넘긴 시간인데도 휴대폰을 통해서 들려오는 시끄러운 소리는 행정사무감사의 치열한 분위기를 짐작하게 했다.

교육청과 강서구청의 현재 입장을 간단히 브리핑한 후 도움 자료를 팩스로 보낸다는 말과 함께 서둘러서 전화를 끊었다.

브리핑 자료의 결론 부분은 간단명료했다.    

'배영초등학교에 체육관을 건립할 수 있는 유일한 방안은 특약등기를 해주겠다는 부산교육감의 특단의 결단이 없다면 불가능한 실정임.'

     

이날   시를 넘긴 늦은 시간 이 교장으로부터 연락이 왔다.

목소리에서는 주체할 수 없는 감정을 억누르고 있음을 느낄 수 있었다.

오늘 황 위원이 북부교육청 감사 때 우리 학교 체육관문제 하나의 안건으로 무려 네 시간을 물고 늘어졌다는 것이다.

이런 일은 부산교육청 역사상 처음 있는 기적과도 같은 일이라고 했다.

지켜본 북부청의 직원들조차도 너무나도 감동적이어서 가슴이 뭉클하더라는 것이다.

이 교장은 떨리는 목소리로 이미 황 위원은 그가 할 수 있는 모든 일을 다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우리 학교를 도와주기 위해서 열정적으로 애써 준 황 위원에게 추진위 차원의 감사전화를 당부했다,


다음날 아침, 사무실을 방문한 공 회장에게 전날 이 교장으로부터 들었던 이야기를 그대로 설명했다.

공 회장은 곧장 황 위원에게 사의 전화를 했다.

어제 황 위원이 우리 학교의 체육관 건립 안건으로 무려 네 시간을 물고 늘어질 수 있었던 것은 우리와의 약속 때문이었다.

주민들로부터 위임받은 위정자의 책임의식에 대하여 다시 한번 생각하게 만든 놀라운 사건이었다.


향후의 대책을 논의하기 위하여 공 회장과 함께 학교를 찾았다.

행정실장이 우리를 교장실로 안내하면서 이 교장은 지금 수업 중이라 한다.

교장이 무슨 수업을 하느냐며 의아해하자 이 교장은 자청해서 일주일에 두 번 직접 수업을 한다는데 지금은 공작수업 중이라고 했다.

행정실에서 준비해 준 차를 한잔 마신 뒤 이 교장이 수업 중이라는 곳으로 가보았다.

실제로 교실동 뒤편의 연장 창고 앞에서 이 교장이 6학년 아이들과 함께 대나무를 깎아서 활을 만드는 공작 수업을 진행하고 있었다.

우리가 갔을 때는 이 교장이 끌로 모양새를 갖춘 활을 다듬고 있었고, 어떤 아이는 활에 실을 매다느라 열심이었다.

또 어떤 아이는 화살이 멀리 날아가지 못하도록 활과 화살사이를 줄로 묶고 있었고, 완성한 활을 시험 삼아서 쏘아보는 아이도 있었다.


우리 학교에는 예전부터 품질 좋은 대나무밭이 있어 대나무를 이용한 공작수업이 용이했다.

저쪽 한편에선 얼마 전에 새로 부임한 교감이 행정실의 장 주사와 함께 톱으로 대나무룰 자르고 있었다.

이때 한 여자아이가 울면서 이 교장에게 다가와 억울한 사정을 이야기하려고 한다.

어떤 남자아이가 자기를 놀리는데 교장선생님이 혼내달라는 것이다.

이 교장은 즉시 그 남자아이를 불러다 놓고는 친구를 놀리면 안 된다고 타이른 뒤 서로 사이좋게 지내라며 함께 악수하도록 만들었다.

우리가 지켜보는 가운데에서도 이 교장은 끝까지 공작수업에 열중했고, 수업을 마치는 종소리가 나고서야 우리 쪽으로 다가왔다.


이 교장은 답답한 교장실보다는 교정을 거닐며 얘기하자며 우릴 운동장 건너편의 동물농장 쪽으로 안내했다.

공 회장이 가슴속에 담아두었던 답답함을 토해내기 시작했다.

“이젠 정말 어느 한쪽의 책임자가 결단을 내려주지 않으면 안 되는 상황까지 온 것 같습니다.

구청에서 특약등기의 조건을 철회해 주던가? 아니면 교육청에서 특약등기의 조건을 받아들이든가?

그것도 아니면 우리가 포기하든가? 여하튼 양단간에 결정을 내려야 할 것 같습니다!”


묵묵히 듣고만 있던 이 교장은 염소 농장의 염소들에게 먹이로 주려고 쌓아놓은 풀 더미를 던져주었다.

이 교장이 던져주는 풀 더미를 주워 먹는 염소의 모습으로 보아서는 상당 기간 반복된 동작인지 제법 익숙해 보인다.

“이 놈들은 5, 6학년 고학년 아이들의 사랑을 독차지하고 있는데, 특히 남자아이들이 이 수놈 녀석을 대단히 좋아합니다.

실제로도 뿔이 멋있게 생기지 않았습니까? 그래서 이 녀석도 밥값을 톡톡히 하고 있습니다!”


그 옆의 사슴 농장에서는 잘라놓은 사철나무 한 다발을 던져주니 사슴 두 놈이 맛있는 간식거리인 냥 게걸스럽게도 먹어치운다.

“이 놈들이 때가 되면 교미는 참 열심히 하는데 임신을 못합니다.

아무리 생각해 봐도 임신을 못할 이유가 없는데 아마도 비행기 소음 때문에 시끄러워서 임신이 안 되는 것이 아닌가 추정할 뿐입니다.

그래도 저학년 고학년을 막론하고 우리 아이들 모두로부터 사랑을 받고 있고, 또 우리 아이들에게 기쁨을 주고 있으니 저들 몫은 다하고 있는 것이지요,

이놈들도 저들의 밥값은 하고 있는 겁니다!”

많이 먹으라며 사철나무 한 더미를 더 던져주고는 그 옆의 닭 농장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이때 닭들과 함께 지내며 이 교장에게 꼬리를 흔들고 있는 흰둥이 수캐 한 마리 앞에서 멈춰 섰다.

“전에는 족제비들이 우리 닭들을 참 많이도 잡아 죽였습니다.

그런데 흰둥이가 보초를 서고서부터는 족제비 한 마리도 감히 얼씬거리지 못합니다.

그래서 이 놈도 제 역할을 제대로 하고 있습니다!”

십여 마리의 어미 닭들 사이로 귀여운 병아리들이 우르르 몰려다니며 뛰어노는 모습을 보며 이 교장이 흐뭇한 표정을 짓는다.

“다음 달 초에 학부모님들하고 우리 아이들이 함께 김장을 담그는 체험학습이 예정돼 있습니다.

무우와 배추는 우리 아이들과 함께 텃밭에서 직접 재배했습니다,

담근 김장은 지역에 계시는 독거노인 분들에게 나누어 드릴 예정이고요.

아! 그날 씨암탉으로 마리를 잡을 계획입니다. 대접할 테니 그때 두 분도 꼭 참석해 주십시오!”


그 옆의 토끼농장 앞으로 걸어가서는 1, 2학년 저학년 아이들의 사랑을 독차지하고 있다면서 이놈들도 밥값을 다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번에는 동물원 동편의 울타리를 향해서 걸어갔다.

“원래는 여기가 2m가량 안쪽으로 들어가 있었습니다.

그런데 지적도를 보니까 아무래도 현황 하고는 안 맞는 것 같아서 학교 예산으로 측량을 해봤더니 2m 바깥쪽으로 실측이 됐습니다.

그래서 학교 땅을 수십 년간 자신의 땅으로 알고 사용 중이던 이웃집 어른을 찾아뵙고 양해를 구했더니 두말 안 하시고 내어주셨습니다.

비록 수십 년을 자기 땅으로 알고 지냈던 칠십이 넘은 분이었는데도 쾌히 양보를 하시더란 말입니다.

이유는 측량 결과 자기네 땅이 아니라는 것이 밝혀졌고, 그래서 학교로 되돌려 주는 것이 사리에 맞기 때문에 돌려주신 겁니다!”


울타리를 따라서 천장에 구조물을 만들어 놓고 그 위에다 교육용으로 심은 듯한 수세미들이 주렁주렁 달려있었다.

조금 더 지나가니 여러 종류호박들이 누렇게 익어간다.

이 교장의 훈육은 계속되었다.

“지금 우리가 하고 있는 일들이 사리에 맞는 일이라면, 다소 힘들고 어렵더라도 사리에 맞는 그 일을 이루기 위해서 당연히 최선을 다해야 합니다.

그리고 최선을 다한 후에는 진인사대천명의 심정으로 하늘이 내려주시는 결과를 기다려야 되겠죠. 

문제는 우리가 최선을 다했느냐입니다. 

가만히 하늘을 바라보며 정숙한 마음으로 생각을 해 본다면 마음으로부터 우러나오는 해답이 있을 겁니다.

아직도 미진한 것이 있다면 더 노력해야 하지 않겠나 생각합니다.

저의 경우만 하더라도 최선을 다했다는 답을 얻기까지는 아직도 한참 모자란다고 생각합니다.

우리 학교의 체육관 문제는 이제 겨우 반환점을 돌았다고나 할까요?

아직도 가야 할 길이 멀기 때문에 잠시 쉬었다가 다시 달려간다면 나중에는 모두 다 잘 될 거라고 생각합니다!”


이 교장의 훈육은 끝이 났고, 우린 공 회장의 오래된 봉고차에 실려서 사무실로 달려가는 중이다.

이제 겨우 반환점을 돌았을 뿐인데 벌써들 지쳤느냐며 어서들 일어나서 달려가자는 호된 질책이었다.

회초리만 들지 않았을 뿐이지 따끔한 질책이 분명했다.

한 치의 가식도 없는 순백한 삶 속에서 우러나오는 이 교장의  강인한 의지 앞에서 어느새 지쳐가던 우린 한없는 부끄러움을 느껴야 했다.

감히 어느 누구도 흉내 낼 수 없는  투지 앞에서 우린 절로 고개가 숙여졌다.

이제 서서히 오기가 발동하기 시작한다.

분명 이대로는 물러설 수 없었기에 '오냐! 어디 한번 끝까지 가보자'는 오기가 끓어올랐다.

공 회장도 같은 생각이었던지 사무실에 도착하자마자 무작정 교육감실로 전화를 걸었다.

며칠 전 우리가 교육감실을 들렀을 때, 당시 비서실장은 교육감의 면담 일정이 잡히는 대로 연락을 주겠다고 했었다.

공 회장은 비서실장과의 통화에서 이번에도 면담 일정을 잡아주지 않는다면 우리 동문들이 떼를 지어서 교육감실로 쳐들어갈 수도 있다며 거칠게 엄포를 놓았다.

이것이 약발을 받았던지 드디어 열흘 뒤인 12월 초에 면담 일정이 잡혔다.


오늘 이 교장은 우리를 동물농장으로 려가서 동물들도 저마다의 역할을 다하고 있음을 확인시켜 주었다.

그러면서 슬며시 우리에게도 주어진 소임을 다했는지 스스로 자문해 보라는 메시지를 던져주었다.

황 위원도 최선을 다하고 있고, 이 교장도 마찬가지다. 그런데 냉철하게 생각해 보면 그들은 우리와는 처지가 다르다고 봐야 한다. 

황 위원은 자신의 지역구에 있는 하나의 초등학교일 뿐이고, 이 교장은 주어진 임기 동안만 잠시 소임을 맡은 자신의 근무지 학교일 뿐이다.

따라서 그들이 우리만큼 헌신할 하등의 이유는 없다.

앞으로도 학교를 계속적으로 보전할 책임은 우리에게 있는 것이지, 그들의 몫은 아니다.

그런데도 우린 벌써 지쳐있었고, 지친 우리들에게 이 교장은 신들의 몫을 다하고 있는 동물들에게서 배우라며 따끔하게 회초리를 들었다.

이제 겨우 반환점을 돌았을 뿐이거늘 그렇게들 지쳐 있으면 어떡하느냐며 호통을 치고 있었다.

그렇다! 나아가는 길이 올바르다면 아무리 힘들고 고달프더라도 결코 굴복해서는 안 된다.

비록 이 교장은 우리 아이들의 스승이지만 불현듯 우리 동문들의 진짜 스승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오늘 하루는 참으로 뜻깊은 소중한 날로 억될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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