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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맥도강 Sep 11. 2023

2보 전진을 위한 1보 후퇴

시골초등학교 이야기 

다사다난했던 2010년의 마지막 태양도 저만치 저물어 가고,

새로운 한 해의 시작을 알리는 힘찬 태양이 솟아올랐다.

1월 초의 어느 날, 공 회장은 강서구청으로부터 최후의 통첩을 의미하는 일단의 공문을 접수했다.

그렇잖아도 담당자로부터 예산의 조기 집행에 따른 상급기관의 압박이 심하여 이제는 가부간 결론을 내릴 수밖에 없다는 전화를 받은 터였다.

담담한 마음으로 공문을 뜯어보았다.

뒷장에 북부교육청 명의의 부지 제공 불가공문을 첨부한 구청의 공문 내용은 이랬다.   


 『학교 부지에 체육관을 건립하는 문제는 부지의 소유자인 부산시교육감으로부터 해당 부지제공의 불가통보가 온 관계로 사업추진이 어려운 실정이고,

귀 단체에서 제출한 사업의 추진을 위해서는 대체 부지를 확보하여야 하며,

부지 확보사항(토지매입, 무상양여 포함)을 포함한 사업변경계획서를 2011. 1. 20일까지 우리 구 환경위생과로 제출하여 주시기 바라며,

기한 내 미제출 시 동사업에 대하여 추진이 불가한 것으로 간주 처리하겠음을 알려드립니다!』     


이미 예상은 하고 있었지만 막상 최후의 통첩문을 받아보고 나니 착잡한 심정을 가눌 길이 없었다.


공 회장은 1월 중순의 한 날을 택하여 십여 명의 추진위원들과 함께 점심식사 자리를 마련했다.

하필이면 몹시도 추운 날이었고 공 회장의 다소 구구절절한 경과보고가 있었다.

이미 확보된 사업비 12억 원으로 2011년 상반기 중에 시행하고자 했던 체육관 건립은 사실상 무산되었음을 공식적으로 확인했다.

다만 학교 통폐합 문제가 해결되는 대로 이른 시일에 체육관건립을 다시 추진하자는 모양새를 갖추기는 다.

몹시도 피곤한 듯 공 회장의 눈가는 검붉은 색으로 충혈돼 있었다.

마무리 인사를 하는 사이 슬픈 박수소리가 울려 퍼졌고 모두는 고개를 떨구었다.


어느덧 새로운 마음으로 걸어두었던 새 달력의 첫 장을 찢을 날도 며칠 남지 않았다.

오늘은 우리 학교 자랑제19회 한일친선 교류행사가 시작되는 날이다.

겨울방학을 이용하여 3박 4일간의 일정으로 우리 아이들이 일본 가고시마 현 기리시마시로 떠난다.

작년에는 6학년의 숫자가 여섯 명뿐이어서 5, 6학년으 답방 팀을 꾸려 일본을 다녀왔었다.

그런데 올해는 6학년만 십오 명이나 되기 때문에 6학년 학생들로만 답방 팀이 꾸려졌다.


인솔단으로 참여하는 몇 분의 선생님들과 학부모들이 동행하여 모두 이십여 명의 인원이 출발하게 된다.

물론 이번에도 우리 아이들의 여행경비 일체는 교장이 상금으로 받았던 기부금으로 충당할 예정이다.

고속 페리호를 타고 후쿠오카 항으로 떠나는 교류단 일행을 배웅하기 위하여 이른 아침부터 부산항 국제여객터미널에 도착했다.

곽 위원장과 함께 대합실에 들어서자 몹시도 반가운 사람이 가장 먼저 우리를 맞이했다.

한쪽 눈에는 안대를 찬 채 목발을 짚고 기우뚱기우뚱거리며 아이들을 통솔하고 있던 이 교장이 다가와 반갑게 인사한다.


겉으로 보이는 눈과 다리의 상태를 제외하고는 혈색과 표정이 모두 건강해 보였다.

그런데 아직도 시력의 초점이 잘 안 잡혀서 사물이 두 개로 겹쳐 보인다고 했다.

그 때문에 매 시간 안대를 교환하는 방식으로 한쪽 눈을 가려서 초점을 모으는 중이라며 겸연쩍게 웃었다.

몸의 상태로라도 기어이 교류단을 전송하기 위하여 새벽같이 나와 있는 걸 보면 이 교장은 어쩔 수 없는 현장체질이었다.


곽 위원장이 걱정스럽다는 표정으로 이 교장에게 말했다.

“뉴스를 보니까 지금 기리시마시가 난리도 아니던데요! 

검은 연기가 올라오고 화산재가 날리는 게 심상찮은 모양이던데 괜찮겠습니까? 교장선생님!”


옆자리에서 이 말을 듣고 있던 교감이 신속하게 우리 쪽으로 다가왔다.

교감은 이번에 교류단을 이끌고 직접 일본을 방문할 예정이다.

사실은 우리도 그 뉴스를 보자마자 걱정이 돼서 그쪽의 교육청실무 간사인 이사무상에게 연락을 해봤습니다.

그랬더니 이사무상의 말이 가고시마 현과 미야자키 현에 걸쳐 있는 신모에 봉우리에서 어제부터 화산 활동을 시작했다고 합니다.

52년 만에 ‘폭발적인 분화’가 형성되었다고 하는데요,

‘폭발적인 분화’는 분화에 따른 지진과 폭발에 따른 공기 진동이 동반하는 상태로서 일반적인 화산 분화와 본격적인 폭발의 중간 정도에 해당한답니다.

위험해서 피난을 떠나야 하는 그런 상황은 아니고, 

화산재가 섞인 회색 연기가 1,000m 이상 피어오르는 것을 볼 수 있기 때문에 오히려 좋은 구경거리가 될 거라고 했습니다.

그러면서 이사무상은 안심하고 오셔도 된다고 말했습니다.

운영위원장님! 걱정 안 하셔도 될 것 같습니다.”

우린 교감의 설명을 듣고서야 일본으로 향하는 교류단 일행을 편안한 마음으로 전송할 수 있었다.


교류단을 떠나보낸 후 사무실로 돌아왔을 때 공 회장으로부터 연락이 왔다.

방금 이 교장과 점심식사를 하기로 약속을 잡았다면서 미리 붕어찜을 주문해 두라는 연락이었다.

오늘 교장은 북부교육청에서 회의가 예정돼 있어 한시 경에는 출발을 해야 한다는 거다.

약속된 시간에 앞서 우리는 식당 앞에서 이 교장을 기다리고 있었다.


잠시 후 아침에 보았던 익숙한 장면 그대로 저기서부터 이 교장이 묘한 걸음걸이로 걸어오고 있다.

눈에는 안대를 한 채 목발을 짚으며 기우뚱기우뚱 걸어오고 있는 장면이 한없이 안쓰럽게만 보여 마음 한편이 짠해졌다.

이 교장을 알아본 몇 분의 주민들이

‘이만하길 다행입니다!’

‘얼마나 고생이 많으셨습니까?’

하면서 반갑게들 인사말을 하고 있고 식당주인의 안내로 으로 들어갔다.


곽 위원장이 준비된 자리에 이 교장을 부축하여서 앉히려 하자 혼자 하는 게 편하다며 한사코 사양한다.

그러더니 몇 단계의 연속동작을 통해서 자리에 앉았는데 혼자 터득한 무슨 공식이 있는 것 같았다.


공 회장이 먼저 인사말을 했다.

“교장선생님! 몸도 불편하신데도 이렇게 행차해 주셔서 고맙습니다!”

이 교장이 손 사레를 치면서 말한다.

“아이고, 무슨 말씀이십니까!

하나도 불편한 것 없으니까 언제든지 불러주십시오!

남들이 볼 때는 저의 몰골이 이러다 보니까 대단히 불편한 상태로 보실 수도 있겠습니다만

실상은 정상 컨디션에서 딱 3%만 불편합니다.

거의 정상 수준이니까 아무 걱정하지 마십시오!”


공 회장은 여전한 이 교장의 넉살을 확인하고서야

이제는 웬만큼 회복되었다고 판단했던지 다행스럽다는 표정이다.

“식사 자리라도 마련해서 이렇게 뵙자고 청했던 것은 추진위의 활동에 대한 그간의 경과도 보고 드리고,

향후의 문제에 대해서 상의도 드리고 싶어서입니다”

이때 준비된 붕어찜이 나왔다.

센 불로 한 시간가량 푹 고아서 나온 붕어찜이라서 그런지 아직도 모락모락 김이 올라오고 있었다.

하얀 김이 코끝에 닿았을 때 고춧가루 냄새 속에 감추어진 특유의 붕어 냄새가 배어 나왔다.

붕어찜 특유의 차원이 다른 깊은 냄새였다.

이 집은 맥도강에서 잡은 토종 붕어로만 요리를 한다는데

그래서 그런지 진한 맥도강의 냄새가 배어있다.


공 회장이 그 간의 경과에 대해서 설명드리는 자리라고 했지만

이 교장은 뜬금없이 동문서답을 하려고 한다.

“우리 학교가 지금까지 3년째 매년 뗏목 탐사를 해보지만 갈수록 강물이 깨끗해지고 있다는 걸 알 수 있습니다.

뗏목을 타고 가면서 간이 수질 측정과 수서생물들을 관찰해 보면 맥도강이 살아나고 있다는 걸 확실히 알 수 있습니다.

재작년보다는 작년이 좋았고,

올해는 강물이 더 깨끗해졌는데 특히 붕어들의 개체수가 많아졌습니다.

우리 아이들이 뗏목을 타고 가다 보면 장장 네 시간에 걸쳐서 6㎞에 이르는 물길을 헤쳐 나가게 됩니다.

이때 붕어들이 떼를 지어서 돌아다니는 것도 다 보이는데 한마디로 맥도강의 속살을 다 볼 수 있습니다.”


그러면서 젓가락으로 붕어 살을 한 움큼 집어 입 안에 넣고는 맛있다는 표정을 익살스럽게 지어 보였다.

확신에 찬 어조로 한 마디를 더 보탰다.

“제가 먹어보니까 맥도강에서 잡은 붕어가 맞습니다.

살아있는 깨끗한 강에서 잡은 붕어가 맞기 때문에 안심하고 드셔도 되겠습니다.

제가 보증할 테니까 많이 드십시오!”


사실 오랜 세월 맥도강은 방치되어 있었다.

사람들의 부주의로 어미강과 물길이 끊어진 맥도강은 수십 년간 고인 호수가 되어 병들어 가고 있었고, 

그때 붕어들도 하나둘 사라지기 시작했다.

붕어가 사라지니 겨울이면 그 많던 철새들도 사라졌는데 고작 뜸부기들만 외로이 강물을 지키는 실정이었다. 


그러다가 5,6년 전부터 사람들의 생각이 바뀌기 시작했고, 

맥도강의 신음 소리에 귀 기울이기 시작했다.

사람들의 따뜻한 배려가 있어 드디어 두 강물은 다시 연결되었다.

다시 어미강의 품속으로 되돌아온 새끼 강은 이제 서서히 기운을 회복하는 중이다.

강이 기운을 회복하니 사라졌던 붕어 떼도 소식을 듣고 돌아오고 있고,

물오리 떼도 저 멀리 시베리아에서부터 날아들고 있었다. 


이 모습에 고무되어 신이 난 사람들은 보다 더 큰 계획을 곧 실행에 옮길 태세다.

맥도강의 배수펌프장으로 유입되는 기존의 연결 터널보다도 몇 배로 큰 터널을 뚫기 위한 대공사를 계획 중이다.

4대 강 사업의 일환으로 250억이라는 큰 예산은 이미 확보되었고

날씨만 풀리면 곧 시작할 작정이다.

이렇게 되면 엄청난 량의 낙동강 본류물이 맥도강으로 흘러들 것이다. 

예전처럼 천삼백리 떨어진 강원도 황지연못의 맑은 물도 자연스럽게 흘러들 것이다.


웬만큼 식사를 마쳤을 때 좀 전과는 다른 결연한 표정으로 이 교장이 다시 말문을 열었다.

“공 회장님! 그래도 다행스럽게 생각하는 것은 우리는 아직도 포기하지 않았다는 사실입니다.

사정상 잠정적으로 중단했을 뿐이지 우리가 포기한 것은 아니지 않습니까?

그럼 됐습니다!

2보 전진을 위한 1보 후퇴는 손자병법에도 나와 있는 작전의 개념이기 때문에 웃으면서 후퇴할 수 있습니다”


곽 위원장이 이 교장의 말을 거들고 싶었던지 슬쩍 끼어들었다.

“맞습니다! 2보 전진을 위해서 작전상 후퇴한 체육관 문제는 잠시 덮어두기로 하고,

우선은 학교를 지키는 문제가 더 급합니다,

지금부터는 학교를 지키기 위하여 우리가 힘을 모아야 합니다!”


이때 난 커피를 가져오겠다는 핑계로 근방에 위치한 사무실로 급히 돌아왔다.

다가오는 2월 11일은 총동문회의 임시이사회가 예정되었고, 

이날을 위해서 두 장의 도움자료를 준비해 두고 있었다.

그 하나가 2010년부터 2015년까지 강서구 관내 초등학교를 대상으로 향후 학생 수의 추이를 분석한 교육청 자료다.

다른 하나는 교육청의 자료를 토대로 우리 학교의 향후 5년 동안 학년별 학생수 추이를 일목요연하게 정리한 자료였다.


커피와 함께 자료가 담긴 쟁반을 내려놓았을 때, 

곽 위원장이 먼저 자료를 집어 들고 이 교장에게 전달했다.

“교육청에서 주민등록표를 분석하여 파악한 자료를 토대로 2015년까지 우리 학교의 입학생 추이를 분석해 보았습니다.

그랬더니 해마다 6,7명은 꾸준히 입학을 하고 있거든요.

우리가 허리끈을 바짝 조여매고 3,4명만 더 충원을 하게 되면 농어촌학교의 가이드라인인 전교생 60명,

학년당 10명은 어떻게든 유지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하다못해 2,3명만 더 충원을 한다고 해도 8,9명은 유지될 수 있습니다.

이렇게만 되더라도 두 개 학년을 합해서 10명 미만일 때 시행한다는 복식수업하고는 거리가 멀어집니다.

그렇기 때문에 교육청을 상대로 싸울 수 있는 명분은 충분하다고 생각합니다.”


운영위원장이 열변을 토하고 있는 동안 이 교장은 진지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인다.

이때 공 회장이 찹찹한 표정으로 이 교장에게 물었다.

“교장선생님! 우리가 아무런 노력도 하지 않고 가만히 있으면 우리 학교는 어떻게 되겠습니까?”

들었던 커피 잔을 내려놓으며 이 교장이 말했다.

“그러면 통폐합 절차를 진행하게 되겠죠,

교육청에서 강서지역 3개 초등학교를 정리하겠다고 공언까지 했는데,

그냥 넘어가지는 않을 겁니다,

분명히 시도는 할 겁니다”


이 교장의 답변이 끝나자 이번에는 보다 더 심각한 표정으로 공 회장이 다시 말했다.

“저러다가 말겠지 하면서 안일하게 생각하다가는 정말로 큰일이 날 수도 있다는 말씀이네요!"

마음이 다급해졌던지 곽 위원장의 말이 빨라진다.

"통폐합을 시도한다면 2012학년도 입학통지서부터가 문제 되지 않겠습니까?

혹시 우리 학교로는 아예 입학통지서를 발송하지 않는 것 아닙니까?

그래서 시간이 없습니다!

2012학년도 입학통지서를 올 12월에 보내게 되어있는데 그렇게 볼 때 교육청하고 싸울 시간은 금년 한 해뿐입니다.

빨리빨리 서둘러야 합니다!”


운영위원장은 서둘러야 한다며 초조하게 말하고 있었지만, 

이 교장은 짐짓 여유가 있다는 듯 잔잔한 미소를 보이며 차분하게 말했다.

“저는 아무런 걱정이 없습니다,

동문님들과 마을 분들이 우리 학교를 지켜주시리라 철떡 같이 믿고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 학부모님들도 믿고 있고,

또 열심히 아이들을 가르치고 있는 우리 선생님들도 믿고 있습니다.

우리는 모두 잘할 수 있을 겁니다.

그렇다면 우리 학교는 반드시 지켜질 것이고,

또 우리 모두가 간절하게 염원하는 다목적 강당도 반드시 지을 수 있을 겁니다.

모두들 용기를 내십시오!”


예정했던 시간보다도 식사 시간이 다소 길어졌던 관계로 이 교장의 다음 일정에 차질이 빚어졌다.

그런데도 이 교장은 지금 우리들과 함께한 시간이 훨씬 더 소중하다며 대수롭지 않다는 표정이다.

자리에서 일어날 때에도 곽 위원장이 부축하여 주려고 했지만, 

이 교장은 정중히 사양하면서 앉을 때와 마찬가지로 몇 단계의 동작을 통해서 목발을 잡고 일어섰다.

목발을 짚어가며 부자연스러운 걸음걸이로 식당 카운터로 다가왔을 때, 

이미 공 회장이 계산을 끝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목발을 짚고 다닐 때까지만 신세를 지겠다며 환한 미소로 잘 먹었다는 인사를 대신했다.


이 교장이 택시를 타고 목적지로 떠나는 것을 본 후에야 우린 사무실로 돌아왔다.

이때 사랑방손님을 자처하는 마을 사람들의 수다가 재미있었다.

이번에 자신의 손녀가 한일교류단의 일원으로 일본에 갔다면서 방금 손녀로부터 전화를 받았다고 했다.

지금 기리시마시는 화산재가 섞인 회색 연기가 2,500m 이상 치솟고 있어 그야말로 장관이라는 것이다.

구경거리가 얼마나 볼만했으면 손녀가 깜짝 자물치게 좋아하더라는 것이다.

모두들 안전한 가운데서 즐거운 시간들을 보내고 있다는 소식은 참으로 반가운 소식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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