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맥도강 Sep 08. 2023

두 기관장의 마지막 담판

시골초등학교 이야기 

오전 내내 사무실에 죽치고 앉아서 내년도 입학생수를 걱정하며 머리를 굴리던 곽 위원장에게 공 회장이 전화를 걸어왔다.

동사무소에 들렸던 차에 동운영 자치위원이라는 끗발을 이용해서 예비 입학생들의 명단을 보았던 모양이다.

단 한 명의 입학생이 아쉬운 상황에서 공 회장의 관심사는 염막 2구 지역에서 초등학교에 입학하는 아이가 있는지였다.

그런데 한 명의 아이를 발견하고는 급히 연락을 해왔다.


이유는 이랬다.

염막 2 구라는 남쪽강변에 붙은 작은 동네는 행정구역은 우리와 같은 맥도 마을이기 때문에 원칙은 우리 학교로 취학통지서가 나와야 했다.

그런데 우리와는 행정구역만 공유할 뿐 실제의 생활은 이웃동네인 명지와 밀접했던 관계로 이웃 학교로 취학통지서가 나오는 상황이었다.

이 오래된 관행에 대하여 그동안 어느 누구도 이의를 제기하지 않았지만, 

이제는 사태가 급박하여 어떻게든 그 집의 부모를 설득하여 우리 학교로 아이를 데려와야 하는 처지였다.

그래서 공 회장은 지금 운영위원장에게 급히 전화하여 민첩한 행동을 주문했던 거다.


세대주의 이름과 집주소를 받아 적은 곽 위원장은 곧장 자신의 애마인 갤로퍼를 몰고 내비게이션이 안내하는 곳으로 출동했다.

그런데 내비게이션이 안내한 곳은 어처구니없게도 그냥 맥도강의 강물 속이었다.

이 일대가 강변을 따라서 길게 들어선 무허가주택 단지라 하천부지의 지번 하나에 여러 집들이 마구잡이로 섞여있었던 탓이다.


며칠 후 고 총무가 해당 마을의 청년회장과 함께 아이의 부모를 만나봤던 모양인데 등하교의 문제 때문에 난색을 표한다고 했다.

특성화교육이 어쩌고 저쩌고 하면서 아무리 학교 자랑을 늘어놓아도 단번에 해답이 나오더라는 거다.

가난한 영세민의 입장에서는 어차피 아이 혼자서 통학을 할 수밖에 없는데 셔틀버스를 운행하지 않는 이상 어렵다는 답변이었다.

그렇다고 교육청의 지원 없이 셔틀버스의 운행이 가능한 일도 아니지 않은가.

통폐합을 벼르고 있는 마당에 교육청에서 셔틀버스를 지원할 일도 만무한 일이라 더 이상의 설득은 의미가 없었다.


한 해를 마무리하는 연말의 저녁 시간이었다.

오랜만에 집에서 쉬고 있는데 휴대폰의 벨소리가 요란하다.

휴대폰의 화면에서는 공 회장이라는 이름이 뜬다.

그런데 잔뜩 풀이 죽은 목소리였다.

“방금 구청장한테서 전화가 왔는데 오늘 오전에 북부교육장이 구청으로 직접 찾아왔었다고 하네,

그 양반이 하는 말이 구청의 뜻은 참으로 고마우나 배영은 2012년에 통폐합이 예정돼 있기 때문에 아무리 생각해 봐도 체육관 건립을 위한 부지 제공은 어렵겠다고 말하더라는 거야!”

'푸울 썩~'

이 말을 듣는 순간 순식간에 내 머리는 생각이 정지된 돌덩이 마냥 딱딱하게 굳어버렸다.

어느새 또다시 오래된 말더덤이 습성이 재현되면서 발음마저도 어눌해져 버렸다.

“무… 무슨 이런 말도 안 되는 소리가 있답니까?

하참 한마디로 어… 어이가 없네요,

그…그럼 그때 교육감실에서 교육감이 우리한테 했던 말은 뭡니까?

기… 기가 막혀서 말이 안 나오네요”


공 회장은 하던 말을 계속 이어 나갔다.

“그래서 구청장은 교육장의 얼굴이 벌겋게 되도록 쏘아붙였던 모양이라!

구청장이 그랬다네, 부산 16개 구군 중에서 가장 많은 예산을 학교에 지원하는 구청이 어딘 줄 아느냐고!

교육청이 정히 이런 식으로 나온다면 우리도 남들만큼만 예산을 지원하겠다고 악담을 퍼부었다는 거야,

또 관내의 학교들이 일방적으로 폐교되도록 보고만 있지는 않겠다고 하면서 둘이서 한바탕 설전을 벌였다는 거야!

점심식사를 같이하기로 식당까지 예약해 놓고, 밥도 안 먹고 갔을 정도로 분위기가 험악했다고 하데!

이래 되면 인자는 우리 학교에 체육관 짓는 거는 진짜로 물 건너가는 거 아니겠나!

어야 이 일을 우짜면 좋겠노?”

“거참, 한… 한마디로 어… 어이가 없네요!”

난 이렇게밖에는 말할 수가 없었다.


잠시 잊고 있었던 도시락폭탄이 그야말로 엄청난 위력을 발휘하면서 제대로 터지고 말았다.

우리가 지하 깊숙이 묻어버렸다고 생각했던 그 폭탄이 알고 보니 멀쩡히 살아있었고 정확히 도심지 한복판에서 폭발했다.

공 회장의 말대로 이제는 정말로 모든 것이 수포로 돌아간단 말인가.  

진정 이제 더 이상은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이 없단 말인가!

교육감은 분명히 우리가 보는 앞에서 지시했었다.

'구청장과 교육장이 만나서 서로 잘 협의해서 처리하라고!'

지금까지 우린 교육감의 그 말만 철떡 같이 믿고서 이젠 정말 모든 일이 잘 풀릴 줄만 알았다.

그런데

‘뜻은 고맙지만 부지 제공은 할 수 없다’

이 무슨 청천벽력과도 같은 말인가!

도대체 무엇이 잘못되었을까?

이번에도 교육정책을 경제논리로만 밀어붙이려는 교육행정의 실무자 세력들이 끝끝내 교육감의 결정사항을 뒤엎으려고 한단 말인가!

곰곰이 생각해 보니 그날 교육감의 단호한 지시사항에는 그다음의 말도 포함되어 있었다.

'협의결과에 따라서 처리하도록 우리 교육청은 그 결정을 존중해 주도록'

그렇다면 그 당시 이미 도시락폭탄이 되살아날 수 있는 여지는  만들어졌다는 것이고, 다만 그 권한이 북부교육장에게 주어졌을 뿐이다. 

순진하게도 우리가 안도의 한숨을 내쉬고 있었을 때, 경제의 효율성을 주장하면서 소규모 학교의 통폐합을 추진하던 세력들은  오히려 회심의 미소를 지었다는 말이 된다.    


소식을 듣고 달려온 곽 위원장이 이 교장에게 전화하여 이 비극적인 소식을 알렸다.

그런데 이 교장의 반응은 의외로 차분했다.

우릴 보고 너무 낙담하지 말라는 위로의 말까지 전하며 포기하기에는 이르다며 타이르듯이 말했다.

아직도 낙담하기에는 이르다는 저 가없이 넓은 도량은 도대체 무엇이란 말인가!

이 교장의 훈계를 공손하게 받아들이면서 아직까지 한 번도 시도해보지 않았던 일들을 떠올려 보았다.

몇 가지가 떠오르자 즉시 실천해 옮겼다.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전임교육감이자 현재 교과부 제2차관으로 재임 중인 분에게 전화하여 도움을 요청했다.

그러나 아뿔싸!

그분은 지금 정부차원에서 소규모 학교 통폐합 정책을 주도하는 최고위층 실무책임자였다.

그분에게서 들을 수 있었던 답변은 인간미라고는 전혀 없는 다분히 기계적인 답변뿐이었다.


아직도 우리에게는 열두 척의 목선이 남아 있다는 이 교장의 훈계를 떠올리면서 또다시 돌진했다.

때마침 지역에 내려와 있던 국회의원을 만나보기로 한 것이다.

그에게 부탁하여 정치적인 압력을 행사해서라도 교육청의 생각을 되돌려볼 심사였다.

그런데 이 양반의 생각역시도 교육청의 통폐합 논리와 크게 다르지 않았다.

학생 수가 줄어들어 복식수업을 하게 될 예정이고 그것 때문에 통폐합 기준에 이르게 되었다면 무엇 때문에 통폐합을 반대하느냐는 논리였다.

차라리 소규모 학교를 정리하여 그렇게 절약된 예산을 통합되는 학교로 투입한다면 훨씬 양질의 교육을 담보할 수 있지 않느냐며 오히려 우리를 질책했다.

심지어는 진정으로 학교를 지키고 싶다면 동문들이 먼저 모범을 보이라는 충고의 이야기까지 덧붙였다.  

시내에 거주하는 동문들의 자녀나 손자들을 우리 학교로 전학시키는 자구노력을 먼저 하라는 거였다.

정히 학교를 지키고 싶다면 그렇게 해서라도 통폐합이 안 될 정도의 기본적인 학생 수를 유지하는 것이 옳지 않느냐며 따끔하게 일침을 놓았다.


체육관을 지어주려는 우리들의 뜻이 진정 아이들의 교육 여건 개선에 있다면 학교가 폐교된 뒤에는 아무런 의미가 없을 것이다.

그래서 그 양반 앞에서는 언감생심 체육관 이야기는 꺼내지도 못했다.

폐교 운운하는 학교에 체육관이 어쩌고 저쩌고 한다면 이 양반의 입장에서는 한낱 철부지들의 이야기쯤으로 치부될 수 있었기 때문이다.

물론 처음에는 서운한 감정도 들었지만 곰곰이 되새겨보면 마냥 서운한 말만은 아니었다.

차라리 냉혹한 현실을 직시시켜 준 따끔한 충고의 말이었다.

계속해서 학교를 유지하고 싶다면 학교가 존속하는 마을로서의 기본적인 도리를 다 하라는 말이었으니 말이다.

학교가 유지될 수 있을 정도의 기본적인 학생 수의 공급은 지역사회가 감당해야 하는 최소한의 도리다.

그와 같은 기본적인 의무도 다하지 않으면서 학교가 존속되기를 바라는 것은 모순이라는 질책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린 황 위원과는 결을 달리하는 위정자로서의 또 다른 모습을 떠올리지 않을 수 없었다.

냉철하게 따져보면 학생 수가 줄어든 첫 번째의 원인은 마을에서 주택이 사라지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그 책임 소재를 굳이 따져보자면 위정자들의 책임 또한 적다고는 말할 수 없었다.

몇 해 전 우리 지역은 개발제한구역의 일부 해제 절차를 진행하면서 일만 제곱미터 이내 20호 이상의 취락지를 중심으로 지구단위계획을 수립했다.

그런데 제1종 일반주거지역으로 변경되자마자 단순히 경제적인 실익 때문에 소규모의 제조공장들이 우후죽순처럼 들어서기 시작했다.

기존의 주택지에 소규모의 공장들이 밀고 들어오자 얼마 지나지 않아 멀쩡한 주택지들 마저도 붕괴되는 현상이 발생했다.

공장에서 발생하는 소음과 매연 때문에 하나 둘 주택지를 떠나는 세대가 늘어나게 되었고, 이들이 떠난 주택지에는 예외 없이 소규모의 공장이 다시 들어섰다.

이러한 악순환으로 인하여 우리 마을의 고정인구는 계속해서 줄어들고 있었다.


하지만 이런 사태는 진작부터 예견된 사태였다.

국회의원을 비롯한 위정자들의 의지만 있었다면 충분히 막을 수도 있었지만 그들은 그들의 소임을 다하지 않았다.

지구단위계획을 입안할 때 조금만 더 세심하게 도시계획을 수립했더라면 제1종 주거지에서 주거지가 붕괴되는 이런 말도 안 되는 사태를 진즉에 막을 수 있었다.

그랬더라면 이렇게까지 급격하게 마을이 무너지는 현상은 발생하지 않았을 것이다.


학교를 유지시키는 기본적인 의무조차도 다하지 못하여 팔십여 년 전통의 유수 깊은 학교를 보전하지 못하게 되었다면 분명 그 책임은 막중하다 하겠다.

그러나 그 모든 책임을 지금도 마을을 지키며 살고 있는 우리 주민들에게만 전가하려는 태도에 대하여 씁쓸한 표정을 짓지 않을 수 없었다.

한 치 앞도 내다보지 못하고 모순투성이의 도시 계획을 수립한 위정자들은 마치 남의 일인 양 훈수질을 하면서 내 몰라라하고 있다.

그들의 무책임한 태도에서 섭섭함을 넘어선 분노가 치밀어 올랐다.


그러나 어찌하랴! 손님들이야 한철 잘 먹고 떠나가면 그뿐!

어차피 뒷마무리는 앞으로도 두고두고 살아가야 할 우리 지역민들의 몫이다.

교육감을 만났을 때 분명히 동문회장은 2012년부터는 우리 학교의 학생 수가 더 이상 줄어들지 않을 거라고 큰소리쳤었다.

이제야말로 말로서가 아닌 구체적인 대안을 가지고서 당시의 ‘큰소리’를 입증해야 한다.

물론 실내체육관도 중요하다!

단, 학교운동장에서 뛰어노는 우리 아이들의 고함소리가 들릴 때만이 필요한 시설물이다.

우리 아이들의 해맑은 웃음소리가 더 이상 들리지 않는다면 실내체육관은 더 이상 중요하지 않을 수 있다.

폐교된 황량한 학교터에 최신 시설의 체육관이 도대체 무슨 소용이 있단 말인가!


어쩌면 체육관 문제는 잠시 뒤로 미루어 두더라도 지금 당장은 학교를 지키는 방안부터 찾아봐야 하겠다.

지속적인 학생 수의 감소를 막아내지 못하여 끝끝내 복식수업을 피할 수 없게 되었다면 교육청 수용팀의 주장처럼 먼저 학부모들이 들고일어나고, 종국에는 선생님들이 통폐합을 요청한다고 하지 않던가!

학교만 지킬 수 있다면 체육관은 언제라도 다시 지을 수 있다.

일단은 우리 학교에 예정된 2012년의 학교통폐합 일정부터 저지하는 것이 시급한 문제다.

생각이 여기에까지 이르자 아름다운 우리들의 시골초등학교를 지키기 위한 많은 일들이 생각났다.

아직도 시도해보지 않은 많은 일들이 머릿속을 꽉 채우기 시작했다.          



     

매거진의 이전글 병원에서도 여전히 씩씩한 이 교장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