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맥도강 Sep 06. 2023

병원에서도 여전히 씩씩한 이 교장

시골초등학교 이야기 

“안 오셔도 되는데 번거로운 걸음들을 하셨습니다!”

우리를 바라보며 이 교장은 반가운 마음을 이렇게 대신했다.

고 총무가 포장된 아이스박스 하나를 돌봐주고 있던 처제에게 건네주며 말했다.

“교장선생님! 오늘 우리 아이들이 담근 김치입니다,

우리 아이들의 성의를 봐서라도 맛있게 드시고 빨리 쾌차하십시오!”

왼쪽 다리는 바닥에 내려놓고, 통째 깁스한 오른쪽 다리는 침대 위에 걸치고 있는 자세가 며칠 사이에 제법 단련이 되었던지 그리 불편해 보이지는 않는다.

“오늘 위원님들이 가지고 오신 값비싼 꽃바구니와 과일바구니 보다도, 우리 아이들이 정성스럽게 담근 이 김치가 훨씬 더 값지고 고마운 선물입니다”

그러면서 아이들의 고사리 같은 손으로 김장하는 모습이 연상되었던지 기특하다는 표정을 애틋하게 표현했다.

공 회장이 인사말을 건넨다.

“교장선생님! 운전하실 때 우리 학교 걱정 때문에 한눈 파시다가 사고 나신 것 아닙니까?”

공 회장이 농담을 곁들이며 사고의 경위를 묻자, 빙긋이 웃으며 이 교장이 말했다.

“그동안 제가 과로하는 것이 안 돼 보였던지 하나님이 이번에는 제대로 한번 쉬라고 은혜를 베푸신 것 같습니다,

사실은 지금 제 눈에 초점이 잘 안 잡힙니다!”

그러면서 오른손으로 초점 잡는 시늉을 한다.

“제 나이 갓 마흔 일 때도 이런 일이 있었는데 이 날도 고가도로 밑 신호 앞에서 유턴을 해야 하는데 갑자기 초점이 안 잡히는 겁니다. 그래서 기둥에 쾅하고 부딪혔죠!”


곽 위원장도 인사말을 보탰다.

“교장선생님! 그 정도 사고면 작은 사고가 아닌데 하마터면 큰일 날 뻔했습니다.

이만하기가 정말로 천만다행입니다.

교장선생님 말씀대로 하나님의 배려도 있고 하니까 이번 참에 학교일에 대한 모든 근심 걱정은 다 털어내시고 그냥 푹 쉬십시오!”

이 교장이 화답했다.

“눈에 초점이 안 잡히니까 책도 볼 수가 없고 메모도 할 수가 없으니 위원장님 말씀대로 제 의지와 관계없이 강제적으로 쉬게 되었습니다!”

그러면서 눈에 초점이 안 잡힌다는 말은 병원에서는 일절 안 한다고 했다.

치료도 하지 못할 거면서 검사한답시고 이리 돌리고 저리 돌리고 귀찮게 할 것이 뻔하기 때문이란다.

“웬만큼만 움직일 수 있으면 마흔 살 때 제 눈을 치료해 준 그 한의원을 다시 찾아가 볼 생각입니다.

그 당시 때도 일반 병원에서는 사람만 고생시키고 도대체가 원인을 못 찾는 겁니다.

그런데 어느 학부모님의 소개로 용하다는 그 한의원을 찾아갔더니 간단하게 침을 한번 놓아주었는데 신기하게도 이내 초점이 잡히는 겁니다.

한의원 원장은 제 간에 문제가 있다고 했습니다.

원인을 찾으니까 간단하게 해결이 됐는데 간에 문제가 있어서 시력에 문제가 있다는 것을 일반적인 서양의학에서는 이해하기가 쉽지 않을 겁니다!”


병실은 2인실이었는데 함께 사용하는 저쪽 편 환자의 모양새가 여간 특이한 것이 아니었다.

철사로 된 보철물로 턱을 고정시키고 있는 모양새가 여간 웃기는 표정이 아니었다.

자꾸만 터져 나오려는 웃음을 억지로 참으려니 진땀이 날 정도였다.

이 교장이 운영위원장을 바라보며 말했다.

장 주사님한테 오늘행사를 위해서 튼실한 놈으로 암탉 대여섯 마리를 잡으라고 일러두었는데 어떻게 닭고기는 많이 잡수셨습니까?”

이 말에 운영위원장은 잘 먹었다고 말했지만 사실은 오늘 행사 때 닭을 잡지는 않았다.

여기로 오기 전 교감의 당부말이 떠올랐다.

이 교장의 지시로 닭을 잡아서 우리 아이들도 먹이고 학부형들에게도 대접하려고 했지만 병원에 있는 교장선생님을 생각하니 차마 그럴 수가 없더라는 것이다.

이런 이유로 닭을 잡지 않았다고 하면 자신이 혼이 나기 때문에 병원에서 혹시 물어보면 잘 먹었다고 거짓말을 해달라는 부탁이었다.


이 교장은 이제부터는 본격적으로 학교 이야기를 좀 해보자면서 우리더러 간이 의자에 편히 앉으라고 권한다.

이때, 복도 저쪽 편에서 이쪽으로 걸어오는 한 무리의 사람들이 포착됐다.

자세히 보니 이전에 우리 학교에서 교감으로 근무하셨던 여선생님과 이 교장을 잘 아는 지인들이 병문안을 위해서 걸어오고 있었다.

내가 먼저 자리에서 일어서며 말했다.

“이제 우린 그만 일어나야겠습니다!”

뜬금없이 일어나자는 말에 일행들은 동시에 복도 방향으로 시선을 돌렸고, 내 말의 뜻을 알아차린 일행들은 모두 자리에서 일어났다.

우린 안면이 있던 교감선생님과 반갑게 인사를 나눈 후 이 교장의 아쉬운 눈빛을 뒤로한 채 병실을 나섰다.


차에 올라탄 고 총무가 나를 바라보며 실실 웃으면서 말했다.

“교장선생님이 이제부터는 편하게  앉아서 이야기하자고 했을 때는 아이고야! 이젠 완전히 죽었구나 생각했다 아입니까?

그런데 하필 그때 다른 손님들이 와주가 행님이 그만 일어납시다 할 때는 인자 살았다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고 총무가 웃자고 하는 말이었지만 어찌나 말을 재미나게 하던지 모두는 자지르지게 웃고 말았다.

운전을 하던 운영위원장이 무슨 좋은 생각이 떠올랐는지 옆자리의 공 회장을 흘깃 쳐다보면서 말한다.

“공 회장님! 다음 주 화요일 날 우리 학교에서 전교생을 데리고 1박 2일로 양산에 있는 스키장을 가거든요,

이런 거를 신문에 좀 낼 수 있는 방법이 없을까요?

고 총무! 비용 일체를 학교에서 다 부담해서 간다고 했제?”

“예, 행님! 관광버스를 두 대 불러서 가는 모양인데 수요일 날 방학식도 거기서 한다고 하던데요,

해마다 그래 한다 아닙니까! 이런 걸 신문에 낼 수만 있다면 우리 학교 선전 억수로 될 것 같은데요!”

위원장이 자신의 의중을 구체적으로 설명하기 시작한다.

“문제는 입학생인데, 솔직히 말해서 우리 동네 자체적으로는 당분간은 별통수가 없다 아닙니까.

천상 퀸덤아이처럼 밖에서 데리고 와야 하는데, 와 안그랍디꺼! 지리산초등학교 같은 촌동네 학교에도 서울 강남에서 유학을 보낸다고요.

암만 그래싸도 지리산에 있는 촌학교보다 보다야 우리 학교가 훨씬 좋다 아닙니까!

단지 선전이 좀 덜 돼 있다는 것뿐인데, 선전 효과는 신문하고 테레비 만한기 어디 있겠습니까!

공 회장님이 발이 넓으시니까 우째 방법이 좀 없겠십니꺼?”

위원장의 이 말에 공 회장은 잠시 생각에 빠졌고 이내 누군가에게 전화를 걸기 시작한다.

“의! 친구야? 내 공가다, 그날은 잘 들어갔더나?

그래 그거는 그렇고 친구 니가 기자들하고 잘 친하다며?

우리 학교가 요번에 방학식을 양산 스키장에서 한다는데 우째 기사감이 좀 안 되겠나!

그래 그래 기자한테 연락해 보고 내한테도 바로 연락해도?”


이런 사연으로 우리 아이들이 양산 스키장에서 즐거운 방학식을 한다는 제법 큰 지문의 기사가 두 지방지에 그것도 이틀 연속으로 실리게 되었다.

사실, 전교생이 그것도 비용의 전액을 학교에서 부담하여 스키장에서 방학식도 가지고 1박 2일 동안 즐거운 시간을 보낼 수 있다는 것은 말처럼 단순한 문제가 아니다.

어쩌다가 한번 하는 단발성 행사가 아니라 3년째 이어온 프로그램이라면 놀라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겨울방학을 맞아서 양산의 스키장으로 방학식을 하러 간다며 벌써부터 밤잠을 설치는 이제 갓 2학년인 우리 집 막둥이에게 물어본 적이 있다.

‘스키는 탈 줄 아느냐고?’

그런데 우리 아이의 답변이 걸작이었다.

작년겨울에도 타봤기 때문에 잘 탈 수 있다며 자신 있게 말했다.

하기사 2년째 스키를 타러 간다고 하니 그럴 수도 있겠다 싶었다. 우리 막둥이가 졸업할 무렵엔 정말로 제대로 탈 수 있겠다는 생각까지 들었다.

나뿐만 아니라 우리 또래의 선후배들이 스키를 타봤다는 소리를 들어본 적이 없다.

어릴 때는 뭐든지 쉽게 배울 수 있다지만 나이가 들면서는 생소한 것들을 배운다는 것이 엄두가 나지 않는 것이 사실이다.


지금 우리 집에는 생뚱맞은 바이올린이 하나 있다.

내가 그런 사치스러운 악기를 사주었을 리 만무하지만 우리 막둥이는 학교에서 무료로 바이올린을 배우고 있다.

학교에서 단체로 임차한 바이올린을 수업이 없는 날이면 집으로 가져와 저 홀로 연습을 하곤 다.

그리고 5, 6학년이 되면 대부분 15년 전통의 풍물패에 가입하여 사물놀이를 배우게 된다.

북이며 장구 꽹과리 징을 하나씩은 접하게 되는데 우리 민족의 전통문화를 이해하는데 큰 도움이 될 것이다.


또 5, 6학년이 되면 겨울 방학을 이용하여 모든 아이들이 일본으로 여행을 떠나고, 여름방학 때는 일본에서 홈스테이를 했던 그 일본 친구들을 자신들의 집으로 초대한다.

그래서 우리 아이들은 이웃나라 일본에 대한 이해도가 남다른 편이다.

심지어는 대학생이 되어서도 홈스테이를 함께했던 일본 친구들과 교류를 지속할 정도로 우리 아이들에게 큰 영향을 미치고 있다.

18년째 이어오는 프로그램이지만 교육청의 도움 없이 순수하게 학교와 지역사회의 힘만으로 유지해 왔다는 사실은 일반적인 현상은 아닐 것이다.

그런데 이러한 사실이 이틀 연속으로 신문지면에 보도되면서 우리가 의도했던 좋은 방향으로만 소개된 것은 아니었다.

사회부기자의 예리한 촉은 우리 학교의 치명적인 약점까지도 알게 되었다.

‘스키장에서 이색 방학식’이라는 기사의 내용은 이랬다.     


『부산지역 한 초등학교가 겨울 방학식을 스키장에서 가질 예정이어서 눈길을 끌고 있다.

강서구 배영초등학교는 21일부터 이틀간 전교생(73명)이 경남 양산 에덴밸리 스키장에서 스키 체험학습을 갖는다.

22일에는 스키장에서 방학식이 진행된다.

스키는 고학년 체육 교과의 겨울놀이 단원에 나오는 교육과정이지만 소규모 농촌학교의 특성상 학교에서는 학습이 어렵다.

특히 조손 가정, 맞벌이 가정이 대부분이어서 자비로 스키교실에 참여하기 힘든 학생이 많았다.

이에 이 학교는 학교 예산으로 2008년부터 매년 스키 현장체험을 실시하고 있다.

스키교실에 참가한 학생들은 “며칠 전부터 매일 밤마다 스키 타는 꿈을 꿨다”, “올해 3년째 스키 강습을 받아 이제 초급라인에서 내려올 수 있다.”며 즐거워했다.

배영초등학교의 한 교사는 “스키 체험학습은 3년째이지만 방학식을 스키장에서 하는 것은 올해가 처음”이라며 “학생들에게 뜻깊고 기억에 남는 방학식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배영초등학교는 부산시교육청의 ‘소규모 학교 육성 세부추진계획’에 포함돼 2012년 통폐합될 예정이다』


‘교육청 일방폐교추진에 동문회 반발’이라는 또 다른 신문의 기사에서는 상당히 구체적으로 우리 학교의 폐교사실을 알리는 홍보 역할을 하고 말았다.  


『공항 소음피해 보상금으로 모교 운동장에 강당을 지으려던 초등학교 총동문회가 교육청의 폐교 방침에 반발하고 있다.

부산 강서구에 위치한 배영초등학교 총동문회는 지난 9월 북부교육청에 학교 운동장 가운데 300여 평 부지에 대한 사용승인 신청을 냈다.

이 일대에 지원되는 소음대책지역 지원금 12억 원으로 재학생과 이 학교 출신인 주민 모두가 이용 가능한 ‘다목적 강당’을 설립하겠다고 나선 것이다.

그러나 북부교육청은 이 학교가 ‘소규모 학교 육성 세부추진계획’에 따라 2012년 통폐합될 예정이어서 사용 승인을 내줄 수 없다는 통보를 해왔다.

해당 북부교육청 관계자는 인구 유출로 주민등록상 어린이 수가 갈수록 줄고 있어 지난 4월 통폐합이 결정됐다며 시교육청 지시로 검토는 해봤지만 폐교될 학교 부지에 신축 허가를 내줄 수 없는 일이라고 말했다.

이에 대해 총동문회는 각종 평가에서 우수한 성적을 거둬온 모교가 단순히 학생 수가 줄어들 예정이라는 이유로 통폐합 대상으로 선정된 것은 있을 수 없다며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실제로 배영초등학교는 ‘2010년 학교평가’에서 부산 최우수학교로 선정된데 이어 ‘전국 100대 교육과정 우수학교’ 부산 대표로 선발되는 등 소규모 학교라는 핸디캡을 극복하고 운용의 묘를 잘 살려오고 있다는 평을 들어왔다.

또 교육청 측은 당초 총동문회와 문화체육관 건립추진위원회가 제출한 청원서를 살펴보면 결혼식이나 축제 등의 마을행사까지도 이곳에서 치르겠다고 명시되어 있어 이 신축 건물을 온전히 학생과 주민이 공용으로 사용하는 순수한 다목적 강당이라 보기 어렵다는 입장이다.

하지만 총동문회를 비롯해 인근 주민들은 청원서에 쓰인 ‘문화체육회관’이라는 건물 명칭을 트집 잡아서 순수한 다목적 강당으로 보기 어렵다는 교육청의 태도에 대해서 그야말로 편의주의적 발상이라고 지적했다.

배영초등학교는 지난 1927년 배영사설강습소를 전신으로 1946년 국민학교 인가를 받아 그 해 문을 열었고 현재 6개 학급에서 74명이 재학 중이다』  

   

신문에 기사를 내고자 했던 우리의 의도는 제3, 제4의 퀸덤엄마를 찾기 위해서였다.

그런데 엉뚱하게도 학교의 통폐합 사실을 비중 있게 다루는 바람에 그나마 있던 퀸덤엄마들조차도 생각을 바꾸지 않을까 걱정하는 지경이 되고 말았다.


매거진의 이전글 퀸덤 엄마의 교훈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