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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맥도강 Sep 13. 2023

공 회장의 분노

시골초등학교 이야기 

교육청의 학교부지 제공 거부로 우리 학교의 실내체육관 건립이 무산되자 2011년도의 주민지원사업비 12억 원을 두고서 논란이 벌어졌다.

이미 확보된 예산의 재배정을 위해서는 새로운 주민지원사업을 확정 지어야 했다.

1월 중순경, 이 문제를 논의하기 위하여 항공소음 대책위원을 겸하고 있는 5개 마을의 통장들이 자리를 같이했다.


이 자리에서 백 회장은 체육관사업이 무산되면 예산의 절반은 다른 지역의 주민지원사업비로 넘겨주기로 구청과는 이미 협의가 되었다고 말했다.

그래서 나머지 6억 원으로 할 수 있는 맥도 지역의 새로운 주민지원사업을 찾아보자고 제안했다.

마을 통장들이 치열하게 협의하여 새로운 주민지원 사업을 확정했고,

다음날 사업계획서를 주무부서인 환경위생과에 제출했다.

확정된 사업은 우수기의 상습적인 침수 예방을 위하여 마을의 중앙 배수로 동서방향 800m 구간을 U자형 개그박스로 정비하는 사업이었다.

공사기간은 2011년 상반기에 진행하기로 하고, 예상 사업비로 5억 원을 배정했다.


피 같은 12억 원의 체육관예산이 이처럼 갈기갈기 찢겼다는 소식은 우리 추진위원들의 가슴에 대못을 박는 듯한 슬픈 소식이었지만 어찌할 도리가 없었다.

그런데 사무실을 찾은 몇몇 선후배들이 지금 온 마을이 시끄럽다며 아우성이다.

체육관 예산으로 육묘장 사업을 한다는 것인데 처음 듣는 소리였다.


오후의 어느 시간에 예고도 없이 백 회장이 사무실을 들렀다.

긴히 할 얘기가 있다며 상담실로 들어가자고 한다.

온 마을이 시끄럽다고 하는 그 뜬금없는 이야기에 대하여 비교적 소상하게 설명하기 시작했다.

당초 합의대로 12억의 체육관예산 가운데 6억 원을 다른 지역의 주민지원사업비로 배정하려고 했지만,

그중 한 마을이 자기들은 다음번에 보다 큰 사업을 하고 싶다며 뒤늦게 고사를 하더라는  것이다.

부득이 다른 마을로는 5억 원만 배정하게 되었고,

중앙배수로 공사비를 공하더라도 2억 원이 남게 되었다 한다.


그렇잖아도 예산의 조기 집행에 대한 공항공사와 구청의 독촉이 심하던 터라 사업을 시급하게 확정해야 되는 상황이었다 한다.

그래서 5개 마을의 통장들과는 충분히 협의할 시간적 여유가 없었고,

어쩔 수 없이 평소 생각해 두었던 육묘장사업을 떠올렸다는 것이다.

체육관 예산중 남은 2억 원과 김해시로부터 환급받은 1억 5천만 원 가운데 1억 원을 합하여 1200평 규모의 육묘장 사업계획서를 이미 환경위생과에 제출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백 회장은 국토해양부에서 수립한 주민지원사업의 5개년 중기계획도 소득증대사업을 우선시하고 있다며,

앞으로는 도로포장이나 배수로 정비 같은 기반시설 설치 사업보다는 농업소득 증대사업에 비중을 두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백 회장의 설명이 끝나자 난 민심의 동향이 심상치 않으니 이 문제가 더 이상 확대되지 않도록 하루빨리 수습책을 찾아보자고 제안했다.

그렇잖아도 우리 주민들은 숙원사업이던 체육관 건립이 무산되자 그 허탈감으로 극도로 예민한 분위기였다.

하필이면 이런 시기에 마을 간의 기본적인 상의절차도 없이 독단으로 특정 마을만의 사업계획서를 제출하게 되자 여기저기서 민심들이 술렁거렸다.

백 회장에게 제안했던 수습책은 이번 문제에 대한 절차상의 하자에 대해서는 분명히 사과를 하고, 

차후로는 독단적으로 사업계획서를 올리는 일이 없을 것임을 공개적인 약속을 하라고 주문했다.

그런 후 기왕에 제출된 사업계획서에 대해서는 추인을 요청하여 보되,

추인이 되지 않는다면 부득이 육묘장 사업을 포기하는 수밖에는 없다고 주문했다.


지금 이 시점은 우리 동문들과 지역민들이 똘똘 뭉쳐서 학교를 지켜내야 하는 대단히 위중한 상항이었다.

이런 중차대한 시기에 적전 분열된 우리 내부의 모습을 노출 수는 없었기 하루속히 민심을 수습해야 했다.


곰곰이 생각하던 백 회장은 못내 서운한 감정을 털어놨다.

그 자신이 무슨 비리를 저지른 것도 아니고,

모두가 잘해보자고 하는 일인데 일방적으로 자기를 몰아세우는 지역 민심을 원망하는 말투였다.

하지만 주민들의 뜻이 정히 그렇다면 자신들 마을의 육묘장 사업을 포기하겠다고 선언했다.

그리고 기왕에 마련된 예산은 구청과의 약속대로 다른 지역으로 모두 넘기겠다며 딱 잘라서 말했다.

나의 간곡 주문에도 불구하고 끝내 백 회장은 서운한 마음을 내려놓지 못하고 자리를 뜨고 말았다.


다음날 아침, 5개 마을 통장들 기운데 가장 선임 통장인 박 통장으로부터 연락이 왔다.

어제 백 회장 마을의 개발위원회의에서 육묘장 사업을 계속하자는 결론이 났다는 것이다.

이 일로 말미암아 상황은 오히려 더욱 악화되고 있었다.

나머지 4개 마을의 통장들이 자신들 마을의 주민들로부터 곤욕을 치르는 사태로까지 비화되었다.

그 돈이 어떤 돈인데 그 피 같은 학교 체육관 예산을 특정 마을에서 전용할 때까지 나머지 통장들은 도대체 뭘 하고 있었느냐며 그 무능함을 질책하고 나선 것이다. 

사태가 이런 식으로 전개자 나머지 통장들이 구청에 항의하는 사태로까지 확산됐다.

급기야 환경위생과의 담당 주무는 백 회장에게 사태의 심각성을 알려주면서 수습을 주문했던 모양이다.


휴대폰의 화면 속에 백 회장이라는 이름이 큼직하게 뜨면서 요란스럽게도 베토벤의 운명교향곡이 울려댄다.

“담당 주무의 전화를 받았는데 이렇게 시끄러워서는 육묘장 사업이 되겠느냐며 5개 마을 전부가 이용하는 육묘장 사업으로 사업계획을 수정하자는데 그쯤에서 수습하면 안 되겠나?”

“결정은 5개 마을 통장들이 모인 데서 합의하여 결정을 하셔야죠!

지금 모든 논란의 핵심은 절차상의 하자를 얘기하는 것인데,

백 회장님이 의논 없이 독단적으로 일처리를 함으로써 초래된 일이란 말입니다.

함께 모여서 같이 논의하시고 그 결정에 승복하십시오!

그럴 수 없다면 저로서도 더 이상은 백 회장님을 도와드릴 수가 없습니다!”

“…”

“지금 자존심 대결할 상황이 아닙니다!

맥도 지역의 통장들이 백 회장님을 불신임이라도 한다면 소음대책위 회장으로서 제대로 된 역할을 수행할 수 있겠습니까?

이제는 한발 뒤로 물러나셔야 합니다!”


저녁 무렵, 공 회장이 잔뜩 화난 표정으로 사무실 문을 박차고 들어왔다.

“도대체 뭐가 이래 시끄럽더노?

가는데 마다 체육관돈으로 뭐가 어째 됐다 해 샀는데, 백 회장 그 양반!

지금 동네 분위기 파학도 못하고 뭔 사달을 이래 내고 다닌단 말이 더노!”

“분위기가 안 좋으니까 빨리 수습을 해야 된다고 저도 말을 해주었는데…”

“그런데 말이야! 1200평짜리 육묘장 사업을 갑자기 추진했다는 게 말이 되는 소리가?

우리가 체육관사업을 못할 줄 알고 미리 준비한 것 아니겠나?”

“설마 그럴리야 있겠습니까?”

“설마 설마 할 일만은 아니라니까! 생각을 보자고?

우리가 구청으로부터 최후통첩장을 받은 게 이번 달 중순인데,

그렇다면 앞뒤가 안 맞는 것 아이가?

우리는 죽자 살자 교육청하고 싸우고 있을 때 이 양반은 뒤에서 다른 사업이나 구상하고 있었다는 말밖에 더 되나?

나는 솔직히 영 기분이 안 좋거든, 내일 구청에 전화 한 번 해봐야겠어!

도대체 언제부터 이 사업을 구상하게 되었는지 물어나 봐야겠다!”


공 회장의 분노는 우리 모두가 학교체육관 때문에 교육청과 싸우고 있을 때,

어느 누군가는 무산된 예산으로 다른 사업을 구상하지 않았느냐는 상상에서부터 출발했다.

공 회장은 다음날 아침 곧바로 구청에 전화하여 담당 주무에게 이 사업이 언제부터 논의되기 시작했는지를 따져 물었던 모양이다.

담당 주무는 소득 증대 사업의 일환으로서 육묘장 등 여러 사업들이 거론되었던 것은 오래전부터였지만, 

이번에 제출된 육묘장 사업계획은 체육관 사업이 공식적으로 무산된 이후가 분명하니까 오해를 풀어달라고 말했던 모양이다.


오후에 백 회장의 전화가 걸려왔다.

“어제 공 회장까지 나서서 구청에 전화를 했던 모양일세,

자네들 정말로 해도 해도 너무들 하는 게 아닌가?

저녁에 공 회장하고 자네 사무실에서 얘기 좀 함세!

나중에 만나서 얘기하세!”


이렇게 해서 저녁 무렵 우리 3자는 긴급 대면이 이루어졌고, 

이 자리에서 흉금을 터놓는 솔직한 대화의 시간을 가졌다.

섭섭하다는 말도 있었고, 경솔했다는 말도 있었다.

그리고 이해한다는 말도 있었고, 

잘해보자는 말도 있었다.

많은 대화의 말미에 우린 서서히 맥도라는 큰 울타리 속으로 다시금 녹아들었다.


“공 회장! 오해는 하지 말게나,

학교에 체육관을 짓는 문제는 나로서도 다른 어떤 일보다도 우선적으로 중요한 문제였어!

구청으로부터 최후통지문을 받고서 추진위가 공식적으로 체육관 사업의 무산을 선언할 때까지는 맹세하지만 다른 사업을 상상한 적이 없었단 말일세!

이 말은 사실이야!

이 모든 일들이 나의 독단적인 결정으로 벌어졌다는 점에 대해서는 내가 사과함세!

그때는 하필 집에 일도 많고 하여 경황이 없었기 때문에 독단으로 일을 처리하는 과오를 범하고 말았네, 

이 점에 대해서는 내가 다시 한번 더 양해를 구하네!”


백 회장으로부터 정중한 사과의 말을 들은 공 회장이 옆에 앉은 백 회장의 어깨를 두드리며 웃으면서 말했다.

“내가 좀 흥분해서 오해를 했던 게 사실입니다.

그래서 형님한테 결례도 범했습니다만,

이제는 다 잊고 우리 모두 다시 힘을 모읍시다.

그리고 이것만큼은 우리가 분명히 알아야 합니다!

우리는 절대로 체육관을 포기한 게 아닙니다!

다만 학교 일이 워낙 급하게 돌아가다 보니까 우선은 학교부터 지키고 보자 해서 잠시 한 발 물러나 있을 뿐입니다.

어쨌든 들끊는 민심은 수습해야 되지 않겠습니까?

5개 마을 통장들이 어서 한자리에 모여서 합의를 보도록 하시죠?

거기서 육묘장 사업은 포기하고 다른 사업을 찾아보자고 하면 그렇게 하자고 하시고,

아니면 육묘장 사업을 하되 공동으로 하자고 하면 그렇게 하도록 하고,

마을별로 쪼개서 하자고 하면 또 그렇게 하자고 하시고요.

지금은 우리가 뭉쳐야 합니다.

학교를 지키려면 우리 모두가 뭉쳐야 되지 않겠습니까? 흩어지면 모두가 죽는 겁니다!”


“자네 말 잘 알겠네,

내일모레 일요일까지는 합의를 보도록 하겠네.

일요일 우리 마을에 결혼식이 있는데 그때 다들 모일 거니까 통장회의를 소집해서 마무리를 잘해보겠네,  

이 문제는 나한테 맡기고 자네는 더 이상 신경 쓰지 마시게!”


이제야 복잡하게 엉클어졌던 실타래가 하나씩 풀리고 있었다.

이제 곧 모교를 없애기 위하여 무지막지한 학교 통폐합꾼들이 쳐들어온다고 하지 않던가!

이 비상시국에 감정 대립이나 하면서 한가롭게 다투고 있을 시간적 여유가 없었다.

신속하게 내부의 갈등 구조를 청산하여 우리 모두의 아름다운 시골초등학교를 지켜내야 했다.           

반드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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