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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맥도강 Sep 15. 2023

총동문회 긴급이사회

시골초등학교 이야기 

설 연휴기간 닫아두었던 사무실 문을 활짝 열어젖히고 새해맞이 대청소를 시작했다.

먼저  화분들마다 물을 흠뻑 뿌려주고는 홀의 바닥은 밀대로 구석구석을 밀어준다.

테이블이며 소파며 책상은 물수건으로 깨끗이 닦아주고, 화장실은 하이타이를 풀어서 구석구석을 빡빡 문지른다.

그리고 호스에서 시원하게 뿜어져 나오는 물줄기로 대미를 장식했다.


대청소를 끝낸 후 개운한 마음으로 달달한 믹스커피를 음미하면서 조간신문을 뒤적이고 있다.

그러는 사이 오늘도 어김없이 사랑방 손님들이 몰려든다.

여느 날과 마찬가지로 곽 위원장이 손수 탄 커피잔을 들고서 맞은편의 소파에 앉았다.

“총동문회 긴급 이사회가 열리는 날이 번 주 금요일 맞제?”

읽고 있던 사설의 끝부분을 마저 읽은 후 다른 소파에 앉아있던 선배들에게 전해주고 왔다.

“고 총무가 11일이라고 했으니까 이번 주 금요일이 맞네!”

곽 위원장이 찻잔을 내려놓으며 신중한 말투로 말했다.

그전에 우리 운영위원들이 먼저 의논을 한번 해봐야 되지 않겠나?

우리끼리 핵심을 간추려 나야 중구난방이 안될 거 아이가!

“좋은 생각이네, 쇠뿔도 단김에 빼라고, 오늘 저녁에 밥이나 같이 묵을까?”

“그게 좋겠다. 고 총무한테 연락해 놓을 테니까 저녁에 바로 모이자!”


위원장은 근방에서는 꽤 솜씨 좋은 전기기술자로 알려져 있어 여기저기서 찾는 사람들이 많은 편이다.

아침부터 빨리 와달라는 독촉성 전화 때문에 커피를 마시는 둥 마는 둥 서둘러서 일어났다.

곽 위원장이 다녀간 후에도 이런저런 사람들로 온종일 사무실은 분주했지만 온통 사업과는 무관한 사랑방 손님들뿐이다. 

오늘도 어김없이 태양은 뉘엿뉘엿 서산으로  넘어갔고, 고 총무의 연락을 받은 멤버들이 하나둘 오향식당으로 모여들었다.


나중에 식사할 때 먹을 요량으로 한참을 고와야 제 맛이 우러나는 붕어매운탕을 미리 주문해 둔 상태다.

곽 위원장이 먼저 운을 뗐다.

우리가 먼저 핵심을 정리해서 동문회 긴급이사회 때 들고 들어가야 되지 않겠나?"

고 총무가 옅은 미소를 띠면서 거들기 시작했다.

“앗따! 우리 위원장님, 연구 많이 하신 모양이네, 행님 머릿속에 있는 거 애끼지 말고 쭉 한번 풀어보소!”

고 총무의 능청스러운 유도신문이 오히려 고맙다는 표정이다.

곽 위원장은 그동안 머릿속에 담아두었던 고심의 흔적들을 풀어내기 시작했다.

“내 생각에는 한 3년만 잘 버티면 될  같거든!

금년 말이면 그린벨트가 해제된 지도 5년째가 되기 때문에 지구단위계획을 1종에서 2종으로 변경시킬 수 있다고 하데!

내년 상반기 중에 지구단위계획 변경 절차를 밟는다고 봤을 때 내년 하반기부터는 아파트 건축도 가능하다는 거야,

부동산 쪽 업자들 말로는 아파트는 우리 동네에 공장들이 많아서 한번 해볼 만하다고 하데,

공장에서 일하는 사람들이 집이 없었어 이사를 못 오는 실정이라 사업성이 괞챦다는 거야,

많이도 말고 딱 한 동만 짓는다고 해도 벌써 몇십 세대가 들어온다는 말이 안 되나!

이래만 되면 내후년부터는 고정인구가 늘어나기 때문에 한 3년만 잘 버텨주면 될 것도 같은데! 어떻노?”


곽 위원장은 그동안 심혈을 기울여서 연구한 자신의 논리를 차분하게 설명했고 모두는 진지한 표정으로 듣고 있었다.

때마침 잘 고아진 붕어매운탕이 모락모락 김을 피우며 큰 냄비째 내어왔다. 다들 수저를 들고서 국물부터 한입을 먹어본다.

얼큰한 국물 맛이 제법 깊은 맛을 자아냈다. 살점도 탱탱한 것이 영락없이 맥도강의 붕어가 틀림없었다.

주인장에게 물어봤더니 오늘 낮에 맥도강에서 그물로 잡아온 붕어가 맞다고 했다.


위원장의 이야기는 본론을 향해서 깊숙이 들어갔다.

“일단 급한 불은 끄고 봐야 하지 않겠나!

교육청에서 볼 때는 2013년부터 복식수업을 피할 수가 없다고 했잖아?

특단의 대책을 세워서라도 우선 이것부터 막아내야 되겠는데, 일전에 국회의원이 우리한테 했던 말 생각나제?”

곽 위원장의 이 말에 '배운회'의 양 총무가 떨떠름한 표정으로 끼어들었다. '배운회'는 전직학교운영위원들의 친목모임이다.

“학교를 지키고 싶으면 우리 동문들이 자기희생에 가까운 노력을 먼저 보이라, 이지요!

생각해 보면 웃기는 말 아닙니까?

멀쩡하게 잘 살고 있는 마을에 지구단위계획을 개떡같이 만들어서 온통 공장지대로 만든 사람들이 누군데 지금 누구한테 훈계질을 하는 겁니까!"


곽 위원장이 쓴 미소를 지으면서  단번에 소주 한잔을 털어 넣었다.  

"뭐 우리도 할 말이 없는 거는 아니지만 어쨌든 그 말은 다음에 하도록 하고, 정리를 해보자면, 

첫째는 시내에 거주하는 우리 동문가족들 중에서 미취학아동을 찾아보고 동문회차원에서 입학운동을 전개하자는 거지”

이번에는 고 총무가 절레절레 고개를 가로저으며 말한다.

“그때 내가 염막 2구에 있는 아이의 아빠를 만났다 아입니까?

통학버스를 보내주면 몰라도 아이 혼자서 버스를 타고 통학을 해야 하는데 내가 들어봐도 안될 일입디더,

그렇다고 지금 우리 형편에 교육청에 통학버스를 요청하는 것도 말이 안 된다 아입니까?

동문회차원에서 통학버스 운행을 생각해 볼 수도 있겠지만 기사월급에, 보험료에, 유지비에, 돈이 한두 푼 들어가는 것도 아니고, 또 만에 하나 사고라도 나면 그 뒷감당을 누가 할 겁니까?

이거는 교육청에서 해야 할 일이지 우리가 감당할 수 있는 일이 아닙니더!

그런데 학교를 없애겠다는 마당에 교육청에는 말을 해보나 마나 아입니까!"


이쯤에서 곽 위원장은 그동안 아껴두었던 두 번째의 방안을 꺼내려고 했다.

"암만 생각해 봐지금 내가 말하는 번째의 방안 속에 우리 학교를 지키는 진짜 열쇠가 숨어 있을 것 같거든"

몇 순배의 술잔이 돌았던 탓에 다들 게슴츠레한 눈동자를 하고 있었다.

그런데 학교를 지키는 진짜 열쇠가 숨어있다는 곽 위원장의 이 말에 일행들의 두 귀가 쫑긋거리기 시작한다.

"동문회이사회는 방금 말한 첫 번째 방안만 공개하기로 하고, 지금 말하는 두 번째 방안은 우리끼리만 알고 있는 비밀로 했으면 하는데 무슨 말인지 알겠제?"

고 총무가 조급증이 났던지 재촉하듯이 큰 소리로 말했다.

"아따! 성질 급한 사람 진짜로 숨 넘어가겠네! 

뜸을 엉가이 들이고 빨리 보따리를 풀어보소?"


곽 위원장은 주변을 살피더니 무슨 기밀 이야기라도 하겠다는 듯 조심스럽게 말문을 열었다.

"이 마당에 교육청에서 셔틀버스를 지원해 줄 리도 만무하고, 현실적으로 통학문제가 해결이 안 된다면 결론은 퀸덤뿐이다 아이가"

고 총무가 장난기 서린 표정으로 오른손 엄지손가락을 치켜들면서 말한다.

"버킹검이 아니라 퀸덤이란 말이교?"

단번에 말뜻을 알아들은 양 총무가 웃으면서 말했다.

"그렇지요! 그쪽은 특성화 교육이 좋아서 일부러 찾아서 오는 엄마들이거든요,

서울로 치면 강남 엄마들 아입니까?

엄마들이 직접 자가용으로 실어 날라서라도 우리 학교로 보내려고 할 겁니다"


고 총무도 머리를 끄덕이며 제법 폼나게 한 번 더 오른쪽 엄지손가락을 치켜세우며  말했다.

"결론은 퀸덤이다 이 말이지요!

그래서 뭡니까? 퀸덤 엄마들이 몰려올 수 있도록 우리가 위장전입에 협조하자는 것 아입니까?"

곽 위원장이 잽싸게 말을 받았다.

"그래! 바로 그거야! 우리 학교로 입학할 원하는 아이들이 있을 때는, 아이를 우리 주소지의 동거인으로 등재시킬 수 있도록 협조를 해 주자는 거지!

연락 창구는 부위원장의 부동산사무실로 하면 안 되겠나!"

이때 고 총무가 실실 웃으면서 깐죽대듯이 말한다.

"위장전입하면 잡아갑니더!"

"걱정하지 마라! 잡혀가는 거는 나중에 내가 책임지고 잡혀갈 테니까. 일단 우리 학교부터 살려놓고 봐야 안 되겠나!

많이도 말고 한 삼 년만 잘 버티면 우리 학교는 아무 문제도 없을 테니까, 그때까지만 우리가 정신을 바짝 차리고 위기를 이겨내야 안 되겠나!"


수단과 방법을 떠나서 어떡하던지 모교를 사수하고자 하는 학교운영위원들의 열정은 밤이 깊을 때까지 식을 줄을 몰랐다.

자리를 털고 일어났을 때는 어느덧 자정이 임박한 캄캄한 한 밤중이었다. 

초롱초롱한 밤하늘의 별들조차도 아름다운 시골초등학교를 지켜내려는 사람들의 이야기가 궁금하다는 듯 귀를 쫑긋 거리고 있다.


드디어 긴급 이사회가 열리는 날이다.

위원장을 위시한 운영위원들은 다소 여유 있게 도착했지만 이십여 명의 동문회 이사들이 미리 와서 기다리고 있었다.

오늘 회의의 중요성 때문인지 동문선배가 운영하는 부자식당에서는 벌써부터 열기가 후끈 달아올랐다.

잠시 후 40여 명의 이사들로 대형 홀 안이 꽉 들어찼다.


모교의 통폐합에 대한 대응책 논의가 오늘 긴급이사회의 안건이다.

동문회 역사상 이보다 더 중요한 안건은 있을 수가 없었다.

오늘 자리를 함께한 동문회 이사들의 눈빛은 큰 전쟁을 앞둔 전사들의 모습처럼 뜨거운 투지로 이글거렸다.

그 분위기가 어찌나 뜨겁던지 시계는 밤 아홉 시를 가리키고 있었지만 어느 누구도 상위에 놓인 술병을 따는 이가 없었다.

회의는 주로 곽 위원장이 준비해 온 브리핑 자료를 토대로 진행되었다.

위원장은 교육청의 자료는 주민등록표상의 인구추이를 근거로 예측되었기 때문에 무턱대고 부정할 수는 없다고 말했다.

현실적으로 통폐합을 막아내려면 앞으로의 2,3년이 중요한 고비가 될 것 같다면서 2006년부터 2009년 사이에 태어난 미취학 아이들의 유입이 절실하다고 강조했다.

곽 위원장은 우리 동문 가족들 중에서 미취학아동을 찾아보고 우리 학교로의 입학운동을 전개하자고 역설했다.


학교운영위원장의 호소력 짙은 주장은 큰 호응을 얻었다.

오늘 논의된 다양한 방안들을 동문회 차원에서 신속하게 대응하기 위해서는 비상대책위원회의 출범이 필요함을 공감했다.

'학교사수 비대위'는 학교와 마을을 아우르는 범협의기구로서 동문회의 강력한 지원 속에서 통폐합을 저지하는 구심점으로 삼기로 했다. 

비대위의 구성 권한은 동문회장단에 위임되었다. 


이윽고 큰 전투를 앞둔 장비장군처럼 근엄한 목소리의 동문회장이 우렁차게 말하기 시작했다.

“모교가 폐교된다면 동문회가 어떻게 존재할 수가 있겠습니까?

이번 사태를 맞이해서 우리 동문회는 무조건 올인합니다!

모교를 존속시킬 수만 있다면 대체 우리가 못할 일이 뭐가 있겠습니까!

지금까지는 마을에 학교가 있다는 의미에 대해서 무심하게 생각했습니다만 오늘 우리는 아무나 학교를 가질 수 없다는 냉엄한 현실을 깨닫고 있는 중입니다."

박 회장의 시선이 의도적으로 골고루 분산되더니 오른손 주먹을 불끈 쥔 채 선동하듯이 말했다.

"80년을 이어온 자랑스러운 우리들의 모교입니다,

유구한 역사를 지닌 모교를 우리 대에서 문을 닫게 했다는 오명을 뒤집어쓸 수는 없지 않겠습니까!"

치켜뜬 장비 장군의 눈동자에서는 강력한 레이저가 발사되고 있었고, 그것은 흡사 포효하는 백두산호랑이를 닮았다.

"동문 여러분! 죽기 아니면 까무러치기밖에 더 하겠습니까!

우리 모두 죽을 각오로 모교를 지켜냅시다!"


박 회장의 감동적인 연설이 끝나자 사십여 명의 동문회 이사들이 일시에 자리에서 일어나 함성소리와 함께 열광적인 박수를 보냈다.

그 소리가 얼마나 우렁찼던지 식당의 지붕이 날아가고 벽채가 무너지는 듯했다.

동문회의 열정이 이러하다면 앞으로도 우리 마을은 학교가 있는 마을로서의 영광을 계속해서 누릴 수 있을 것 같았다.

호랑이에게 물려가더라도 정신만 바짝 차리면 살 수 있다는 말도 있지 않던가!

지금 우리는 아름다운 우리들 시골초등학교를 사수하기 위하여 전의에 불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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