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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맥도강 Sep 18. 2023

이 교장의 얼씨구절씨구

시골초등학교 이야기 

3월 중순, 도서관에서는 학부모총회가 열렸고 이 자리에서 새로운 학교운영위원들이 선출되었다.

고 총무가 승진하여 운영위원장을 맡았고, 잠시 쉬었던 배운회양 총무가 다시 합류하여 총무의 소임을 맡았다.

그 외 두 명의 새로운 위원이 합류했는데 모두가 우리 학교의 절친한 선후배 사이다.


이 교장은 일본 대지진으로 고통받고 있는 일본국민들을 위로하기 위하여 기리시마시의 교육청장과 시장에게 위로의 전문을 보냈다고 말했다.

벌써 19년째 우리 학교와 한일교류를 지속하고 있는 기리시마시는 다행히 아무런 피해를 입지는 않았지만

일본 열도가 큰 슬픔에 빠져있을 때 위로의 전문을 보내는 것이 도리에 맞다고 하면서.

그리고 ‘힘내요! 일본’이라는 주제로 우리 학생들이 손수 만든 작품으로 편지를 보낼 계획이라고 한다.

우리 아이들이 지금 열심히 준비 중이라고 하는데 참으로 세심한 교장선생님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이 교장이 이번에는 환한 표정으로 기쁜 소식을 전했다.

“위원님들, 기뻐해주십시오!

첫 번째로 기쁜 소식은 교육청의 예상보다도 우리 학교의 학생 수가 무려 네 명이나 늘었다는 사실입니다.

1학년, 2학년, 3학년, 5학년에서 각각 한 명씩 새롭게 전학을 왔습니다,

교육청의 예상치 보다도 무려 4명이 늘어나 이제 전교생이 68명으로 늘어나게 되었습니다.

두 번째로 기쁜 소식은 문광부 산하 기관인 한국문화예술교육진흥원에서 주관하는 ‘예술꽃 씨앗학교’ 공모사업에 우리 학교가 사실상 부산대표로 선정됐습니다.

최종결과만 남겨두고 있는데 선정이 확정되었을 경우 1년에 1억 원씩 4년간 총 4억 원의 예산을 지원받게 됩니다"


이 교장의 설명에 따르면, 내년이 일본 기리시마시 관내의 3개 초등학교와 ‘한일 친선 어린이 대사 우호의 날개’ 교류행사를 시작한 지 20주년이 되는 해다.

이때를 맞이하여 수준 높은 우리 학교의 사물놀이패가 일본 현지에서 성황리에 공연함으로써 우리나라의 우수한 문화를 소개하는 기획안을 제출했다고 한다.

최근에 실사단이 방문하여 내실 있게 운영되고 있는 한일교류행사를 꼼꼼하게 점검하고 갔다.

이 자리에서 수준 높은 우리 학생들의 풍물패 공연을 관람하고는 깊은 감명을 받았다고 실사평을 하더라는 것이다.

선생님들과 우리 학생들이 실사단의 마음을 얻기 위하여 한마음으로 노력한 결과라고 하는데 이 모두가 우리 학교를 지키고자 하는 애틋한 마음의 표현이라고 말했다.


이외에도 몇 가지의 기획안을 추가로 공모하여 그 결과를 기다리는 중이라고 했다.

문광부의 지원사업인 ‘문화로 행복한 학교 만들기’ 사업은 전국에서 열개의 학교만 선정한다는데 선정되었을 경우 학교당 5,000만 원의 예산을 지원한다고 다.

우리 학교의 동물원 앞 공터에 민속공원을 조성하겠다는 기획안으로 이 사업에도 응모를 해둔 상태라고 했다.

그리고 문화예술학교 지정 사업에도 응모를 해두었는데 선정될 경우 1,000만 원의 예산을 지원받게 된다는 것이다.


중요한 사실은 이 모든 기획안들이 이 교장의 지시가 없었음에도 선생님들이 알아서 자발적으로 추진하고 있다고 했다.

제각기 각종 정보와 자료를 수집하여 다양한 기획안을 스스로 준비한다는 사실에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바로 이것이 탁월한 CEO 한 명이 조직을 서서히 변화시키는 위대한 리더십임을 게 되었다.

그래서 세계굴지의 대기업들이 엄청난 연봉을 주면서도 능력 있는 CEO를 영입하기 위하여 그렇게들 혈안인 이유를 알 수 있게 했다.


3월 17일 오전 8시 29분, 집에서 출근준비를 하고 있을 때 한통의 문자 메시지가 배달되었다.

'배영초등학교  부산대표로 「예술꽃 씨앗학교」 선정! 4년간 4억 지원. 얼씨구절씨구!'

춤이라도 추고 싶을 정도로 얼마나 좋았으면 얼씨구절씨구 라는 표현을 써 가면서 이 시간에 문자 메시지를 보냈을까.

이렇게 생각하는 것만으로도 나도 모르게 가슴 한편이 뭉클해졌다. 

이날의 문자 메시지는 우리 지역의 많은 분들에게 동시에 배달되어 삽시간에 마을 전체에 알려지게 되었다.


고 위원장의 긴급 제의로 운영위원들이 사무실에 모였고, 여러 장의 현수막을 주문하여 도로변 곳곳에 게시하기로 했다.

잔뜩 기분이 고무된 고 위원장이 내친김에 본청 시설지원과의 수용 2팀으로 전화하여 우리 학교의 통폐합 담당인 성 주임과 통화했다.

다음 주 월요일 오후 두 시, 우리 운영위원들이 학교 통폐합 문제로 당신들을 만나러 갈 테니까 꼭 자리를 지키고 있으라고 일방적으로 통보해 버렸다.


우리 학교가 ‘예술꽃 씨앗학교’ 부산대표로 선정된 이후부터는 상황이 많이 달라졌다.

정부기관에서 주관하는 큰 문화사업에 우리 학교가 당당히 부산 대표로 선정되었다는 사실은 이래저래 부산교육청을 곤혹스럽게 만들었다.

부산을 대표하는 최고의 학교를 굳이 없애려는 부산교육청의 처사를 이해하지 못하겠다는 이야기들이 곳곳에서 터져 나오는 상황이었다.

부산교육청은 이제 정부에서도 인정해 주는 최우수 학교와 맞서 싸워야 하는 난처한 상황으로 내어 몰렸던 것이다.

이 모두가 이 교장을 비롯한 학교선생님들의 부단한 노력으로 빚어진 사건이었다.


학교를 사수할 수 있는 훌륭한 명분이 만들어졌다고 판단한 운영위원회는 통폐합 대상에서 우리 학교를 삭제해 달라고 다시 한번 더 부딪쳐보기로 했다.

무엇보다도 작년 연말, 두 지방지에 보도된 우리 학교의 통폐합 소식에 학부모들의 불안감날로 커져가고 있었다.

그래서 가만히 손 놓고 기다릴 수만은 없는 상황이었다.


위원장은 이 교장에게도 전화하여 운영위원회가 주관하는 ‘전체학부모 단합회’의 일정을 조율했는데 다음 주 금요일로 날짜가 잡혔다.

‘전체학부모 단합회’는 작년부터 시행된 제도로서 매년 학기 초, 운영위원회가 주관하는 대단히 의미 있는 행사였다. 

참석대상은 원하는 모든 학부모와 선생님들이었다.

속칭 치맛바람을 엄격하게 규제하는 대신 학기 초에 딱 한번, 원하는 모든 학부모들이 자신들 아이의 담임선생님과 공개적으로 식사할 수 있는 자리다.

이런 자리를 통하여 평소에는 말할 수 없었던 다양한 주제의 이야기들을 편안하게 대화할 수 있도록 배려하는 차원에서 만들어진 자리다.


이 행사는 이 교장의 특별한 당부로 엄격한 규칙이 있었다.

첫째, 일체의 비용은 운영위원회의 공식적인 비용으로만 충당할 것.

둘째, 일체의 주류는 금지할 것.

셋째, 정각 여덟 시까지만 행사를 진행하고 곧장 집으로 돌아갈 것.

넷째, 이 행사 외에는 학부모와 교직원이 함께 식사하는 자리를 일절 금한다는 원칙이었다.

이러한 특별한 자리가 마련될 수 있었던 것은 평등하고 공정한 교육을 실현하려는 학교운영위원회와 이 교장의 단호한 의지와 자신감이 반영된 결과였다.

작년에 처음 시도해 보았는데 학부모들의 반응이 의외로 뜨거웠던 관계로 올해부터는 아예 관례적으로 시행하기로 다.


학교를 지키기 위해서는 우리 엄마들의 의지 또한 대단히 중요하다.

사탕발림 같은 경쟁의 논리를 제시하면서 교육청 수용팀이 집요하게 물고 늘어질 상대는 어차피 우리 엄마들일 수 있다.

그들의 논리는 소규모 학교의 약점을 파고드는 지긋지긋한 경쟁의 논리일 것이다.

큰 학교에서 치열하게 경쟁하면서 교육을 받아야만 보다 좋은 대학에 갈 수 있다는 삭막하기 짝이 없는 경쟁의 논리말이다.

그래서 저들은 집요하게 우리 엄마들을 설득하려고 할 테지만, 아마도 이런 종의 삭막한 논리에 동의할 우리 엄마들은 없을 듯하다. 

치열한 마구잡이식 경쟁보다는 인성 함양을 지향하는 특성화 교육의 소중함을 이미 체험한 엄마들이었으니 말이다.

하지만 돌아가는 상황이 워낙 위중했으므로 함께 대화하면서 서로 간의 인식을 공유할 필요가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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