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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맥도강 Sep 20. 2023

또다시 전쟁이다

시골초등학교 이야기 

약속되었던 투를 치르기 위하여 또다시 부산교육청을 들이닥쳤다. 

성 주임과의 약속은 오후 두 시로 예정되었지만 우린 이미 삼십 분 전에 청사 앞마당에 도착했다.

시교육청은 학교 체육관 문제로 벌써 몇 번을 다녀간 터라 낯설게는 느껴지지 않았다.


본격적인 전투에 앞서 우선 1층의 민원실을 찾았고 준비된 청원서를 접수시켰다.

지난번에도 두어 차례나 청원서를 제출했지만 곧장 교육감실로 접수했던 관계로 청원에 따른 회신을 받을 수가 없었다.

이번에는 회신을 꼭 받아야겠다는 생각으로 민원실에서 발행해 주는 접수증까지 받아서 챙겼다. 

청원서는 한마디로 구구절절한 내용일색이었다.


'배영초등학교는 학생의 지속적인 감소가 예상되는 강서지역 3개 소규모 대상 학교에 포함되어 덕두초등학교로 통폐합될 예정이라고 합니다.

배영초등학교가 위치한 맥도마을과는 거리상으로도 4㎞이상이 떨어져 있고,

자전거 전용도로는 물론 보행로조차 없는 학교로의 통폐합을 결정할 때는 그만한 불가피한 사정이 있어야겠습니다.

그런데 본교를 폐교시키겠다며 내세우는 논리는 향후 학생 수의 감소가 예상된다는 추정 자료 한 장뿐입니다.

하지만 본교의 학생 수 추이를 보면 2009년에 70명, 2010년에 74명, 2011년에는 교육청예상으로는 64명이었습니다만

실제로68명으로서 예년에 비하여 큰 변화가 없는 실정입니다.

교육감님께서도 잘 아시는 바와 같이 저희 배영초등학교는 교장선생님을 비롯한 모든 교직원들이

우리 학생들을 위하여 열과 성으로 혼신의 노력을 다하고 있습니다.

그 노력과 능력을 평가받아 본교의 교장은 2008년 부산교육감이 선정한 ‘교장·교감 다채널평가 최우수교장’으로 선정되었고,

2009년에는 전국에서 단 3명만 선정하는 ‘아름다운 학교 경영자상’을 수상했습니다.

그리고 본교는 2010년에는 ‘전국 100대 교육과정 우수학교’로 선정되어 부산시교육감 표창을 받았고,

또한 ‘부산시 학교평가 최우수학교’로 선정되어 교과부장관 표창을 받기까지 했습니다.

우리 학교는 2009년에는 ‘국제교류 우수사례 경진대회’에서 금상을 수상했을 정도로

일본 기리시마시 관내의 초등학교들과 19년째 한일교류를 내실 있게 지속하고 있습니다.

또한 16년째 부산교육청 주관 사물놀이 경연대회를 휩쓸 정도로

실력 있는 사물놀이 풍물패가 활동하고 있습니다.

최근에는 ‘2011년 예술꽃 씨앗학교 지원 사업 운영학교’ 공모에서 부산 대표로 선정되어

매년 1억 원씩 4년간 총 4억 원의 문화예술교육활동비를 지원받게 되었습니다.

존경하는 교육감님, 설립된 지 80년이 넘은 유서 깊은 학교를 폐교시키고자 할 때는,

설립 당시 토지를 기부하고 교사를 지어주었던 우리 지역 고마운 분들의 뜻을 되새겨보아야 할 것이고,

3,000명이 넘는 본교의 졸업생들과 지역사회,

무엇보다도 우리 학생들과 학부모들의 마음도 고려해 보아야 할 것입니다.

고리타분한 과거 이야기는 불문에 부치더라도 과연 어떻게 하는 것이 우리 배영의 재학생들과 미래 배영의 새싹들을 위한 선택인지 고민한다면 그 결론은 자명합니다.

어떤 이들이 볼 때는 도시의 큰 학교들에 비해서 본교의 학생 수가 적다 보니 비효율을 말할 수도 있겠지만, 

저희 학부모들로서는 콩나물교실에서 수업하는 큰 학교들이 오히려 훨씬 비효율적이라고 생각합니다.

저희 학교는 한 반에 10명 내외의 학생들이 수업할 수 있는 여건이다 보니 선생님들도 보다 세밀하게 학생지도를 할 수가 있고,

다양한 특성화 교육프로그램을 시행할 수 있어 최적의 교육여건이 조성되고 있습니다.

존경하는 교육감님,

본교는 84년 학교 역사상 최근 몇 년간이 가장 전성기라 할 만큼 아무런 문제 없이 모범적으로 잘 운영되고 있습니다.

따라서 지역사회와 총동문회 그리고 우리 학부모들도 본교의 현실에 충분히 만족하며 부산에서 가장 모범적인 최우수학교라는 자부심으로 충만해 있습니다.

존경하는 부산교육감님께 본교의 모든 학부모들을 대표하여 청원합니다.

부디 본교를 부산교육청의 강서지역 ‘적정규모 학교육성 세부추진계획’에서 완전히 삭제하여 주시기를 간청드립니다.

                       2011년 3월 21일.

         배영초등학교 학교운영위원회 일동   


약속된 오후 두 시가 되어가자 4층에 위치한 교육지원과를 향해서 우린 발걸음도 용맹 무쌍하게 뚜벅뚜벅 올라갔다.

거대한 목문을 열어젖히자 천장에 매달린 수용 1,2팀이라는 팻말이 가슴을 짓눌러왔다.

이번에도 유심히 관찰해 보니 수용 팀에 소속된 직원들의 숫자가 족히 수십 명은 되어 보인다.

학교 통폐합에 대한 이들의 결연한 의지를 가히 짐작할 수 있게 했다.

수용 2팀으로 들어가니 성 주임이 우리 일행을 알아보고는 ‘배영에서 오셨죠?’라고 무표정한 얼굴로 말한  과장실로 안내했다.

작년가을 공 회장과 함께 방문하여 무려 네 시간이 넘도록 난상토론을 벌였던 그 원탁에 다시 앉게 되었다.

사이에 성 주임에게 민원실에서 접수시킨 청원서의 사본을 보여주며 먼저 읽어볼 것을 주문했다.


곧이어 안면이 많은 사람이 들어왔는데 우리와는 악연이 많았던 바로 김 사무관이었다.

자주 보니 정이 들었다는 표현이 맞을 것 같았다.

의도적으로 무척 반가운 표정으로 먼저 악수를 청했다.

“저 기억하시죠? 반갑습니다!”

“물론이죠, 왜 기억을 못 하겠습니까!

교육감님 앞에서 해서는 안 될 말씀을 하신 분 아니십니까?”

말은 이렇게 까탈스럽게 하고 있었지만 그자주 만나니까 정이 들었던지 오래된 친구를 만난 것처럼 표정만큼은 반갑게 맞이해 주었다.

먼저 성 주임이 말문을 열었다.

“이 청원서의 답변은 제가 해야 될 것 같은데요,

결론적으로 말씀드리자면 배영의 2014년 통폐합 계획을 지금 이 시점에서 삭제할 수는 없습니다!”

2014년이라는 말에 순간 머릿속에서 번개 하나가 퍼뜩 지나갔다.

“잠깐만요! 방 2014년이라고 하셨습니까? 2012년이 아니고요?”

김 사무관의 얼굴을 똑바로 쳐다보면서 말하자 그는 빙긋이 웃으며 답했다.

“예, 2014년으로 연기됐습니다!”


지난겨울, 우리들 앞에서 교육감이 했던 말이 떠올랐다.

당시 교육감은 동석했던 교육지원과의 박 과장에게 배영에 대한 통폐합 절차는 추후 학생 수의 변화추이를 봐가며 천천히 진행하라고 지시했었다.

그렇다면 당시의 교육감 지시사항이 지금 이행되고 있다는 말이 된다.

이것은 교육청으로부터 참으로 오랜만에 들어보는 기분 좋은 소식이었다.


다시 김 사무관을 노려보면서 말했다.

“그런데 당시 체육관 문제를 북부교육장과 강서구청장이 잘 의논해서 처리하라는 교육감님의 지시가 있었는데 부분은 왜 지시대로 이행되지 않은 겁니까?”

순간, 김 사무관의 표정이 일그러지기 시작하더니 마치 '오냐! 제대로 한번 붙어보자'는 투로 평소의  딱딱한 표정으로 되돌아갔다.

“그때 교육감님의 지시를 받고서 본청에서는 북부청에 바로 공문을 보냈습니다.

체육관 건립에 따른 부지사용의 허가를 통폐합 절차와 관련짓지 말고 북부교육장이 강서구청장과 잘 협의해서 처리하라는 공문을 보냈단 말입니다!

그런데도 여러분들은 지금 마치 우리 때문에 체육관을 못 짓게 됐다고 원망하고 있지 않습니까?”


당시의 사정을 잘 알고 있던 나로서는 즉각적으로  반응하지 않을 수 없었다.

“우리가 구청으로부터 받은 공문에는 분명히 북부청에서 구청으로 보낸 부지 제공의 불가 공문이 첨부돼 있었어요.

그 내용은 배영은 학생의 지속적 감소가 예상되는 강서지역 소규모 학교 육성계획에 포함되어 있어

부지제공을 했을 경우 향후 적정규모 학교 육성 추진에 지장이 있을 것으로 판단되어 부지 제공이 불가하다고요.”

김 사무관의 그 큰 눈동자가 이번에는 황소 눈처럼 더욱더 커졌목소리는 단번에 몇 단계의 톤으로 뛰어올랐다.

“우리 본청에서는 부지제공을 해주어도 무방하다는 공문을 보냈음에도 불구하고 북부청에서 불가공문을 구청으로 보낸 건 순전히 북부청이 내린 판단이라는 게 밝혀졌지 않습니까?

그런데도 여러분들은 지금 본청이 방해해서 체육관 건립을 못한 것처럼 생각하시고 계시지 않습니까!”

이 말에 나 또한 재차 발끈하지 않을 수 없었다.

“생각해 보세요? 상급 관청이 수립한 통폐합 계획을 철회하지 않았는데 하급 관청에서 어떻게 알아서 판단할 수 있단 말입니까!

상식적인 문제 아닙니까? 그만합시다!

오늘은 우리가 체육관 문제를 따지러 온 것은 아니니까 이 이야기는 이쯤에서 그만합시다!

작년 연말에 본교에 대한 학교통폐합 계획이 지방지에 보도된 이후 우리 학부모들이 현재 많이들 불안해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이 문제를 좀 풀어 주십사 부탁드리러 왔습니다.

우리가 누차 말하지 않았습니까? 우리 학교에 대한 교육청의 예상 수치가 잘못되었다고요.

금년만 하더라도 교육청에서는 64명으로 예상했지만 사실은 68명입니다.

앞으로도 60명 밑으로는 절대로 안 떨어집니다. 백번을 양보하더라도 복식수업은 어림 반푼어치도 없는 소립니다!”


이번에도 김 사무관이 즉각적으로 대응했다.

“다행입니다! 하지만 우리 청의 예상수치 자료는 강서구청으로부터 전해받은 주민등록표를 바탕으로 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실제에서는 전출입자가 있으니까 연간 몇 명의 차이는 발생할 수 있겠죠.

문제는 맥도 지역의 주변 환경으로 볼 때 주거 단지를 수립한다든가 하는 주택 정책의 획기적인 변화가 없는 한

지속적인 학생 수의 감소는 불가피할 것으로 우리 청에서는 판단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그 언론 보도라는 것도 도대체 누가 요청을 한 겁니까?

여러분들이 기자에게 요청해서 보도된 것 아닙니까?”


이번에도 난 거의 반사적으로 반응할 수밖에 없었다.

전교생이 무상으로 스키장에서 1박 2일로 방학식을 가지는 특색 프로그램이 있다는 것을 소개하는 의도였어요.

그런데 여러분들이 기자에게 2012년에 통폐합이 예정된 학교라고 말을 해서 초를 친 것 아닙니까?”

이번에도 김사무관은 잠자코 있지를 않았다.

여전히 그는 대단한 성정의 소유자였다.

“누가 기자에게 이야기를 했다는 겁니까!

우리는 그 당시 기자로부터 전화 한 통화도 받은 사실이 없습니다, 생사람 잡지 마십시오!

사실적으로 말하면 여러분들이 자충수를 두신 것 아닙니까!

여러분들은 학교를 홍보할 목적으로 기자에게 제보를 했겠습니다만 기자들이야 어디 그것으로 만족하는 사람들입니까!

좀 더 나은 기사 감을 찾으려고 파고들다 보니까 2012년의 통폐합 계획을 알게 된 거죠!

그리고 졸업식은 지난 과정을 회상하는 시간을 가지면서 엄숙한 분위기 속에서 해야 되는 것이지 스키장에서 1박 2일로 한다는 게 말이나 됩니까!”

“허참! 도통 이해를 못 하시네, 졸업식이 아니라 방학식이라니까요!

누가 졸업식을 스키장에서 한답디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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