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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맥도강 Sep 22. 2023

싸우러 갔다가 화해만 하고 돌아온 꼴!

시골초등학교 이야기 

“졸업식이나 방학식이나 매한가지입니다,

그것이 무슨 큰 자랑이라고 신문에 내셨다가 괜스레 문제만 더 악화시킨 것 아닙니까!

여러분들은 걸핏하면 특성화 교육을 말씀하시는데 사실적으로 말해서 진짜로 우리 학생들에게 필요한 것은 학습능력 아닙니까!

시내의 큰 학교 아이들은 서로가 경쟁의식을 가지고 열심히 공부하는데 온 신경을 집중하고 있습니다.

이 아이들하고 배영 아이들이 나중에 상급 학교에서 만났을 때 누가 앞서나가고 누가 뒤쳐지겠습니까!

과연 무엇이 우리 아이들의 미래를 위해서 필요한 교육정책인지를 가슴에 손을 얹고 한번 생각해 보십시오!”

“그래서 큰 학교에 흡수시켜서 오로지 학습 경쟁만 시키는 것이 우리 아이들을 위한 올바른 교육정책이라는 겁니까!

서로가 박 터지게 경쟁하면서 공부하는 것은 중학교 과정부터 하더라도 늦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초등학교는 인성 함양을 위한 교육이 우선돼야 하지 않겠습니까! 그래서 다양한 목적의 교육 프로그램들이 필요한 것이고요.

특성화교육은 콩나물교실보다는 10명 내외의 선진국형 교실에서 보다 효과적으로  시행할 수 있지요.”


불현듯 사람들이 소속된 부서 이름이 수용팀이라는 사실을 깨닫는 순간, 난 이 지루한 논쟁을 스스로 그만두게 되었다.

단지 이들은 저들의 직분에 충실할 뿐인데 이들하고 우리 교육이 나아가야 할 방향에 대해서 토론한다는 것이 얼마나 부질없는 짓인지  깨닫게 되었다.

김 사무관의 반론 이후에도 내가 더 이상의 재반론을 제기하지 않자 잠깐의 침묵이 흘렀다.

분위기가 다소 어색했던지 양 총무가 자세를 가다듬었다.

덩치가 있어 웬만큼만 폼을 잡아도 중압감이 느껴지는 양 총무가 성 주임을 똑바로 노려보면서 질문했다.

“통폐합 절차를 밟는다면 어느 단계에서부터 시작합니까?”


아직도 성 주임의 얼굴에선 우호와 비우호를 구분할 수 있는 어떤 표정도 읽을 수가 없었다.

“잘 아시겠지만 도시학교는 300명, 농어촌학교의 수용 계획은 60명 아래로 떨어졌을 때부터 시작합니다.

배영은 농촌학교에 해당되기 때문에 60명 밑으로 떨어지면 본격적으로 통폐합계획을 추진하게 됩니다!”

이 말에 심기가 다소 불편해진 양 총무의 목소리 톤이 살짝 높아졌다.

“우리 학교는 지금 68명입니다. 그래서 명단에서 빼달라는 겁니다!”

난감하다는 듯 성 주임이 시선을 잠시 옆으로 돌리더니 이내 자세를 바로 잡으면서 말했다.

“앞으로도 이 선만 계속 유지하신다면 5개년 중기계획이 끝나는 2015년경에는 요청하신 수용 계획의 삭제도 가능하겠습니다만 지금 단계에서는 곤란합니다.

저희들도 향후 세심하게 지켜보도록 하겠습니다!”


성 주임의 답변이 끝나자마자 숨 돌릴 틈도 없이 양 총무가 또다시 반격에 나섰다.

“좋습니다! 그럼 60명 아래로 떨어졌다고 가정했을 때는 도대체 어떤 절차를 진행하게 됩니까?”

이 말에 김 사무관이 이번에는 제법 여유 있는 표정으로 양 총무의 말을 받았다.

“절차의 가장 중요한 부분은 학부모들을 대상으로 하는 설명회입니다,

어느 것이 우리 학생들의 미래를 위한 방안인지를 허심탄회하게 토론하게 될 것입니다,

한번 생각해 보십시오! 복식수업이 진행되고 있음에도 학교를 고수하겠다고 고집부리는 것은 어른들의 탐욕 때문에 어린 학생들을 볼모로 삼겠다는 것 밖에 더 되겠습니까?”


김 사무관의 방금 이 말에 지금까지는 잠자코 듣고만 있던 고 위원장이 김 사무관을 빤히 쳐다보며 말했다.

“방금 복식수업을 말씀하셨는데 그렇다면 학교 통폐합을 추진하는 사실상의 마지노선을 복식수업으로 이해해도 되겠습니까?

교육청에서 볼 때는 2013년에 우리 학교의 복식수업이 예상되기 때문에 그다음 해에 통폐합을 하겠다는 것이겠네요?

좀 솔직하게 말해주십시오!”


이 대목에서는 김 사무관도 난감한 듯 잠시 고민하는 표정을 짓더니 이내 고 위원장의 물음에 답했다.

“두 학년을 합해서 10명이 안 될 경우 복식수업을 하게 되는데, 복식수업을 하면서도 통폐합을 반대하는 것은 다시 한번 말씀드립니다만 우리 아이들에게 큰 죄를 짓는 일이라 생각합니다.

현재 복식수업이 진행되고 있거나 향후 예상될 경우는 마땅히 통폐합의 대상이 됩니다. 위원장님 질문대로 마지노선으로 이해하시면 되겠습니다!”


한번 발동 걸린 고 위원장의 질문은 끝이 없었다.

“좋습니다, 그럼 만약에 복식수업이 진행되었다고 칩시다!

그래도 우리 학부모들이 반대하면 어떻게 됩니까? 강제로라도 학교 문을 닫게 합니까!

가령 취학통지서를 다른 학교로 발송한다든가 하는 조치를 말하는 겁니다!”

이 말에 김 사무관이 손 사레를 치면서 말했다.

“요즘 세상이 어떤 세상인데 강제성을 동원하겠습니까!

학부모들이 반대하신다면 결단코 강제로 통폐합 절차를 밟지는 않습니다,

그 부분에 대해서는 제가 보장합니다.

다만 동의를 구하기 위해서 충분히 설득시키는 과정이 길어질 수는 있겠죠.

하지만 학부모들의 의사에 반하는 정책을 무리수를 두면서까지 강행하지는 않습니다. 그 부분은 걱정 안 하셔도 됩니다!”


김 사무관의 이 말에 우린 가슴을 쓸어내렸다.

작년까지의 강경한 분위기와는 사뭇 달라진 분위기에 살짝 의아한 느낌이 들정도였지만 어찌 됐든 이 얼마나 다행스러운 말인가.

김 사무관의 방금 이 말이 사실이라면 이제 우리 학교의 보전문제는 한 시름을 놓을 수 있을 것 같았다.

마지노선이라는 복식수업도 우리가 조금만 더 노력한다면 얼마든지 막을 수 있는 문제다.

그리고 설사 복식수업이 진행된다고 하더라도 우리 학부모들이 동의하지 않는다면 강제적으로는 통폐합을 추진하지 않는다고 했다.

오히려 학부모들이야  아이들이 우리 학교를 졸업하지 못할까 봐 걱정하는 형편이니 조금도 염려할 일이 아니다. 

불현듯 이제부터는 얼마든지 우리 학교를 지킬 수 있겠다는 확신이 들었다.


시종일관 표정의 변화가 없던 성 주임이 답변서 작성에 참고할 테니 할 이야기가 있으면 충분히 더 하라는 친절한 주문까지 한다.

이 말에 고 위원장이 내심 하고 싶었던 이야기들을 차분하게 풀어나갔다.

그중에서도 타 학군에 주소지를 둔 예비 입학생들 중에서 우리 학교의 특성화 교육프로그램이 좋아서 입학을 원하는 경우,

주소지를 옮기지 않고도 입학이 가능한 방안을 물어봤던 것은 오늘대화의 백미였다.

김 사무관은 조금 전까지의 우락부락한 표정대신 친절한 음성으로 ‘초·중등교육법 시행령’ 제18조에 나와 있는 취학 학교의 변경 조항을 알려주었다.

아동의 보호자가 부득이한 사유로 지정된 학교 외의 초등학교에 그 아동을 입학시키고자 할 때에는 입학할 학교장의 승낙으로 입학이 가능한 조항이 있다는 것이다.

특히 이 대목에서는 우리를 감동 먹이기에 충분했다.

“잘 사용하시면 약이 되겠지만, 급하다고 잘못 사용하시면 독이 될 수도 있습니다.

제 말 이해하시겠죠? 이 점을 유념하시기 바랍니다!”


순간, 김 사무관이 달리 보이기 시작한다.

그동안 가지고 있었던 김 사무관에 대한 여러  부정적인 시각들이 삽시간에 눈 녹듯이 사라졌다.

충격적 이게 지금 이 사람은 우리를 진심 어린 마음으로 도와주려고 했다.

찬찬히 다시 생각해 보니 이 사람은 단지 자신의 업무가 소규모학교의 통폐합 업무다 보니 거저 자신의 직분에 충실했을 뿐이다.

일체의 편견을 내려놓고 세심하게 뜯어보니 인간적으로는 그다지 나쁜 사람이 아니었다.

싸우다 보니 정이 들었다고 불현듯 이 사람과 함께 언제 소주 한 잔을 하고 싶다는 생각이 스쳐서 지나갔다.

“우리 언제 자갈치시장에서 곰장어에 소주 한 잔 합시다!

연락드릴 테니 핸드폰 번호가 어떻게 되시는지?”

이 말에 또다시 빙긋이 웃는 모습이 영락없이 내가 좋아하는 우리 동네의 후배 모습을 퍽이나 닮았다.

그래서 더더욱 정감이 갔다.


“저는 여러분들과 소주를 마실 이유가 없는 사람이고요,

저에게 연락하실 공무가 계시면 사무실로 전화를 주시면 됩니다,

솔직히 말해서 저 개인적으로는 맥도분들은 참으로 마음이 대다는 생각이 듭니다.

저도 공무상 많은 분들과 대화를 나눕니다만 여러분들처럼 참으로 마음이 대다는 느낌을 가지는 분들은 없었습니다.

어쨌든 우리도 우리 학생들의 미래를 위해서 일하는 사람들입니다. 너무 미워만 하지 마십시오!”

장시간의 대화를 마치고 자리를 털고 일어났을 때 김 사무관은 복도까지 따라 나와서 정겨운 표정으로 우리를 배웅해 주었다. 


계단을 내려와 청사 앞마당에 이르니 싱그러운 봄 냄새가  몰려오는 기분이다. 

사실 우리 학교의 체육관 문제만 해도 그렇다.

학교 통폐합 문제만 해결된다면 굳이 교육청에서 반대할 이유가 없는 일이 아닌가,

구청에서도 부지문제만 해결된다면 언제든지 예산을 지원해 주기로 약속이 되었으니 이 문제만 해결된다면 언제라도 가능한 일이다.

우리 학교에 실내체육관을 건립하는 문제는 어떤 일이 있어도 포기할 수 없는 일종의 숙명 같은 것이다.

문제는 빠른 시일 안에 소규모 학교의 통폐합 대상 명단에서 우리 학교를 빼낼 때만이 가능한 일이다.


돌아서서 청사 건물을 다시 한번  힐끗 쳐다보았을 때 진심 어린 마음으로 도움을 주려고 했자그마한 키의 교육감이 떠올랐다.

체육관건립이 무산되었을 때는 교육감의 지시사항이 제대로 이행되지 않은 부분에 대한 원망의 마음이 들었던 것도 사실이었다.

하지만 이제 그 생각마저도 썰물처럼 깨끗이 떠밀려간다.

아니 오히려 우리들과의 약속을 지켜주기 위하여 애써준 흔적을 오늘에서야 알게 되었으니 새록새록 고마운 마음마저 피어났다.

오늘 우리는 본격적으로 싸울 각오로 적진으로 쳐들어왔다가 싱겁게 화해만 하고 돌아가는 아주 기분 좋은 꼴이 되고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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