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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맥도강 Sep 25. 2023

시골초등학교 파이팅!

시골초등학교 이야기 

마을입구에는 우리 마을의 내력이 기록된 비석이 우뚝 서있다.     

 

'서기 1800년대 말 경부터 무인도였던 갈밭을 개간하여 한 집 두 집 이주 정착하였다.

빗물만 바라고 농사를 지었으나 홍수, 해일 등으로 벼농사는 물론 일반농작물도 옳은 수확을 거두지 못하였다.

보리농사만은 큰 어려움 없이 옳은 수확을 얻게 됨을 깨닫고 보리증산에 힘써서 차츰 생계안정이 이룩되어 갔음에 ‘보리농사가 잘되는 섬’이라 하여 맥도(麥島)라 이름하였다.

서기 1935년경 낙동강 둑이 축조되어 바닷물을 막으니 맥도강 일원이 담수로 채워지면서 안전낙토로 바뀌어 수도작을 비롯하여 토마토, 상치 등 시설원예작물의 최대 생산지가 되었다.

개척 당시의 조상님 음덕 기리 되새기며 경로효친 정신 더욱 숭상하여 아름다운 고장으로 가꾸어 가야 하리라'

   

드디어 그동안 미뤄 두었던 ‘50주년 기념 맥도리체육대회’의 일정이 6월 둘째 주 일요일로 잡혔다.

자연마을단위의 체육대회로 우리 마을전국에서 유일하게 그 명맥을 유지해오고 있을 정도로 마을 사람들의 자부심이 대단하다.

그런데 작년에는 마을전체가 극도의 피로감에 휩싸이는 특별한 사정으로 인하여 50년 만에 딱 한번 행사를 건너뛰게 되었다.

그런 만큼 올해의 50주년 행사는 더욱 성황리에 치러내자며 마을 사람들의 의욕이 대단했다.


오전 시간을 이용하여 공 회장이 잠시 들렀다.

“아무리 생각해 봐도 한이 맺혀서 안 되겠네!

학교 체육관 말이야, 우선 아쉬운 대로 한풀이라도 좀 해야 되지 않겠나?”

공 회장의 이 말에 동병상련의 심정으로 가슴 한가운데가 해지면서 다음 말을 기대하며 잔뜩 궁금한 표정이 되었다.

“무슨 좋은 방안이라도 계십니까?”

“요 며칠 내가 곰곰이 생각해 봤는데 말이야, 

목련관을 좀 넓혀서 개조한다면 웬만한 강당 하나는 만들 수 있지 않겠나 하는 생각이 들더란 말이야, 

그 생각 때문에 요새는 도통 잠을 이룰 수가 없었는데 어떻노? 내 생각이? 

그래놓으면 실내체육관만치는 못해아쉬운 따나 웬만한 행사는 다할 수 있을 것 같은데,

졸업식이나 학예발표회 같은 학교행사도 할 수 있을 거고 우리 동문회 정기총회 같은 행사도 할 수 있지 않겠나?

그렇게라도 해놔 학교 체육관 때문에 맺힌 이 가슴속의 한이 좀 풀릴 것 같은데,

내 생각이 어떻노? 말이 되겠나? 안 되겠나?”


가만히 듣고 보니 공 회장의 아이디어가 일리가 있었다.

기존의 목련관이 8m×15m로서 36평가량이 되니, 북쪽으로 15m 만 더 늘릴 수 있다면 8m×30m로서 70평을 웃돌게 된다.

이 정도의 면적이면 40평가량인 기존의 도서관보다도 절반이상이나 면적이 더 나오기 때문에 

아쉬운 대로 대강당의 역할을 수행하는 데는 큰 무리가 없을 것 같았다.

생각이 여기에까지 이르자 오후에 교장선생님을 만나게 되면 진지한 상의라도 한번 해봐야겠다는 생각으로 

‘목련관 개조 → 대강당’이라고 수첩에 메모해 두었다.


저녁시간, 예고되었던 ‘전체학부모 단합회’에 참석하기 위하여 고 위원장과 함께 미리 예약된 식당으로 들어갔다.

곧이어 이 교장을 비롯한 교직원들이십오 명 안팎의 학부모회 소속 엄마들이 자리를 가득 채웠다.

이 교장의 특별한 당부로 만들어진 네 가지의 규칙을 지키기 위하여 이번에도 주류는 일절 준비하지 않았다.

메뉴도 가장 저렴한 돼지목살로 된 단일 메뉴로 준비되었고, 예정된 행사시간은 단 두 시간 동안인 여덟 시까지로 정해졌다.


본 행사에 앞서 맞은편의 이 교장이 가벼운 사담을 시작했다.

“오늘 주민자치센터에서 진행하는 행사에 들렀다가 공 회장님을 뵈었는데요, 

하시는 말씀이 목련관을 좀 키워서 강당 대용으로 사용할 수 있는 방안을 찾아보자고 하셨습니다.

그래서 제가 그랬습니다! ‘공 회장님은 언제 제 머릿속으로 들어왔다가 가셨습니까?’라고요.

그렇잖아도 사실은 저도 며칠 전부터 목련관 쪽을 유심히 관찰하면서 어떻게 대강당으로 개조해 볼 방안이 있는지를 고민해보고 있었거든요!

아쉬운 대로 우리 도서관 크기의 딱 절반만이라도 더 컸으면 하는 마음으로 그림을 이렇게도 그려보고 저렇게도 그려보고 있었습니다.

이렇게라도  해서 우리 동문님들의 학교 체육관 때문에 쌓인 원한을 좀 풀어드려야겠다고 생각하고 있었는데

마침 공 회장님이 그렇게 말씀을 하시니까 제가 깜짝 놀랐던 겁니다!

그래서 이심전심이라는 말이 생긴 모양입니다!”


옆자리에서 고기를 굽고 있던 고 위원장이 자기도 생각해 둔 바가 있다는 듯이 살며시 끼어들었다.

“정확한 견적은 내어봐야겠습니다만 기존의 목련관을 약간만 보완해서 확충하는 작업이라면 경비는 그렇게 많이 들지는 않을 것 같습니다.

사실은 오늘 점심때 부위원장 행님한테 이 이야기를 듣고는 성질 급한 내가 곧바로 동문회장님을 만났다 아입니까?

회장님은 그 정도는 건축업에 종사하는 우리 동문들이 다 해결할 수 있으니까 아무 걱정 하지 마라고 하데요.

손에 흙 묻히는 요번 참에 아예 비품창고하고 화장실도 옆에 달아서 하나 더 지어주겠다고 합디다.

교장선생님 승인만 떨어지면 5월 말까지는 깨끗하게 마무리짓겠다고 하면서 아무 걱정 하지 마라고 하데요!”


어쩌면 동문회 박 회장의 시원시원한 성격 탓에 올봄이 다 가기 전까지는 우리 동문들의 학교 체육관 때문에 쌓인 원한이 다소나마 풀릴 수도 있을 것 같았다.

그런데 정작 그 누구도 절차상의 문제를 걱정하는 이는 없었다.

우리 학교를 거쳐간 교장선생님들 가운데는 운동장의 나무 한그루 옮기는 것도 일일이 교육청의 허가를 받아야 한다며 손사래를 쳤었다.

그런데 통폐합이 추진되고 있는 학교에서 교실 두 칸 크기의 증축공사를 교육청에서 쉽사리 허락할리 없다는 것은 상식에 속하는 문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행정적인 문제를 걱정하는 이가 없었다는 사실은 그만큼 이 교장에 대한 신뢰가 깊다는 반증이었다.


오히려 이 교장의 대답이 걸작이었다.

"학교를 위한 동문 여러분들의 아름다운 마음에 격한 감동이 몰려옵니다,

고맙습니다! 아무 걱정 마시고 그렇게 진행하시지요!"   

이렇게 하여 동문회와 지역사회 그리고 이 교장까지 가세하는 목련관의 은근슬쩍 증축 공사는 강행되었고,

지금 현재까지도 우리 아이들과 지역사회의 훌륭한 실내체육관으로서 그 역할을 톡톡히 해내고 있다.
 

사이다를 술이라 생각하면서 한잔씩 하자며 이 교장이 우리들에게 잔을 가득 채워주었다.

“대구교육청에서 대구 시내 초등학교 교장들을 상대로 특강을 해줄 강사를 우리 부산교육청에 요청했던 모양입니다.

때로는 자기네들 말을 고분고분하게 잘 안 듣는다며 제가 미울 때도 있겠지만,

이럴 때는 또 제가 필요했던지 교육청에서 저를 특강강사로 추천했다는 소식을 접했습니다.

예술꽃 씨앗학교 선정으로 부산을 대표하는 학교가 되었으니 우리 학교의 주가가 상당히 올라갔다고나 할까요?”

이 말에 우린 다 같이 흐뭇하게 웃게 되었는데 마치 십 년 묵은 체증이 시원하게 내려가는 통쾌한 느낌이라고나 할까?


잠시 뒤 본격적인 행사진행을 위하여 양 총무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식순에 의해서 고 위원장과 학부모회장의 인사말이 있었고,

마지막 순서로 이 교장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여전히 눈에는 안대를 붙이고 있었, 

등산용 지팡이를 목발 삼아서 서있었다.

“오늘 대저2동 주민자치센터에 볼일이 있어 들렀다가 체육관추진위의 공 회장님을 뵈었는데 하시는 말씀이,

경찰서 정보과에서 우리 학교에 대해서 이것저것을 꼬치꼬치 물어보더라는 겁니다.

예술꽃 씨앗학교 선정을 축하하는 현수막들을 마을곳곳에 붙여놓은 것을 보고는 그러더라는 겁니다.

무슨 놈의 조그마한 시골학교에 매년 1억씩 4년 동안 4억이나 지원을 해준다는 것인지 뭔가 좀 상하다고 말입니다.

그래서 제가 오늘 퇴근할 때 우리 학교에서 경비를 서시는 분한테 특별히 부탁말씀을 드렸습니다.

오늘부터 우리 학교에 도둑이 들 수도 있으니 경비를 철저히 서시라고요!”


이 교장 특유의 재치 있는 입담에 홀  가득 함박웃음소리가 터져 나왔다.

“어제는 행사를 주관하는 문광부의 설명회에 참석하기 위해서 서울을 다녀왔습니다. 

설명회에 참석한 후에야 우리 학교가 얼마나 대단한 일을 해내었는지를 알 수 있었습니다.

심지어는 대통령께서 학교를 방문하실 일이 있을 때도 예술꽃 씨앗학교에 선정된 학교들 중에서 한 곳을 택해서 가실 정도라고 합니다.

그런 만큼 전국 최고의 학교들만 선정한다는 본 사업에 본교가 당당하게 부산 대표로 참여하게 되었다는 사실에 크나큰 자부심을 느낍니다.

이 모든 영광을 본교의 학부모님들께 돌리는 바입니다.

각 시도를 대표하여 선정된 전국의 16개 학교가운데는 우리보다도 학생 수가 적은 전교생이 50명밖에 안 되는 학교가 세 학교나 있었습니다.

이를 보더라도 교육에서 중요하게 생각해야 되는 가치는 단순한 양적 수치에 의한 평가가 아니라,

이를 극복한 수준 높은 양질의 교육임을 알 수 있습니다.

졸업 후 우리 학생들이 진학하는 경일중학교의 교장선생님은 저만 보면 늘 감사하다고 말씀 하십니다. 

그 이유는 가르쳐보면 인근의 초등학교들 중에서 우리 배영 아이들이 가장 우수하다는 겁니다.

이것은 인성 함양뿐만 아니라 학습 능력까지도 가장 우수하다는 입니다.

그래서 수준 높은 양질의 교육을 이수한 학생들을 매년 보내주어서 고맙다고 하면서 저에게 깍듯이 인사를 하고 있습니다.

작년에 교과부에서 주관하는 학습능력평가에서도 우리 학교가 평균치를 상회하는 우수한 성적을 거두었습니다,

특히 연속해서 단 한 명의 낙제자도 발생하지 않았다는 사실에 대해서는 큰 성과로 생각하고 있습니다,

이것으로 도심지의 큰 학교들에 비해서도 우리 학교가 한 치의 부족함도 없음이 확인되었습니다.

우리 학교는 초등학교 6년의 과정 동안 다양한 특색프로그램을 체험함으로써 자라나는 아이들에게 꼭 필요한 인성 함양을 위한 교육에 중점을 두고 있습니다.

그러면서도 충실한 학습프로그램을 뒷받침함으로써 사교육이 필요 없을 정도의 학습능률을 지원하기 위하여 최선을 다하고 있습니다.

인성함양과 학습능률!

이 둘이 조화를 이룬다면 최고의 교육적 가치를 실현하는 것으로 볼 수 있는데 그동안 우리 배영은 이 조화로운 교육적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서 열심히 노력해 왔습니다.

그리고 이제 그 결실을 맺게 되어 영광스럽게도 나라 안에서도 인정받게 되었습니다.

이러한 훌륭한 업적에 대해서는 특히 우리 학부모님들께서 큰 자부심을 가져주시기를 당부드립니다.

이렇게 아름다운 학교를 오래도록 보전하기 위해서는 우리 학부모님들의 자부심이 꼭 필요하기 때문입니다. 고맙습니다!”


여덟 시 정각, 우리 모두는 아쉬운 자리를 뒤로한 채 자리에서 일어났다.

모두들 이 교장이 심어준 자부심 때문에 배가 불러서 제대로 걸을 수조차 없다는 표정들이다.

밝게 웃고 있는 우리 엄마들의 표정에서는 전국 최고의 학교에 우리 아이들을 보내고 있다는 자부심으로 충만해 있었다.

지나온 우리 학교의 팔십여 년 역사만큼이나 앞으로도 족히 백여 년을 더 이어나갈 수 있는 역동적인 힘이 느껴진다.

시골초등학교 파이팅이다! 

아름다운 시골초등학교 배영 파이팅!!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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