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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맥도강 Jun 08. 2024

얻고자 한다면 버려라!

사과대추나무 농사에서 가장 중요한 농작업 딱 하나를 꼽으라면 5월 중순즈음 실시하는 순치기를 지목하는 농부들이 많을 정도다.

사정이 이러함에도 어설픈 겸업농부는 묘목을 식재한 지 십 년 차가 되도록 순치기가 무엇에 사용하는 물건인지도 몰랐으니 더 이상 무슨 말이 필요할까?


기왕 하는 거 똑바로 하자는 슬로건 하에 이번에는 작심을 하고서 순치기의 계절을 기다려왔다.

하지만 암만 생각해 봐도 5월 중순의 어리디 어린 새순가지들을 상대로 살려둘 놈들과 솎아낼 놈들을 판단할 엄두가 나지 않았다.


그래서 어린 새순가지들의 방향성이 확인될 때까지 2주가량을 더 기다려준 후 드디어 순치기 작업에 돌입했다.

제법 두툼한 두께의 온코팅 장갑을 착용했지만 부지불식간에 터져 나오는 비명소리는 그칠 줄을 모른다.

남들처럼 적기에 시작했더라면 가시에 찔리는 고통은 덜 수 있었겠지만 경험이 일천한 초보자로서는 통과의례라 생각하며 감내할 수밖에 없었다.


이제 갓 6월로 접어들었지만 온종일 한여름 못지않게 내리쫴는 강렬한 햇빛이 부담스러울 지경이다.

무더위에도 불구하고 벌레의 공격에 대비하여 완벽한 채비를 마친 후에야 작업장으로 나설 수 있었다.

창 넓은 모자에 긴바지와 긴 셔츠, 목에 두른 등산용 수건까지 몸전체를 옷감으로 완전무장했지만 어처구니없게도 무지막지한 녀석들의 공격에는 허술하게 뚫리고 말았다.


'그 참! 처음부터 긁지 말았어야 했는데… 

가렵더라도 참았어야 했는데…'

그런데 그게 어디 쉬운 일이던가!

처음에는 가슴부위를 중심으로 벌겋게 솟아오르던 두드러기가 점차 배와 목부위까지 흉측스럽게 확산되어 갔다.

다음날 부리나케 달려간 피부과에서 처방해 준 연고와 알약을 하루에도 몇 번씩 바르고 삼키고서야 겨우 안정을 찾아가는 중이다.


눈에 잘 보이지도 않는 작은 벌레 한 마리가 안겨다준 달콤했던 삼 일간의 휴식이 끝나자 미처 끝내지 못한 고된 작업을 다시 이어가고 있다.

농부의 욕심으로 크고 달콤한 열매를 얻고자 한다면 뻗어나갈 수 있는 방향성이 확인되는 몇몇 가지들만 남긴 채 나머지는 과감하게 잘라주어야 한다.


주변 가지들을 충분히 솎아주어야만 살아남은 가지들이 햇빛과 영양분을 충분히 공급받을 수 있어 달고 튼실한 열매를 수확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것은 동서고금의 진리일진대 애꿎은 태풍을 탓하며 몇 년 동안 열매구경도 못하고 있었으니 이런 얼치기 농부가 어디 있단 말인가?


열매구경조차 할 수 없었다는 말은 사실은 햇빛농사에 실패했다는 말이고, 이것은 곧 농부의 의무사항인 동계전지와 새순가지의 순치기를 소홀히 했다는 뜻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냅다 퇴비만 퍼부을 생각을 했으니 암만 생각해도 기가 찰 노릇이었다.


순치기를 진행하면 할수록 올해 새로 돋아난 새순가지들의 마음을 알아가는 중이다.

새순가지들이 단지 살아남기 위하여 햇빛경쟁에 내몰리는 열악한 상황이라면 번식에 대한 열망이 생길 리 만무하다.

이럴 땐 농부의 정성 어린 손길로 주변 환경을 쾌적하게 만들어주어야 한다.

그제서야 새순가지들은 영양성장 대신 생식성장을 할 수 있는 마음의 여유가 생기는 법이다.

새순가지의 마음을 이해함으로써 오늘날 우리 사회가 안고 있는 저출산의 해법에 대해서도 함께 고민해 보게 되었다


무슨 일이 있더라도 올해는 기어이 크고 탐스런 열매를 수확하고야 말겠다는 일념 하나로 고된 작업에 임하고 있다.

가능하면 시원하게 가차 없이 열매순들과 경쟁가지들을 솎아내려고 하지만 그런데 이게 말처럼 쉽지가 않다.

최대한 많이 비울수록 살아남은 새순가지들이 충분한 량의 햇빛을 차지할 수 있을 텐데 그놈의 오래된 타성이 문제다.

따지고 보면 비움의 철학을 실천할 수 있는 도량의 부족 때문이겠지만 온통 머리 따로 몸 따로 제각각이다.

그래서 생각해 낸 방법이 작업을 끝낸 라인으로 다시 돌아가 한 번 더 쳐내는 방식인데 이러니 어떻게 속도가 날 수 있겠는가?

물론 어설픈 겸업농부가 어찌 하루아침에 완벽한 프로농부가 될 수 있을까마는 올해보다는 내년이 내년보다는 내후년이 조금씩이라도 진일보한다면 그것으로 만족할 뿐이다.


남들은 끝순을 따주는 적심이 한창일 때가 되어서야 겨우 순치기 작업을 마칠 수 있었고, 영광의 상처는 깊고도 다양했다.

잔인하게도 와이프가 핀셋으로 손가락을 후벼 파고 있는 사이 억지로 비명을 참느라 몸을 비트는 고통을 견디고 있다.

그럼에도 너무 깊숙이 박힌 탓에 빼낸 가시는 고작 하나뿐, 어쩔 수 없이 다음날 또다시 피부과를 방문하여 얼치기 농부의 민원을 해결할 수밖에 없었다.

  



잘라도 잘라도 정말이지 징글맞게 올라오는 챔피언감으로는 칡능쿨을 말하지 않을 수 없다.

몇 년 전 은근슬쩍 뿌리를 내리기 시작하더니 이제는 완전히 사철나무 울타리를 점령해 버렸다.

그동안 며칠간격으로 줄기를 잘라낸답시고 별 소득도 없는 공방전을 벌였지만 따지고 보면 아무 소용도 없는 헛수고였을 뿐이다.


그나마 왕사철나무의 수세가 워낙 왕성하여 아직까지 고사되지는 않았지만 더 이상은 쉽지 않은 상황이었다.

훌쩍 3미터를 넘어서는 왕사철나무의 키를 넘어서 그 옆의 매실나무들까지 침범하는 사태 앞에서는 마지막 결단을 내려야 했다.


매번 울타리를 넘어오는 줄기를 상대로 싸우는 것은 임시방편이었을 뿐이다.

이번에는 사철나무 건너편의 칡능쿨 뿌리를 직접 공략할 작정으로 경험 많은 유튜브가 시키는 대로 하나하나 장비를 챙기기 시작했다.

전동톱과 전동전지가위, 비닐랩 한 묶음, 고독성 제초제를 담은 분무기를 챙겨 들고 한 번도 가보지 않았던 저 건너편의 적진으로 뛰어들었다.

역시 예상했던 대로 뿌리와 맞닿은 밑줄기의 굵기는 그야말로 야구방망이 수준의 대물들이었다.

사철나무의 울타리 밑부분을 세밀하게 한 놈 한 놈 살펴보니 족히 열뿌리도 넘는 엄청난 대군이 진지를 구축하고 있었다.

이런 놈들을 상대로 고작 울타리를 넘어오는 줄기나 자르고 앉았으니 한마디로 기가 막힐 노릇이었다.


'이놈들 오늘이 너네들 제삿날이다!'

전통톱을 들고 광란의 굿판을 벌이려는 바로 그때였다.

직감으로 살기(殺氣)를 느꼈던지 대물의 뿌리에서부터 으스스한 냉기가 뿜어져 나오는 사이 인정사정없이 뿌리의 밑동을 잘라버렸다.

마치 그 옛날 망나니들이 죄수의 목을 날린 후의 그 느낌 그 기분, 그러니까 쾌감과는 또 다른 차원의 묘한 기분이 몰려왔다.


그다음 순서는 가히 잔인함의 끝판왕이었다.

뿌리까지 고사시킨다는 고독성의 제초제를 잘려나간 뿌리의 밑동부위에 무차별적으로 투하했는데  

땅속에서 옹아리를 틀고 있을 거대한 뿌리를 겨냥한 정교한 마무리작업이었다.

그러고도 뭐가 부족했던지 제초제를 가득 담은 비닐랩으로 밀봉하여 케이블타이로 묶어버렸다.

우와 인간이 이렇게까지도 잔인할 수 있다니!


이른 아점부터 시작한 칡능쿨 고사작전은 어둑어둑한 저녁이 되어서야 마무리되었고 의심의 여지없는 대성공으로 평가되었다.

그랬는데 그랬는데! 어찌 된 판국인지 요사이 또다시 슬금슬금 삼팔선을 넘어오는 칡능쿨이 관찰되기 시작했다.

대작전 때는 미처 발견하지 못했던 소규모의 진지들을 찾아내어 이전과 동일한 방식으로 공격을 가하고 있지만 매번 그때뿐이었다.

며칠후면 또다시 고개를 치켜드는 놈들이 지속적으로 매일매일 관찰되었다.


대물들은 거진 고사시켰지만 끝도 없이 솟꾸치는 질긴 생명력 앞에서 이제는 거진 기진맥진상태다.  

특히 비라도 내린 이후라면 기절초풍할 정도로 어마무시한 량의 칡능쿨들이 이쪽 진영으로 넘어온다.

'저 귀신같은 놈들을 상대로 과연 이길 수나 있을까'

의기양양했던 한때의 자신감은 온데간데없고 잘라도 잘라도 끝이 날 것 같지 않은 이 지루한 전쟁이 이제는 슬슬 무서워지기 시작한다.




요사이는 과년한 우리 딸아이의 주문사항에 대응하느라 헉헉거리는 입장이다.

나의 기준에서는 아직도 멀쩡한 물건이지만 이것도 버려라! 저것도 버려라! 심지어는 멀쩡한 이것도 뜯어라! 저것도 뜯어라!

주문사항들이 가히 탐탐 치는 않지만 새로운 사람을 선보이기 위한 사전 작업인가 싶어 웬만하면 요구에 부응하는 편이다.

 

그런데 딸아이의 주문대로 자꾸만 비우고 철거하다 보니 내가 봐도 집의 안과 밖이 많이 달라졌다.

오래된 물건을 끌어안고 살았을 땐 모두가 필요한 물건이라 생각했지만 막상 비우고 나니 훨씬 여유로워진 느낌이다. 

나뭇가지도 사람도 비워야 채울 수 있는 법이거늘 빈 공간의 소중함을 알게 된 소중한 경험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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