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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맥도강 Jun 28. 2024

다시 시작된 아름다운 이야기

시골초등학교 이야기 2

주민체육대회에서 불쑥 튀어나온 한마디가 기어이 가슴속에 묻어두었던 불씨 하나를 되살리고 말았다.

'이 참에 강당 건립을 다시 추진하는 것은 어떻겠습니까?'

지역에 거주하는 우리 동문이라면 누구나 간직하고 있는 오래된 숙원사업이 하나 있다.

그것은 시골초등학교에 번듯한 다목적강당을 지어주고 싶은 꿈이다.

그러나 갖은 노력에도 불구하고 시골의 소규모 초등학교라는 이유로 과정은 험난했고 번번이 쓰디쓴 좌절을 맛봐야 했다.


이십 년 전, 뜻밖에도 동문 출신 선배 한분이 교육청의 시설국장으로 영전하였을 때 강당건립을 추진할 수 있는 절호의 기회로 여겼다.

하지만 강직한 성품의 선배님은 우리 학교보다도 훨씬 학생수가  많은 학교들도 순서를 기다리는 마당에 은근슬쩍 끼어수는 없다며 끝내 도움을 주시지 않았다.

 

십 년 전에는 다섯 개 마을의 향후 3년 치 항공소음 민원사업비 12억 원을 확보하여 강당건립을 추진했지만 폐교가 예정된 학교라는 이유로 무산된 기억이 있다.   

당시 폐교대상으로 지목된 학교들 가운데  실제로 우리 학교만 사일생으로 생존한 상태다.

지금생각해 봐도 지역에 거주하는 우리 동문들의 결사항전으로 달성할 수 있었던 그야말로 기적 같은 일이었다.


사실 시골초등학교에 다목적강당을 지어주고 싶은 이야기는 오랜 시간을 거슬러 가야만 이해할 수 있다.

1980년대 초반 뜻하지 않은 방식으로 공립학교가 되었지만  애당초 우리 학교는 마을이 세운 사립학교였다.

약 백 년 전인 1927년 배영사설강습소가 처음 문을 열 당시 마을 주민들은 십시일반으로 자신들의 귀중한 땅을 학교부지로 기부하였다.


이러한 사실은 학교와 마을을 같은 생활공동체로 인식하는 계기가 되었고, 이후 일관되게 서로 동떨어질 수 없는 공동운명체로 지내왔다.

당연하다는 듯이 운동장에서는 해마다 마을체육대회가 열리고, 매주 화요일 저녁이면 마을 부녀자들이 목련관에 모여서 라인댄스를 연습하는 공간으로 활용한다.

오랜 세월 학교는 지역사회의 문화체육공간이었고 그런 까닭으로 다른 지역에서는 좀체 보기 힘든 남다른 애교심과 주인의식을 가지고 있다.


십여 년 전, 한 분의 특이한 교장으로부터 시작된 우리 학교의 특성화교육은 부산전역으로 입소문이  날 정도로 유명세를 탔다.

신세대 학부모들 중에는 자녀교육에 대한 뚜렷한 철학을 지닌 학부모들이 많다는 사실을 알게 되면서 신선한 충격으로 다가왔다.

초등학교 시절에는 과도한 학습보다는 다양한 경험을 접하게 하여 아름다운 추억을 심어주려는 차원이 다른 신세대 학부모들이었다.

그들의 입장에서는 오히려 우리 학교처럼 특성화 교육이 가능한 소규모학교를 선호했고 자신들의 선택이 옳았음을 기어이 증명하고야 말았다.


전국최고의 학령인구를 자랑하는 명지국제신도시에서 알음알음 아이들을 보내온 덕분에 그 어렵다는 폐교의 위기건너올 수 있었다.

무려 6년 동안 자신의 차량으로 아이들을 등하교시키는 신세대 엄마들의 극성스러움이 없었더라면 어린아이의 울음소리가 끊겨버린 시골의 여건상 초등학교를 지켜내는 것은 불가능한 사건이었다.


지금도 전교생의 팔 할 이상이 명지국제신도시의 아이들로 구성되어 있지만 엄연히 주소지를 관할하는 통학구역이 존재하는 현실에서는 분명한 한계가 있었다.

부득이 주소지를 이전해야 하는 편법에 동참해야 하고, 현실적인 통학의 문제 때문에 여건이 따라주는 일부의 아이들 외에는 엄두를 낼 수 없었다.


그러는 사이 어느덧 십 년의 세월이 흘러갔고 열악한 농촌의 상황은 여전하지만 천만다행으로 내년부터는 대반전이 기다리고 있다.

도시와 농촌 가릴 것 없이 하나둘 소규모 학교를 폐교시키다가는 살아남을 초등학교가 없을 정도로 심각해진 현실이 엉뚱하게도 반전으로 작용했다.


우리 학교가 '작은 학교 확장형 통학구역'으로 선정됨으로써 내년부터는 주소지의 이전 없이도 통학버스를 이용하여 편안하게 등하교할 수 있게 되었다.

명지국제신도시와 같은 타 학군의 과밀지역에서도 입학이나 전학을 허용하는 통학구역의 예외를 적용받는 일종의 특혜라고 말할 수 있다.

 

이제 우리 학교는 의심의 여지없이 넘쳐나는 아이들로 활기에 넘칠 것이다.

이렇듯 사뭇 달라진 분위기라면  삼세번이라는 말이 있듯이 우리라고 가만히 있을 수는 없는 일이다.  

한번 더 강당건립을 추진하자는 김 의장의 돌출발언이 불쏘시개가 되면서 잠자고 있던 마을의 숙원사업이 거대한 들불처럼 다시 깨어나고 말았다.


긴급소집된 마을발전협의회의 주요 안건은 학교 다목적강당의 재추진 문제였고, 돌출발언의 당사자였던 김 의장이 제3기 추진위원장으로 낙점되었다.  

어림잡아도 수십억의 예산이 투입되는 큰 사업의 성격상 최종적으로는 교육감의 결단이 필요한 사업이다.

단계를 밟아가며 관할 교육지원청장과 교육감의 면담일정을 신청한 후 조용한 시간을 이용하여 청원서를 작성하기 시작했다.


떡줄사람은 생각지도 않는데 김칫국부터 마시는 격일수도 있지만 십 년 전의 경험을 되살려 명확하게 할부분을 놓칠 수는 없었다.

1927년 배영사설강습소가 설립될 당시 지역에서 학교땅을 기부했던 쾌쾌 묵은 이야기까지 끄집어내며 은근슬쩍 다목적강당의 위치를 언급했다.

처음부터 불필요한 논란거리를 차단하려는 고도의 노림수다.


아무래도 학교 측의 입장에서는 교실과 가까운 기존의 목련관 자리를 선호할 수밖에 없다.

문제는 최소 백평가량의 강당크기를 고려했을 때 그만큼 운동장의 크기는 줄어들 수밖에 없다는 사실이다.

그렇게 된다면 마을체육대회와 같은 지역행사의 추진에도 적지 않은 지장을 초해하여 또 다른 논란거리가 될 우려가 있었다.

반면에 운동장과 접한 일천오백 평 상당의 사슴농장터는 넉넉한 주차공간의 확보는 물론이고 방과 후의 시간을 이용하여 지역사회에서도 편리하게 이용할 수 있는 특장점이 있었다.


아직은 섣부른 예단 같지만 왠지 예감이 나쁘지 않다.

살얼음판을 걷듯 조마조마한 심정으로 십 년의 시간을 지나오다 보니 걸림돌들이 많이 사라졌다.

위태위태하기만 했던 폐교대상의 족쇄에서도 풀려났고 그러는 사이 관내의 여러 학교들 가운데 유일하게 다목적강당이 없는 학교라는 중요한 명분도 만들어졌다.


불가피한 사정은 있었지만 교육청의 재산목록에 포함되지 않은 목련관의 처리문제도 골치 아픈 문제가 아닐 수 없다.

소방법에 저촉된다며 목련관의 고장 난 에어컨을 마냥 방치할 수도 없는 노릇이고, 천장에서 빗물이 떨어지더라도? 새롭게 방충망을 설치하고 싶어도? 학교예산을 사용할 수 없는 답답한 현실을 언제까지 지켜만 볼 것인가!

우리 학교의 유일한 강당시설임을 감안할 때 아무런 대안도 없이 무작정 철거할 수도 없지만 언제까지 유령건물인 양 내 몰라라 할 수도 없는 모순에 빠져있는 상황이다.


모든 문제의 유일한 해법은 우리 마을의 오래된 숙원사업인 다목적강당을 건립함으로써 해결할 수 있다.

이제 더 이상은 물러설 자리가 없는 삼세번의 도전인 만큼 이번만큼은 무슨 일이 있더라도 꼭 마무리 짓고 싶다.

그러나 이십 년의 경험칙으로 볼 때 분명히 악마는 디테일 속에 숨어있을 것이고 우리는 또다시 험난한 가시밭길을 헤쳐서 나아가야 할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시골초등학교에 훌륭한 다목적강당을 지어주고 싶은 지역동문들의 아름다운 이야기는 중단 없이 계속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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