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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일의 의미

by 맥도강

황금 안대와 황금 도포를 입은 궁예가 저 높은 황제의 단상에서 아래의 신하들에게 외치는 소리다.

"누가 생일을 건너뛰어도 된다고 하였더냐!"


그렇다, 생명탄생의 과학적인 의미를 제대로 이해한다면 생일을 건너뛰어도 된다는 발상은 궁예의 노여움을 사기에 충분한 상상조차 할 수 없는 일이다.

오히려 마음 같아서는 넉넉한 액수의 생일 축하금과 특별휴가를 법제화하여 범사회적인 차원에서 생일의 의미를 크게 부각하여 주는 것이 마땅하다는 생각이다.


과학적으로 생각해 보면 이 세상에 태어난 생일만큼 큰 의미를 부여할 수 있는 기념일은 존재하지 않을 것 같다.

비록 지금은 찬란한 금빛 인생이 아닐지라도 그 시작은 어마무시한 경쟁을 뚫고 나온 기적의 생명체였으니 말이다.


모계 측의 유전정보를 담고 있는 난자가 매달 새로운 여행을 시작할 때 부계 측의 유전정보를 담고 있는 3억 개의 정자가 필사적으로 헤엄쳐 다가간다.

지만 난자와 결합할 수 있는 정자는 단 하나뿐!


평생 동안 생성되는 난자의 개수가 400개 정도라면 하나의 생명이 탄생하기까지 1200억 분의 1이라는 확률게임의 승리자가 되어야 한다.

게다가 이런 확률게임을 10년 동안 매주 한차례의 단위로 늘려보면 무려 57조 6000억의 확률이 만들어진다.


그뿐만이 아니다.

각각 스물세 쌍의 난자와 정자가 만드는 수정란의 염색체조합은 840만×840만=약 70조 개가 된다.

로또 1등 당첨 확률인 팔백만 분의 일과 비교하더라도 하나의 생명체가 탄생할 수 있는 과학적인 의미는 가히 기적이라는 단어 말고는 달리 표현할 방법이 없다.


70조라는 거의 무한대에 가까운 경우의 수 가운데 하필 내가 선택되었다는 의미를 한번 생각해 보자.

최종적으로 내가 태어났다는 사실은 지구상의 모든 모래알 수보다도 많은 치열한 경쟁을 뚫고 파리올림픽의 금메달리스트와는 비교도 안 되는 가장 높은 단상에 우뚝 올라섰다는 뜻이다.


여기서 중요한 팩트체크 한 가지!

오늘날의 현대 과학은 이 과정에서 어느 누구의 설계나 도움도 없었으며 오롯이 나의 노력으로 내가 잘나서 거머쥔 전적으로 나의 행운임을 심플하게 말한다.

내가 태어났다는 그 하나의 사실만으로도 난 충분히 천상천하 유아독존의 존귀한 존재가 될 수 있다는 의미다.


누군가 생일을 '70조의 확률 속에서 탄생한 기적의 생명체에 대한 존경과 사랑을 표시하는 날'이라고 정의했을 때,

특별히 생일만큼은 모든 인류를 대신하여 사랑과 축복을 받는 이 세상에 존재하는 그 어떤 명절이나 기념일보다도 가장 특별한 날이어야 함은 당연하다.




과학적으로 밝혀진 사실에 의하면 소수의 생명체들이 짧은 순간을 반짝 살아갈 뿐 우주에 존재하는 대부분의 물질들은 죽어있는 상태라고 한다.

'돌아가셨다'는 표현의 의미는 본래의 죽음상태로 되돌아갔다는 뜻으로서 죽음은 보편적인 현상이고 삶은 찰나라고 말할 수 있다.


찰나의 짧은 인생을 살다가 영원한 죽음의 시간으로 사라지는 입장에서는 그 시작점과 종결점이야말로 인생의 대표적인 사건이 된다.

생명의 시작을 의미하는 생일은 희망의 축복소리로 시끌벅적한 반면 생명의 마지막을 의미하는 기일은 대부분 침통하고 숙연한 분위기가 지배한다.


그런데 이대목에서 고민해봐야 할 또 다른 팩트체크 한 가지!

중국 대만 일본 베트남 등 가까운 아시아 문화권을 살펴보더라도 기일을 준수하려는 문화가 사실상 오늘날에는 존재하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추석이나 특별한 날을 맞이하여 조상들에게 한꺼번에 인사드리는 문화는 존재할지라도 죽음을 맞이한 특정 기일을 준수하는 제사문화는 우리나라가 거의 유일하다.

물론 훨씬 이전에는 여러 문화권에서도 기일을 준수하는 제사문화가 존재하였을지라도 시대의 변화와 함께 차차 사라진 것이 아닌가 추정된다.


오늘날의 현대과학은 단호한 태도로서 죽음 이후의 또 다른 세계관을 부정하는 태도를 견지하고 있다.

육신을 벗어난 영혼의 존재가 과학적으로 부정당한다면 굳이 벽 쪽으로 바짝 붙여진 제사상을 향하여 절하는 행위에서 과연 어떤 의미를 찾을 수 있을까?

조상님들에 대한 존경의 마음을 담은 미풍양속이라고 말하기에는 어딘지 모르게 앞뒤가 맞지 않는 문화적 충돌현상으로 다가오는 것이 사실이다.

실제로 공자탄신일 석가탄신일 성탄절이 세계인들의 명절로 자리 잡은 지 오래지만 정작 성현들의 돌아가신 기일을 추모하려는 문화에 대하여는 잘 알지를 못한다.

이러한 사실에서 보편적인 사람들의 가장 뜻깊은 사건이라면 단연 이 세상에 태어났다는 사실이며, 다시 본래의 죽음으로 되돌아가는 것에 대하여는 그다지 특별한 의미를 부여하지 않으려입장임을 알 수 있다.


이미 과학적인 사실이 되어버린 영혼의 부재 속에서는 아무런 의미도 없는 기일문화보다는 차라리 돌아가신 분의 생일을 기억하면서 그분의 살아온 인생을 되새겨보는 문화가 훨씬 편안하게 다가온다.

그것은 산 자와 죽은 자 간의 정서적인 유대를 확인할 수 있는 참으로 아름다우면서도 과학적인 생각이기 때문이다.


심지어는 돌아가신 분에 대하여도 생명탄생의 문화를 활짝 꽃 피워왔다면 산자의 생일이야 더 이상 무슨 말이 필요할까?

가족이나 가까운 지인으로부터 자신의 생일을 패싱 당한다는 것은 상상도 할 수 없는 일!


이순(耳順)에 이른 이번 생일에도 아이들로부터는 고가의 신상 태블릿 pc를, 아이들의 엄마로부터는 아웃렛매장에서 이런저런 옷가지들과 구두 한 켤레를 선물 받았다.

물론 사십여만 원에 이르는 아웃렛 쇼핑비용은 블루베리 수확을 마치고 답례 차원으로 제공받는 일종의 팁이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가 이 세상에 태어난 사건을 우리 가족으로부터 축하받았다는 그 사실이 기분 좋았다.


그런데 아뿔싸! 빙모님의 상중에 아이들의 엄마가 경황이 없는 사이 두 아이들의 생일을 놓쳐버리는 초유의 사태가 발생하고 말았다.

여자 친구의 가족으로부터는 진수성찬으로 생일상을 대접받았다지만 정작 우리 가족으로부터는 카톡문자 한 통이 없었다며 못내 서운한 감정을 숨기지 않았다.


딸아이가 집으로 가져온 케이크를 마냥 맛있게 먹어면서도 나중에서야 자신의 생일 선물로 받은 케이크임을 알게 되었을 때 난 입이 백개라고 할 말이 없게 되었다.


그 참! 내년부터는 모바일 달력에라도 가족들의 생일을 표시해 두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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