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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의 기준점 차이

by 맥도강

몇 년 간격으로 잊을만하면 찾아오는 부동산 손님이 있었는데 그분과의 첫 인연은 삼십 년 전으로 거슬러 간다.

당시는 평당 십만 원 정도면 웬만한 농지를 매입할 수 있었던 호시절이었지만 그분의 생각은 달랐다.

"농사밖에 지을 수 없는 농지가격으로는 만만치가 않네요!

농사지어서 얼마나 수익이 난다고… 생각해 보고 다시 들리죠"


몇 년 후 그분이 다시 방문했을 때는 평당 십오만 원으로 인상된 후였고 우린 논쟁을 벌여야 했다.

"십만 원짜리는 없다는데 자꾸 십만 원짜리만 찾으시는군요"

"아무런 이유도 없이 가격이 너무 오른 것 아닙니까? 대체 50%나 인상된 이유가 뭡니까!"

"지금은 여기 일대가 허허벌판이지만 먼 훗날을 한번 생각해 보십시오?

다리 하나만 건너면 도심지인데 허허벌판 상태대로 가만히 놔두겠습니까?

미래를 생각하면 여전히 저렴한 편이지요"

"뭐가 어떻게 바뀔지는 솔직히 말해서 돼봐야 되는 거지 미래의 일을 누가 알겠습니까? 안 그렇습니까!"


또 몇 년 후 우린 같은 논쟁을 되풀이했지만 이번에는 이십만 원으로 인상된 후였다.

"두배로 뛰었다는 게 말이 안 되지 않습니까? 분명히 잔뜩 거품이 끼여있는 게 분명해요!

혹시 정상적인 가격으로 나온 물건은 없습니까?"

"정상적인 가격이라면?"

"십만 원짜리 말입니다. 아니면 십오만 원짜리라도!"

"흐흐 참 요즘세상에 그런 가격이 어떻게 나옵니까?"

"한번 찾아봐주세요! 다시 들릴 테니까"


그 후로도 몇 차 레나 더 방문했지만 그분의 의식 속에는 처음 방문했을 때의 십만 원이 뇌리 속에 그대로 박혀있어 연거푸 한숨만 내어 쉴 뿐이었다.




누구나 과거는 잘 보이지만 과거의 실수를 통하여 미래의 교훈을 얻을 수 없다면 정작 다가올 미래에는 아무런 소용이 없다는 뜻이다.

자칫 과거를 통해서 미래의 혜안이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라 후회의 탄식만 늘려주는 습관적 탄식주의자가 될 가능성이 높을 뿐이다.


과거의 특정 시점에서 바라봤던 미래는 어느새 현재와 과거가 되어버리듯이 시간은 흘러가는 것,

지난 시기의 일들을 반면교사 삼아 미래의 참고서가 되었으면 좋으련만 여전히 과거만 잘 보일 뿐 미래는 뿌옇다.


흘러가는 시간의 속성을 이해하고 유연하게 적응하는 것은 현대인의 기본 소양이라지만 문제는 이것이 원활하지 않을 때 발생한다.

통 과거의 시선으로 사물을 바라보는 사람은 여전히 과거에 발목 잡힌 채 허구한 날 지나간 시간의 미숙함을 탓하며 한 치 앞도 나아가지 못한다.


그렇다. 생각의 기준점을 과거에 사로잡힌 꼰대의 시각이 아니라 과감하게 미래로 옮겨와야 한다.

미래의 시선으로 사물을 바라보는 사람은 지금 현재도 결코 늦지 않았다는 지극히 긍정적인 삶의 태도를 보인다.

이렇듯 단순한 시각의 차이에 불과할지라도 현실을 대하는 태도에서는 삶의 질이 달라지는 극단의 양 갈래로 나타날 수 있다.

바로 이것이 과거에 태클이 걸려있는 사람과 미래를 향해서 나아가는 사람이 살아가는 생각의 기준점 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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