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벽 다섯 시,
삼지연못가역을 출발한 남북대학생탐험대는 수십 개의 장대 깃발을 휘날리면서 갑무경비도로를 따라서 위풍도 당당하게 전진했다.
목적지는 백두산의 최고봉인 장군봉.
색색의 장대 깃발에 담긴 구호는 탐험대에 참여한 남북대학생들의 가슴을 용광로처럼 뜨겁게 달구었다.
‘백두산정계비가 증거다, 국경회담 다시 하자!’
‘제3차 감계회담 개최하라!’
‘동북공정 가소롭다, 대통합코리아연방 만세!’
‘동간도 회복하여 대통합코리아연방 수립하자!’
2030년 1월 중순경 동북아역사재단은 7월로 다가온 역사적인 코리아연방의 출범에 맞추어서 특별하고도 대담한 이벤트를 기획했다.
남북 각기 오십 명씩 일백 명의 남북대학생으로 탐험대를 조직하여 백두산정계비를 새롭게 단장하는 행사였다.
이 소식은 삽시간에 큰 반향을 불러일으켰고 남북 전역에서 몰려든 대학생들로 초대형 행사가 되고 말았다.
자비를 들여서라도 꼭 참석하겠다는 남북의 대학생들이 무려 일만이 넘었다.
이렇게까지 일이 커진 데에는 북한주민들의 내부 정서가 크게 작용한 결과였다.
작년 말 교황의 평양방문 이후 미국에 의한 전쟁의 가능성은 사라졌지만 그 과정에서 알게 된 사실 하나가 씻을 수 없는 마음의 생채기로 남았다.
미 공군과의 합동작전을 위해 무려 삼십만의 인민해방군이 압록강 변에 대기하고 있었다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북한주민들이 받은 충격은 실로 엄청났다.
그동안 혈맹이라며 형제의 예로서 의지하던 그들로서는 중국으로부터 받은 배신감은 차마 말로써는 표현하기 힘든 것이었다.
사실 배신감이라는 감정이 농축되기 시작한 것은 삼십 년 전으로 거슬러가 중국이 본격적으로 동북공정을 언급하면서부터다.
고구려를 자신들의 변방민족으로 들먹거리기 시작했을 때 고구려의 후예임을 자처하던 북한으로서는 끓어오르는 분노를 억누르고 있었다.
미국과 군사적으로 대치하는 안보상의 문제와 핵개발로 인한 대북경제의 봉쇄조치로 중국의 지원이 절실했던 상황에서는 단지 인내할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자존심에 생채기를 내면서까지 참았던 북한의 인내심은 딱 여기까지였다.
때마침 한국대통령의 중국방문으로 연변 현지에서 대통합코리아연방의 함성소리가 터져 나왔을 때 중국의 배신행위를 되갚아줄 새로운 전략으로 인식했다.
하필 이런 시기에 동북아역사재단이 나서 세계의 관심을 끌만한 대형 이벤트를 기획했던 의도는 고도의 노림수가 있었다.
북한 또한 이 특별한 행사를 적극적으로 지원함으로써 그들의 감추어진 속내를 굳이 숨기려 하지 않았다.
남과 북의 대학생들이 도착하기 일주일 전부터 북한당국은 삼지연못가역 주변에 대형 천막촌을 건설해 놓고 충분한 정도의 임시 숙박시설을 준비했다.
뿐만 아니라 탐험대를 위한 도시락을 준비하는 등 남북대학생들의 백두산탐험행사를 물심양면으로 돕고 나섰다.
중국은 동북공정을 범국가적인 사업으로 추진하면서 이론적인 토대를 제공하고 사업의 방향성을 제시하는 등 실질적으로 동북공정을 관장했던 기구는 중국공산당 산하의 사회과학원이었다.
따라서 사회과학원의 허밍친 원장이 중국의 동북공정을 진두지휘하는 명실상부한 우두머리라 할 수 있었다.
중국의 사회과학원에 맞설 수 있는 기관으로는 현실적으로 남북을 통틀어서 동북아역사재단이 유일했다.
그래서 한반도의 통일이 진행되고 있던 이 중차대한 시기에 남북의 양 정부를 대신하여 동북아역사재단이 나서게 된 것이다.
1962년 조중변계조약으로 지금의 국경을 확정 지은 북한은 그동안 백두산정계비를 거의 언급하지 않았을 정도로 대단히 신중한 행보를 보여왔다.
자칫 중국과의 국경문제를 새롭게 제기하는 것으로 비쳐질 수 있는 외교적으로도 대단히 민감한 문제였기 때문이다.
그래서 주춧돌의 위치를 확인하는 작은 비석 하나만 남긴 채 침묵으로 일관했다.
그런데 이제 그 작은 표식이나마 남겨두었던 이유를 알게 하는 대형 이벤트에 동참하려 했다.
1931년 만주사변이 일어나기 직전 일제에 의해서 훼손된 백두산정계비는 비석의 주춧돌만 남긴 채 ‘동위토문 서위압록’이 기록된 비석은 행방불명된 상태였다.
일제는 동간도 지역까지를 포함하는 거대한 한반도를 인정하고 싶지 않았기 때문에 역사적 진실이 기록된 백두산정계비를 훼손하고 싶었다.
조선은 역사적으로 중국의 괴롭힘을 받는 약소국이라는 낙인을 찍어서 정의의 사도인 일본이 중국을 물리치고 조선을 보호한다는 이야깃거리를 만들고 싶었을 것이다.
일제가 독립군의 공격을 방어할 목적으로 갑산과 무산 사이의 백리 길을 조선인들을 동원하여 건설한 도로가 바로 갑무경비도로다.
이 도로는 지금 역설적이게도 일제가 훼손하여 숨겨버린 작고 초라한 백두산정계비가 아니라 2030년 현대판 버전의 백두산정계비를 실어가는 역사적인 도로가 되었다.
14톤 중량의 카고 크레인이 탑재된 대형화물차는 걸어서 이동하는 대규모의 백두산탐험대를 조용히 따르고 있었다.
그런데 화물차의 짐칸에는 무명천으로 그 실체를 가린 화강암으로 만든 거대한 돌덩이 하나가 실려 있었고 그 분위기가 자못 심상치 않았다.
30㎞ 거리의 장군봉까지 도보로 이동하는데 걸리는 예상 시간은 열 시간가량이다.
일만의 남북 대학생들이 오열종대로 줄지어서 행진하는 모습은 그야말로 장관이었다.
조선중앙 TV와 KBS는 선의의 경쟁을 펼치면서 이 모든 장면들을 빠짐없이 화면에 담았다.
출신대학을 알리는 작은 깃발들이 펄럭이고 있었지만 남과 북의 대학생들은 서로 자유롭게 이동하면서 왁자지껄하게 어울리는 교류의 장이 만들어졌다.
대열의 중간지점을 차지하고 있던 한 무리의 대학생들 사이에서 유독 큰 목소리의 부산사투리가 주변을 압도했다.
큰 키에 얼굴이 동글동글하게 생긴 귀염상의 규태가 호기롭게도 김일성종합대 학생들의 무리에 파고들어 평소의 그답게 신나게 떠들어댔다.
북한 대학생들은 모두가 짙은 계열의 교복차림에 흰 와이셔츠와 두툼한 겨울외투를 입고 있어 간편한 등산복차림의 규태와는 겉모습에서부터 대비되었다.
“1712년 오라총관이 백두산에 올랐을 때 띨빵한 목극등이 실수를 했다고 치자는 겁니다!
목극등의 실수로 두만강이 아니라 토문강과 압록강의 최상류 물줄기가 만나는 분수령에다가 백두산정계비를 설치했다고 치자는 겁니다!
그래서요? 도대체 뭐가 잘못되었다는 겁니까!”
대단히 예민한 역사적인 문제를 규태 나름의 시원한 논리로 전개하기 시작하자 주변의 김일성대 학생들이 관심 어린 눈빛으로 귀를 기울이기 시작했다.
“그런데 말입니다!
1948년 팔레스타인 땅에서 건국을 선포했던 유대인들의 논리가 무엇인지 아십니까?”
이 대목에서 규태 특유의 익살스러운 표정이 드러나면서 주변 학생들의 이목을 더욱 집중시켰다.
“이천 년 전, 로마에 의해서 쫓겨나기 전까지는 이 땅이 모두 자신들의 땅이었다는 겁니다,
문제는!”
처음부터 호기심 어린 눈빛으로 규태를 눈여겨보고 있던 옆자리의 단발머리 북한여학생이 오른손을 높이 들면서 규태의 말을 가로챘다.
“문제는! 영토에 대한 주인의식!
누가 더 주인의식을 가지고 있었느냐 이 말입니다,
그렇지 않습니까? 키 큰 남조선 동무!”
규태가 깜짝 놀라는척하는 표정으로 이 당찬 여대생을 응시했다.
그의 마음 깊은 곳에서부터 어떤 특별한 사정이 있었던지 순간적으로 규태의 목소리는 더욱 커졌다.
“그래요 바로 이겁니다!
당시 조선 사람들은 간도를 우리 땅으로 인식하고 있었어요,
고구려와 발해가 망한 뒤에도 우리 민족은 한시도 북방영토에 대한 주인의식을 잃지 않았거든요”
규태가 잠시 숨을 고르고 있을 때였다.
이번에도 진숙이 규태와 장단을 맞추기 위해서 끼어들었다.
“발해의 피지배 계층이었던 말갈족이 이후 여진족으로 불리게 되지 않았습니까?
여진족 하고 발해를 멸망시킨 거란족이 간도 땅의 주인행세를 하려고 했지만 우리 민족의 주인의식도 그들 못지않게 치열했었단 말입니다!”
진숙과 규태는 어느새 궁합이 잘 맞는 짝짜꿍처럼 주거니 받거니 이야기를 주도적으로 전개하고 있었고 주변의 김일성대 학생들도 귀를 쫑긋 세우고 이들의 이야기에 푹 빠져 들었다.
기대이상의 호응에 도취된 규태는 이참에 자신의 생각을 모두 풀어놓을 태세다.
“고려시대 윤관이 여진족을 물리치고 축조한 동북 9성 가운데 공험진과 선춘령은 두만강 이북 700리 지점인 오늘날의 길림성 연변지역에 있었어요,
그리고 고려 말 최영장군의 요동정벌론과 조선 초 김종서의 6진 개척이 모두 고구려가 지배했던 영토를 우리 민족의 영토로 인식하고 있었다는 강력한 증거였다 이 말입니다!
간도 땅을 회복하기 위한 우리 선조들의 끊임없는 열정!
그 열정의 발로는 바로 고조선 고구려 발해가 지배했던 우리 민족의 고토를 회복하고야 말겠다는 주인의식이 있었기 때문이었어요”
지금까지는 가만히 듣고만 있던 진숙의 경제학부 동기인 상윤이 처음으로 끼어들었다.
“바로 그때! 청나라 황제의 명령으로 목극등이 백두산에 올랐고 그 자신의 판단으로 장군봉 아래 압록강과 토문강의 분수령에다가 백두산정계비를 내리꽂았으니 조선으로서는 회심의 미소를 지었다는 것 아닙니까?”
상윤의 말에 규태가 오른손 엄지 척을 하면서 주변에 모여 있던 김일성대 학생들의 자긍심을 드높여 주었다.
이윽고 특유의 익살스러운 표정으로 북한말까지 흉내 내기 시작하자 주변은 완전히 뒤집어지고 말았다.
“동무래 김일성종합대 학생이라 그런지 기똥차게 똑똑합니다!
사실은 조선의 관리들도 깜짝 놀랐다는 것 아닙니까!
이 절호의 기회를 살리기 위해서 당시 조선 조정에서는 신속하게 움직였어요,
목극등이 말한 그 지점을 국경으로 삼기 위하여 서둘러서 국경선을 만들기 시작했단 말입니다,
청나라가 딴소리를 하지 못하도록 일종의 굳히기 전략이었습니다,
토문강의 상류 물줄기가 분명하지 않은 지점을 따라서는 돌무더기와 흙무더기를 쌓았고 심지어는 급한 대로 주변의 나무를 잘라서 목퇴를 쌓았을 정도로 최대한 서둘러서 국경을 만들었습니다,
정말이지 놀랍지 않습니까?
이러한 사실이 말해주는 역사적인 의미를 우리는 잘 알아야 합니다!
당시 조선은 활과 칼대신 토퇴와 석퇴를 쌓으면서 우리 민족의 북방고토를 되찾기 위한 치열한 전쟁을 치르고 있었다는 사실입니다,
목극등이 토문강을 두만강으로 착각을 했다느니 하는 말들은 모두 자잘한 지엽적인 문제일 뿐 문제의 본질은 그런 것이 아닙니다!
그 당시의 조선은 국왕부터 민초들까지 한마음 한뜻으로 똘똘 뭉쳐서 우리 민족의 북방영토를 회복하려는 절호의 기회로 삼았다는 그 사실이 문제의 본질입니다!”
상윤이 진숙에게 엄지 척을 하면서 규태가 마음에 든다는 의사표시를 하자 주변에 모여 있던 다른 김일성대 학생들도 규태에게 단체로 엄지 척을 보냈다.
순간적으로 우쭐한 마음이 든 규태가 양손을 가볍게 들어서 화답하는 제스처를 취했다.
상윤이 다시 이 논쟁적인 규태의 말을 이어받았다.
“1885년과 1887년 조청 간의 제1,2차 국경회담이 열리던 시기는 청나라 군대가 임오군란을 진압한 지 고작 2년이 지난 후였지 않았습니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조선조정은 한 치의 흔들림도 없이 백두산정계비상의 동위토문이 송화강으로 흘러가는 토문강임을 주장하면서 동간도 땅의 영유권을 일관되게 주장했단 말입니다,
힘이 없어 나라가 무너져 내리던 조선말의 상황임을 감안할 때 간도 땅에 대한 우리 민족의 영토의식이 얼마나 강력했는지를 엿볼 수 있단 말입니다!”
상윤의 말에 감동을 먹었다는 표정으로 규태가 또다시 격정적인 양손 엄지 척을 반복하면서 말을 받았다.
“우리 민족의 이런 행위는 고구려 땅을 반드시 회복하고야 말겠다는 북방영토에 대한 주인의식이 살아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었습니다,
19세기말부터 시작된 유대인들의 시오니즘은 1948년이 되어서야 성공하지 않았습니까?
이제 우리도 코리아연방의 출범을 앞두고 있는 이 중차대한 시점에서 남북한만이 아니라 동간도의 조선족 자치주까지를 포함하는 대통합코리아연방을 달성해야 된다 이 말입니다,
동무들! 내 말이 틀렸습니까!”
규태의 선동에 적잖이 고무된 진숙이 갑자기 전사의 모습으로 돌변하더니 두 손을 번쩍 들고 큰 소리로 선창 하기 시작했다.
“대통합! 코리아연방! 만세!”
진숙의 선창으로 삽시간에 주변의 김일성종합대 학생들이 다 함께 따라서 외쳤다.
“대통합! 코리아연방! 만세!”
구호의 합창은 슬금슬금 퍼져나가더니 이제는 아예 일만의 전체 행군대열이 다 함께 외치게 되었다.
그 외침의 합창소리가 얼마나 컸던지 갑무경비도로를 따라서 나란히 솟아오른 이깔나무의 군락지에도 영향을 미쳤다.
아슬아슬하게 나뭇가지 위에 걸려있던 눈송이들이 남북대학생들의 함성소리에 깜짝 놀라서 우수수 떨어지는 보기 드문 장관이 펼쳐졌다.
남북대학생탐험대의 함성소리는 거대한 백두산의 힘찬 박동소리와도 같았다.
남북대학생탐험대는 오늘 당일치기로 백두산에서의 모든 일정을 마무리해야 했다.
북한당국이 1인당 두 개씩 준비해 준 고단백 열량의 도시락으로 꿀맛 같은 점심시간을 끝내자마자 또다시 행군이 시작되었다.
오후 세 시경, 드디어 열 시간 대장정의 끝 장군봉이 손에 잡힐 듯 가까이 보이기 시작했다.
행군대열의 선봉이 장군봉 아래 4㎞ 지점에 위치한 주차장에 들어섰을 때 가슴 뭉클한 감동적인 장면이 펼쳐졌다.
백두산일대의 북중국경을 관할하는 일명 백두산부대로 알려진 북한군 국경수비대 소속 1개 중대 병력이 좌우로 정렬한 채 거수경례를 했다.
개선장군을 맞이하듯이 백삼십여 명의 인민군을 백두산정계비의 주춧돌이 있는 자리까지 배치하여 극진히 맞이했다.
이 장면은 초대형의 행군대열이 수십 개의 장대 깃발을 휘날리면서 사열을 받듯 지나가는 모습으로 연출되었다.
이때 검게 탄 얼굴에 우람한 체격의 중대장이 쓱 나타나더니 마치 주변 일대를 주름잡는 대장 곰인 냥 행군 대열을 안내했다.
부대원들 사이에서 백두산흑곰으로 불리던 중대장의 안내로 백두산정계비의 받침돌이 보존된 자리에 도착했다.
일제가 훼손해 버린 백두산정계비를 떠받치고 있던 받침돌은 세 개의 북한군 초소 가운데서도 가장 남쪽에 위치한 초소의 뒤편에 있었다.
그곳에는 북한당국에 의해서 굳이 흰색 페인트로 덧칠당한 작은 시멘트 표지석이 단단하게 박혀 있었다.
1980년 북한이 북중간의 관계를 고려하여 글씨까지는 새기지 않았지만 정계비의 위치를 손쉽게 찾을 수 있도록 하얀색의 표지석을 세워두었다.
당시 북한은 백두산정계비를 훼손했던 일제의 의도와는 정반대의 의도로 표지석을 설치했겠지만 다분히 중국의 심기를 고려한 저자세의 형태였음은 부정할 수 없었다.
당시 이렇게라도 주춧돌의 위치를 표시해 두었던 것은 오늘과 같은 날을 대비한 조치가 분명했겠지만 오늘은 확실히 그때와는 분위기가 달랐다.
북한당국은 1712년 목극등이 설치했던 작고 초라했던 주춧돌 바로 옆 자리에 폭 3m의 화강암 받침돌을 단단하게 고정시켜 놓았다.
일만의 거대한 남북대학생탐험대 행렬이 주차장을 가득 채우고도 장군봉을 향해서 길게 들어차고 있을 때였다.
오늘의 주인공을 실은 대형화물차가 거친 숨을 몰아쉬며 받침돌 인근에 당도했다.
육중한 14톤 카고 크레인으로 들어 올려질 오늘의 주인공을 기다리며 모두는 긴장된 분위기 속에서 손에 손을 맞잡았다.
그 순간, 규태의 입에서 불쑥 튀어나온 외침 한마디가 침묵하던 백두산을 일으켜 세웠다.
“대통합 코리아연방 만세!”
이 외침은 또다시 큰 합창으로 증폭되어 십리 전방의 장군봉에서 메아리 소리로 바뀌더니 온 백두산으로 울러 퍼졌다.
그러던 사이 ‘와!’하는 함성소리와 함께 흰색의 무명천에 가려졌던 엄청난 거인이 일어서고 있었다.
천천히, 아주 천천히, 손에 땀을 쥐게 하는 정밀한 조율 끝에 드디어 폭 3m의 받침대 위에 백두산의 거인이 올라섰다.
높이 6.4m에 너비가 2m, 총중량이 37톤에 달하는 거대한 비석이었다.
어디선가 본 듯한 이 압도적인 크기에 모두는 입을 다물지 못했다.
이것은 고구려의 영광을 상징하는 광개토대왕릉비와 똑같은 크기와 중량이었다.
민족의 영산인 백두산,
그 최고봉인 장군봉 아래에서 우리 민족을 통틀어서 가장 광대한 영토를 정복했던 광개토대왕이 자신의 영토를 내려다보는 형상으로 우뚝 일어섰다.
비의 전면에는 ‘동위토문 서위압록’이라는 큰 글씨가 쓰여 있었다.
어젯밤 삼지연못가역 천막촌에서 열린 전야제 행사에서 남북한 대학생들의 장기자랑 대회가 있었다.
통기타를 치면서 '상록수'를 멋들어지게 부른 서강대학교 출신의 여학생이 치열한 경쟁을 뚫고 대상을 차지했다.
이후 그 여학생은 상록수 대장으로 불리어졌는데 모두가 거대한 백두산정계비를 올려다보며 황홀경에 빠져 있었을 때 상록수 대장이 통기타를 반주삼아 열창하기 시작했다.
일만의 남북대학생들이 상록수를 합창할 때는 목이 메어서 눈물을 흘리는 학생들이 많았다.
해방의 기쁨도 잠시 강대국들에 의해서 강제로 허리가 잘리어진 강산은 이제 인고의 85년 세월을 이겨내고 드디어 다시 하나 되는 여정이 시작되었다.
우리 민족을 분단시켰던 그 강대국들은 여전히 우리 민족의 통일을 방해하고 있지만 이제 우리는 과거의 나약한 분단국이 아니다.
주변강대국들의 온갖 방해를 무릅쓰고 기어이 우리 민족은 독도전쟁을 대첩으로 종결지었다.
그리고 승리의 여운이 채 가시기도 전에 그들이 일으키고자 했던 한반도 핵전쟁의 위기를 보란 듯이 이겨냈다.
이 모든 것은 남과 북의 팔천만 국민들이 한마음 한 덩어리가 되어서 당당하게 외세에 맞선 불굴의 용기가 있었기에 가능했다.
분단은 외세에 대한 의존형이었지만 통일은 외세를 극복하는 방식으로 다가왔고 이제 위대한 독도대첩의 전리품을 성취할 때가 되었다.
민족의 통일은 1 플러스 1이 단순히 2가 아니라 10이라는 100이라는 놀라운 결과로 증폭될 것이다.
장군봉 아래에서 자신의 광활한 북방영토를 내려다보던 광개토대왕이 흐뭇한 표정으로 웃고 있었다.
외세에 의한 36년의 치욕과 민족의 분단까지 겪었지만 그동안의 모든 오욕을 떨쳐내고 2030년 드디어 대통합코리아연방으로 우뚝 일어서려는 후손들이 자랑스러웠던 모양이다.
어느덧 상록수의 합창은 함성이 되었고 이 함성은 일천삼백여 년 전의 고구려인들을 소환하여 그들과 함께 부르는 떼창이 되었다.
장대한 백두산에 울려 퍼진 메아리 소리는 고구려가 지배했던 동서남북의 광대한 북방영토 전역으로 멀리멀리 퍼져 나갔다.
상록수 대장의 선창에 따라서 만세삼창이 이어졌다.
“대통합! 코리아연방! 만세!”
“대통합! 코리아연방! 만세!”
“대통합! 코리아연방! 만세!”
이 장면은 조선중앙 TV와 KBS를 통해서 남북한의 전역은 물론이고 또다시 외신을 타고 전 세계로 전해졌다.
특히 CNN은 과거 동북 3성 지역을 중심으로 펼쳐졌던 한반도와 중국의 영토전쟁을 상세하게 다루는 특집 방송을 내보내면서 세계인들의 호기심을 자극했다.
중국과 북한은 중조변계조약을 체결하여 현재의 두만강 국경을 양국의 국경으로 삼았지만 조만간 들어서게 될 통합코리아 연방정부는 이 협정을 원천 무효화할 가능성이 높다고 지적했다.
광개토대왕릉비 급으로 새롭게 업그레이드된 2030년 판 백두산정계비의 제막식이 화려하게 마무리되었다.
동북아시아를 제패했던 위대한 광개토대왕의 군대처럼 남북대학생탐험대는 또다시 깃발을 높이 쳐들고 백두산의 최고봉인 장군봉을 향한 힘찬 전진을 시작했다.
이때였다.
한 무리의 대학생들이 은밀하게 행군대열을 빠져나와 아래의 동쪽방향 숲길로 내달리기 시작했다.
규태와 의기투합한 일단의 남북대학생들이 북한 국경수비대의 감시망을 피해서 토문강의 물길을 따라서 무작정 뛰어 내려갔다.
애당초 규태는 백두산정계비를 새롭게 단장하는 일회성 프로그램만으로는 만족할 수 없었다.
돌이켜보면 최근 한반도를 둘러싸고 벌어진 사건의 근원에는 작년 독도에서 발생했던 그 사건이 중심에 있었다.
다케시마 수복결사대가 일으켰던 독도 칼부림 사건은 결국 저들의 의도대로 독도전쟁으로 비화되었다.
하지만 위기의 순간 남과 북은 하나가 되어서 독도대첩이라는 민족적인 쾌거를 달성했다.
이 모든 것이 독도전쟁의 결과물이었다.
전쟁에서 승리한 국가만이 챙길 수 있다는 전리품으로 우리 민족은 통일이라는 더한층 위대한 전리품을 선택하게 된다.
비록 다케시마 수복 결사대가 휘두른 칼날에 후배 준현이 희생되고 말았지만 준현의 죽음은 결코 헛되지 않았다.
그의 장렬한 죽음은 남과 북을 더욱 단합하게 만들었고 종국에는 외세들을 물리치고 코리아 연방을 탄생시키는 결정적인 씨앗이 되었다.
그래서 규태는 중국 못지않게 일본이 그토록 부정하고 싶어 했던 우리 민족의 대륙사를 입증해 보이고 싶었다.
우리 민족의 영토가 작은 반도에 머무르지 않고 간도라는 광활한 대륙에 걸쳐있음을 입증하고 싶었다.
남북대학생탐험대의 행군 대열이 장군봉으로 향했으니 다시 돌아오려면 두어 시간의 여유가 있었다.
그 시간 안에 백두산정계비의 분수령에서 동쪽으로 뻗어 내려가는 물길이 토문강이라는 사실만 확인하고 바로 돌아올 작정이었다.
잠시 대열을 이탈하자고 부추긴 사람은 물론 규태였지만 결정적으로 네 사람의 마음을 움직인 사람은 사실 상윤이었다.
“1962년, 우리 수령님 하고 중국의 주은래가 서명한 조중변계조약에는 분명히 토문강과 두만강을 구분하고 있었단 말입니다,
서류상에는 제9호와 제10호 국경비를 연결하는 경계선 사이로 흑석구가 지나가고 그 위치는 제9호 비석 동쪽 1229미터 지점이라고 기재돼 있었지요,
흑석구 옆에다가 괄호를 쳐서 한문으로 土門江이라고 까지 기록 해났으니 빼도 박도 못하게 되었단 말입니다,
그러니까 분수령의 물길을 따라서 동쪽 아래로 내려가다가 제9호 비석만 확인하게 되면 이 분수령이 토문강의 최상류라는 것이 입증이 되는 것이지요,
고것만 확인하면 되니까 두어 시간 안에는 충분히 돌아올 수 있단 말입니다”
이 새로운 미니탐험대의 길잡이는 백두산 장군봉을 열 번도 넘게 올랐다는 상윤이 맡았다.
겨울철의 토문강 상류는 대부분이 건천이라 물길을 찾을 수는 없었으나 눈썰미 좋은 상윤은 군데군데 물길의 흔적들을 신통방통하게도 찾아내면서 빠르게 내려갔다.
1712년 청나라 황제 강희제의 명령을 받은 목극등이 주변일대의 물줄기를 나름대로 신중하게 살핀 뒤 그가 지정해 준 위치에 양국의 국경을 가르는 백두산정계비를 세웠다.
그리고 우리 백성들은 이것을 기회로 삼아 신속하게 인공울타리를 쌓았고 318년이 흐른 지금 남북대학생탐험대 가운데서도 최정예 멤버들로 구성된 미니탐험대가 그 흔적을 따라서 내려가고 있었다.
흙무더기나 돌무더기의 흔적들이 동쪽으로 이어지다가 금방 사라지는가 싶더니 또다시 이어지는 그런 식이었다.
계곡의 양 벽을 병풍처럼 둘러친 흙벽이나 계곡 바닥에 유난히 많은 검은 돌들을 통해서 이곳을 토문이나 흑석구로 부른 이유를 알게 하는 지점에까지 다다랐다.
이때 앞장서서 내려가던 상윤이 더 이상의 하강을 멈추고 정지했다.
“자 이제 그만들 내려가고 주변에 9호 비석이 있는지 유심히들 찾아보기오!
여기 백두산부대에서 군생활을 한 친구가 있었어 미리 귀동냥을 해두기는 했는데 이 주변이 맞는 것 같소,
동무들! 내 뒤를 바짝 따라붙어야 하오,
백두산에서 길을 잃으면 십중팔구는…”
상윤이 힘겹게 끌고 가던 막대기의 끝을 부여잡은 채 편안하게 그 뒤를 졸졸 따르던 진숙이 무심한 표정으로 하는 말이다.
“십중팔구는 어찌 된다는 건데?
백두산 호랑이한테 잡혀서 저녁 먹거리라도 된다는 말이네?”
상윤이 호방하게 웃으며 뒤를 돌아봤다.
“호랑이가 아니라 여기는 백두산 흑곰들이 득실거리는 곰 천지야,
낙오되면 흑곰 저녁거리되기 십상이니까 막대기 놓치지 말고 바짝 따라붙어라!”
곰이 우걸 거린다는 말에 잔뜩 겁먹은 표정을 하던 경은이 규태를 돌아보며 나지막하게 말했다.
“규태선배! 백두산에 사는 곰은 겨울철에 동면에도 안 들고 막 싸돌아 다니는가 보지요?”
“그런가! 지리산 반달곰은 12월 중순부터 3월까지는 무조건 동면에 든다고 하던데 곰들마다 취향이 다른가 보지 뭐!
바위틈새 같은 데서 동면에든 곰들이 시끄러운 소리에 깨어나기도 한다니까 아무튼 조심하는 게 좋겠지!”
규태의 말에 모두의 미간이 살짝 올라갔지만 백두산흑곰에 대한 경계심을 풀 정도는 아니었다.
한동안 주변을 살피던 상윤이 드디어 계곡 근처에서 제9호 비석을 찾아냈다.
스마트폰으로 토문강의 흔적을 동영상에 담고 있던 경은이 이번에도 별생각 없이 카메라의 플래시를 터트렸다.
그러자 갑자기 어디선가로부터 사람들의 인기척이 들리기 시작했다.
이 소리에 깜짝 놀란 일행들이 큰 바위 뒤로 신속하게 몸을 숨긴 채 인기척이 나던 곳을 주시했다.
북중국경을 지키던 몇몇의 중국 국경수비대 군인들이 카메라 플래시에 반응하면서 주변을 살피기 시작했다.
저들에게 발각이라도 되는 날엔 이래저래 골치 아픈 일들이 생기는 것은 불을 보듯 뻔했다.
상윤의 지시로 모두는 낮은 자세를 유지하며 다시 왔던 길로 되돌아가기 시작했다.
그런데 이제 갓 네 시를 넘긴 시각인데도 숲 속은 벌써부터 어둑어둑해지고 있었다.
벌써 삼십 분 이상을 재촉하며 되돌아가고 있었지만 마음이 급했던 상윤이 허둥대기 시작했고 급기야는 방향감각을 상실하고 말았다.
맨 뒤에서부터 진숙과 경은을 챙기면서 뒤따르던 규태가 걱정스러운 목소리로 한마디 툭 내뱉었다.
“어 아까 왔던 그 길이 아닌 것 같은데…”
규태의 이 말은 일행들의 머릿속에서 함께 맴돌던 걱정거리를 대변하는 말이 되고 말았다.
순식간에 일행들의 발걸음은 천금만금이 되었고 앞서가던 상윤이 발걸음을 멈추고 맥이 풀려버린 일행들을 뒤돌아봤다.
“길을 잃은 건 확실한 것 같은데 지금으로선 빨리 숲에서 벗어나는 것이 급선무 갔어!
안 그랬다간 진짜로 백두산 흑곰을 만날 수도 있갔는데…”
진짜로 곰을 만날 수도 있다는 말에 경은과 진숙의 낯빛이 새파랗게 질려버렸지만 이 위기의 순간에 잠자코 가만히 있을 규태가 아니었다.
“그래도 우리는 상윤 대장만 믿고 따를 테니까 자신감을 가지고 우리를 인도하기오!
상윤 대장만 있으면 우리는 일없수다!”
그제야 평상심을 회복한 상윤이 다시 뒤를 돌아봤다.
“이런 때일수록 단일대오를 유지하면서 위기를 극복하는 것이 최상의 방책 아니갔소!
다른 생각들은 하지 말고 동무들은 무조건 나만 따라 오기오!”
이번에도 규태가 다른 일행들을 대표하여 큰 소리로 대답했다.
“죽이 되던 밥이 되던 우린 동무만 믿고 따를 테니까 계속 앞장서서 가기나 하시오!”
모두는 짐짓 여유를 회복하려고 애쓰고 있었지만 길을 찾지 못하면 어쩌나 하는 불안감 때문에 실상은 다리까지 후들거렸다.
그러나 상윤은 믿는 구석이 있었고 그것은 의외로 단순했지만 확실한 근거가 있었다.
지금 걷고 있는 이 좁은 길은 분명 좀 전에 일행들이 내려왔던 그 길은 아니었지만 어쨌든 사람의 자취가 남아있다는 사실이다.
가다 보면 큰길과 만날 수 있다는 상윤의 믿음은 적잖은 산행경험으로 다져진 진실 같은 것이었다.
오직 뚝심하나로 걷고 또 걸었을 때 드디어 저 멀리서 사람의 인기척이 들려오기 시작했다.
조금 더 다가갔을 때 계단을 내려오는 몇몇 중국 등산객들이 보이기 시작하자 순간 경은은 눈물보가 터지기 일보 직전이었다.
실제로 말은 안 하고 있었지만 숲 속에서 그녀가 겪었던 마음고생이 꽤나 컸던 모양이다.
그런데 내심 상윤에 대한 믿음이 남달랐던 진숙은 의외의 담담한 표정으로 경은을 위로했다.
일행들이 숲 밖으로 빠져나왔을 때 중국 쪽 서파 등산로의 1442 계단 최하단부로 빠져나온 것을 알게 되었다.
이미 시각은 여섯 시를 넘겨 스마트폰의 손전등을 켜지 않고서는 바로 앞조차 볼 수가 없었다.
이 시각에 다시 백두산을 올라서 대학생탐험대와 합류한다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한 상황이었다.
무엇보다도 너무 지치고 허기져서 제대로 걸을 수조차 없었다.
급기야 가벼운 탈진증세까지 보이던 경은이 나무계단 아래에 덥석 주저앉아버렸다.
두 여학생이 서로 어깨동무를 한 채 오들오들 떨고 있었을 때 규태가 또다시 특유의 너스레를 떨면서 가방에서 육포덩이를 꺼냈다.
“두 동무래 사이들 좋구먼!
이래서 우리가 같은 민족, 같은 동포라고들 하지 않네?
동무들 추우면 더욱 바짝 껴안어라우!
동무들이 껴안는 것에 대해서는 아무런 문제도 없으니까 맘껏 껴안아서 몸속의 열기들을 끌어 올리라우!”
규태의 구수한 입담에 긴장이 풀어진 일행들이 규태가 나눠주는 육포 한 토막 씩을 입에 물었다.
이 와중에 진숙이 규태의 장난기에 맞장구를 치고 나왔다.
“와 안 그렇던 교!
우리는 대통합코리아연방의 형제자매들이 아이던교”
소고기 육포 한 토막을 씹은 효과는 금방 나타났다.
고갈되었던 체력이 다소간 회복되면서 수줍음 많은 경은도 밝은 표정으로 규태를 바라봤다.
“규태 선배님! 이제는 소원성취 하셨겠어요?”
뜬금없는 경은의 이 말에 모두는 영문을 몰라하며 귀를 쫑긋거렸고 경은의 간드러진 평양사투리 흉내는 일행들의 애간장을 녹이고 말았다.
“규태 선배님 평생의 소원이 김일성종합대 여학생과 사귀어 보는 거라 하지 않았습니까?
몇 년을 쫓아다닌 내게는 눈길 한 번도 안 주더니 이제는 소원성취 하셨겠습니다!”
이 소리에 진숙이 규태를 바라보며 매몰차게 몰아붙였다.
“맞는 교! 우짤락꼬 경은동무를 몇 년간이나 소박을 맞혔던 교!
내를 만날락꼬 그랬다면 꿈 깨이소! 난 동무에겐 일도 관심 없심더!”
진숙의 농담반 진담반 이야기에 일행들은 웃어야 할지 말아야 할지를 헷갈려하던 사이 머쓱해진 규태가 배낭을 정리하며 일어섰다.
“세상일 너무 그렇게 딱 잘라서 단정 짓지 마소!
남녀 간의 일이란 게 어디 마음 묵은 대로 된답디까?”
일행들이 다시 출발 준비를 하면서 각자의 배낭을 챙겨 메고 있었을 때 규태가 이제부터는 자신의 영역이라는 듯 자신 있게 말했다.
“여기가 서파 등산로 같은데 버스를 타고 내려가면 서문이 나올 거요,
일단 서문 근방의 호텔에서 하룻밤을 묵고 내일아침에 다시 백두산을 오르는 게 좋을 것 같은데 다행히 내가 비씨카드를 가지고 왔으니까 비용문제는 걱정들 하지 말고!
사실은 몇 년 전에 북파 방면으로 천지를 오른 적이 있었는데 그 뒤로 서파 코스에도 관심이 생겨서 검색을 좀 해봤었거든!”
딱히 다른 대안이 있을 리 없었던 일행들로선 규태의 제안을 받아들일 수밖에 없었다.
서문방향의 셔틀버스를 타기 위해서 정류소로 이동하던 중 미니탐험대의 상윤 대장이 휴대폰을 만지작거리면서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말했다.
“조직장한테서 문자가 왔는데 우릴 찾는다고 난리가 났다는 거야,
이럴 줄 알았으면 미리 문자라도 보내 놓는 건데 우리의 불찰이었어!
이럴게 아니라 다들 자신들 조직장한테 연락부터 취하고 이동하는 게 좋갔어!”
일행들이 모두 자신들의 휴대폰으로 연락을 취하고 있었지만 통화는 쉽게 터지지 않았다.
그러자 규태가 빙긋이 웃으며 말했다.
“명색이 여기가 중국 땅인데 쉽게 통화가 터진다는 게 이상하지!
상윤 대장한테 문자가 온 것을 보면 어찌어찌하다 보면 문자는 날아가는 모양이니까,
그냥 문자라도 보내는 게 좋겠어”
자연스럽게 상윤에게 이목이 집중되었다.
“고것이 좋갔어!
현재 처해있는 우리들의 상황을 간단히 설명하고 내일 해단식까지는 합류하겠다고 각자 알아서 문자들을 보내자고!
오늘밤은 그래도 못가역 천막촌에서 총평대회를 한다니까 그나마 넘어갈 수 있겠지만 어째 슬슬 걱정이 되는구먼!
어떻게 해서라도 내일 점심까지는 천막촌에 도착해 주어야 해단식에 참여할 수 있을 텐데 진숙동무는 걱정도 안 되네?
어쩜 그렇게 아무 걱정도 없는 사람처럼 태평스러울 수가 있네?”
뜬금없는 상윤의 질책이 있었지만 이런 상황에서도 매사에 똑 부러진 진숙의 성격이 여실히 드러났다.
“걱정타령을 한다고 해서 현재의 상황이 나아질 것 같지도 않은데 아무런 도움도 되지 않는 걱정타령은 감정낭비라는 생각이 안 드네?
넌 매사에 너무 철저한 것이 문제야!
과하지 않는 적당한 정도의 무대책이 때론 얼마나 정신건강에 좋은지를 모른단 말이야!”
“옳소! 옳소! 진숙동무 말이 무조건 옳소!”
규태가 박수를 치면서 진숙의 말에 환호성을 질렀다.
매사에 똑 부러진 진숙의 합리적이고 진취적인 태도에서 규태는 지금껏 느껴보지 못했던 어떤 감정 하나가 심중 깊숙이 비집고 들어왔다.
다행히 서문으로 향하는 마지막 버스에 올라탄 일행은 깜깜한 백두산의 무심한 야경을 감상하면서 삼십 여분을 달려서 서문입구에 당도했다.
따지고 보면 아무런 절차도 거치지 않고 무단으로 국경을 넘어버린 불법체류자의 신분이었다.
여기저기를 배회하다가 공안에라도 적발되면 자칫 심각한 일이 발생할 수도 있어 우선 하룻밤을 묵을 호텔부터 찾아야 했다.
길가에 들어선 여러 호텔들 가운데 가능하면 무작정 위쪽으로 올라갔다.
적당히 올라왔을 때 우거진 숲 속에 자리한 제법 큰 호텔이 일행들의 눈앞에 다가왔다.
장백호텔! 화려한 청나라풍의 건축양식이 예사롭지 않은 호텔이었다.
일행들 모두가 동의하는 표정이라 규태가 앞장서 먼저 로비에 들어섰다.
하지만 이내 자신의 치명적인 문제점을 파악한 규태는 발걸음을 멈추고 뒤돌아 볼 수밖에 없었다.
이곳 서문일대의 호텔들은 대부분 중국인들이 운영하는 호텔이라 간단한 중국어 대화조차 불가능한 규태로서는 호기롭게 앞장설 입장이 아니었다.
이때 진숙이 뚜벅뚜벅 앞으로 나서며 세련된 중국어로 방 두 개를 예약한 후 저녁과 아침 식사에 대한 프런트의 안내까지 상세히 들었다.
규태가 건네준 비씨 카드로 깔끔하게 선 결재까지 마친 진숙이 돌아서며 말했다.
“우리는 카드가 준비되지 않았던 관계로 오늘은 규태 동무의 도움을 받겠지만 돌아가서 계산은 분명히 처리하겠습니다,
경은 동무와 난 한 방을 사용할 테니 두 분이 같은 방을 사용하시라요,
그럼 올라갑시다! 저녁은 아래 식당에 준비돼 있다고 하니까 먼저 여장들을 풀고 천천히 내려오는 걸로 합시다!”
나란히 붙은 5층 객실에서 각자의 여장을 풀었다.
한 명씩 욕실의 따듯한 물에 들어가 무거운 몸을 녹이며 고단했던 오늘 하루의 피로를 풀고 있던 사이 나머지 두 사람은 마당으로 내려왔다.
산을 향해서 운치 있게 켜진 가로등 불빛을 따라서 쭉 뻗은 가로수 길을 마음 편히 걸어보고 싶었다.
뭐가 그리도 즐거운지 두 손을 뒷짐진채 깡충깡충 뛰듯이 진숙이 먼저 걸어가고 있었다.
백두산이 내뿜는 짙은 향기를 맘껏 받아들이자 온몸의 기운들이 흘러넘치면서 저절로 춤추는 듯했다.
머릿속이 비워지면서 어느덧 자연과 하나 되어가고 있었을 때 익숙한 또 다른 기운이 느껴졌다.
“혼자서 걸어가는 기분이 어떻습니까? 뒤에서 보니까 하늘을 나는 선녀 같습디다!”
깜짝 놀란 진숙이 뒤를 돌아보며 안도의 한숨을 몰아쉬었다.
“깜짝 놀랐습니다!
규태동무는 매사에 그렇게 사람 놀라게 하는 재주가 있으십니까?”
규태가 허공을 바라보며 큰 소리로 웃으며 말한다.
“진숙동무도 만만치가 않더만요,
다 타고난 성격 나름이죠!”
농담은 여기까지만 하고 규태는 이제 진숙과 진지한 대화를 나누고 싶었다.
백두산이 만들어준 이 절호의 분위기를 허투루 놓치고 싶지 않았던 것이다.
“난 어쨌든 현대과학을 신뢰하는 실용주의자로서 매사에 합리성을 추구하는 편이죠,
진숙 씨는 어떻습니까? 나와 생각이 비슷한 것 같은데…
그나저나 몇 학년입니까? 아 우선 나부터 소개하죠,
난 부산에 있는 한 사립 대학교에서 사학을 전공하는 4학년이고 나이는 스물여섯입니다, 진숙 씨는요?”
진숙이 고개를 끄덕이면서 예상이 빗나가지 않았다는 표정이다.
“난 김일성종합대학 경제학부 졸업반이고, 나이는 규태동무하고 별반 차이도 나지 않으니까 우리 그냥 친구 먹읍시다!
그런데 동무는 아는 것도 많고 생김새도 똑똑하게 생겼는데 왜 서울대학교를 안 가고 지방에서 대학을 다니는 거네?”
진숙의 황당한 질문에 규태의 표정이 머쓱하게 변하더니 특유의 구수한 입담을 자랑했다.
“아 이 동무래 남조선 실정이라고는 도통 모르는 동무구만!
남조선에서는 등록금이 제일로 센 대학이 최고로 치는 대학인데 전국에서 우리 대학 등록금이 최고로 세니까 최고의 명문대학이라고 봐야 돼 갔지!”
“아하! 미안, 우리는 학비가 무료라서 몰랐어, 용서하시라요 규태동무!”
그러면서 진숙이 오른손을 내밀며 악수를 청했다.
해맑게 웃는 진숙의 얼굴을 바라보며 규태는 그의 심장에서부터 힘차게 널뛰고 있던 어떤 소리를 들을 수 있었다.
“진숙동무래 남자친구 있어?”
규태의 돌발 질문에 진숙은 아무런 대꾸도 하지 않은 채 앞으로 걸어가면서 전혀 엉뚱한 말을 했다.
“현대 과학을 신뢰하는 실용주의자? 합리주의자라고?
고거이 구체적으로 무슨 뜻이지?”
진숙과 나란히 걷기 위해서 빠른 걸음으로 치고 나온 규태가 이목구비가 뚜렷한 진숙의 얼굴 중에서도 볼 사이의 깊은 보조개를 빤히 바라보며 말했다.
쿵쾅거리는 심장소리가 너무 커서 숨이 막힐 것 같았지만 진숙에게 들키지 않기 위해 무진 애를 썼다.
“뭐 특별할 것도 없는 일반적인 이야기지만 진숙동무는 얼굴의 미소를 어떻게 정의하지?”
뜬금없다는 듯 진숙이 규태를 바라보며 자신의 볼에다가 양 손가락을 귀엽게 갖다 대며 말했다.
“미소를 정의해 보라고?
작게 웃는 얼굴의 모습인가?
갑자기 정의하려고 하니 쉽지가 않네? 그러고 보니 한 번도 진지하게 생각해 본 적이 없었네,”
“과학적으로 설명하면 얼굴이라는 육체가 보여주는 작용현상의 하나가 되겠지,
그럼 마음은 뭐라고 설명해야 할까?
뇌라는 육체의 작용현상이 될 테니까 뇌가 죽으면 당연히 마음이란 것도 사라지게 되겠지,
우리 인류는 현대에 이르러서야 비로소 운명이라던가 하는 비과학적인 것들로부터 자유로운 삶을 살게 되었지”
규태가 말하고 싶은 핵심을 이해하겠다는 표정으로 진숙이 웃으면서 말했다.
“한마디로 난 유물론자다, 뭐 이런 말을 하고 싶은 모양인데 당연한 말을 뭘 그렇게 돌려서 이야기하네?”
“그렇지 유물론자!
맞아 내가 바로 그 물리주의자야,
그래서 난 운명이니 어쩌니 하는 그런 말 따위는 믿지를 않거든,
앞으로 진숙동무와 나 또한 어떻게 될지 아무도 모른다는 거 아니겠어?
뭐 그런 이야기를 하고 싶었는데 이상하게 말이 꼬여버렸네”
그냥 웃고 넘길 수도 있는 상황이었지만 여기서도 진숙의 당찬 성격이 나타났다.
더 이상 앞으로 걷기를 멈춘 진숙이 뒤를 돌아서더니 냉정한 눈빛으로 규태를 쏘아봤다.
“규태동무! 허접한 이성타령은 나에겐 통하지 않으니까,
쓸데없는 감정낭비 따위는 집어치우고 경은동무의 마음이나 받아주지?
규태동무 때문에 몇 년간이나 해바라기를 자처하고 있다지 않네?
여자 맘을 그렇게도 몰라주면 벌 받는 것 정도는 알지?
동무! 그리고 난 동무 같은 스타일의 남자들은 별로 안 좋아하니까,
두 번 다시는 이따위의 허접한 말 장난질은 말아줬으면 좋갔어!”
한마디로 단칼의 거절이었다.
자신 같은 남자를 싫어한다는 진숙의 매몰찬 말은 마음의 상처로 다가왔지만 그렇다고 따질 수도, 다시 한번 더 생각해 달라며 애원할 수도 없었다.
그저 특유의 익살스러운 표정으로 이 어색한 상황을 반전시킬 뿐이다.
“나도 동무 같은 도도한 여학생은 별로 안 좋아하니까 헛된 꿈에서나 깨어나시오! 공주마마!”
이렇게 한바탕 웃는 것으로 잠시 잠깐의 어색함도 이내 사라졌고 어느새 호텔 마당 안으로 들어섰다.
인기척도 없는 깜깜한 밤중이라 작은 새소리마저 크게 들리는 고요함 속에서 진숙이 무슨 소리를 들었던지 순간적으로 발걸음을 멈추었다.
저만치 걸어가던 규태가 되돌아와서 궁금한 표정으로 말했다.
“왜? 무슨 일인데?”
진숙이 규태를 바라보며 조용히 하라고 다그쳤다.
“쉿! 분명히 무슨 소리가 들렸는데…”
주의를 집중하면서 한두 발작을 더 다가가 보았지만 더 이상은 아무런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무슨 소리를 잘못 들었다고 판단한 진숙이 상윤과 경은이 먼저 와서 자리를 잡고 있던 식당 안으로 규태와 함께 들어갔다.
식당에서 밥을 먹던 도중에도 진숙은 내내 귓전에서 좀 전에 들었던 그 소리가 떠나질 않았다.
‘분명히 조선여자의 살려달라는 소리 같았는데 내가 잘못 들었나?’
고개를 갸우뚱하면서 혼잣말처럼 읊조리는 진숙의 모습에 신경이 쓰였던지 규태가 다시 물었다.
“진숙동무! 대체 뭘 들었다는 검매?
난 아무 소리도 못 들었는데”
이 소리에 경은과 상윤도 궁금한 표정으로 진숙의 얼굴을 또렷이 쳐다봤다.
진숙이 그제야 주변을 두리번거리더니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아니 내가 똑똑히 들었거든! 분명히 조선여자의 비명소리 같았어,
이 호텔 지하 어딘가에서 살려달라고 했었단 말이야, 조선말로!”
식당 안은 저녁 여덟 시가 가까워지는 늦은 시각이라 몇몇 테이블의 중국손님들 말고는 아무도 없었다.
하지만 혹여라도 다른 사람들이 들을까 봐 모두는 긴장된 표정으로 조용히 말하고 있었다.
그런데 주변을 둘러보니 테이블을 차지한 손님들의 분위기가 좀 이상했다.
하나같이 검정색 정장차림에 짧게 깎은 스포츠형 머리를 한 삼합회 패거리 같은 불량기가 전해져서 영 기분이 좋지 않았다.
경은이 모두에게 좀 더 다가오라고 말한 후 떨리는 음성으로 나지막하게 말했다.
“우리 동포가 살려달라고 했다면 모른 채 할 수는 없는 것 아닙니까?
우리가 도울 수 있는 방법을 찾아봐야 하지 않을까요?”
경은마저 이렇게 나오자 두 남자는 더 이상 머뭇거릴 수가 없었다.
경은과 진숙이 지하실 근방의 나무벤치에 앉아서 상황을 좀 더 알아보기로 했다.
그러는 사이 두 남자는 마당 현관 앞에서 최대한 자연스럽게 이들을 지켜보며 대기했다.
“언니! 난 언니를 처음 봤을 때부터 왠지 모르게 맘에 들었어요!”
“내가 마음에 들었다고! 왜?”
경은이 더욱 진숙에게 기대며 살가운 음성으로 말했다.
“그냥요! 느낌이 그래요”
그러면서 경은이 진숙과 다정한 모습으로 팔짱을 끼려고 했을 때였다.
아래 지하층에서 실제로 여자의 목소리가 또렷하게 들려왔다.
“밖에 누구계세요?
살려주세요! 저는 한국 사람입니다!
지하실에 갇혀있어요, 제 이름은 배은하라고 합니다,
저는 서울에서 왔습니다!”
자세히 보니 지하실 위쪽의 작은 창문 사이로 머리를 구십 도로 뒤로 젖힌 채 절규하는 사람의 모습이 보였다.
진숙이 창가 쪽으로 머리를 향한 채 땅바닥에 바짝 엎드려서 떨리는 목소리로 작게 말했다.
“우리도 조선 사람입니다,
우리가 어떻게든 도울 방법을 찾아볼 테니까 잠깐만 기다리시라요!”
뜻밖의 구세주라도 만나듯 지하실에서는 또다시 절규하는 여인의 목소리가 나지막이 들렸다.
“고맙습니다! 정말 고맙습니다!”
진숙이 땅바닥에서 일어나자마자 긴장된 표정으로 이 모습을 지켜보던 두 남자에게 손짓하고 있을 때였다.
좀 전까지 식당에서 같이 식사하던 건장한 체격의 사내들이 지하실의 철문 쪽으로 떼로 몰려왔다.
뒤이어서 흰색양복을 입은 거구의 중년 사내가 입에 시거를 물고 나타나자 사내들이 허리를 구십 도로 숙이며 깍듯이 인사했다.
예상치 못한 상황이 발생하자 오히려 진숙과 경은이 두 남자가 앉아있던 나무벤치로 다가와 자연스럽게 둘러앉았다.
험상궂은 이들이 모두 지하실 계단으로 내려간 뒤에야 진숙이 두 남자를 바라보며 속삭이듯 말했다.
“분명히 서울에서 온 배은하라고 했고 지하실에 갇혀있다고 했거든!
저 자식들 폼새를 보니까 삼합회들 같은데 어떡하지!”
상윤이 두 손으로 얼굴을 쓸어내리더니 심각한 표정으로 규태를 바라봤다.
이런 위험한 일에 개입하는 것이 옳은지를 규태에게 묻고 있었지만 규태는 이미 두 여전사들의 결기에 주눅이 들어버린 처지라 고개만 끄덕일 뿐이다.
이렇게 된 이상 미니탐험대의 상윤 대장으로서도 대원들과 함께 행동할 수밖에 없었다.
그렇게 하기로 한번 결정이 내려지자 머리회전이 빠른 상윤은 대원들의 역할을 효과적으로 분담 배정했다.
“규태동무는 지금 즉시 호텔방으로 올라가서 선양에 있는 남조선영사관에 이 사실부터 알리기요!
여긴 우리가 지키고 있을 테니까”
규태가 호텔방으로 올라간 사이 나머지 일행은 지하실 쪽을 바라보며 태연하게 대화하는 척 연기를 했다.
경은은 진숙의 왼팔을 꼭 껴안은 채 긴장감을 달래려고 했고 신기하게도 진숙의 당찬 기운이 교류되면서 두려운 마음들이 사라졌다.
Brunch Book
월, 화, 수, 목, 금 연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