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설픈 물리주의자의 좌충우돌기
우리 아들을 명료하게 평가하자면 그만그만하게 보통의 삶을 살아가는 삼십 대 초반의 건강한 청년이다.
심성이 착하면서도 성실하고 정의감과 유머감각도 뛰어나지만 딱 한 가지가 부족하다면 아직까지 경제적인 기반을 잡지 못했다는 점이다.
이렇게 된 사연을 거슬러가자면 오래전 나의 판단이 한몫을 거들었다는 생각을 지울 수가 없다.
초등학교 시절 암만생각해 봐도 공부로는 성공하기가 어렵겠다는 빠른 진단이 내려지자 차리리 운동을 시켜서 먹고살길을 만들어주자는 계산이었다.
그래서 공부는 간섭하지 않았지만 태권도만큼은 중단하지 않도록 강권하다시피 하여 아이로부터 원망도 많이 들었다.
그 덕분에 어엿한 4년제 태권도학과를 진학하게 되면서 당시 담임선생님으로부터 금의환향했다는 칭찬까지 들었을 정도다.
기왕에 갈 군대라면 제대로 된 군대생활을 경험해 보라고 주문하였더니 해병대를 자원하여 정말 빡세게 복무했고, 졸업도 하기 전에 지도교수의 추천으로 태권도사범으로서 사회에 첫발을 내디뎠다.
그런데 그때까지는 정말 아무것도 몰랐다. 최소 시급에도 못 미치는 열정페이라는 독특한 분위기 속에서 제아무리 노력해도 결혼은 고사하고 생활자체가 어렵다는 현실을.
어쩔 수 없이 이직을 결심하면서 헬스트레이너를 거쳐 지금은 울산의 대기업 자동차공장에서 비정규직이지만 성실하게 근무하면서 차근차근 미래를 설계하고 있다.
지난 연말의 송년회 자리에서 억대의 연봉을 받으면서 정년퇴직을 앞둔 우리 사회의 특혜 받은 대기업 근로자로 살아온 친구가 하는 말이 걸작이었다.
팍팍 밀어줄 수 있는 돈 많은 부모가 있던가, 아들직장이 빵빵하던가 둘 중 하나가 아니면 결혼을 할 수 없는 세상인데 너거 아들은 어디에 해당하느냐고 묻는 것이다.
나의 처지야 그렇다 치더라도 우리 아들은 너희 회사의 비정규직 근로자라고 말해주었더니 그냥 아무 말 없이 표정 없는 사람이 되어 버렸다.
물론 한번 웃자고 농담으로 한 말이었겠지만 왠지 모르게 마음 한편이 편치 않은 것은 숨길 수 없었다.
우리 사회에서 아들과 같은 비정규직 청년들이 적지 않을 텐데 그들은 결혼도 꿈꾸지 말고 주눅이 든 채로 비주류의 인생을 살아야 한단 말인가.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 아들은 늘 긍정적이고 미래에 대한 자신감으로 넘쳐있다.
작년봄에는 우리 부부의 마음에도 쏙 드는 예쁜 여자친구를 집으로 데리고 왔다. 처음 우리 집에 왔을 때부터 수줍은 많은 미소와 웃음소리가 끊이지 않았던 병원에서 물리치료사로 근무하는 쾌활한 아가씨였다.
그 밝은 표정이 얼마나 마음에 들었던지 우리 부부는 아들의 삼십 년 평생에서 가장 잘한 일이라고 칭찬할 정도였다.
지난가을에는 양가집안의 상견례도 마쳤고 몇 달 후면 결혼식을 앞두고 있다.
비록 전용면적 열한 평짜리의 작은 신혼부부임대아파트지만 청약에 당첨되었을 때 로또에 당첨된 것처럼 행복해하던 아이들의 표정이 귀엽고 사랑스럽다.
최근에 집사람은 예비며느리에 대한 칭찬의 말을 대단히 독특한 표현으로 하기 시작했는데 나 또한 빙그레 미소 지으며 공감하는 편이다.
'어머니가 보내주신 며느리가 틀림없어'
이 지구상을 통틀어서 십 년 전에 돌아가신 어머니가 보내주신 며느리라는 말보다 격한 칭찬의 말이 있을 수 있을까?
매사에 적극적인 성격과 소곤소곤하게 말하면서도 똑 부러지게 아들을 리더해 나가는 현명함, 웃음이 사라지지 않는 밝은 얼굴로 하루종일 해피바이러스를 뿌려 되는 신세대 며느리에게 더할 나위 없이 적당한 표현이다.
며칠 전에는 너희들끼리 인근의 카페에라도 다녀오라며 등을 떠밀었지만 기어이 손을 거들겠다며 몸빼차림으로 시금치 텃밭에 나타나 고부간에 종알종알 거리며 함께 일하는 모습에서 깊은 감명을 받았다.
스펀지에 물이 스며들듯이 우리 가족 속으로 온전히 스며든 며느리의 예쁜 모습에서 누군들 감동받지 않았겠는가.
혼령이 어쩌니 하는 형이상학적인 존재를 인정하지 않는 물리주의자로서 돌아가신 어머니가 며느리를 점지할 능력은 당연히 없다는 생각이지만 생전에 이런 예쁜 손주며느리를 보았으면 얼마나 기뻤을까 하는 은유의 표현이겠다.
어머니가 돌아가신 후 우리 집안은 그동안의 제사문화를 혁파하고 돌아가신 분도 우리와 똑같이 생일상을 차려서 가족으로서의 정을 되새기고 있다.
금년이 돌아가신 지 꼭 십 년째가 되는 해인만큼 보다 정성을 들여서 생일의 의미를 되새길 생각이다.
언제나처럼 이번 설날에도 차례상은 원두커피와 담백한 브런치로 당첨되었고 그 대신 마당의 화덕에서 노릇노릇하게 구워낸 양고기로 오찬을 즐길 예정이다.
물론 양고기를 굽는 일 같은 궂은일의 대부분은 집안의 가장몫으로서 온종일 부녀자들에게 희생을 강요하는 전통적인 명절노동을 가위로 잘라내듯이 싹둑 잘라버렸다.
명절은 모든 가족이 즐거워야 할 산자의 축제가 되어야 한다는 깨달음으로 시작된 우리 집안의 새로운 전통이다.
죽은 자에게 혼령이 있다는 전제하에 유지되어 온 제사 문화를 부정하는 순간 모든 것이 명쾌해졌다.
21세기 현대과학의 시대를 살아가면서 굳이 벽 쪽으로 바짝 붙인 차례상을 바라보며 절을 한다는 무상함을 깨닫는 순간 우리 집안의 제사는 철폐되었고 차례상은 담백한 브런치로 전환되었다.
단정한 옷차림으로 온 가족이 둘러앉아 잠시 묵념의 시간을 가지는 것으로 충분하다.
'우리를 이같이 행복한 세상에 태어나게 해 주신 조상님의 은덕에 감사드립니다'
그렇다고 명절이라고 하여 모든 가족이 의무적으로 북적일 필요는 없다는 생각이다.
모처럼만의 연휴기간을 활용하여 자기들끼리 해외여행을 다녀와도 좋고 또 추석과 설을 번갈아가면서 며느리의 본가에서도 진득하게 아들내외가 지내야 한다는 공정한 생각을 가지고 있다.
새해 첫날에는 온 가족이 신년 해돋이 행사를 한답시고 고르고 고른 장소가 하필이면 가덕도 연대봉 서측편의 해넘이 전문 카페였다.
산 봉우리 하나를 넘어온다고 이미 십여 분을 허비한 헌 해를 바라보며 아쉬움을 달랬는데 이번 설에는 동해바다가 훤히 내려다보이는 연대봉에서 제대로 된 구정 해돋이 행사를 벼르고 있다.
설날 새벽의 장대한 프로젝트를 설명했더니 구정에 무슨 해돋이 행사냐며 아들 녀석은 시큰둥한 반응이지만 예비며느리의 답변이 걸작이다
'좋아요 아부지! 전 다 좋아요! 오빠도 좋아할 거예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