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와 우리 가족의 경험칙상 이 세상에서 고기를 가장 맛있게 굽는 방법은 단연 화덕요리라고 말하고 싶다.
지금은 우리 가족들 중 어느 누구도 나의 화덕요리 실력을 의심하지 않지만 손수 화덕을 만들고 십 년의 세월이 농축된 우여곡절의 결과물이다.
딱 잘라서 한마디로 표현하자면 그것은 불을 이해하고서야 가능해진 일로서 힘들게 화덕의 장작불을 피우는 과정을 거치게 되면 그 화력이 아까워서 느긋하게 기다리는 마음의 여유가 사라지게 된다.
거센 화덕 안의 장작불이 숯불로 변하여 최대한 안정을 되찾았을 때 그때서야 비로소 노릇노릇하게 고기가 잘 구워지는 법이지만 아까운 화력을 무작정 낭비하면서 사십 분가량을 그렇게 하염없이 기다린다는 것이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이것은 지난 인생의 과정을 통하여 이미 여러 차례 겪었던 교훈이지만 매번 쉽지가 않다.
혈기가 넘치던 젊은 시절, 웬만해선 조급증을 이기기가 쉽지 않았고 끓지도 않았는데 넘친다는 표현대로 충분히 준비되지 않은 상태에서 성급하게 실행하다 실패를 반복하곤 하였다.
지난 설날의 오찬을 준비하면서 우리 막둥이에게 전수해 줄 요량으로 화덕요리의 전 과정을 시연했는데 물론 이번에도 그 과정의 핵심은 기다림의 미학이었다.
'힘들게 장작에 불을 붙였으니 당연히 불이 아까울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거센 장작불이 알맞게 익을 때까지 기다려야만 고기를 태우지 않고 노릇노릇하게 잘 구울 수 있는 법이다, 아들 알아들었으렷다!'
세상을 삼켜버릴 듯이 기세 넘지는 화덕 안의 장작불이 안정되기를 기다리는 불멍을 때리는 시간 동안 난 우리 막둥이가 인생의 교훈 하나를 찾았으면 기대하는 마음이었다.
가장 유익한 불은 차분하게 잘 익은 평상심 같은 불이고, 그러자면 기다릴 줄 알아야 한다는 교훈을.
화덕 안에서 잘 익은 숯불처럼 감정의 기복이 없는 차분한 마음은 꼭두새벽 찬바람을 맞으며 힘겹게 연대봉에 올라 감동적인 일출을 바라볼 때의 마음도 같은 마음이었다.
마치 물결이 일지 않는 고요한 호수처럼 남은 여생을 잔잔한 평상심으로 살아갈 수 있다면 얼마나 아름다운 인생이겠는가!
세상을 살아가면서 중요한 판단을 내려야 하는 순간, 평온하지 않은 격정적인 감정상태에서 내린 판단은 대부분 실패로 끝난 경험이 있듯이 차분하게 잘 익은 숯불처럼 평상심의 힘을 신뢰하는 연배가 되었다.
계엄령이지 계몽령인지 온통 혼란스럽고 시끄러운 시국이지만 이런 때일수록 양 극단으로 치우치지 아니하는 균형 잡힌 마음가짐을 추구하게 된다.
일체의 편견 없이 두루두루 헤아릴 수 있는 중용의 마음으로 세상을 바라볼 때 그제야 사물을 온전하게 바라볼 수 있는 법,
오늘도 출근하자마자 한겨레와 경향 동아 중앙 조선일보의 5대 일간지를 섭렵하면서 저울의 균형추를 맞추듯 마음의 중심을 굳건하게 다져본다.
을사년에 태어나서 다시 여섯 번째로 시작하는 뜻깊은 을사년의 태양을 바라보며 평상심의 의미를 되새긴다는 것은 이제야 인생의 진정한 참맛을 알아간다는 의미겠지만 그래도 너무 늦지 않아서 다행스럽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