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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 대고려연방 (25)

위기의 순간 4

by 맥도강

그제야 박철이 안도의 표정으로 바뀌면서 면박을 주듯이 하는 말이다.

“난 또 뭐라고! 최 선생도 몸무게를 좀 줄이시라요,

몸관리를 그렇게밖에 못하니 혈압이 제멋대로 미쳐서 날뛰는 것 아니 갔습니까?

난 말입니다, 자신의 몸뚱이 하나도 똑바로 관리하지 못해서 흐느적거리면서 걷는 자들을 보면 당체 수긍이 가지를 않아요!

그렇게 기본기도 못 갖춘 인사들이 무슨 큰일을 한답시고 나대는지 납득이 안 된단 말입니다!

그렇지 않습니까? 최 선생!”

가만히 듣고 있던 최 실장이 기가 막혔던지 헛웃음소리를 내고 말았다.

몇 시간 전만 하더라도 이 자의 입에서 이런 말이 나올 줄은 상상도 할 수가 없었다.

겉과 속이 다른 박철의 실체를 목격하자 터져 나오는 웃음을 자제할 수가 없었다.


박철도 자신의 발언이 과했다고 판단했던지 수습하기 시작했다.

“아니 내 말에 무슨 다른 뜻이 있었던 것은 아니니까 오해 같은 건 하지 마시라요, 자 자 커피나 듭시다!”

보위부장의 권유로 커피 한 모금을 마셨을 때 지나치다 싶을 정도의 진한 커피의 효력은 즉각적으로 나타났다.

다운되었던 혈당을 급속히 끌어올리면서 지친 심신을 나른하게 만들었다.


박철이 탁상 위에 놓인 밤색 가방에서 황색서류봉투를 조심스럽게 꺼내더니 최 실장에게 건네면서 말했다.

“최 선생! 우리 공화국의 대원수님께서 남조선대통령께 전하시는 답신서요”

“오호 그래요, 그렇잖아도 빈손으로 내려가기가 허전했었는데 잘됐습니다!”

파일이 담긴 서류봉투를 최 실장이 정중하게 받아 들었을 때 일반적인 서류봉투와는 확실히 달랐다.

고급 소가죽 재질로 만든 황색의 서류봉투로서 봉투 속에 담긴 직사각의 파일이 팽팽하게 느껴지는 특수 봉투였다.


그런데 봉투의 겉 표면에 부착된 단추 두 개가 어딘지 모르게 느슨한 감이 들었다.

겉으로 보아서는 아무런 문제가 없었으나 손으로 만져 보았을 때 왠지 꽉 닫히지 않은 미세한 느낌이 들었다.

최 실장이 힘을 주어서 닫아 보려고 했지만 도무지 닫히지 않았다.

“그냥 놔두시라요! 원래는 딱 소리가 나면서 닫히는 건데 단추가 불량인 모양이오!”

명색이 북쪽의 최고지도자가 남쪽 대통령에게 보내는 답신서가 아닌가.

한눈에도 최종 수신인만 열람하기를 바라는 정 위원장의 보안 조치가 틀림없었다.

그런데 단추가 불량하다는 박철의 말에서 최 실장은 뭔가 개운치 않는 감정이 교차됐다.

“알겠습니다! 우리 대통령님께 잘 전달하겠습니다!”


가냘프게 뜬 눈으로 이리저리 최 실장을 훑어보던 박철이 그 답지 않은 나지막한 목소리로 말했다.

“그런데 말이요 최 선생!

내 궁금해서 물어보는 건데 남조선에서는 어째서 우리 공화국이 한 번도 가보지 않은 그 새로운 길을 낭패 없이 잘 갈 수 있다고 말하는 것이오?

먼저 시도한 나라는 실패했다고 하지 않았소?

그런데도 어째서 우리는 잘할 수 있다고 말하는 것이오?

내래 궁금한 것이 있으면 참지를 못하는 성미라서 물어보는 것이니 최 선생이 편이 좀 봐주시라요!”

커피가 입에 맞았던지 입맛을 다시며 커피 잔을 내려놓던 박철이 의미심장한 미소를 지어 보이며 최 실장의 답변을 기다렸다.

그가 입을 벌렸을 때 드러난 금빛 어금니가 창문으로 쏟아져 들어오는 태양빛에 반사되어 번쩍였다.

다소 거만하게 앉은 자세며 팔짱을 낀 채 하대하듯 말하는 폼새며 일국의 특사를 대하는 태도는 분명 아니었다.


하지만 최 실장의 성품이 워낙 점잖은 선비 형이라 개의치 않고 담담하게 말했다.

“40년 전의 당시 동독상황과는 시대적 상황이 다르고 또 북한의 현 체제가 충분히 안정되어 있어 능히 감당할 수 있으리라 판단하는 겁니다,

그 부분은 나보다는 윤 비서관이 더욱 정통하니 불러서 한번 물어보시죠?”

윤 비서관을 불러보자는 말에 보위부장이 정색을 하며 제지하는 것을 보고서야 최 실장은 자신의 실언을 깨달았다.

“40년 전이면 베를린 장벽이 무너졌고 그래서 동독은 체제가 무너졌단 말이지,

그때와 똑같은 일이 다시 벌어지더라도 우리 공화국은 거뜬히 버텨낼 수 있다면…

고거이 대체 뭐시기 말입니까?

지금 당장이라도 휴전선을 걷어내자는 말이지 아님매!”


당황한 최 실장이 손사래를 치면서 그런 것이 아니라고 말하고 있었지만 얼굴이 벌겋게 달아오른 보위부장이 삿대질까지 하면서 최 실장을 거칠게 몰아붙였다.

“똑바로 말해 보시라요!

지금 당장이라도 휴전선 장벽을 걷어내지 않으면 뭘 어쩌겠다고 우리 대원수님을 겁박한 겁니까!”


상황이 이상하게 흘러간다고 판단한 최 실장이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호통치듯이 보위부장에게 말했다.

“난 지금 우리 정부를 대표하여 방북한 특사신분이요,

그런데 보위부장께서는 날 한낱 하찮은 시중잡배 대하듯 하시니 돌아가는 대로 이 부분에 대해서는 정식으로 문제 삼겠습니다!”


갑자기 부대장실 안에서 최 실장의 고함소리가 들려오자 밖에서 조마조마한 심정으로 대기 중이던 윤 비서관이 부관들을 밀치고 힘껏 문을 열어젖혔다.

어쩔 수 없이 부관들도 황급히 뛰어 들어왔지만 보위부장이 호방하게 웃으면서 일어났다.

“최 선생! 덩치보다는 성질이 급하십니다 그려,

궁금해서 몇 마디 물어본 것인데 뭘 그렇게 언쟎게 생각하고 그러시오? 무례했다면 용서하시오!

내 본시 화법이 직설적이라서 오해가 있었던가 본데 그만 역정을 푸시고 자자 우리 같이 아침식사나 하러 갑시다!”


그러면서 아무 일도 없다는 듯 함께 나가기를 권했으나 최 실장이 정색한 표정으로 보위부장을 정면으로 응시하며 쏘아붙였다.

“우리의 일정이 그렇게 한가롭지가 않습니다!

우린 가던 길을 재촉할 테니 이제부터는 우리의 가는 길이나 막지 마시오!”

뿌연 담배연기 속에서 저 멀리 떠나가는 검정색 세단을 멀찍이 바라보던 박철의 눈빛이 적대감으로 이글거렸다.


앞뒤로 보위부차량의 호위를 받으며 다시 남쪽을 향한 차량이 한 시간 가까이를 더 달렸을 때 개성에 진입했다는 도로 표시판이 지나가고 있었다.

동이 트기 전에 당도했어야 할 거리를 아침 햇살이 눈부시도록 북녘 땅을 벗어나지 못했으니 답답한 노릇이 아닐 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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