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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맥도강 Dec 19. 2022

영원한 삶보다는 깨끗한 소멸을!

어설픈 물리주의자의 좌충우돌기

간절한 마음으로 영혼의 존재를 믿고 싶은 분들에게는 참으로 안타까운 소식이지만 애당초 우주를 설계한 신은 존재하지도 않았다는 것이 현대 과학이 밝혀낸 팩트다. 달리 말하자면 신이 인간을 창조한 것이 아니라 호모 사피엔스라는 동물이 그들의 필요에 의해서 그들을 빼어 닮은 그들의 신을 창조한 것이다. 어쩌면 우주공간 도처에서 살아가고 있을 수많은 지적 생명체들이 그들의 모습을 닮은 그들의 신을 모시고 있을지도 모른다. 소와 비슷한 모습이라면 우격신이 될 테고 호랑이의 모습을 했다면 범격신으로 불리겠지만…

 

따지고 보면 경전 속의 문구도 인간들의 기록인 만큼 자구 하나하나를 너무 심각하게 해석하는 것이 오히려 민망한 일이다. 어떤 경전에서도 2억 년 가까이나 지구의 주인으로 군림했던 공룡이 등장하지 않는 것은 6,600만 년 전에 멸종한 공룡의 존재를 알지 못한 인간들의 기록이기 때문이다. 일만 년 전에 멸종한 매머드가 등장한다는 경전도 들어보지 못했으니 대부분 그 후대의 기록이 분명하다.


어설픈 물리주의자는 사실 굉장히 신비스러운 체험이라 할 수 있는 임사체험을 그것도 매년 반복적으로 경험한다. 이게 무슨 뚱딴지같은 말인가 하겠지만 종합 건강진단의 말미에 받는 수면내시경을 통해서다. ‘약물 들어갑니다, 하나 둘∼’ 간호사의 이 말과 함께 백발백중 내 의식은 사라지고 만다. 꿈조차 사라진 무의식의 상태가 영구히 지속된다면 이것이 바로 죽음의 상태임을 잘 알기에 깨어났을 땐 깊은 안도의 한숨을 내어 쉬게 된다.


그런데 깨끗하게 사라진 이런 無의 상태가 죽음이라면 너무 이른 죽음만 아니라면 그다지 두려워하지 않아도 될 것 같다. 어찌 됐든 현대 과학을 신뢰하는 물리주의자를 자처한 이후 육신을 벗어난 비물질의 삶을 믿지도 않지만 그것이 허구라는 사실에 대하여 정말로 다행스럽게 생각한다. 육신이 사라진 이후에도 영원히 살아가는 제2부의 삶이 있다면 설사 그것이 천국이나 낙원이라 할지라도 생각만 해도 끔찍할 것 같다.


가끔씩 생일날 먹게 되는 깔끔한 향의 생크림 케이크를 좋아하는 편이지만 한 달이나 일 년 어쩌면 영원히 먹으라고 한다면 손사래를 치면서 도망칠 것 같다. 천국에서의 영원한 삶을 갈망한다면서도 정작 디테일하게 그려진 천국에서의 일상적인 이야기를 들어본 적이 없다. 대체 무슨 이유일까? 아마도 어떤 기발한 상상력으로 그려낸다고 하더라도 영원이라는 시간 속에 내포된 그 단조로움과 따분함을 무슨 수로 극복할 수 있겠는가?


전생을 기억하지 못하는 윤회의 삶 또한 그냥 쿨하게 사라지는 것과 무엇이 다른지 모르겠다. 전생의 기억이 사라져 버린 현생에서의 윤회는 제아무리 감정을 쥐어짜 내 봐도 전혀 감응이 생길 것 같지가 않은데 말이다. 내가 전생에 제국의 황제였던, 하찮은 거지였던 그래서 뭐가 어쨌다는 것인가? 현생에서 달라질 것이 아무것도 없지 않은가 말이다.

어느 현자의 말처럼 나 또한 딱 한 번의 삶이면 충분히 족하고 육신의 죽음과 함께 영원히 사라지고 싶다. 물론 사는 날까지는 건강한 육신으로 행복하게 살고 싶지만 수명을 다한 후에는 천국도 윤회도 필요 없으니 그냥 대자연으로 돌아가 꿈조차 없는 영원한 숙면에 들고 싶다. 


적어도 내 기준에서는 죽음이 임박한 사람에게 생명연장 치료를 한다는 것은 인간들의 상상력으로 그려낸 지옥 속의 고통과 흡사할 거란 생각이 든다. 제발 그냥 담백하게 자연으로 돌아갈 수 있도록 내버려 두기를 바랄 뿐이다. 그리고 마음이 떠나버린 뇌사의 순간에는 나의 육체가 절실한 이들에게 아낌없이 나누어주어도 무방할 것 같다. 나의 육신이 썩어 문드러져서 원자로 흩어지기 전에…

 

죽음의 순간 남겨진 가족들은 비교적 담백하게 받아들였으면 좋겠다. 본래 왔던 그곳인 자연으로 되돌아가는 것은 누구라도 거역할 수 없는 자연스러운 행위이기에 필요 이상의 과도한 의미부여보다는 그냥 쿨하게 받아들였으면 좋겠다. 그리고 굳이 좋지도 않은 죽음의 날짜를 기억하기보단 차라리 내가 이 세상에 태어났던 축복의 날짜를 기억해주었으면 한다. 어차피 사라지면 그뿐이거늘 누구라도 그것이 행복한 죽음이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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