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탄절폭죽놀이 1
중국방문을 마치고 대통령 일행이 서울공항에 도착했을 무렵 중국외교부 대변인을 통해서 전격적으로 중국의 변화된 정책이 발표되었다.
“조선의 핵문제는 관련국들이 대화로 풀어야 될 사안으로서 동북아시아의 평화를 위협하는 미국의 선제공격을 강력히 규탄한다,
만일 혈맹인 조선이 침략받는 사태가 발생한다면 중국은 일체의 좌고우면 없이 항미원조에 나설 것이다.
방중기간 한국대통령이 밝힌 중국의 국가이익을 존중하는 여러 조치들을 높이 평가하면서 코리아연방의 UN가입 등 한반도의 평화통일을 위한 일련의 조치들을 적극 지지하게 될 것이다”
이것으로 G2연합의 군사작전은 최종적으로 무산되었고 성탄절 폭죽놀이의 성격이 완전히 바뀌어 버렸다.
막대한 인명피해를 각오해야 하는 지상 작전의 부담을 중국군에 떠넘길 수 있어 비교적 홀가분하게 전쟁을 준비하던 백악관으로서는 갑자기 뒤통수를 얻어맞은 기분이었다.
백악관은 경악했지만 그렇다고 중국의 생각을 되돌리기 위한 그 어떤 조치도 취하지 않았다.
처음부터 백악관의 관료들은 독도패전으로 자존심이 상해버린 뉴프레지 대통령의 강박관념이 적성국 중국과 결탁하는 우를 범했다고 불평했었다.
특히 국방부장관은 북한이라는 살쾡이를 잡겠다고 중국이라는 호랑이를 불러들인 격이라면서 사사건건 뉴프레지의 정책에 딴지를 걸며 반대하는 상황이었다.
이로써 미중합동작전의 폐기와 동시에 중국은 다시금 미국의 공적으로 규정되었다.
중국지상군 대신 미 지상군을 투입해야 한다는 부담감은 어지간한 강심장인 뉴프레지로서도 선뜻 결정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었다.
따라서 성탄절 폭죽놀이에 대한 전략적 고민도 커지고 있었지만 그렇다고 북한을 군사적으로 응징하고야 말겠다는 뉴프레지의 분노가 줄어들었다는 증거는 그 어디에도 없었다.
중국 외교부가 발표한 전향적인 대외적 조치와는 별개로 내부적으로는 서슬 퍼런 공포분위기를 조성해 나갔다.
대통령의 전용기가 연길국제공항을 이륙하자마자 용정시내에 배치되어 있던 탱크 기갑사단이 연길시내 대로변에 나타났다.
이것을 신호탄으로 전격적으로 조선족 자치주 전역에 계엄령이 발령됐다.
이것은 조선족뿐만이 아니라 모든 소수민족에게 중국당국이 보내는 강력한 메시지였다.
결코 넘지 말아야 할 금지선을 넘게 된다면 어떤 조치가 기다리고 있는지를 똑똑히 보여주겠다는 결연한 메시지였다.
성탄절 폭죽놀이의 기한이 목전에 닥친 상황에서는 잠깐의 휴식조차 사치였다.
고단했던 3박 4일간의 중국방문을 마치고 돌아오자마자 대통령은 한숨 돌릴 틈도 없이 곧장 청와대 지하벙커로 향했다.
현 상황에 대한 국방부장관의 브리핑이 이어지는 동안 NSC 상임위원들은 등에서 식은땀이 흘러내리는 긴박한 분위기 속에서 회의에 임했다.
국가안보실장이 차분한 어조로 바통을 이어받았다.
“대통령님의 중국방문 성과로 인하여 백악관의 입장이 무척 당혹스럽게 되었습니다,
미군 단독으로 수행하는 전쟁은 필연코 두 가지의 문제가 발생합니다,
첫째 지상군의 투입 없이는 이 전쟁의 목적을 달성할 수 없다는 사실입니다,
둘째 실제로 중국이 미국의 대척점에서 이 전쟁에 개입하게 된다면 미국은 상상이상의 큰 전쟁에 휘말릴 수 있습니다,
결론적으로 미국은 지상 작전에 따른 막대한 미군의 인명피해뿐만 아니라 자칫 제3차 세계대전으로 비화될 수 있는 위험을 감수해야 됩니다!”
최 실장의 발언 중간에 대통령이 불쑥 끼어 들어서 단호한 어투로 말했다.
“아니지요! 한 가지가 더 있지요!
북한은 이미 우리와 통일을 협의 중인 코리아연방의 일원입니다,
따라서 북한과 미국의 전쟁은 코리아연방과 미국의 전쟁이 되는 것입니다,
우리 땅에 주둔 중인 주한미군이 우리 땅을 공격한다는 것은 세상 이치에 맞지가 않지요,
그들은 주둔 기지를 모두 비워주고 일본으로 떠나든 본국으로 떠나든 좌우지간 떠나야 할 것입니다,
이만 팔천에 이르는 주한미군은 우리 땅에서 물러나야 한다 이 말입니다, 그렇지 않습니까!”
일본의 독도 침략으로 야기된 한반도의 위기상황은 이제 그 절정에 다다르고 있었지만 대통령을 위시한 그의 참모들은 닥쳐오는 위기를 회피하지 않았다.
오히려 정면으로 마주하면서 우리 민족의 또 다른 기회로 전환하기 위하여 불굴의 투지를 발휘했다.
회의를 마치고 대통령이 관저에 돌아왔을 때는 이미 자정을 넘긴 시각이었다.
영부인의 부축을 받지 않고서는 내실에 들어서지도 못할 정도의 극한의 피로가 몰려왔다.
영부인의 도움으로 겨우 양복만 벗었을 뿐 샤워도 마다한 채 깊은 잠에 빠져들었다.
미국시민들의 한국철수작전인 NEO작전이 개시된 지도 이미 50일이 지났지만 여전히 국내에서는 십만 이상의 미국 시민들이 상주하고 있었다.
심지어 태연히 평양 시내를 활보하는 미국인들도 상당수였으니 이것으로 미국정부의 NEO작전은 사실상 실패한 작전이 되어버렸다.
그렇지만 동해와 서해상에는 여전히 세척의 항공모함들이 그 위용을 과시하고 있었고 며칠 간격으로 죽음의 백조 편대가 노골적으로 북한영공을 넘나들고 있었다.
하지만 그것이 다였다.
하루에도 수만 명의 사람들이 자유롭게 남과 북을 이동하는 상황에서는 익숙한 공포들을 하나둘 물리치고 있었다.
더군다나 교황의 평양방문 일정이 다가오자 서울과 평양 그 어디에서도 미국의 선제공격에 대한 두려움은 찾을 수가 없었다.
이 모든 것이 평화를 염원하는 지구촌 사람들의 뜨거운 열기가 빚어낸 기적 같은 현상이었다.
그러나 완전히 끝날 때까지는 끝난 것이 아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