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 대고려연방 (77)

동북공정의 교육장 1

by 맥도강

휴대폰에서 울리는 감미로운 컨츄리 음악소리에 눈을 떴다. 서 교수님의 전화였다.

창틈으로 비치는 눈부신 햇살이 새로운 아침을 알리고 있었다.

“예, 교수님. 윤준노입니다. 잘 계셨습니까!”

“그래 자료 수집은 잘하고 있는지 궁금해서 전화했네.

끼니는 거르지 않고 있나? 타지에 나가서는 먹는 것만큼은 잘 챙겨서 먹어야 하네.”

“교수님 죄송합니다. 제가 먼저 전화드려야 했는데, 어쩌다 보니 경황이 없었습니다.”

“죄송은 무슨 그건 그렇고 자료 수집은 어떤 방향으로 하고 있나?

영사관의 도움을 받기로 한 걸로 아는데…”


“교수님, 사실은 이곳에서 우리 동포 향토사학자 한 분을 만나게 되어서 그분으로부터 도움을 받을까 합니다. 영사관에는 아직 가보지 못했습니다.”

“그거 잘됐네. 안 그래도 자네가 영사관에서 짜주는 일정표대로 고지식하게 움직일까 봐 난 그게 걱정이 돼서 전화했던 참일세.

영사관이라는 데가 걸핏하면 외교적 관례나 운운하면서 도통되는 일도, 안 되는 일도 없는 고지식한 데라서 말이야.

자네같이 융통성 없는 사람은 제대로 된 도움을 받기가 힘들 거야.

아무튼 거기서 일은 자네가 잘 알아서 하고, 건강하게 잘 있다가 돌아오시게. 돌아오면 내가 술 한 잔 삼세.”

“고맙습니다, 교수님. 돌아가서 뵙겠습니다.”


이곳에 온 지도 벌써 삼일째다.

온통 머릿속에는 은하 생각으로 가득하다 보니 자료 수집은 아직 시작도 못하고 있다.

오늘은 대표적인 고구려유적지인 집안시를 둘러보기로 은하와 약속되었다.

내일과 모래는 은하가족과 함께 백두산 일정이 잡혀있고, 백두산을 다녀온 다음날은 북한접경지역인 압록강과 두만강변의 단동과 삼합일대를 둘러볼 계획이다.


당초의 일정표대로 움직였다면 사실은 어제 국내성이 있는 집안시를 둘러보았어야 했다.

하루를 빼먹었으니 오늘 하루는 그만큼 더 바쁘게 움직여야 한다.

시간을 보니 벌써 아침 아홉 시가 가까워졌다.

서둘러서 카메라와 간단한 필기도구만을 챙긴 후 호텔 엘리베이터를 타고 내려오면서 은하에게 연락했다.

배 교수도 모시고 가야겠다는 생각으로 아버지께 여쭈어 달라고 했더니 아버지가 아침식사도 같이 할 겸 사무실로 들려 달라고 했다.


택시를 타고 도착해 보니 최 씨가 방금 전에 사무실 바닥 청소를 했던지 밀대를 옆에 세워둔 채 신문을 읽고 있었다.

나를 보더니 반색하는 표정으로 반갑게 맞이한다.

“어서 오시오, 윤 선생. 아직 식사 안 했죠? 방으로 들어갑시다.”

미리 차려진 밥상에는 반찬과 수저들이 가지런히 놓여 있었, 은하가 부엌에서 방금 지은 밥과 된장국을 쟁반에 담아 왔다.


이렇게 해서 오늘 처음으로 은하가 차려주는 아침밥을 먹게 되었다.

“윤 선생. 찬은 부족하오만 많이 드시오. 우리 은하가 애 엄마를 닮아서 음식솜씨는 정갈한 편이오.”

굽고 있던 생선이 다 익었던지 노릇노릇하게 잘 익은 조기사촌쯤 되어 보이는 생선구이를 한 접시 들고 오면서 은하가 하는 말이다.

“미처 준비를 못해서 찬은 부족하지만 많이 드십시오. 선생님께서 오실 줄 알았으면 장을 좀 봐 두는 건데…”

앞치마를 두른 모습으로 얌전히 무릎 굻은 채 은하가 수줍게 얘기할 때, 난 매일 아침 은하가 차려주는 아침 밥상을 상상해 보았다.

생각만 해도 행복한 감정이 물밀듯 몰려왔다.


“이만하면 아침 식사로는 아주 훌륭합니다. 잘 먹겠습니다.”

배 교수의 말대로 은하가 차려준 음식은 내입에도 잘 맞았다.

정갈하면서도 깔끔한 맛이 부산에 있을 때 어머니가 차려주는 밥상과 별반 다르지 않았다.


“그래, 오늘 집안시에 가보실 생각이시라고요?”

“예. 교수님을 모시고 함께 다녀왔으면 합니다. 어떻게 시간이 되시겠습니까?”

배 교수는 고개를 끄덕이면서 수락의 뜻을 표시했다.

“집안시야 여기서 멀지도 않으니 함께 가 드리는 거야 어려운 일이 아니오만, 내가 따라가서 괜스레 성가시지나 않을지 모르겠소?”

식사를 다 마친 배 교수의 밥그릇에 은하가 숭늉을 담아주었다.

숭늉으로 입안을 씻는지 요란하게 숭늉을 마신 배 교수가 인사치레로 건네는 말이다.

“무슨 말씀이십니까? 어제 교수님께서 제게 들려주신 말씀들은 저의 보고서 작성에도 귀중한 자료로 쓰일 겁니다.

오늘부터 며칠 동안 교수님의 고견을 듣고 싶으니 바쁘시더라도 동행하여 주셨으면 합니다.

내일과 모레는 배 과장님이 교수님 모시고 백두산을 방문할 계획이시라고 하던데 저도 동행하기로 했습니다.”

최 씨도 식사를 마치자 요란한 소리를 내며 숭늉을 마셔댔다.

그 옛날 우리 할아버지들이 그러셨던 것과 똑같은 모습이었다.

숭늉을 다 마신 최 씨가 거드는 말을 하려는지 끼어들었다.

“배 교수 그리하소. 유적지 방문이야 우리 배 교수가 안내를 해드려야지. 그 분야에선 최고의 전문가 아니요.

은하야 내일 백두산 갈 때는 나도 같이 가는 거다. 창우도 그러라고 하지?”


최 씨가 은하를 돌아보며 말할 때는 당연히 함께 간다는 듯이 말했고, 은하도 그렇다는 표정을 지으며 대꾸했다.

“예, 아저씨. 오빠가 아저씨도 꼭 모시고 간 됐습니다.”

“허허허, 오랜만에 도라지 주 한잔 하게 생겼네. 그 맛이 기가 막히거든. 생각만 해도 침이 꼴깍 넘어가네.”

걸걸하면서도 맛깔나게 말하는 최 씨의 입담은 영락없이 인심 후한 우리 고향마을의 시골 아저씨를 닮아 있었다.


창우의 말에 의하면 며칠 동안 딸을 찾겠다고 시내의 온 노래방을 다 뒤지고 다녔다는데, 허탕만 쳤다고 한다.

그러나 오늘 내가 본 최 씨의 모습에선 그 어디에서도 어두운 그림자라곤 찾아볼 수 없었다.

이때 밖에서 최 씨를 찾는 손님이 왔고, 최 씨는 나에게 천천히 일어나라고 말하면서 방을 나갔다.


“교수님, 환인시도 둘러보고 싶은데 어떻게 하루 만에 가능하겠습니까?”

“글쎄요, 집안시만 해도 원체 넓어서 다 둘러보려면 하루는 잡아야 할걸요?, 꼼꼼하게 둘러보려면 아마도 힘들 것 같은데. 그래도 일단 움직여 봅시다.”

은하가 지나가는 택시를 잡아서 저녁때까지 대절하는 조건으로 흥정을 시작했다.

역시 북경에서 관광 가이드생활을 했던 노련한 협상 덕택에 적당한 가격 선에서 택시를 세낼 수 있었다.

은하를 앞자리에 태우고 배 교수와 내가 나란히 뒷자리에 앉았다.

택시는 끝없이 펼쳐진 옥수수 밭을 지나며 압록강의 서쪽에 위치한 집안시를 향해서 내달렸다.

어느 지점을 지나갈 때, 옥수수 밭 사이로 낡은 주택들이 드문드문 보였다.

배 교수가 그중 한집을 손으로 가리키며 저 집이 자신의 집이었는데, 몇 년 전에 팔았다고 말했다.

동북삼성에서도 메주콩으로 유명한 마을이라고 하면서 여유로운 미소를 머금었다.


“윤 선생, 자본주의가 무섭기는 무섭더만요.

중국의 개혁개방정책으로 언젠가 집단농장을 다 폐쇄했지요.

폐쇄할 때 경작권을 인민들에게 나누어주었는데 채 삼 년도 안 돼서 도루아미타불이 돼버렸으니 말입니다.”

이렇게 말한 후 그는 차창으로 멀어져 가는 자신의 옛집을 향수 어린 눈빛으로 바라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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