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국의 음모 6
왼쪽에 앉아있던 사내가 먼저 내린 후 자신의 왼손을 차문에 걸친 채 문을 열어 주었다.
그때, 그 사내의 왼 손목에는 산 모양의 파란색 문신이 드러났다.
그런데 이 청년은 짙은 선글라스로 자신의 신원을 숨기고 있었지만 분명 어디선가 본 것 같다는 생각이 머리에서 떠나지 않았다.
세련된 미남형의 얼굴에 떡 벌어진 어깨와 큰 키, 생각이 날듯 말 듯하면서도 좀 체 떠오르지 않았다. 어디서 보았을까?
두 사내가 양팔을 부여잡은 채 데리고 간 곳은 대웅전이었다.
그곳에는 흰색 중절모자에 상하위조차도 모두 흰색 정장차림의 중년신사가 불상을 바라보면서 앉아있다.
그러고 보니 대웅전 입구에 벗어놓은 구두도 흰색이었던 것 같다.
양팔을 자신의 가슴으로 낀 채 다소 거만한 자세로 앉아있는 모양새가 절에 불공을 드리러 온 사람은 아닌 듯했다.
그런데 이 자의 무릎 앞에서 모락모락 연기가 피어올라 처음에는 향이 타고 있구나 생각했지만 냄새가 고약하여 자세히 보니 향을 담은 그릇에서 시거담배가 타고 있었다.
이 자는 지금 무례하게도 대웅전에서 담배를 피우고 있었다.
대낮인데도 드넓은 대웅전 안은 다소 어두워 보였다.
이 자가 담배만 피우지 않는다면 진한 향냄새와 달랑 양초 두 개만 켜놓은 대웅전의 분위기는 불상에 엎드려서 기도하기에는 더없이 적당한 분위기이다.
불상을 자세히 들여다보니 한국에서 보았던 여느 불상들과는 그 느낌부터가 달랐다.
어딘지 모르게 극도의 우울한 감정이 느껴지는 흔치 않은 불상이었다.
느릿하지만 중저음의 중압감이 느껴지는 목소리가 들렸다.
“윤 선생, 오신다고 고생 많았습니다.”
불상을 정면으로 바라보는 자세에서 말하고 있었기 때문에 말하는 사람의 얼굴을 바라볼 수는 없었다.
양팔을 잡고 있던 두 사내가 나를 이 자의 삼사 미터쯤 후방에 앉힌 후 양쪽 옆으로 물러나 간격을 두고 서 있었다.
“뉘신지요? 나는 영문도 모른 채 이곳에 붙들려 왔습니다.”
“선생, 저 불상이 바로 등신불이오.”
“……”
등신불이라는 말에 갑자기 전율이 몰려오면서 충격적인 눈으로 자세히 바라봤다.
이 중년의 신사는 끝까지 자신의 얼굴을 보여주지 않으려는지 고정된 자세로 불상만 바라봤다.
그의 말 사이에 '땡그랑~ 땡그랑~' 하는 풍경소리가 마치 장단처럼 들려왔다.
그 소리가 위안이 되어 불안했던 내 마음도 어느새 많이 진정되었다.
“저 등신불상은 산 사람이 자청해서 자신의 몸에 금물을 붓게 하여 불상이 되었다고 합니다.
가장 원초적인 고행을 위해서 스스로 불상이 되었다고 하는데 저 표정을 한번 보세요?
정말 살아있는 사람 같지 않습니까? 인위적으로 만든 조각품들과는 차원이 다른 어떤 기운이 느껴지지 않느냐 말입니다.
저 등신불상의 실제 인물이 신라 사람이었다 합니다.
영험하다고 소문이 나서 이 근방에서는 신으로 받들어지고 있어요.
저 등신불상에게 기도하면 어떤 소원도 다 이루어진다고 하는데 실제로도 그럴 것 같지 않습니까?”
어쩐지 불상을 바라보니 나도 모르게 눈물이 날 것 같은 깊은 슬픔이 느껴졌는데 이제야 그 이유를 알 것 같았다.
가장 원초적인 고행을 위해서 자신의 살아있는 육신을 펄펄 끊는 금물로 뒤집어썼다는 말속에서 슬픈 표정의 의미가 숨겨져 있었다.
“선생, 오늘 떠나신다고요?”
이 말뜻은 나에 대해서 이미 많은 것을 알고 있다는 의미가 함축된 표현이었다.
“네, 비행기를 타기 위해서 공항에 있었습니다.”
“선생, 너무 걱정 마시오! 선생을 해칠 의사는 없으니까. 단지 경고를 하기 위해서 잠시 모시고 왔습니다.”
해칠 생각이 없다는 그의 말에서 안도의 마음이 들었지만 경고라는 말에 또다시 긴장할 수밖에 없었다.
“저 등신불상 말입니다. 우리 중국인들은 저렇게 못합니다.
산 사람이 자청해서 등신불상이 된다는 것은 아무나 할 수 있는 일이 아니지 않습니까?
그런 걸 보면 당신 민족은 우리 중국인에게는 없는 지독한 구석이 있어요”
“고구려가 그랬어요! 우리 중국 입장에서 바라본 고구려라는 존재는 정말로 징글징글한 족속이었어요.
고분고분한 구석이라고는 하나도 없이 대가리 빳빳하게 쳐들고 싸우려고만 들었으니 야만족도 그런 야만족이 없었지요.”
다소 듣기가 불편했지만 이 시점에서 속히 이들의 용무를 끝내게 하여 빨리 여기를 벗어나고 싶다는 생각뿐이다.
“선생! 우린 선생의 일거수일투족을 관찰하고 있었어요.
한국의 동북아역사재단이 우리나라의 동북공정에 대항하는 조직이라면서요?
그런데 말입니다 선생! 우린 우리의 일을 하려는 거예요. 당신들이 간섭할 일이 아니란 말입니다.
이것을 분명히 해두기 위해서 선생을 모신 겁니다.”
머리에서는 식은땀이 한두 방울 맺히기 시작했다.
맞은편 높은 곳에서 내려다보는 저 고통스러운 표정의 등신불상이 지금의 내 마음과 잘 어울렸다.
이곳으로 온 지도 벌써 십여분은 지난 것 같은데 도대체 이 절에는 아무도 찾아오지 않았다.
아니면 이들이 모두 통제를 하고 있는 것일까? 나는 초조해지기 시작했다.
“무슨 말씀이신지…”
“우리의 거듭된 경고에도 불구하고 끝내 조선이 핵실험을 강행했어요.
이 지구상에서 유일하게 저들을 지켜주고 도와주는 우리의 경고를 무시했으니 앞으로는 그에 걸맞은 대접을 받게 될 겁니다.
이 문제에 대해서 아무런 관련도 없는 한국이 필요이상으로 개입하게 된다면 대단히 우려스러운 사태가 발생할 수도 있어요.
선생! 당신들이 간도라고 부르는 우리나라 동북삼성지역의 영토문제에 필요 이상의 간섭을 중단하시오!
그리고 조선에 대해서 우리가 가지는 관심에 대해서도 아예 관심을 끄도록 하시오!
그런데 제아무리 협박을 당하는 입장이라지만 명색이 동북아역사재단의 연구원으로서 이 대목에서는 마냥 침묵할 수 없었다.
“한국과 북한이 아무런 관련성이 없다는 말은 지나친 말씀 같습니다.
우린 반만년 동안 같은 민족으로서 지내왔고, 분단된 지는 아직 칠십 년도 되지 않았습니다.”
나의 느닷없는 돌출성 발언에 그는 중압감이 느껴지는 느릿한 말투로 신경질적인 반응을 보였다.
“선생은 조선과 한국은 국제법적으로도 아무런 관련성이 없다는 사실을 간과하는 겁니까?"
이 시점에서 남북한을 별개의 주권국가라고 강조하는 이 자의 의도를 어렵사리 짐작할 수 있었다.
북한의 급변사태를 가정하여 사전에 우리의 연고권을 차단하기 위한 저들의 술수가 내포돼 있었다.
“북한은 우리와 같은 언어와 문자를 사용하는 같은 동포입니다.
누가 뭐래도 우리 민족은 외세에 의해서 일시적으로 분단되었을 뿐 언젠가 반드시 통일되어야 하는 같은 동포란 말입니다.”
“선생! 우리나라에는 오십오 개의 소수민족이 있어요, 그 가운데는 조선족도 엄연히 포함되어 있지요.
조선족 자치주의 공식적인 언어와 문자도 당연히 당신들과 같습니다.
역사적으로 고구려는 우리 중국의 변방에 존재했던 지방정권이었어요.
선생, 다시 한번 엄중하게 경고합니다.
당신들이 간도라고 부르는 우리나라의 영토문제에 간섭을 중단하시오!”
여기서 더 이상 대들었다가는 이 자의 불편한 심기상태로 봐서는 무슨 해코지를 당할 것만 같아 더 이상의 대응은 위험했다.
“당신은 한국으로 돌아가더라도 여기서 보고 들었던 사실들에 대해서는 침묵하는 것이 좋을 것이오.
우리 단원들이 늘 당신의 일거수일투족을 노려보고 있다는 사실을 명심하시오.
누구라도 우리나라의 동북공정을 방해하려 든다면 그 자가 누구든, 어떤 세력이던, 우린 반드시 그 자를 응징하게 될 것이오!
선생! 가족은 누구에게나 중요한 법이오.
여기 남아있는 당신의 소중한 여인을 생각해서라도 자중 또 자중해야 할 것이오.
우리 장백산천지회는 결단코 허튼소리를 하지 않는다는 것을 명심하는 것이 좋을 것이오!”
아, 드디어 그의 입에서 자신들의 본색을 밝히는 말이 튀어나왔다.
이마에서는 한두 방울씩 맺히기 시작하던 땀방울이 주르륵 흘러내렸다.
조금 전까지는 제법 반론을 제기하는 객기까지 부렸지만 어느 사이에 온몸이 축축하게 젖어있었다.
저들의 용무가 끝나자 두 사내에 의해서 또다시 양팔이 잡힌 채 곧장 대웅전 밖으로 끌려 나왔다.
끌려 나오면서 신라 사람이었다는 고통스러운 표정의 등신불상을 다시 한번 되돌아보았다.
불상은 오히려 나를 걱정하는 표정으로 안타깝게 내려다봤다.
다시 공항으로 되돌아왔을 때, 시간은 이미 석양이 내려앉은 저녁시간이었다.
왼쪽손목에 산모양의 파란색 문신을 새긴 청년이 일사천리로 출국수속을 마치도록 도와주었다.
그는 시간이 변경된 새로운 인천행 티켓을 건네며 본의 아니게 실례가 많았다며 사과했다.
무표정한 겉모습과는 달리 선글라스 속의 선한 인상을 숨기고 있던 그 청년에게 내가 물었다.
“혹시 우리 어디서 본 적이 있었던가요?, 암만 생각해 봐도 낯이 익은 것 같아서 말입니다”
“그럴 리가요. 안녕히 돌아가십시오.”
끝내 자신의 신분을 밝히지는 않았지만 왠지 이 청년에게서 낯익은 감정이 느껴진다.
비행기에 탑승해서도 일그러져 있던 등신불상의 고통스러워하는 모습이 눈앞에 아른거려 쉽사리 가슴을 진정시킬 수 없었다.
은하에게 무슨 일이라도 일어난다면?
별안간 몇 시간 전에 헤어졌던 은하의 슬픈 얼굴이 떠오르면서 불안은 더욱 큰 불안을 증폭시키는 심리로 작동되었다.
나를 태운 비행기가 수직으로 상승하는 동안 그 불길한 생각 때문인지 현기증이 날 지경이다.
두 손의 힘줄이 끊어질 정도로 의자를 바짝 쥐었다. 얼마나 힘껏 쥐었던지 양손에서는 진땀이 날 지경이다. 물밀듯 몰려오는 공포감을 이기기 위하여 두 눈을 힘껏 감았지만 공포감은 쉽사리 사라지지 않았다.
드디어 악몽 같았던 순간이 지나가고 비행기가 수평을 유지하기 시작했다.
이륙하는 동안 긴장되었던 나의 모든 감각기관들이 서서히 안도감을 되찾으며 다시 평정심을 회복했다.
상공을 한 바퀴 돌고 있는 비행기의 창문을 통해서 내려다본 연변의 시가지는 이제 막 가로등이 켜지면서 마치 정들었던 나의 고향을 떠올리게 했다.
잃어버린 우리 민족의 고토이기도하지만 사랑하는 여인, 은하가 살고 있는 땅이기에 더욱 그렇게 느껴지는지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