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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맥도강 Feb 06. 2023

아인슈타인의 기도

어설픈 물리주의자의 좌충우돌기

아주 오랜 전, 그러니까 어설픈 물리주의자가 갓 중학생이 되었을 때부터 풀리지 않는 의문이 있었다. 우주가 암만 크다 할지라도 분명히 공간의 경계지점은 있을 것 같은데 그럼 그 밖은 무엇이란 말인가? 그리고 태초의 어느 지점에서 우주가 시작되었다면 우주가 시작되기 이전에도 시간은 존재하지 않았겠는가?

 

그 당시의 빡빡머리 꼬맹이는 빅뱅이 일어나기 이전의 공간과 시간이 궁금했던 것인데 지금 생각해 보면 정상 우주론을 생각했던 것 같다. 시작과 끝을 논한다는 것 자체가 태어남과 죽음이 있는 유한한 인간의 관점으로 치부하며 경계가 사라진 무한대의 시공간 상태를 상상했다.


지금 생각해 봐도 신통방통했던 것은 영원한 시공간을 떠올리면서도 결코 신의 등장을 허용하지 않은 옹고집이다. 비록 어설플지라도 물리주의자가 될 수 있는 기본적인 소양은 갖추었던 거다. 이렇듯 오래된 나의 철학적 신념을 망치로 내려치듯 일거에 빅뱅 시킨 사람이 있었으니 바로 스티븐 호킹이었다. 지금도 잘 이해가 안 되지만 빅뱅 이전에는 아무것도 없었다 한다. 공간과 시간이라는 개념도 모두 빅뱅으로 만들어졌으니 빅뱅 이전에는 그런 것 자체가 없었다는 것이다. 대체 무슨 말인지…  


태초에 아무것도 없었다면? 텅 빈 공간이나 시간조차도 없었다면? 세상을 창조하기 위하여 때를 기다리고 있었다는 창조주조차도 존재할 여건이 못되었다는 거다. 현대 과학이 밝혀낸 우주에 대한 설명은 한마디로 단호하다. 우주는 누군가의 설계에 의해서 만들어진 것이 아니라 빅뱅 이후 스스로 생겨났고 스스로 그러하지만 그럼에도 우주를 지배하는 일관된 자연법칙은 있다. 어찌 됐든 천지창조는 BC4004년이 아니라 138억 년 전이었고 빅뱅 이전에는 아무것도 없는 그냥 無의 상태였다는 거다. 창조주는 말할 것도 없고 그야말로 텅 빈 공간과 시간조차도 없는…   


우리 지구를 중심으로 돌고 있는 것은 달이라고 불리는 작은 위성만이 존재할 뿐, 지구는 다른 행성 8형제들과 함께 초속 30킬로의 속도로 태양 주위를 돌고 있다. 또한 태양계는 수천 억 개의 다른 항성들과 더불어서 우리 은하수 은하의 중심을 초속 200킬로라는 무시무시한 속도로 맹렬히 돌고 있다. 그런데 우리 우주에는 무려 수천 억 내지는 2조 개의 은하들이 존재한다고 하니 기가 막혀서 말문이 막힐 따름이다. 수천억 은하들이 광막한 우주공간을 비산하고 있는 지금 이 순간에도 은하들 간에는 초속 70km로 무한 팽창을 계속하고 있고, 앞으로도 영원히, 그것도 가속 팽창할 예정이다. 이렇게 되면 은하들 간에는 더욱 멀어지게 될 터인데 현실적으로 안드로메다로의 여행은 요원한 일이 되고 만다는 뜻일 테다.


700만 년 전 나무에서 내려온 돌연변이 침팬지의 사촌들 중에서 가장 먼저 이 같은 사실을 간파했던 아인슈타인은 너무나도 위대한 우주를 마주하고는 입이 다물어지지 않았다. 인간의 상상력을 훌쩍 뛰어넘는 우주의 실상 앞에서 그는 두 손을 모은 채 머리를 숙이지 않을 수 없었다. 우주의 실체를 제대로 알게 된다면 어느 누구라서 그 압도적인 광대함에 경건해지지 않을 수 있었겠는가?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우주를 인격으로 승화시키는 호모 사피엔스의 오만과 만용에는 동참하지 않았다. 그가 이해한 우주의 스케일은 결단코 그 차원이 달랐기에 호모 사피엔스를 우주에서 가장 위대한 생명체라고 단정할 수 없었다. 아인슈타인이 이해한 우주의 참모습은 호모 사피엔스 정도가 명함을 내어 밀만한 그런 작은 동네가 아니었다. 따라서 지구에서나 통용될법한 인격신이라는 용어를 우주 전체로 확대하는 것 자체가 모순된다고 판단했다. 그가 경외심을 가지고 간절한 마음으로 기도했던 신은 인간들의 귓속말에 관심을 가지거나 인간의 기도에 반응하여 기적을 일으키는 형태의 의인화된 인격신이 아니었다.


신이 이 세상을 창조했다면 대체 그 신은 또 누가 창조했단 말인가? 당연히 스스로 생겨났고 스스로 그러하다고 말하겠지만 아인슈타인은 바로 우리의 우주가 그러한 존재임을 발견했던 것이다. 그는 과학이 밝혀낼 수 없는 우주의 구조에 대한 무한한 찬탄과 경외심을 가지고 있었고 이러한 경외심 때문에 그 자신이 인격신의 불신자이면서도 지극히 종교적일 수 있는 이유라고 말했다. 평생 동안 일관되게 의인화된 인격신을 부정했던 그가 무슨 기도를 그토록 열심히 드렸는지 이제야 어렴풋이나마 짐작할 수 있겠다.  


고작 자신과 가족의 복이나 구하는 기복신앙과는 그 차원을 달리하는 위대한 과학자의 스케일 앞에서 불현듯 머리가 숙여질 따름이다. 인간들의 사리사욕을 초월한 채 우주의 위대함을 기도할 수 있는 영혼은 대체 얼마나 아름답단 말인가? 어쩌면 지금보다도 과학문명이 더 발전한 먼 미래에서는 한평생 아인슈타인이 믿고 실천했던 우주적인 신앙이 고리타분한 기복신앙의 자리를 대체하고 있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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