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고려연방 민주공화국 3
여전히 대통령의 얼굴에선 표정의 변화가 없었지만 자리를 함께한 참모들은 심각한 표정으로 대통령을 바라봤다.
이윽고 대통령이 외교부장을 향해서 말문을 열었을 때는 한층 여유로우면서도 정색한 표정이었다.
“우리나라의 국호에서 큰 대자를 삭제하라는 요구는 생각하고 말 것도 없습니다,
이것은 주권국에 대한 무례한 요구로서 일고의 가치도 없는 요구사항입니다,
어떤 경우에도 받아들일 수가 없습니다!”
일고의 가치도 없다는 대통령의 말에 외교부장이 크게 당황했다.
명색이 대국의 면전에서 그것도 핵무기보유국의 지위까지 덤으로 얹어 주겠다 하였음에도 일언지하에 거절해 버리는 태도에 숨이 턱턱 막혀왔다.
그 옛날 망설임 하나 없이 중국에 대어 들던 고구려의 모습까지 오버랩되면서 외교부장의 오금을 저리게 만들었다.
자리가 사람을 만든다고 하지 않았던가? 대통령은 지금 중국의 눈치나 보던 분단시절의 작은 나라 대통령이 아니었다.
결코 중국에 주눅 들 필요가 없는 대통합코리아연방의 대표 자격으로 말하고 있었다.
대통령의 반격은 거침이 없었다.
“그리고 주한미군의 철수 문제는 주권국인 우리가 알아서 결정할 문제로서 귀국이 이래라저래라 간섭할 문제가 아닌 것 같군요!
또 대통합코리아연방의 UN가입을 귀국이 도울지 말지는 귀국이 알아서 판단하면 될 일!
더 이상은 요청하지 않겠습니다,
핵무기보유국으로서의 지위 또한 그렇습니다,
귀국이 인정을 해주든 말든 이미 우린 독도전쟁 이후 세계로부터 명시적인 묵인을 받고 있습니다,
최첨단의 수소핵무기 보유국으로서 당당하게 그 지위를 인정받고 있으니 그것으로 만족합니다!”
이날 외교부장의 청와대 예방으로 중국은 새삼 자신들의 초라한 처지를 확인하는 것에 만족해야 했다.
이 모두가 무리한 동북공정의 추진으로 빚어진 결과로써 꿩도 잃고 매도 잃었다는 표현이 썩 잘 어울리는 상황이었다.
호시탐탐 우리의 영토를 탐하다가 남과 북이 힘을 합쳐서 대응하니 강력해진 통일한반도의 기세에 눌려 슬그머니 뒷걸음질을 치는 옹색한 형국이 되어버렸다.
그날 저녁 평양의 노동당 1호 청사에서는 정 위원장의 호방한 웃음소리가 문밖까지 새어 나왔다.
“고거 시원하게 말씀 한번 잘하셨습니다!
그래서 중국아이들과 대화할 때는 기심에서부터 밀리면 안 된단 말입니다,
자기들한테 주도권이 있다고 생각하면 상투부터 잡으려는 못된 습성이 있기 때문에 대통령님처럼 세차게 몰아붙여야 합니다!
그런데 국호문제는 남쪽에서도 시끄럽다고 들었습니다만 우리 쪽에서도 꼭 그렇게 외래어를 사용해야 하느냐며 마땅치 않게 생각하는 인민들이 많단 말입니다,
북남의 팔천만 인민들 모두가 옳거니 바로 저것이구나! 할 만한 멋들어진 국호가 어디 없겠습니까?”
비록 통화 중이었지만 부담 없이 편하게 사용하는 정 위원장의 평양말투는 민 대통령을 대하는 솔직한 마음을 읽을 수 있었다.
독도전쟁 이후 민 대통령과 함께 민족사의 운명을 건 격동의 시간을 헤쳐 나오면서 이미 두 사람은 일체의 꾸밈과 가식이 필요 없는 진정한 친구가 되어 있었다.
“그래서 말인데요 위원장님!
우리 정책팀에서 이 문제에 대한 아이디어를 하나 내었는데 위원장님의 의견을 구하고자 전화드렸습니다”
“옳거니 그렇지요! 윤 비서관의 그 팀이 이번에도 가만히 있지를 않았갔지요, 그 팀의 이름이?”
“네, 우리들 간에는 삼일특공대라는 별칭으로 불리고 있습니다만”
“기렇치요 삼일특공대!
이름부터가 정신이 번쩍 들 정도로 진취적이지 않습니까!
우리 민족의 특공대 팀이라면 신통한 모범답안을 준비했을 것 같은데 어서 말씀해 보시라요!”
“예 그게 말입니다, 대고려연방입니다!”
“대고려라고요? 대고려연방… 대고려연방 민주공화국이라?
오호! 고거 입에 착착 감기는 게 내 맘에 쏙 듭니다, 됐습니다! 됐어요!
코리아는 고려에서 유래된 외래어가 분명하니까 코리아의 본시 우리말은 고려가 맞지요!
거기다 큰 대자를 집어넣어서 대고려연방이라고 하면 땟놈들이야 펄쩍 뛰겠지만 말입니다,
우리 민족은 이제 오천 년 민족사에서 긍지를 가져도 될 만한 훌륭한 국호를 가지게 됐습니다”
이렇게 하여 그동안 지루하게 전개되던 통일 새나라의 국호 논란은 남과 북 정상 간의 의기투합으로 해결의 실마리를 찾았다.
대체적으로 팔천만 남북국민들의 여론도 호의적이어서 통일한반도의 국호문제는 일단락되었다.
5월로 접어들자 전국은 통일의 문을 활짝 열어젖히는 동시 총선거의 분위기 속으로 빠져들었다.
다가오는 6월 17일은 역사적인 대고려연방의 출범을 최종적으로 추인하는 팔천만 남북한 국민들의 총투표가 예정되었다.
삼일특공대는 처음부터 통일헌법 제정 국민총투표와 초대 연방의회선거를 동시에 실시할 것을 제안했다.
남북한의 국민들이 처음으로 실시하는 총선거인 만큼 가급적이면 압축적으로 실시하여 국민들의 피로도를 줄여야 한다는 생각이었다.
조심스럽게 출발하려는 연방의 시작 지점에서부터 각종 선거로 인한 혼란상들이 난무한다면 자칫 출발도 하기 전에 좌초될 위험성이 있었다.
장차는 지방자치선거까지 모든 선출직의 선거를 매 5년마다 한꺼번에 치르는 총선거의 개념을 구상했다.
이 제안은 통일 새나라의 골격을 설계하던 십 인 위원회에 의해서 큰 논란 없이 채택되어 동시 총선거가 확정되었다.
통일 새나라의 출범을 앞두고 전국적으로 한껏 분위기가 고조된 시점을 골라서 눈치 없는 뉴프레지 대통령이 주한미군 주둔비의 인상을 언급하기 시작했다.
그가 늘 의기양양하게 노래를 불렀던 의제였지만 이번만큼은 그 타이밍을 잘못 골라도 한참 잘못 골랐다.
뉴프레지는 성탄절 폭죽놀이가 무위로 돌아간 후 실추된 자존감을 회복할 방편이 필요했고 이럴 때 선택한 것이 주한미군의 주둔비 인상 문제였다.
뉴프레지의 의도는 단순했다.
자신이 주도권을 쥐고 있다고 판단한 이 의제를 다소 거칠게 몰아붙여서 자신의 의지대로 마무리 짓는 것이다.
백악관 기자회견에서 그는 한국을 골탕 먹일 좋은 소재가 자신의 손아귀에 있다는 듯 무례한 말투로 허풍스럽게 말했다.
“한국에겐 대단히 불행한 소식이지만 난 우리 협상 팀에게 지금보다도 두 배 이상으로 인상된 합의안이 아니라면 서명하지 않겠다고 말했습니다,
협상의 최종기한은 얼마 남지 않았어요!
이번 달 안에 나를 만족시키지 못한다면 한국에 주둔 중인 주한미군을 모조리 빼낼 수밖에 없어요,
나는 빈말을 하지 않습니다, 두고 보세요? 내 말이 허풍인지!”
뉴프레지의 이 같은 엄포성 발언에도 한국정부로부터는 그 어떤 반응도 전달받지 못했다.
한미방위비분담금의 한국 측 협상대표가 협상장인 워싱턴으로 출국하기에 앞서 워싱턴포스트 한국특파원의 질문을 받았다.
“뉴프레지 대통령은 미군철수까지 거론하면서 한국에 최후통첩을 보냈는데요, 이에 대한 한국 측의 입장은 무엇입니까?”
이 같은 심각한 질문에도 한국대표는 마치 대수롭지 않다는 표정으로 태연하게 말했다.
“우리에게도 우리의 입장이란 것이 있습니다, 내일 협상장에서 우리의 입장을 전달하겠습니다!”
눈치 빠른 워싱턴포스트 특파원은 한국 측의 분위기가 예년과 다르다는 것을 간파했다.
한국정부의 외교안보팀 관료들을 중심으로 밀착 취재에 들어간 다음날 아침 인터넷 판에 올린 기사의 제목은 ‘한국, 10% 이상의 방위비 인상은 불가!’였다.
백악관 집무실에서 기사의 내용을 보고받은 뉴프레지 대통령이 회심의 미소를 지었다.
“이렇게 되면 최소 50%는 인상할 수 있겠는걸! 그것도 나쁘지는 않지만 골탕을 좀 더 먹인 뒤에 합의를 해주어야겠어!
한국 때문에 내가 받은 스트레스를 생각하면 이 정도의 선물은 당연한 것 아니겠어?”
워싱턴 협상장의 분위기는 처음부터 초긴장 상태였다.
두 배로 인상하라? 10% 이상은 인상이 어렵다, 뭐 이런 정도의 말들이 오고 갈 것이라 예상되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한국 측 협상대표의 표정에선 처음부터 표정 없는 찬 기운만 흘렀다.
예상했던 대로 미국 측 협상대표가 100%의 인상안을 들고 나오자 대뜸 그는 일반의 예상과는 전혀 다른 말을 늘어놓았다.
“그동안 우리는 북한이라는 안보상의 적과 대치하는 과정에서 불가피하게 미군의 도움이 필요했던 것이 사실입니다,
하지만 이제 북한과 통일을 앞두고 있어 미군의 도움이 필요하지 않게 되었습니다,
솔직히 말해서 이제 주한 미군의 주둔 목적은 한국의 안보를 지켜주기 위해서가 아니라 동북아시아에서 중국의 확장을 저지하고자 하는 미국 측의 필요성 때문입니다,
따라서 주객이 전도된 현실을 받아들여서 이제부터는 회담에 임하는 귀측의 협상태도도 수정되어야 합니다!”
저자세로 사정하던 이전의 모습과는 180도 달라진 한국 측의 태도에 미국 협상단은 침을 꼴깍 삼키면서 적잖이 당황했다.
한국 측 협상대표의 다음 말은 미국 협상단의 어안을 벙벙하게 만들고 말았다.
“사정이 이렇게 바뀌었다면 오히려 우리가 귀측으로부터 임대료를 받아야겠습니다!”
전혀 예상하지 못한 이 같은 말에 미국 측 협상위원들이 서로의 얼굴을 마주 보면서 양손과 어깨를 동시에 들썩이는 서양식 어처구니 제스처를 취했다.
하지만 이것이 다가 아니었다.
“우리가 귀국에 지불했던 만큼의 주한미군 주둔비를 지불해 주던지! 아니면 주한미군을 철수하든지 양단간에 결정해 주시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