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 대고려연방 (137)

대고려연방 민주공화국 5

by 맥도강

이렇듯 남과 북의 두 정상은 대고려연방의 출범을 앞두고서 한 치의 오차도 없이 합이 척척 잘도 맞았다.

곧 출범하게 될 통일 연방의 초석을 다지고자 하는 두 정상의 의지는 확고하기만 했는데 이 모든 것이 독도전쟁 이후 형성된 깊은 신뢰가 바탕이 되었다.

한반도를 중심으로 급박하게 전개된 위기 상황 속에서도 두 사람 간의 진심은 통했고 서로를 굳건하게 신뢰했다.

이 신뢰가 층층이 쌓여가면서 하나 된 통일나라를 완성해 나가는 가장 강력한 에너지원으로 활용되었다.


정 위원장과의 통화를 마친 민 대통령의 표정은 한결 밝아졌다.

청와대 신청사의 지하벙크에 머물고 있던 NSC위원들도 제각기 두 주먹을 불끈 쥐면서 통일 새 나라의 대장정을 위한 전열을 불태웠다.

쿵쾅거리는 심장소리를 달래면서 서서히 합체되는 민족의 엄청난 에너지를 목격한 윤 비서관은 감격에 겨웠던지 눈시울까지 붉혔다.

정부 내에서도 철저하게 비밀에 부쳐진 은둔 팀을 이끌면서 대고려연방의 밑그림을 그린 기안자가 바로 윤 비서관이다.

중국에 이어서 이제 미국까지도 대고려연방을 정당한 주권국으로 대접하기까지 나라의 존망을 걸어야 했을 정도의 여러 위기들이 있었다.

하지만 21세기를 살아가는 위대한 대고구려의 후예들은 끊임없이 몰려오는 위기들을 하나하나 슬기롭게 헤쳐 나왔고 이제 대장정의 중간쯤에 도달해 있었다.

이 모든 것이 삼일특공대를 이끄는 윤 비서관에겐 벅찬 감동으로 다가왔다.


다음날 아침, 워싱턴 협상장의 분위기는 극도의 긴장감속에서 진행됐다.

어제저녁 미국이 제시한 수정제안은 사실 예년 같았으면 상상도 할 수 없는 파격적인 내용이었다.

핵무기보유국으로서의 지위를 인정해 줄 테니 그 대신 기존에 사용하던 주한미군기지를 무상으로 사용하게 해 달라는 대단히 굴욕적인 제안이었다.

어젯밤 자정이 가까워져서야 본국의 결정사항을 전달받은 한국 측 협상대표가 마이크를 만지작거리면서 발언할 준비를 했다.

이때 초조한 기색의 미국 측 협상단과는 달리 제법 여유가 넘쳤다.

이미 협상의 주도권이 한국으로 넘어왔음을 알게 하는 상징적인 장면이었다.

“통일 한반도의 핵무기보유국 지위를 인정하는 것을 전제로 하는 귀국의 수정제안을 우리 정부는 조건부로 받아들이겠습니다!”

조건부로 받아들이겠다는 한국 측 대표의 발언이 있자 미국 측 협상대표는 미동도 하지 않은 채 힘줄이 드러날 정도로 두 주먹을 불끈 쥐었다.


한국 대표가 그 조건이 적힌 서류를 읽기 시작하자 협상장 안은 산소가 부족하다는 느낌이 들 정도로 팽팽한 긴장감에 휩싸였다.

“우선 우리 정부는 본 협상의 성격을 전환하고자 합니다!

기존의 한미 방위비분담금 협상은 이미 폐기된 것이 명확하기 때문에 새삼 거론하지 않겠습니다,

따라서 본 협상의 성격을 제1차 주한미군 주둔지의 임대료 협상으로 전환하고자 합니다!”

이러한 도발적 발언에도 불구하고 미국 측 협상단은 꿀 먹은 벙어리처럼 묵묵부답이었다.

갑자기 뒤바뀌어버린 갑을관계의 비애를 맛보고 있었던 것인데 딱히 마땅한 대안이 있을 리 없었으므로 현실을 받아들이지 않을 수 없었다.


한국 측 협상대표는 단도직입적으로 말했다.

“우리 정부는 주한미군 주둔지의 임대료를 무상으로 정하자는 귀측의 요구를 받아들이겠습니다, 단!”

맞은편 미국 협상단의 반응이 모처럼만에 안도의 표정을 짓는가 싶더니 '단'이라는 단서가 붙자 이내 불길한 표정으로 바뀌었다.


“이번 협상결과의 효력은 딱 1년의 기한으로 하겠다는 것이 우리 정부의 최종 입장입니다”

딱 일 년의 초단기 협상임을 말하는 우리 측의 고압적인 태도에 미국 협상단은 어처구니가 없다는 표정으로 서로를 바라보면서 절레절레 고개를 흔들었다.

실망하는 기색이 역력했지만 그렇다고 판을 엎을 생각까지는 없었던지 미국 대표가 사정하듯 읍소하기 시작했다.

“기한을 딱 1년으로 정한다면 내년에 또다시 협상을 해야 한다는 것인데 번잡스럽게 그러지 말고 관례대로 5년 다년계약으로 하는 것이 어떻겠습니까?

오랜 세월 각별했던 양국의 관계를 고려해서라도 이 문제만큼은 그렇게 양보해 주셨으면 합니다”


최대한 공손하게 미국대표가 요청했지만 한국대표는 작심이라도 한 듯 빙긋이 웃으며 말했다.

“지금 각별했던 양국관계라고 말씀하셨습니까?

바로 일 년 전이었습니다! 일본이 우리의 국토를 불법적으로 점령했을 때 귀국이 취했던 조치들을 한번 생각해 보십시오!

귀국의 항공모함은 우리 군대의 독도진입을 저지하면서까지 일방적으로 일본 편을 들어주었습니다,

그날 귀국이 보여주었던 특별했던 양국관계를 지금 우리 국민들은 또렷하게 기억하고 있습니다!

귀국에서 대고려연방의 핵무기보유국 지위를 인정해 준다고요?

귀국이 인정하든 말든 우린 이미 세계가 인정하는 세계최고 수준의 수소핵무기 보유국입니다!

우리의 자력으로 성취한 핵보유국의 지위를 마치 귀측에서 부여한 것처럼 생색을 내시니 참으로 당혹스럽습니다.

그간의 정을 생각해서 처음 일 년 동안은 무상사용을 양해하겠습니다만 내년부터는 합리적인 임대료를 지불하고 사용해 주시기 바랍니다!”


초강대국이 한때 그들의 보호를 받았던 국가에게 이토록 참혹한 수모를 당할 것이라고 상상했던 미국인은 없었다.

중국이나 러시아도 아닌 겨우 한반도의 절반인 한국에게 연거푸 케이오 펀치를 얻어맞고 있었으니 한마디로 기가 막힐 노릇이었다.

하지만 이 시점에서 미국은 자국의 국익을 위해서도 조심스럽게 행동할 수밖에 없었다.

곧 통일이 예정된 한반도는 남과 북으로 분단되었던 과거와는 상황이 많이 달랐다.

팽팽하게 유지되던 미국과 중국의 균형추를 무너뜨릴 수도 있는 대고려연방의 지정학적인 위치가 문제였다.

일본을 끝까지 보호하고 적성국 중국을 견제하기 위해서는 대고려연방의 심기를 거스를 수가 없었다.


얼굴이 벌겋게 달아오른 미국대표가 양손으로 얼굴을 감싸면서 말했다.

“도대체 얼마를 원하는 겁니까?”

한국대표의 표정에선 주도권을 쥔 자로서의 여유로움이 느껴졌다.

“전체 주한미군기지 공시지가의 5%가 양보할 수 없는 최저선입니다!

차후로는 매 삼 년 단위로 임대차 협상을 재개하여 새로운 약정을 체결해야겠습니다!

이것이 우리 측의 최종 입장임을 분명히 밝혀두는 바입니다!”


드디어 팔천만 국민들이 그토록 학수고대하던 2030년 6월 17일의 태양이 밝았다.

한반도가 남과 북으로 분단된 지 85년 만에 남과 북의 국민들에 의해서 통일을 추인하는 상징적인 조치가 이루어졌다.

대고려연방의 헌법제정 국민투표와 초대 연방의회의원 총선거가 89%라는 높은 투표율 속에서 동시 진행됐다.

90%가 넘는 압도적인 찬성으로 역사적인 대고려연방의 통일헌법이 탄생했고, 열한 개 주에서 삼십 명씩 모두 삼백삼십 명의 연방의원이 선출되었다.


처음부터 남북한의 주요 정당들은 초대연방의회를 구성하는 이번 선거에서는 후보를 내지 않기로 신사협정이 맺어진 상태였다.

제1회 선거부터 남과 북으로 나뉘어서 지역별로 정파별로 선거가 과열된다면 자칫 통일을 향한 대장정에 심각한 파열음이 생길 수 있었기 때문이다.

몇몇의 신생정당들이 참여하기는 했지만 대부분의 명망가들은 무소속 출마의 길을 선택함으로써 연방의 첫출발을 위한 신사협정에 동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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