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 대고려연방 (138)

대고려연방 민주공화국 6

by 맥도강

초대연방의원들은 통일의 첫 단추를 신중하게 잘 끼워야 한다는 시대적 사명감을 잘 이해하고 있었다.

그래서 이들은 기존의 정파에 휘둘리지 않으려는 독특한 분위기를 만들고자 노력했다.

이러한 분위기는 갓 태어난 신생 통일 국가를 반석 위에 올려놓아야 한다는 대고려연방 국민들의 간절한 마음이 반영된 결과였지만 또 다른 사정도 있었다.

십 년이라는 유예기간 동안 기존의 남북한 정부와 국회가 그대로 존속되는 과도기적 상황이다.

이 특별한 상황에서 새롭게 만들어진 연방의회와 연방정부는 다분히 상징적인 모습을 뛸 수밖에 없었다.

당초 십 인 위원회에서 연방의회의 위상을 논의할 때부터 남북국회 예산의 오분의 일 수준으로 잡았을 정도로 시범적인 성격이 강했다.

연방의원들에게는 자동차도 배정되지 않았고 각 상임위원회에 배치된 공동 보좌진 외에는 비서진의 조력도 받을 수 없었다.

생활비에 충당할 수 있는 급료도 없었고, 공돈 비슷한 회의 수당 같은 것도 당연히 주어지지 않았다.

하지만 딱 한 가지만은 예외였다.

의정활동에 필요한 교통비라던가 실비의 지출만큼은 분기별 삼천만 원의 한도 내에서 제한 없이 사용할 수 있었다.

그것도 연방의원들에게 제공되는 신용카드로만 지출할 수 있었는데 지출내역은 연방국회의 홈페이지를 통해서 투명하게 공개되었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연방의회는 자연히 능력은 있지만 그동안 정계를 멀리하던 참신한 인물들의 등용처가 되었다.

이 또한 삼일특공대의 제안을 십 인 위원회가 받아들인 결과였다.

삼일특공대는 통일 후의 정치시스템을 획기적으로 개혁해야 된다는 당위성을 가지고 있었다.

그래서 비대한 살집을 과감하게 도려냄으로써 국민들에게 존경받는 실용적인 전문가 집단을 구상했다.

국민들로부터 그 역량을 인정받으며 모범적으로 자리 잡은 스웨덴 정도의 의회상을 출발지점으로 삼았다.

그런데 뜻밖에도 의도는 달랐겠지만 십 인 위원회의 생각도 이와 비슷했다.

십 년의 유예기간을 거치는 동안 연방의회의 위상을 자신들보다 한 단계 아래로 설정하고자 했다.

그것은 유예기간이 끝났을 때 보다 손쉽게 연방의회를 장악하려는 꼼수가 숨어있었다.


어찌 되었던 연방 국민들은 완전히 새로워진 형태의 의회상을 목격하게 되면서 기존의 정치에서는 맛보지 못했던 신선한 카타르시스를 얻을 수 있었다.

특히 2030 젊은 세대의 강력한 응원 속에서 정계에 입문한 신출내기 연방의원들은 그들만의 독특한 의정문화를 만들어 나갔다.


연방의회의 첫 과제인 연방정부 구성을 위한 상임이사회를 선출하는 절차에 돌입했다.

선출된 열한 명의 상임이사들은 한결같이 정치색이 무색무취한 남북한의 각계각층을 대표하는 사회원로출신들이었다.

지역적인 안배차원에서 각 주에서 한 명씩 선출되었는데 전혀 의외의 인물이 이사회의 의장으로 선출되었다.

오랫동안 동북아역사재단을 이끌면서 남북 양쪽으로부터 민족주의 사학자로서 신망이 두터웠던 양 이사장이 만장일치로 선출되었다.


2030년 7월 1일, 감격적인 그날은 기어이 다가오고야 말았다.

대고려연방정부가 공식적으로 출범하는 이 역사적인 순간에 또다시 지구촌사람들은 광개토대왕 특별시로 이목이 집중되었다.

그러나 아직까지는 말이 행정수도이지 팔십 년 가까운 세월 동안 사람의 손길을 애써 외면했던 볼품없는 비무장지대 그대로의 상태다.


하지만 이제 명실상부한 대고려연방 신행정수도로서의 면모를 갖추기 위한 대대적인 개발이 예정되었다.

국제공모로 결정된 개발의 방향은 코리아평화공원과 조화롭게 공존하는 신행정수도로 정해지면서 세계인들의 관심과 기대를 한 몸에 받았다.

평화를 사랑하는 세계인들의 성지로서 거듭나게 될 광개토대왕 시는 대고려연방의 역동적인 미래상을 함축적으로 담아내게 될 것이다.

주어진 개발기간은 3년으로서 한국의 세계적인 토목 역량이 총망라된 대역사가 곧 시작될 예정이었다.


정작 문제는 따로 있었다.

비록 최대 십 년이라는 단서가 붙기는 했지만 서울과 평양은 앞으로도 남과 북의 수도로서 그 기능이 그대로 유지될 예정이다.

이런 상황 속에서 대고려연방의 행정기능들을 서울과 평양중 어느 한 곳에 둘 수도 없었고 분산하여 배치하는 것도 마땅치 않았다.

자칫 이제 갓 출발하는 연방의 위상이 기존의 남북한 정부보다도 낮게 비추어질 경우 향후 연방으로의 권력 이동이 순탄치 않을 수도 있었다.


이 부분을 처음부터 날카롭게 꿰뚫어 본 삼일특공대의 혜안을 십 인 위원회가 받아들임으로써 그야말로 판문점시대가 열리게 되었다.

다소 불편하더라도 연방의 수도 기능은 광개토대왕 시를 벗어나지 않는다는 원칙을 고수하기로 했다.

그렇다 보니 광개토대왕 시의 첫 풍경은 평화의 집과 자유의 집 주변으로 샌드위치판넬조의 가건물들이 꽉 들어차는 진풍경이 만들어졌다.

연방의회와 연방정부가 평화의 집과 자유의 집으로 입주를 시작하자 휑하던 광개토대왕 시도 제법 연방수도로서의 모양새를 갖추어 나갔다.


대고려연방의 출범식이 거행되던 평화의 집 앞마당에는 47개국의 현직 정상들이 축하사절단으로 참석했고 전직들까지 합치면 일백 명이 넘는 초호화 사절단이 귀빈석의 앞자리를 꽉 채웠다.

83억 명의 지구촌 사람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정 위원장과 민 대통령이 환한 표정으로 단상에 올랐다.

독도가 선명하게 표시된 하늘색 한반도기가 두 정상에게 전해지자 함께 좌우로 흔들기 시작했다.

때마침 가볍게 바람까지 불어주자 대고려연방기가 힘차게 펄럭이면서 팔천만 대고려연방 국민들의 가슴을 벅차게 만들었다.


다음 순서는 더욱 감동적인 장면으로 연출되었다.

정 위원장이 연방대통령을 맞이하러 잰걸음으로 다가가자 민 대통령도 함께 다가가 연방대통령의 좌우에 섰다.

팔순을 훌쩍 넘긴 연로한 연방대통령이 좌우의 남북 지도자들과 함께 손을 맞잡고 단상으로 성큼성큼 걸어 나왔다.


세 사람이 단상에 올라섰을 때 연방대통령의 구령에 따라서 우렁찬 목소리로 만세를 불렀다.

그 구호는 ‘대고려연방 만세’였다.

이 감동적인 장면을 TV로 시청하던 팔천만 국민들도 대부분 자리에서 일어나 만세삼창을 따라 했다.

너나 할 것 없이 감격의 눈물을 흘리지 않는 이가 없을 정도로 그야말로 감동의 도가니가 되고 말았다.

만세삼창이 끝났을 때 정 위원장과 민 대통령은 각자 한 발작씩 좌우로 물러나며 연방대통령에게 존경의 박수를 보냈다.


팔천만의 인구와 세계 5위로 도약한 경제규모, 미국과 러시아조차도 우려하는 수백 기로 추정되는 NK차르봄바급의 핵무기,

기술적으로도 완전체에 도달한 화성 21형 탄도미사일과 SLBM까지 의심의 여지없는 세계 4대 군사강국이었다.

동북아 지역은 이미 한 치의 양보도 없이 팽팽하게 전개되던 G2간의 긴장감이 일촉즉발의 상황이었다.

실제로 미국과 중국이 충돌하게 된다면 그 첫 번째 교전지역으로 당연시되던 세계 최고의 화약고다.

통일이전의 한반도라면 미국과 중국이라는 두 강대국의 틈바구니에서 이 눈치 저 눈치를 보며 생존을 위한 구차한 줄 서기를 강요당했을 것이다.


지만 이제는 사정이 확연히 달라졌다.

오히려 미국과 중국이 대고려연방의 태도를 예의 주시하는 입장이 되고 말았다.

향후 대고려연방의 향방에 따라서는 팽팽하던 미중 간 전력의 균형이 무너질 수도 있는 통일이전에는 상상도 할 수 없었던 전혀 뜻밖의 현상이었다.

이렇듯 크게 달라진 위상의 변화로 인하여 미국과 중국이 대고려연방의 눈치를 살피기 시작하자 통일 한반도의 주가는 날이 갈수록 올라갔다.


연방대통령은 청년시절 단재 신채호의 사상에 매료되어 우리 민족의 북방영토에 눈을 떴다.

이후 평생을 올곧은 민족주의 사학자로 강단에 섰던 학자로서 정치와는 일면식도 없이 살아왔다.

지만 초대 연방의회에 민족세력이 참여해야 된다는 학계의 여론이 비등함에 따라 얼떨결에 정치에 입문하게 되었다.

그러다가 남북양쪽으로부터 단지 무난하다는 이유만으로 그야말로 벼락을 맞은 것처럼 갑자기 연방대통령으로 지명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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