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고려연방 민주공화국 7
1992년 한국과 중국이 본격적으로 수교하자 수많은 한국 사람들이 동북 3성지역으로 여행을 떠나게 되었다.
한국인들의 관광지는 자연스레 고구려와 발해의 유적지 주변과 조선족 자치주가 있던 연변이었다.
한국 사람들이 그곳에 거주하던 조선족들과 빈번하게 교류하고 때마침 사학자들 사이에서 간도의 영유권 문제가 논의되기 시작하자 중국당국의 신경이 바짝 곤두서기 시작했다.
이에 위기감을 느낀 중국당국이 중국사회과학원을 내세워서 동북공정이라는 희대의 역사 사기극을 기획하게 된다.
오늘날의 중국 동북지역에서 전개되었던 고조선 부여 고구려 발해를 비롯한 우리 민족의 모든 역사를 자신들의 역사라며 왜곡하기 시작했다.
저들의 논리는 지극히 단순했다.
과거 동북쪽 접경지역에서 활약했던 거란 여진족 같은 소수민족들이 모두 중국이라는 거대한 용광로 속으로 녹아들었듯이 이들과 똑같은 도매금으로 용광로 속으로 집어던져버렸다.
이천 년대 초, 중국이 범정부적으로 동북공정을 노골화시키자 우리 정부도 이에 맞서는 차원에서 고구려연구재단을 만들어 대응했다.
이후 일본과 중국의 역사왜곡에 보다 체계적으로 대응하기 위하여 고구려연구재단을 동북아역사재단으로 확대 개편하게 된다.
이때 재단이사장의 소임을 맡게 된 양 이사장은 이제 연방대통령으로서의 시대적 소명을 다하기 위하여 두 주먹을 불끈 쥐었다.
동북공정은 단순한 역사전쟁이 아니었다.
어느 날 갑자기 고구려를 중국의 역사로 둔갑시켜 버리더니 고구려의 구토인 평양조차도 그들의 땅이라는 깡패 같은 내부논리가 만들어졌다.
이렇게 하여 동북공정의 최종목적지는 고구려의 잔여구토를 중국 속으로 완전히 편입시키려는 영토문제로 확대되었다.
작년 말 평양을 쑥대밭으로 만들어 버리겠다던 크리스마스 폭죽놀이에 즈음하여 미국과 중국이라는 두 적대국이 세기의 비밀협정을 맺을 수 있었던 것도 두 강대국 간의 이해타산이 맞아떨어졌기 때문이다.
북한영토를 중국의 동북 제4성으로 편입시켜 버리겠다던 계략을 진작부터 꿰뚫어 본 사람은 바로 양 이사장이었다.
이사장의 도움으로 윤 비서관은 자신이 이끌던 연구 2실 제3팀을 정부 내의 은둔 팀인 삼일특공대로 활용하게 되었다.
금년 초 동북공정을 불가역적으로 좌초시켰던 백두산정계비 남북대학생 탐험행사도 사실은 양 이사장과 윤 비서관의 작품이었다.
그랬던 양 이사장이 학계의 강력한 권고를 물리치지 못하고 초대 연방의원 선거에 나섰을 때만 해도 통일나라의 기틀을 잡는 일에 민족주의 사학자 한 명쯤은 필요하겠다는 소박한 생각이었다.
그런데 바로 그것 때문에 일이 이렇게까지 커져버렸다.
헌법의 부칙에 삽입된 최대 십 년의 유예기간은 달리 생각해 보면 남과 북의 온전한 통일을 십 년 동안 유예한다는 말과도 같았다.
실권은 기존의 남북한 정부가 그대로 쥐고 있으면서 통일된 그 외피의 상징성만을 가지는 것이 연방정부의 솔직한 모습이었다.
그런 이유로 단지 무난하다는 평가를 받았던 양 이사장이 남북 양쪽으로부터 무난하게 추대를 받는 특별한 상황이 만들어졌다.
비록 얼떨결에 연방대통령이 되었지만 연단에 선 그는 쩌렁쩌렁한 목소리로 훌쩍 넘겨버린 팔순의 노익장을 과시했다.
“누군가 우리 한민족을 짧게 정의해보라고 한다면 난 이렇게 말하겠습니다,
반만년의 유구한 역사를 자랑하면서도 이 지구상에서 가장 평화를 사랑하는 민족이라고 말입니다!
이제 우리는 천육백여 년 전 광개토대왕 이래 가장 강력한 국력을 지닌 통일나라가 되었습니다!
여러분! 열강들에 의하여 강제로 나라가 분단된 지 85년 만에 오직 자신들 스스로의 힘으로 다시 하나 된 나라를 알고 계십니까?
오늘 이 자리에서 그 위대한 통일 나라를 소개해 드리겠습니다!
바로 대고려연방 민주공화국입니다!”
연방대통령이 멋들어지게 오른손을 치켜들자 정 위원장이 제일 먼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기립박수를 치기 시작했다.
이것을 신호로 착석해 있던 삼만의 내외빈들이 동시에 자리에서 일어나 ‘와’하는 함성소리와 함께 열광적으로 박수를 쳤다.
지축이 흔들릴 것만 같은 이 거대한 함성소리에 불편한 기색으로 앉아있던 사람들이 있었다.
미국부통령과 함께 나란히 맨 앞자리 귀빈석에 앉아있던 일본총리와 시 주석이었다.
이들은 미국부통령마저도 자리에서 일어나 박수를 치고 있었지만 앉은 자세 그대로 딱딱하게 굳어진 표정으로 입술을 꽉 깨어 물었다.
이제 연방대통령의 연설은 절정으로 내달렸다.
“고려라는 국호는 광대한 북방영토를 지배하던 고구려의 최전성기 광개토대왕의 아들 장수왕이 수도를 평양으로 천도하면서 부르기 시작한 고구려의 새로운 이름이었습니다,
이 위대한 이름을 세계인들은 ‘코리아’라고 불렀습니다!
반만년 우리 민족 역사상 가장 위대했던 광개토대왕의 고구려는 이제 ‘대고려’라는 이름으로 21세기 한반도에서 새롭게 태어났습니다!
일본제국주의에 나라를 빼앗기고, 미국과 소련에 의해서 땅덩이가 두 동강이 나고, 중국에 의해서 고구려사를 통째 중국사로 왜곡당하는 치욕을 당하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우리 민족은 이제 그동안의 모든 치욕과 오욕을 물리치고 동북아시아의 신흥강자로서 우뚝 올라섰습니다!”
이번에는 민 대통령이 먼저 자리를 박차고 일어나 박수를 치기 시작하자 정 위원장이 만면에 미소를 띠면서 따라 일어났다.
동시에 모든 내외빈들이 또다시 자리에서 일어나 떠나갈 듯한 우렁찬 환호성과 박수소리가 평화의 집 앞마당에 울려 퍼졌다.
하지만 이번에도 일본총리와 시 주석만큼은 끝끝내 자리를 깔고 앉아 미동도 하지 않았다.
함께 일어나서 환한 표정으로 박수를 치고 있던 미국부통령과 대비되는 이 같은 모습으로 취재카메라들의 집중적인 조명을 받게 되자 두 사람의 얼굴색이 점차 흑색으로 변해갔다.
“우리 대고려연방은 그 어떤 열강의 진영에도 가담하지 않는 당당한 자주국으로서 중립외교를 표방할 것입니다!
하지만 만에 하나 또다시 우리나라를 핍박하고자 하는 어리석은 나라가 있다면 그 나라는 과거와는 달라진 새로운 강대국과 마주하게 될 것입니다!”
연방대통령의 연설은 주변의 열강들이 한반도에 가해왔던 핍박을 파노라마처럼 되새기면서 다시는 치욕스러운 역사를 되풀이하지 않겠다는 통일나라의 다짐이 서려있었다.
이제 열강들의 눈치나 살피던 분단된 허약한 나라가 아니라 동북아시아의 신흥강자로서 그 옛날 광개토대왕이 가졌을법한 자신감이 흘러넘쳤다.
초췌한 표정으로 미국 부통령의 옆자리만 지키던 일본총리의 모습과는 절묘하게 대비되는 장면이었다.
이미 핵무기보유국의 지위를 확보해 버린 대고려와의 무력분쟁은 이제 언감생심 생각도 하지 못하는 상황이 되어버렸다.
반면에 시 주석은 연방대통령의 연설을 들으며 꽉 지어진 두 손을 무르팍 위에서 파르르 떨었다.
대고려연방의 차고 넘치는 무례에 부글부글 끓고 있었지만 여차하면 미국과 일전이라도 치러야 하는 비상한 상황에서는 참을 수밖에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