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 대고려연방 (140)

마지막 퍼즐 맞추기 1

by 맥도강

대고려연방의 출범과 함께 남북출입사무소도 철거되어 남과 북을 구분하던 경계선은 완전히 사라졌다.

대고려연방의 국민이라면 범법자가 아닌 이상 누구라도 자유롭게 이동하거나 거주할 자유가 보장되었다.

그러나 아직까지도 대규모의 이동은 눈에 띄지 않았다.

오랜 세월 남북으로 나뉘어서 살아온 만큼 서로 신중하게 상대를 탐문하면서 천천히 하나가 되어갔다.


코리아평화공원으로 명명된 비무장지대는 전쟁과 분단의 상징처럼 그 잔흔들이 남아있었다.

도처에 파묻혀있던 350만 발 이상의 지뢰를 파헤치는 작업이 빠른 속도로 진행되었다.

우리나라의 어느 중견기업이 개발하여 투입된 거대한 불도저모양의 최첨단 지뢰제거기의 작업속도는 놀라웠다.

시속 30킬로의 속도로 지나갈 때마다 속수무책으로 제압된 지뢰들이 고구마줄기처럼 빨려 나와 그 추한 몸뚱이를 드러냈다.

전체 구간에 투입된 지뢰제거기의 수가 무려 수백 대에 이르렀다.

한시라도 빨리 분단의 상처를 지우고 싶어 하는 대고려연방 국민들염원으로 작업은 밤낮없이 강행되었다.

명색이 대고려연방정부가 출범하였지만 기존의 남북한정부가 공존하는 현실에서는 상징적인 모습에 머무를 수밖에 없었다.

막강한 힘을 가진 남북한의 양 정부에 의해서 통일을 언제든지 한낱 휴지조각으로 만들 수도 있었다.

대고려연방의 첫출발은 외교 체육 산림분야 등 극히 초보적인 몇 가지를 제외하고는 사실상 거의 대부분의 권한들이 남북한의 정부로부터 이양이 유보되었다.

그래서 십 년의 불안정한 유예기간은 완전한 통일로 나아가는 준비기간일 뿐 통일의 완전체라고 말할 수 없었다.


하지만 9월 초에 실시된 전국지방자치선거는 대고려연방의 정치, 행정체제를 지금까지와는 다른 새로운 모습으로 바꾸어 놓았다.

열한 개의 메가시티 광역권으로 행정단위가 재편됨으로써 그동안 중앙정부에 집중되어 있던 권한들이 주자치정부로 빠르게 분산되는 현상이 발생했다.

십 년의 유예기간이라는 불안정성이 오히려 지방자치를 강화시키는 역동적인 결과로 작동됐다.

열한 개의 주자치가 빠르게 자리를 잡아감에 따라서 십 년의 유예기간이 무색해지는 현상들이 점차 굳어졌다.


이렇게 되자 남북한의 기존 정부는 국방과 화폐발행권, 국세의 징수권 정도만 가질 뿐 대부분의 권한들이 빠른 속도로 지방정부로 이양되었다.

기존의 남북한 정부가 스스로 권한을 내려놓은 탓도 있었지만 이제 통일은 되돌릴 수 없게 되었다는 연방국민들의 믿음이 만들어낸 사회현상이었다.


통일이라는 위상의 파워는 그 자체만으로도 막강한 위력을 발휘하기 시작했다.

남북한의 모든 군인과 경찰 소방대원 등 일체의 공무 제복을 단일화시켜 통일의 상징성을 공유하는 조치들이 취해졌다.

특히 남북군대의 징병제 폐지와 부사관 중심의 지원병제는 국방정책의 획기적인 변화를 예고했다.

인생의 황금기인 이십 대의 특정 시기에 의무적으로 징집군인이 되어야 했던 것은 분단시대를 살아가는 청춘들의 슬픈 비애였다.

그러나 이제 자원하는 젊은이들만이 직업군인이 될 수 있었다.

따라서 군대의 수준이 질적으로 향상되는 것은 물론이고 자연스럽게 청년실업의 문제도 해소되는 2중의 효과를 노릴 수 있었다.

이렇듯 막상 통일의 문을 활짝 열어젖히자 미처 예상하지 못했던 시너지 효과들이 사회곳곳에서 분출되기 시작했다.


대고려연방에서 처음으로 맞이하는 11월의 가을내음은 예년보다도 훨씬 더 진한 향내로 다가왔다.

퇴근 무렵 덕수궁 돌담길을 걸어가던 윤 비서관이 고풍스러운 전통찻집을 오랜만에 다시 찾았다.

‘커피가 있는 찻집 풍경’이라는 나무간판은 여전히 묵직한 목문 위에서 삐꺼덕 소리를 내면서 바람결에 흔들렸다.

“비서관님! 여깁니다!”

먼저 와서 기다리고 있던 장 팀장이 늘 앉던 안쪽 구석자리에서 윤 비서관을 불렀다.

“일행분이 계셨네!”

장 팀장이 동행한 사내와 함께 일어서며 말했다.

“인사드리지! 청와대에 계시는 윤 비서관님!”

“처음 뵙겠습니다, 위규태라고 합니다!”

자리에 앉으며 장 팀장이 규태의 어깨를 어루만지면서 말했다.

“이번에 북방사 연구소의 인턴으로 채용된 신입연구원입니다,

비서관님! 알고 보니 이 친구가 글쎄 독도전쟁의 산증인이지 않았겠습니까?

당시 흑군파의 칼부림으로 사망한 학생이 이 친구의 동아리 후배였다고 하는데 자신들이 진짜베기 삼일특공대였다는 겁니다!”


순간 규태의 표정이 잠시 어두워졌다.

다케시마수복결사대의 칼부림에 목숨을 잃은 후배 준현이 떠올랐기 때문이다.

침울한 표정의 규태를 위로하려는 듯 장 팀장이 또다시 규태의 어깨를 토닥이고 있었을 때 이 모습을 따듯한 시선으로 바라보던 윤 비서관이 말했다.

“시퍼렇게 날이 선 일본도에 맞서서 대나무 막대 하나로 맞서 싸웠던 그 용기가 대단했습니다!

그 당시의 심정이 어땠나요?”

머리를 숙이던 규태가 천천히 고개를 들면서 하는 말이다.

“우리가 바로 삼일특공대였다 아입니까!

그때는 겁나는 게 하나도 없었습니다,

우리 땅을 저거 땅이라고 빡빡 우겨대는 쪽빠리새끼들을 박살 내야겠다는 생각뿐이었습니다!”


장 팀장이 놀랍다는 듯이 다시 규태를 바라봤다.

“삼일특공대? 우리 팀에게 영감을 준 원조 삼일특공대를 이렇게 만나게 될 줄이야?”

“그때 우리는 삼일운동 110주념기념 상황극을 하고 있었단 말입니다,

내하고 후배 두 명이 맡았던 역할이 일본헌병을 혼내주는 삼일특공대였거든요,

그런데 갑자기 다케시마가 저거 땅이라고 고래고래 고함을 질러대길래 연극할 때의 복장상태 그대로 달려가서 금마들하고 한판 붙었뿟다 아입니까?

그랬던 내가 다시 삼일특공대에 들어왔다는 것이 도무지 믿기지 않습니다!”


규태는 오랜만에 이야기보따리를 풀어놓고 싶었지만 이제 갓 시작하는 인턴이라는 신분상의 한계 때문에 오늘은 이 정도에서 멈출 수밖에 없었다.

장 팀장이 다시 규태의 어깨를 가볍게 터치하면서 한마디를 던졌다.

“자기 집을 제대로 찾아온 거잖아!

원조 삼일특공대답게 우리 팀을 접수해 버리라고!”


꽤 흥미롭다는 표정으로 규태를 응시하던 윤 비서관이 다시 물었다.

“그런데 독도연구소가 아닌 북방사 연구소를 선택한 이유가 궁금하군요?”

굳이 누가 묻지 않더라도 스스로라도 말하고 싶은 충동이 일던 차에 잘되었다는 표정이다.

“남북대학생들의 백두산정계비 탐험 행사 때 겪었던 여러 경험들이 마음을 이쪽으로 정하는데 큰 도움이 되었습니다”

규태는 더 말하고 싶어 입이 근질근질했지만 오늘은 이 정도에서 머무르기로 인내하는 중이다.

규태가 끝내 자신의 입을 다스렸을 때 은하를 구하기 위하여 생사를 넘나들었던 미니탐험대의 무용담을 두 사람은 들을 수 없었다.


그러던 사이 전통찻집이라는 서정적인 분위기와 절묘하게 대비되는 익숙한 향기가 다가왔다.

갓 볶아낸 구수한 커피 향을 온 사방으로 풍기면서 투박한 머그컵에 담긴 아메리카노가 오래된 원목 테이블 위에 놓였다.

“맛있게 드세요!”

언제나처럼 단정한 개량 한복이 잘 어울리는 이 집 여사장의 자태와 친절한 미소는 커피 맛을 돋우는 기분 좋은 립서비스였다.

모두는 미소로 화답하며 커피 잔을 들었지만 유독 규태만큼은 한마디를 더 보태고서야 직성이 풀렸다.

“한복이 참 잘 어울리시네요!”

여전히 미소로만 답할 뿐 이 집 여사장은 더 이상의 인사말 없이 조용히 물러났고 모두는 은은하게 우러나는 녹차향의 분위기 속에서 아메리카노의 깊은 맛을 향유했다.


“장 팀장! 우리 팀은 아직 해체되지 않았다는 것 알고 있지?

앞으로도 마무리해야 될 일들이 많을 테니까 긴장들을 풀면 안 돼!”

이때 장 팀장이 뭔가 중요한 대화를 하려는지 자리를 바짝 당겨 앉았다.

“연방정부가 들어선 지 이제 겨우 5개월이 지났을 뿐인데도 북쪽의 장마당 어디에서도 북한돈은 아예 취급을 하지 않는답니다,

모두가 한국 돈으로만 거래가 되고 있다는 것은 실물경제는 이미 종속되었다고 보는 것이 맞지 않을까요?”






keyword
매거진의 이전글소설 대고려연방 (139)